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좀 심각한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으니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6권입니다. 이번 6권은 루데우스와 에리스에게 있어서 터닝포인트이자 대규모 전이 사건의 종착점에 해당하는데요. 마대륙으로 날아갔던 루데우스와 에리스 거기서 만난 이들의 보호자였던 루이젤드는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겨우 중앙 대륙으로 돌아왔습니다. 중간에 아버지 파울로를 만나 어머니 제니스를 비롯해 리랴와 아이샤의 소재도 불명이라는 소식을 접했고, 아버지와의 성격적인 엇갈림으로 곤욕을 치르다 겨우 화해하는 등 루데우스는 전생의 나이를 합치면 40이 넘었다지만 12살(전이 직전에는 10살)의 몸으로 고생을 참 많이 하였죠. 든든한 보디가드 루이젤드가 같이 있었다곤 해도 에리스를 지켜가며 고생한 2년이라는 시간은 루데우스에게 어떤 성장을 가져다주었을까.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에리스의 마음엔 어떤 감정을 불러왔을까. 성장엔 아픔이 있기 마련이라는 듯, 이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모험은 지금부터라는 듯, 세상은 이들에게 가혹한 현실을 들이밀기 시작합니다.

 

인신(히토가미)에게서 리랴와 아이샤가 지금 있는 곳을 알게 된 루데우스는 아슬라 왕국으로 가는 걸 잠시 멈추고 이들 모녀를 구하기 위해 시론 왕국으로 향합니다. 중앙 대륙에 발을 들이고도 다시 4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찾아가요. 그리고 거기서 변태 왕자 둘을 만나 고초를 겪죠. 그 중심엔 록시가 있는데 이건 뭐 아무래도 좋고,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을 읽으면서 변태 왕자들의 등장이 꼭 필요한 대목인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는 겁니다. 루데우스는 무의식 공간인지 이공간인지에서 간간이 인신(히토가미)을 만나죠. 마대륙으로 전이되었을 때 루이젤드를 도와라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어떤 항구도시에서 마계 대제 키시리카를 만나게 했고, 이번엔 모녀가 거기에 있다는 전재를 깔며 루데우스가 시론 왕국으로 가도록 해서 왕자들을 만나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녀는 구출이 되었지만, 인신(히토가미)은 이번엔 왕자들과의 접점까지 만들게 했습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돌머리라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마련이죠. 그래서 루데우스는 곰곰이 생각합니다. 인신(히토가미)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참 일찍도 깨닫는다 했습니다. 쌈에 고기 한 점을 넣고 나머진 매운 고추를 넣어 뱉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먹지도 못하게 하는 전술이라고 할까요. 인신은 루데우스에게 진짜 정보를 주면서 진실은 감춰버리는, 그걸 어렴풋이 알면서도 루데우스는 그(인신)의 말을 반발하면서 곧이곧대로 믿고 행동에 옮길 수밖에 없었죠. 이런 부분에서 인신(히토가미)은 루데우스를 장기짝으로 써서 무언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불러왔는데요. 이 반증은 아슬라 왕국 진입 직전에 만난 '용신 올스테드'를 통해서 거의 확정적이 되어 버립니다. 처음엔 그냥 엇갈려 가려던 이 두 사람은 '인신'이라는 키워드가 발동되자 올스테드는 루데우스를 죽이려 들고 다시 인신과 만난 루데우스는 올스테드가 어떤 인물인지 듣게 되죠. 그리고 이 두 신(인신, 용신)은 반목한다는 것도...

 

작가가 이렇게 이야기 중간중간 포석을 깔아두는 솜씨가 좋습니다. 복선이라고도 하는데 문제는 이렇게 넓게 깔아두다 보니 나중이 되면 알아먹을까 하는 것이군요. 이건 뭐 차차 어떻게 되겠죠. 아무튼 이렇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여행은 끝을 고하게 됩니다. 드디어 아슬라 왕국에 진입하고 다시 몇 개월이 걸려서 루데우스의 고향 피트아령에 도착은 하였지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건 새로운 여정이었으니...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던 루이젤드는 임무를 완수했다며 길을 떠납니다. 언제나 이별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죠.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전이 사건으로 허허벌판이 되어 버린 피트아령은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에리스의 할아버지와 부모의 생사는 충격을 안겨주고 여기에 집안끼리의 사정과 정치적인 목적까지 겹쳐지니 과연 이 애들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합니다. 에리스의 미래, 남존여비인 이세계에서 이제 그냥 여자애에 불과한 에리스의 처지는 말해 무얼 할까 싶은 일들이 벌어지죠.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감싸줘야 될 루데우스는 뭐하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주인공을 발암으로 키우고 있지는 않는데 여기서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히로인을 감싸주고 위로해주고 나서서 뭔가를 해줘야 되는 부분이 아닐까 했습니다. 3년여 동안 여행을 하며 루데우스의 등만 바라보고 쫓아왔던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건 무얼까. 고향은 사라졌지, 어릴 적 존경의 대상이었던 할아버지는 전이 사건의 책임을 지라며 아들놈에게 처형 당했지, 친척 아저씨는 첩으로 들어오라고 하질 않나, 부모는 어딘지 모를 토지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은 이제 15살인 그녀가 짊어지기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죠. 그런 그녀를 방안에 혼자 놔두고 나와버리는 장면에서는 미래가 예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결단을 내립니다. 가족을 원한다고 그에게 속삭이는데...

 

이후 에리스의 내면을 비추는 장면이 구구절절하게 흐릅니다. 그와의 여행을 추억하며 언제나 짐 밖에 되지 않았다고 자조 섞인 말을 늘어 놓는 장면은 애절하게 만드는데요. 천둥벌거숭이처럼 10살 때 이미 온 동네 남자애들을 휘어잡으며 정상에 군림했던 그녀가 난생처음 자신의 발길질에도 나가떨어지지 않는 그에게 흥미를 보이기 시작하고, 전이 사건을 겪으며 마대륙에서 그 어린 나이에 각종 위험을 돌파하며 그는 많은 일들을 해주었습니다. 굶어죽지 않게 모험가가 되고, 의뢰를 받아 처리하면서 죽을 뻔도 하였고, 노예상인들에게 고초도 겪는 등, 항상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을 지켜준 건 누굴까. 그리고 올스테드와의 싸움은 결정적으로 그녀의 다짐에 불을 지펴 버리죠. 그래서 강해지자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는 갈망은 그녀를 하여금 어떤 결단을 내리게 하죠. 그리고 아침,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들을 상기하며 매우 들뜬 루데우스에게 벌을 내리는 것처럼 그의 방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맺으며, 인신이니 용신이니 다 떠나서 히로인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했습니다. 리랴의 맹목적인 루데우스 신앙을 딸 아이샤에게 주입하려는 모습에선 기겁을 했고, 그런 엄마에게 반발하여 6살에 사춘기를 겪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샤의 귀여움은 차지하더라도 에리스의 각오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군요. 먼치킨 주인공이라도 틈은 있기 마련이고, 주인공이라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여 모든 걸 생각하고 대응하지 못한다는, 그래서 잃고 난 뒤에야 비로써 소중한 걸 알게 된다는 메시지.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강해지려는 히로인은 언제나 눈부시죠. 그런데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섹슈얼리티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아이샤의 옷을 갈아입히는 대목이라던지, 어릴 적 리랴를 덮치는 파울로를 굳이 재조명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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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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