[스포주의] 늑대와 향신료 16권 리뷰 -사랑과 정열과 늑대-
필자의 뇌리에 잊히지 않는 영화 한편이 있습니다. 제목은 이제 와 생각 안 나지만 인간의 남자와 사이보그 여자가 만나 역경을 이겨내고 맺어졌지만 남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여자는 그의 곁을 언제까지고 지키면서 끝이 납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지금까지 끝없이 자문하는 게 하나 있는데요. 과연 여자는 행복했을까? 남자는 행복한 마음으로 떠났을까? 불꽃같이 모든 걸 태워 한순간 정열적으로 모든 걸 바쳐 그를 혹은 그녀를 사랑하고 미련 없이 떠나는 것, 웃으면서 이별을 하고 남겨진 자는 또다시 여행을 떠난다. 이걸 두고 과연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호로는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숱한 이별을 경험했습니다. 한때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일각 고래라는 불로의 영약을 찾아 여행을 한 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 그녀는 사랑하는 이와 찰나의 시간을 살고 언제나 배웅하는 입장의 슬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콜을 서적상에 맡겨 떠나보낼 때 호로의 표정을 본 로렌스는 그 슬픔의 무게를 여실히 느껴야만 했고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혼자 남겨진다는 외로움,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있어서 과연 이게 행복한 결말일까?
이번 이야기는 그 어떤 결말이 기다린다 해도, 그래도 우리는 손을 잡고 걸어간다. 분명 나는(로렌스), 그녀(호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고 그녀(호로)는 남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별이 확정된 미래라도 지금은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살아가겠다고, 한번 잡은 손은 절대 놓지 않겠다고, 그동안 상인의 길과 그녀라는 선택지에서 갈팡질팡했던 로렌스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녀를 선택합니다. 아무리 괴로운 미래가 기다린다고 해도 지금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모든 걸 바치겠노라고, 그녀에겐 또다시 씁쓸한 미래가 기다릴지언정 지금을 소중히 하겠다고...
그런데 데바우 상회에서 내분이 일어나면서 또다시 이들의 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레스코에서 자신의 가게를 차릴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그녀가 곁에서 같이 가게를 운영해줄 거라는 기대감에 이것이 성공한 인생이지 했던 로렌스를 시기하듯 찾아온 반란은 그를 사지로 내몰고 호로와 뜻하지 않는 이별을 강요합니다.라고 해도 언제나 기승전결인 이 작품에서 그리 심각한 건 없었습니다. 호로는 자신(호로)을 얻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는 로렌스를 바라보며 언젠가 그랬던 슬프게 이별할 바엔 웃으며 지금 헤어지자고 했던 자신을 버리고 로렌스를 반려로 인정하면서 설사 이별이 확정된 미래라도 지금은 힘껏 그의 곁에서 살아가기로 합니다.
참 어떻게 보면 풋풋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별이 두려워 다가갈 수 없는 존재를 바라보는 마음, 울면서 이 마음을 전하며 이별을 읊어야만 했던 슬픔, 그러나 이것을 뛰어넘어 결국 손을 잡고 걸어가기로 했을 때의 잔잔한 여운, 사실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상업계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요는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와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라도 지금은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언젠가 이별을 하고 남겨진다고 해도 지금은 모든 것을 쏟아부어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때가 찾아왔을 때 미련을 두지 않고 행복했지라며 웃으며 헤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뭐 그런 거지요.
정작 본 내용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는데 별거 없습니다. 데바우 상회 내분으로 북방 지역이 전란에 휩싸일 위기에 빠지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 로렌스와 호로는 각기 행동하며 동분서주하지만 녹록지가 않고 남편의 위기를 본 호로는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지고, 이교의 신중 하나인 토끼의 화신 힐데의 귀여움의 이면에 감춰진 중년 수염 아저씨의 괴리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과정에서 로렌스는 상인의 입장과 용병의 입장 그리고 호로를 사랑한다는 마음이 얽혀 양판소 판타지물이었다면 정신이 붕괴되어 최종 보스가 될 처지에 놓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럴 일은 없었습니다.
사실, 재미? 그런 거 없어요. 그저 상인으로 살아가야 될 마음가짐의 표본 같은 작품이다 보니 솔직히 잘 읽히지가 않죠. 거기다 호로는 사람 머리 꼭대기에 앉아 모든 걸 꿰뚫어 보면서 능글맞게 구는지라 귀여운 구석도 없고요. 뭐 후반부에 사랑이라는 콩깍지가 씌면서 조금은 귀여워졌지만요. 필자는 이 작품을 표현 하라면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이 만나 시간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맺어지는 가슴 먹먹한 이야기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사실 이것만 눈에 들어온지라 이 작품의 본질을 20%도 이해 못했지 싶군요. 하지만 크게 보면 이걸(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끼리의 맺어짐)로 귀결되어서 다른 건 어떻게 돼도 사실 상관은 없었습니다. 해피엔딩이면 만사 OK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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