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 먼저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라이트 노벨이나 만화에 빗대어 보자면 남자 주인공과 여러 히로인을 들 수가 있는데요. 남주는 아무런 감흥 없이 요컨대 떡을 주기는커녕 만들지도 않았는데도 히로인들은 제멋대로 호감도가 올라가서 김칫국을 마시곤 왜 바라봐 주지 않는 건데? 같은 이야기로 이어지니 보는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죠. 근래에 들어서 이런 흐름은 다소 진정되어 가곤 있긴 한데 아직도 많은 작품에선 이런 흐름을 표방하고 있기도 합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긴 합니다. 어느 카페에서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거라는 게시물에서 어느 회원이 그걸 부정하자 '너 님 연애 안 해봤지?' 말이 돌아온 게 기억나는데요. 라이트 노벨이나 만화에서라고 첫눈에 반하지 말란 법은 없겠죠. 현실에서도 길 가다맞을 순 있습니다. 그런데 라노벨에서의 상황은 개연성이 없잖아요. 남주가 해준 것도 없고 그냥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괜스레 볼이 빨개진다던지, 가슴이 두근거린다던지, 느닷없이 연애 감정이 각성한 건가? 꼭 보면 초반엔 아닌척하다가 중반 넘어서서 이러더라고요. 이런 필자를 향해 '혹시 너 님도 연애 안 해봤지?'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또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이 작품도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남주 하나에 히로인 여럿, 그리고 다들 호감도가 엄청 올라가 있죠. 하지만 이 작품은 조금 다른 게, 찬찬히 음미하듯 들여다보면 어떤 한 가지로 귀결되는 걸 찾을 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배려', 아무리 꼴통 남주라도 이거 하나만 있으면 무적이 됩니다. 물론 이 작품의 주인공이 꼴통이라는 소리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라고요. 이 작품의 주인공 고블린 슬레이어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연애는 물론이고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을 겁니다. 왜? 그에겐 철천지원수 같은 고블린을 멸족 시켜야 한다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죠.


이것으로 인해서 본의 아니게 득을 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접수원 누님인데요. 그녀는 초보 모험가 킬러인 고블린을 퇴치해주는 그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죠. 아침에 의뢰를 들고나가서 저녁에 귀환하지 않는 모험가들을 보며 마음 앓이를 해야 했고 그걸 보살펴준 게 고블린 슬레이어였는데요. 그렇게 그가 고블린만 잡기를 몇 년, 자연스레 접수원 누님은 그를 눈으로 좇았고 그만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 버렸습니다. 거기다 하나같이 자신에게 흑심이 있는 다른 모험가와 다르게 자신을 여자로 바라봐 주지 않는 것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기도 하죠. 보통은 반대지만 창잡이처럼 게슴츠레 가슴을 쳐다본다던가를 그는 하지 않습니다.


소치기 소녀, 여신관도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블린 슬레이어가 그녀들을 대하는 모습의 공통점은 배려라고 할 수 있죠. 그녀들의 말에 '그래, 그런가'같이 무심하게 대꾸하는 듯 보여도 그녀들의 부탁이나 그녀들이 아이 달래듯 하지 말라고 하면 그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구하려고 필사적인 모습과 겉멋에 살지 않고 실용적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 거기에 타의가 개입되곤 하지만 흑심 없이 자신들을 보살펴주는 다정한 모습, 그러나 우리의 고블린 슬레이어는 둔감계 주인공이라는 거, 꼭 보면 이래요. 자신이 베푸는 선의는 당연하지만 타인이 자신에게 베푸는 호감엔 둔감한...


그건 그렇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이번 4권은 쉬어가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주인공인 고블린 슬레이어 입장에서 진행되었다면 이번엔 주변 사람들 특히 여러 히로인들 시각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당연히 접수원 누님과 여신관, 소치기 소녀도 등장해서 그를 연모하는 모습과 그의 입장에서 세상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등 그 나이대에 맞게 두근거림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여신관인가 소치기 소녀가 그랬나 그런 그를 빗대어 난봉꾼 같다는 소리도 나왔던 거 같군요. 도서를 며칠에 걸쳐 읽다 보니 기억이 흐릿해져 이 단어가 진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어쨌건 다들 얼핏 알고 있는 겁니다. 그의 성품에 이끌린 여자들이 많다는걸, 솔직히 이 정도 돼야 개연성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적어도 이 작품은 의미 없이 두근거리거나 괜스레 볼을 빨갛게 물들여서는 보는 이를 황당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아, 순간 잊고 있었던 어떤 작품이 떠올라 또 씁쓸하게 하는군요. 또 어쨌건 간에 이런 여자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의 고블린 슬레이어는 혼자서 잘 싸돌아다닙니다. 의뢰를 받아 단독 고블린 토벌은 물론이고 창잡이랑 중갑 전사와 어울려 칙칙한 파티를 꾸려선 나쁜 마법사를 혼내준다던지, 그러다 저녁놀이 비치는 마을에 돌아와 문득 자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서 묘한 감정을 받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다녀왔어, 어서 와' 같이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이것이 정상적인 삶이 건만... 그에게 봄이 올 날은 언제일까요.


맺으며, 요컨대 이 작품은 솔로를 위한 지침서쯤 된다고 할까요. 현실과 이상은 다르고, 돈도 중요하고 면상도 중요하지만 역시나 사람은 겉모습보다 내면이라는 것이라고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하지만 착해빠져선 현실 세상은 살아갈 순 없겠죠. 판타지의 주인공이야 착하면서 강하니까요. 그래도 이런 연애 작품의 공통점은 주인공을 좋아하는 히로인들의 격은 좀 다르다는 겁니다. 저렴하지 않아 보인다고 할까요. 현실에서 이런 여자 만나려면 대체 얼마나 노력해야 될까요. 

 

 
블로그 이미지

현석장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97)
라노벨 리뷰 (939)
일반 소설 (5)
만화(코믹) 리뷰&감상 (129)
기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