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좀 있고, 글이 꽤 깁니다.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아니 뭐 나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인기를 끄는 주인공 보다 그냥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청부업자처럼 뒷골목에서 담배 꼬나물고 총으로 타깃을 처리하는 느와르를 꿈꾸며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자칭 [어둠의 실력자]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되고 싶어서 그래서 엄청 노력했거든요? 각종 무술 등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노력도 분골쇄신도 마다하지 않았죠. 하지만 평범하게 강해져봐야 양아치 몇 명 때려눕히는 게 고작이고, 핵폭탄 맞으면 다 녹아버리는 덧없는 인생 따위 죽어도 사양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찾아다녔어요. 무적 방어력을 자랑하는 정령과 마력이란 것을요. 현실에서 고3이나 되어서 중2병이나 찾으로 다니는 한심한 인간이 이 작품의 주인공 '시드 카게노'라는 거죠. 그런 열정을 하늘이 알아주었는지 그에게 두 개의 빛(1)을 내려줘요. 주인공 '시드'는 그걸 마력이라며 붙잡으려 하죠.

 

눈을 떠보니 이세계더라, 가난한 남작가의 둘째로 태어난 주인공은 꿈에도 그리던 마력을 손에 넣죠. 이제 실력을 갈고닦아 그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아닌 어둠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악을 응징하는 실력자가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죠. 이때 그는 자신의 포부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지금은 몰랐을 겁니다. 그냥 서브컬처에 나올법한 적당한 작중 주인공을 찾아 그가 활약하는 사이에 꼽사리 껴서 적당히 놀고 싶었을 뿐, 하지만 이게 또 진지해서 마력과 검술을 기초부터 정말 탄탄하게 수련한단 말이죠. 신(神)에게 먼치킨 스킬을 내려받은 게 아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이 노력해서 능력을 얻어 가요. 문제는 그게 사기급으로 진화한다는 것에서 또 할 말을 잃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세계 하늘도 그의 노력에 감명받았는지 근처 도적들 소굴에 쳐들어가 실력을 갈고닦던 주인공에게 어떤 인물을 만나게 하면서 그의 인생은 정말로 [어둠의 실력자]로써 활약할 기회를 줘버리죠.

 

도적들에게 잡혀있던 엘프 소녀를 구해주면서 현세와 이세계 나이 합치면 적어도 20대 후반이겠건만 이러고 싶을까 싶을 정도로 중2병 설정을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마인 [디아볼로스]의 부활을 암암리 저지하는 거야'​, ​'​너는 디아볼로스의 저주에 걸려 썩는 병에 걸려 있었던 것이고', [악마 빙의]라는 게 있습니다. 그 옛날 마인 디아볼로스를 처치한 용사 3인에게 죽어가던 마인 디아볼로스는 이들에게 저주를 걸었고 용사들 자손들은 몸이 썩는 병이 발병할 것이라는 저주, 엘프 소녀는 그 병에 걸려 썩은 고깃덩이가 되어 있었고 주인공 시드는 마력으로 그녀를 고쳐 주었죠. 그리고 주인공 '시드'의 전설은 여기에서 시작이 됩니다. 즉석에서 가볍게 엘프 소녀 A를 부하로 만들어 여흥을 즐기려 했던 그에게 웃지 못할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지금은 몰랐겠죠. 주인공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갖다 붙인 설정이 진짜로 이세계에서 있었던 일이고 지금도 진행형이란 건 꿈에도 모른 채, 그는 그저 적당히 어둠의 실력자로 살아가려고 했죠.

 

'어둠 속에서 숨어서 어둠을 사냥하는 자'

 

주인공이 그저 엘프 소녀 A에게 적당한 말을 늘어 놓기 위해 설정으로 만들었던 악의 축 [디아볼로스 교단], 소녀 A가 옛날이야기라고 했을 때 눈치 깠었어야 하는데 자기 설정에 심취해서 쌀자루 꿰매듯 조리 있게 주절주절 늘어놓으니 설정이라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통에 소녀 A는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죠. 그리고 지금 엘프 소녀 A라고 불렸던 그녀는 '알파'라는 이름을 부여받으며 전대미문의 능력자로 탄생하게 됩니다. 마치 플라나리아가 분열하듯 '알파'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악마 빙의]라는 병에 걸린 소녀들을 주워다 고치고 기르면서 어느덧 네임드 숫자는 중대급으로 불어나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작당해서 [섀도우 가든]이라는 오글거리는 단체도 만들죠. 주인공은 설마 일이 이렇게 커질 줄 알았을까. 그저 설정이라고 치부하며 내버려 뒀는데 진짜로 플라나리아 제군들은 [디아볼로스 교단]하고 싸우고 있었더란 말이죠. 게다가 그 교단은 용사의 후예들이 앓고 있는 병을 [악마 빙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세상과 격리 시킨 뒤 그녀들을 잡아다 죽이고 있었으니 적군이 나타난 것이죠.

참고로 [셰도우 가든] 중대 병력은 주인공 빼고 100% 여성들로만 구성되어 있답니다.(아마도, 전부 안 나오니 알 수가 있나)

 

그렇게 주인공은 문틈에 반만 몸을 끼운 형식으로 밤에는 [섀도우]가 되어 악을 심판하고, 낮에는 학교에서 몹 A라는 보잘 것 없는 학생으로 살아가요.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알려지기를 거부하는 [섀도우 가든], [디아볼로스 교단]에 맞서 싸우며 죄를 심판하지만 결코 그게 정의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죄만 심판 할 뿐. 그런데 주인공은 사이코 패스가 틀림이 없어요. 10살에 도적들 몰살하며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전혀 내비치질 않습니다.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엘프 소녀 A가 병에 걸려 썩어 문들어졌어도 살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력 실험을 마구하질 않나, 오히려 [섀도우 가든]에 막 입사한 어떤 여자애가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내비치는 것에서 리얼리티를 느끼고, 주인공은 어딘가 망가졌다는 걸 알려 주죠. 이것은 나중에 팔은 두 개 밖에 없는데 지킬 것은 한정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될까 하는 고뇌에서 생각하는 걸 포기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긴 하였습니다만. 하지만 작품 자체가 어느 정도 개그도 포함하고 있다 보니 진지하게 생각하면 지는 거라는 걸 생각하게도 합니다.

 

아무튼 주인공만 착각에 빠진 게 아니라 사실 히로인 대부분이 착각하고 있다고 할까요. 주인공을 바라보는 [섀도우 가든] 소속 히로인 일동들은 물론이고 여타 히로인들까지 주인공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존경과 애정을 표하죠. 주인공은 그저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 상황에 맞게 떨어졌을 뿐인데도. 그래서 더욱 주인공에 심취해가는 히로인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고, 한 번쯤 이세계로 간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런 유쾌함이 있습니다. 웃지 못할 일도 많아요. 주인공 누나가 유괴되어서 구출은 하였는데 내팽겨처놓고 온다던지, 몹 A로 살아가는 낮 동안에 있었던 일들로 인해 '똥쟁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을 때, 그저 자신의 취향을 말했을 뿐이고 잡몹으로 연기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히로인들에게는 의미 있게 다가와 착각으로 이어진다던지 읽는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부 유쾌한 건 아니고 [디아볼로스 교단]과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하면서 이야기가 상당히 시리어스해집니다. 피가 낭자하고 사람 목숨은 파리 목숨과도 같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전투가 벌어지면서 서로 인연이 닿은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째 일이 이리 될 거 같더라니 같은 느낌을 들게 하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한데요. 요컨대 이 캐릭터는 범인일 것이라는 복선을 까는 능력이 참으로 좋아요. 어떤 사람 좋아 보이는 캐릭터가 악당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부분이 여지없이 맞아떨어질 때는 정말 씁쓸하게 하였군요. 그리고 [섀도우 가든]과 [디아볼로스 교단]의 전투에서 최대 피해자가 되어 버린 '셰리 바넷'이라는 청순 어리바리 히로인 캐릭터가 주인공에게 있어서 최대의 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복선은 정말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또한 싸우면 싸울수록 만 악의 근원이 되어가는 [섀도우 가든]은 '어둠 속에서...'라는 본연의 취지에 맞게 어둠에 떨어진다는 느낌 또한 소름 돋게 하였군요.

 

맺으며, 오버로드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진짜 모습은 들어내지 않은 채 모험을 하는 해골이 사람들 도시에서 어쩌고저쩌고하는, 그 힘이 강대해서 맞설 상대가 없는 것 또한 비슷하고요. 물론 표절이나 뭐 그렇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없길 바랍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작품을 만난 느낌이군요. 물론 라노벨 특성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 작품은 근래에 있어서 이 작품만 한 게 없었다고 할까요. 개인적이지만 돼지 공작(2)이나 용사님의 스승님 보다 조금 더 몰입도가 높은?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시드는 돼지 공작이 일부러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때를 보는 거 같았군요. 사람들 인식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잡 몹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왕녀가 뿌리는 금화를 개처럼 기어서 줍는다던지 혐오감을 있는 대로 뿌려 대죠. 결국 똥쟁이라는 말까지 들었고, 나중에 돼지 공작처럼 이불 킥할 날이 언젠가 오지 싶은데 그때가 만약 온다면 반드시 보고 싶다고 할까요.

 

  1. 1, 빵빵~ 끼이익~ 쿵!
  2. 2, 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블로그 이미지

현석장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96)
라노벨 리뷰 (938)
일반 소설 (5)
만화(코믹) 리뷰&감상 (129)
기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