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보면 정통 판타지에서 용사가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해 시작의 마을을 떠나 여행을 하며 동료들을 모으잖아요. 여기서 동료라는 게 용사와 비슷한 연령대이고 남자는 어찌 되었든 개중엔 히로인들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런데 늘 궁금했던 것이 히로인들 중에 소꿉친구라든지 장래를 약속한 남친이 있지 않을까 싶은 게요. 그야 히로인으로 발탁될 정도로 외모라든지 실력이라던지 면에서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 텐데 그 나이까지 남친이 없을 리 없잖아요. 어쨌건 히로인은 용사의 부탁이나 신탁이 내렸다는 교회의 말을 듣고 용사를 따라나서게 되죠. 그렇다면 이건 남친 입장에서 보면 여친을 용사에게 빼앗긴다는 소리이지 않을까요? 그야 판타지물 엔딩을 보면 주인공(용사)과 히로인이 맺어지기도 하잖아요.


이 작품의 주인공 '와즈'가 딱 그런 경우입니다. 어릴 때부터 한마을에서 살았던 히로인 '아리아'와 장래를 약속한 사이죠.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신탁이 내려지고 아리아는 성녀가 되어 그녀로 하여금 용사를 거들어 마왕을 무찌르라는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그날, 마을을 찾아온 용사에게 소꿉친구를 내주기 싫었던 와즈는 대들게 되고 보기 좋게 나뒹구게 됩니다. 이를 바득 갈며 어쩔 수 없이 보내준 그는 후일을 기약하는데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2년 후 마왕을 무찌른 용사 일행은 개선을 합니다. 그리고 왕은 용사에게 소원을 말하라 하죠. 용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와즈를 전율케 했고 그 자리에서 아리아와 키스를 나누는 용사를 본 와즈는... 


힘은 개뿔도 없고 농촌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남이 바로 주인공 와즈입니다. 그는 소소하게 살며 히로인 아리아와 장래를 약속하고 머지않아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렇게 일생을 살아 가려 했던 그에게 용사가 아리아에게 했던 말은 참으로 비참함 그것이었겠죠. 2년 전과 2년 후 연속 크리티컬로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버린, 그는 이제 다 필요 없어를 외치며 죽기 위해 강력한 몬스터가 산다는 마경에 발을 들이고 맙니다. 하지만 죽기 위해 찾은 거기서 마물을 만나 피해 다니는 동안 살고자 하는 마음이 싹트게 되고 배가 고파 줏어 먹은 것들이 그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합니다.


이것은 중2병을'흔직세'이자 젊은 '다나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락에 떨어져 살기 위해 먹은 마물을 힘으로 바꿨던 나구모, 와즈도 살기 위해 독초와 마물의 찌꺼기를 먹으며 힘을 키웠고 어느새 젊은 다나카가 되어 버렸습니다. 참고로 다나카는 '다나카 ~나이=여친 없는 역사인 마법사~.'라는 작품을 말합니다. 다나카는 회복술 하나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디펜서가 되었죠. 와즈는 둘을 섞어 놓았습니다. 최강의 힘을 얻은 것 동시에 성검도 어찌할 수 없는 방어력을 얻었죠. 발을 굴리면 별도 쪼갭니다. 그리고 '동정', 하지만 마법은 못 쓰지, 아직 35세가 넘지 않아서 흑마법사는 고사하고 백마법사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마경에서 용왕(드래곤 킹)을 만나 일기토를 벌이고 그러다 의기투합해서 친구 먹고, 그(용왕)의 딸이 주인공이 마음에 들어 앵겨오고, 용왕 친구들의 꼬임에 넘어가 여자에게 차였다면 여자로 치유받으면 됨,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속세로 내려가 하렘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마는데요. 그런데 필자가 괜히 다나카를 언급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괜히 동정을 강조한 것도 아니죠. 인 외 존재에게 사랑받는 다나카처럼(참고로 에스텔도 따지고 보면 인 외의 존재) 와즈도 인연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럴수록 멀어저만 갑니다. 그런 그의 곁에서 용왕의 딸 '메아르'만이 뀨뀨~, 그리고 그의 길드 카드엔 어찌 된 일인지 여신이 깃들어 있는데...


하렘 만들기 프로젝트, 어디서 싸구려 같은 멘트를 날리고 있어 하겠군요. 좌우지간 1권에서는 두 명의 히로인(아리아 빼고) '사리나'와 '타타'와 인연이 닿지만 이번 생에서는 글쎄?라는 분위기만 팍팍 풍기기 시작합니다. 착하고 심성이 고운 주인공에 이끌리는 히로인이라는 클리셰를 답습하고는 있지만 사실 이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만나고 착각으로 시작하는 어긋남이군요. 서로가 이끌려 '좋아해요!'를 말하지만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좀처럼 다가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와즈는 자신의 외모가 평범해서 이러는가 싶은 자격지심에 빠지기도 하고요.


이 작품의 특징을 들라고 하면 히로인 입장에서 주인공에 이끌려 가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주인공이 뭘 했기에 히로인들 눈에 하트를 그리게 하나 하는 의문점을 이 작품은 히로인의 입장에 서서 풀어주고 있죠. 요거 하나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필력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독자가 흥미를 끌까 하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에서도 거침이 없습니다. 이와 유사한 게 다나카죠. 분명 그로테스크 하거나 여기서 웃으면 안 되는데도 웃음기 유발하는 실력이 대단하다고 할까요. 일례로 여신이 길드 카드에 깃들어서 주인공과 소통하며 악당들을 때려잡자 같은 거라든지요.


사실 이 작품도 좀 비참합니다. 용사에게 창피 당한 것도 모자라 소꿉친구라 쓰고 여친을 빼앗기고, 얼결에 고백한 여성에겐 차이고, 또 얼결에 고백한 여성은 다음날 되니 홀연히 모습을 감춰 버렸습니다. 후자의 여성은 유곽에서 제법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고요. 근데 인 외의 존재인 용왕(드래곤 킹) 딸과 얼굴을 한 번도 못 본 길드 카드에 깃들어 있는 여신이라던지에겐 사랑을 듬뿍 받고 있죠. 그리고 기껏 마을을 구했더니 난 없는 사람 취급이나 하고 말이야. 사실 다나카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뭔가 열심히는 하는데 돌아오는 건 하나도 없는, 이 모든 과정을 희극으로 표현한 게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뒤늦게 주인공 뒤를 쫓는 히로인들...      

맺으며, 부제목으로 쓴 '착각으로 시작하는'은 사실 히로인 아리아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정보를 모으면서 용사가 아리아를 와이프로 맞아들인다고 했을 때의 상황을 알게 되었거든요. 정발판에서는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듯하여 주인공이 뭘 착각했는지는 언급하지 못하지만, 어쨌건 제목 때문에 걸렀던 작품인데 NTR 성향이 있다고 해서 구입했는데 대만족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전형적인 먼치킨 라이토 노벨의 범주를 벗어진 못하지만 이야기를 꾸려가는데 있어서 거침이 없는 진행 방식이 마음에 들었군요. 가령 누굴 좋아한다고 해서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지 않고 말할 건 한다던지, 대머리를 대머리라 부른다던지, 여신에게 동정받기도 하고, 싸구려 멘트 날리기도 하고, 제일 인상적인 건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 

 
블로그 이미지

현석장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47)
라노벨 리뷰 (892)
일반 소설 (5)
만화(코믹) 리뷰&감상 (126)
기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