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변경의 노기사 1권 리뷰 -끝은 새로운 시작-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사랑, 공주와 기사가 맺어져? 본격 동심파괴를 지향하는 작품이 나왔습니다. 흔히 판타지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나 마왕에게 잡혀간 공주를 구한 기사가 공주와 맺어지는 엔딩을 맞이하곤 하잖아요. 원래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고요? 보통 나라가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힘에 의한 지배 때문이고, 공주를 잡아간 마왕은 힘이 강건하죠. 그런데 그걸 타파한 기사나 용사는 어떨까요. 물론 동료의 조력은 받지만, 메인은 어디까지나 용사 혹은 기사입니다. 처음엔 떠받들고 우러러보겠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마음속엔 새로운 힘과 마왕을 품게 됩니다. 바로 용사나 기사를 바라보면서요.
옆 나라는 그런 강대한 용사나 기사를 빌미 삼아 시비를 걸어오고, 사람들은 혹시나 용사나 기사가 나쁜 마음을 품으면 어떡하지? 그걸 제지할 장치는 있고? 의심은 사실이 되어가고, 음모가 판치고, 독살이 횡행하게 됩니다. 사람 사는 동네에서 제일 먼저 죽는 건 누구일까요. 겁쟁이? 아첨쟁이? 가난한 사람? 아뇨, 용기와 상냥함을 가진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공주를 구한 기사가, 나라를 구한 용사가 제일 먼저 죽습니다. 목숨을 보존하려면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는 수밖에 없어요. 어디서 약을 팔아! 하겠지만 역사를 보더라도 필자의 이런 말은 허구는 아닐 것입니다.
기사 '발드'는 올해로 58세입니다. 마수와 야수가 넘실대는 변방 테루시아 가(家)를 모신지도 벌써 30여 년, 마수와 야수의 침략, 그리고 모지리 한 주변 영주들의 침략을 막으며 구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인민의 기사] 발드는 기사직을 은퇴하고 길을 떠납니다. 사실 위에서 제일 먼저 저런 사람들 죽어간다고 언급은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힘 때문에 공주 혹은 자신이 섬겼던 주군에게 위해가 가해질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길을 떠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겁쟁이죠. 누군가가 큰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시비를 걸죠. 용사나 기사는 새로운 마왕이 되어 갑니다. 그걸 막기 위해 용사나 기사는 길을 떠나는 것이죠. 공주와 맺어진다는 해피엔딩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겁니다.
발드도 너무나 높아진 자신의 위상에 자신이 모시던 영주와 영지에 위해가 가해지지 않을까 하여 58세라는 늦은 나이에 길을 떠납니다. 뒤는 새로운 세대에게 맡긴 채, 그에겐 태어날 때부터 보필해온 공주가 있었습니다. 공주는 무척이나 발드를 따랐고 이대로 성장한다면, 어쩌면 공주는 기사인 발드를 남편으로 맞이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피엔딩 판타지 따윈 엿 먹으라는 것마냥 정치적 이유로 공주는 이웃 영주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고, 1년 반 뒤 공주는 갓난 아이를 안고 친정인 테루시아가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발드의 나이 대략 30세, 공주의 나이는 대략 17세... 발드는 공주와 아이를 성심성의껏 보살폈습니다. 누가 봐도 하나의 가족처럼 단란하게...
1권은 1부와 2부로 이어져 있는데 1부가 발드의 자서전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새장 속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던 공주는 세계 여행을 꿈꿔 왔습니다. 하지만 병을 얻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공주, 길을 떠난 기사는 자신이 접한 문물의 느낌을 편지로 작성하여 공주에게 보내려 하였으나 공주는 그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남긴 채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공주가 전한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공주의 파란만장한 삶이 밝혀지면서 발드는 전에 없는 분노를 접해갑니다. 이용당한 삶, 빼앗긴 삶, 음모로 인해 위기에 처한 주군과 영지, 그러나 공주가 남긴 아들은 혐오해 마지않는 이웃 영주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에서 유일한 돌파구로 자리를 잡습니다.
1부는 슬픔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계급의 차이 때문에 맺어질 수 없는 슬픔이 아니라 이게 정상이라는 것마냥 서로가 선을 긋고 넘지 않으려는 슬픔, 그리고 그것을 원망하지 않고 좋은 인생이었지 하며 조용히 눈을 감는, 자신들의 운명에 장난질친 놈들에게 단죄를 내리는 발드, 이로써 자신이 모시던 주군과 영지는 평화로워지리라. 노구를 이끌고 기사는 다시 여행길에 오릅니다.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한 여행을, 가다가 객사를 하던 실력 좋은 기사에게 지든, 마수 혹은 야수에게 죽임을 당하던... 그의 애마 스타보로스와 함께.. 하지만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그의 여행에 하나둘 동료가 생겨 가고 죽을 자리를 찾던 그에게 새로운 전기가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맺으며, 어딘가 모를 서글펐던 1부와 다르게 2부부터는 발드가 앞으로 맞닥트릴 이야기의 서막에 지나지 않아 그렇게 큰 이야기는 없습니다. 허구한 날 진미를 찾아 여행을 하고 사건을 해결하고 말끝마다 여기서 죽겠구나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적을 베곤 살아남는 게 조금은 무미건조합니다. 뒤로 갈수록 이게 더 심해져서 한 300페이지쯤 가면 지루하게만 느껴지더군요. 신선한 감이 떨어진다고 할까요. 유사한 이야기가 펼쳐지다 보니... 하지만 복선이 몇 개식 투하되면서 이게 회수될 때는 박진감과 스케일이 상당히 커지지 않을까 하는 두근거림도 있긴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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