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히로인은 언제 봐도 눈부십니다. 보호받는 입장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적을 맞아 싸우는 것, 힘이 없다 하여 좌절하지 않고 세상 모든 게 적이라 하여 기죽지 않고 똑바로 맞서가는 것, 있을 곳을 스스로 만드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그 사람이 돌아봐주지 않는다고 시기하지 않고 그 사람이 바라보는 여성에게 질투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을 뛰어넘었을 때 비로써 히로인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노출증 환자 토끼귀 '시아'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에피소드입니다. 그동안 비참할 정도로 주인공 하지메에게 앵겨 붙다가 드디어 그에게서 [특별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게 되는군요.


아인족 통틀어 유일하게 격세유전을 타고났던 시아, 그녀를 보호하고 싶었던 일족, 아인 종족 규율에 따라 마력을 가진 아인은 없앤다는 장로회의 결정을 피해 달아났다가 일족과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제국에 잡혀가 노예로 살아야 했던 비참한 삶, 그것을 보고 시아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어둡고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와 하지메라는 빛을 만나 강해지기로 했던 그녀, 거기에 발맞춰 당하고는 못 산다는 것에 눈을 뜨고 줄곧 빼앗기기만 했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쳤던 '하우리아 토끼족', 무엇이 이들을 악독한 목따는 토끼로 만들었는가. 주변 환경적 요인으로 살아 갈 수 없다면 그에 맞춰 진화할 수밖에 없는 생물로서의 본능에 충실해 미치광이 집단으로 변해버린 토끼족이 저지른 제국과의 전쟁의 결말은 하우리아족의 승리로 마감하였습니다.


개선한 군대처럼 아인 종족이 서식하는 페어베르겐으로 귀환한 하우리아족과 하지메 일행을 열혈이 맞이하는 아인 종족들의 이중성이 쩔어줍니다. 토끼족 전체에게 사형을 내렸던 장로회는 하우리아족 우두머리 '캄'에게 제압 당한 끝에야 하우리아족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로써 시아를 지키기 위한 하우리아족의 몸부림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려요. 그리고 하지메 일행은 대미궁중 하나인 하르치나 수해에 도전합니다. 여담으로 하우리아족을 개변시킨 건 주인공 하지메이지만 그는 모르는 척, 대미궁에 도전하기 전 야밤에 시아를 찾은 하지메, 드디어 시아도 한 명의 여자로서 그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르치나 수해에 도전하면서 이들은 인간관계를 시험받습니다. 그동안 여러 대미궁에 도전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 하였지만 이번엔 인체적인 것보다 정신 공격을 받아요. 사람이라면 근본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그것, '바'로 시작하는 검고 딱딱한 주방의 적이 이들을 맞이해서 온갖 정신 공격을 감행하죠. 연심에 반대되는 것, 호감의 반대는 무엇일까.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존재가 미치도록 미운 존재로 탈바꿈하는 전대미문 던전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사람의 나약한 곳을 파고들어 의지를 뒤엎는 세계, 하지만 하지메 일행은 우리의 우정과 유대는 이런 거지 깽깽이 같은 짓에 놀아나지 않는다는 굳은 결의 같은 걸 보여주죠.


그런데 이러한 유대와 우정을 보여주며 아름답게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작가가 공공연히 자기는 중2병 환자라고 떠드는 작품에서 아름답고 고결한 장면이 나올 리 없어요. 중2병이 작렬하고 백색 뭐시기 액체가 굴러다니는 등 지저분합니다. 낯간지러운 대사가 여과 없이 나와요. 오글거림의 본산을 찾으라면 여기겠죠. 작가가 라이트 노벨의 진수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요. 그렇게 하지메 일행은 '바'로 시작하는 검고 딱딱한 무언가와 사투를 벌이며 하르치나 수해가 선사하는 시련을 극복해 나갑니다. 그리고 손에 넣어요.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단서를요. 또한 짝퉁 신과의 전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복선도 투하되죠.


후반부,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외전 형식으로 들어가 있어요. 여기서 각자가 생각하는 동료들에 대한 마음이 나오죠. 참으로 아름답고 인간적이라 할 수 있어요. 시아가 전하는 동료들의 평가엔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럽고, 그리고 그  어떤 난관에도 굴복하지 않고 나아갈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어요. 이제는 가족과도 같은, 서로가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 또한 달라도 지금 이 시간만은 틀림없는 같이 살아가는 현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시아'는 이 작품에서 가장 극적인 히로인이라 할 수 있어요. 죽음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 발로 미래를 개척해서 지금의 자리까지 온 억척스러운 히로인이죠.


맺으며, 써놓고 보니 뭔가 동화 같은 분위기일 거라는 느낌인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중2병도 중2병이지만 수해에서의 전투는 지루합니다. 하지메가 연성사로써 최강의 힘을 발휘한다지만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별별 온갖 무기들을 등장시키는 것에서 오히려 위기감 저하로 산만함만 선사해요. '바'로 시작하는 검고 딱딱한 무언가의 정신 공격으로 팀의 분위기가 깨어지고 유대를 시험받으면서 쫄깃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주인공 앞에 해결하지 못할 것은 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반감을 일으키는 건 하지메의 아랫도리에 돌진하는 히로인들이군요. 여성 히로인이 많이 나오는 것치고 재미있는 걸 별로 못 봤는데 아무리 이유 있는 호감도라지만 너무 노골적인 돌진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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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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