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월드 티처 10권 리뷰 -햇살 가득 어느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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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에피소드는 엘프 '피아'편입니다. 그녀는 일정한 나이가 차면 세계를 10년간 여행을 해야 된다는 마을 관습에 따라나섰고,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던 중 일단의 무뢰배들에게 습격을 당했었죠. 절체절명의 순간 주인공 시리우스가 구해주게 되었고(이때 주인공 나이 6~10세쯤), 그녀는 10년 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마을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리고 9년이 흐른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의사와는 반대되는 강요를 받아들이지 못해 마을을 뛰쳐뛰쳐나왔고 그길로 시리우스를 찾아오게 되었는데요. 9년 전 자신을 구해준 아직 꼬맹이었던 시리우스에게 그녀는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을까. 사람의 마음은 미화되기 마련이라는데 그녀 또한 그러했을까. 2백 년을 살아온 그녀가 그동안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텐데 유독 시리우스에게 감정이입하는 건 한눈에 반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이세계의 남자들은 변변치 못했던 것일까.
그녀는 도박에서 이겼습니다. 9년 전 강함과 상냥함을 겸비했던 그(시리우스)가 지금도 변함이 없을까 하는 두근거림(치곤 작중 표현이 밋밋하였던 거 같은데)을 안고 그를 찾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변함이 없는 그에게 홀딱 빠져서는 얼마 못 가 동침이라는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고양이가 되어 버렸죠. 그리고 공공연하게 자식을 낳아 대대로 기르겠다는 포부를 밝힙니다.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을 분침으로 비유하자면, 엘프는 느긋하게 굴러가는 시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엘프에게 있어서 인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버리는 생물에 지나지 않아요. 그럼에도 그것을,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그녀에게서 "각오"가 느껴지는 대목이었군요. 이별을 슬퍼하기 보다 남겨진 가족의 뒷바라지하며 그것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그녀에게 남다른 강한 기개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자, 레우스의 단짝을 찾아주고 다시 여행길에 오른 시리우스 일행은 피아의 마을 근처까지 왔습니다. 장인어른께 인사라도 드려야 되지 않을까 숲 근처에서 전전긍긍하는데 마침 니들 잘 왔다는 것처럼 마을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피아의 아버지가 절체절명에 빠지게 됩니다. 어째서 주인공이 가는 곳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제쳐두고, 얼마 전 싸우고 헤어졌다지만 그래도 자신을 낳아주신 아버지인데 모른 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상냥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피아는 마을로 직행하지만 거기서 그녀와 시리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전례 없는(없지는 않지만) 강적들이었으니... 그동안 주인공이 먼치킨으로 무쌍을 찍어왔던 걸 비웃듯 상황은 피아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시리우스로 하여금 절망이란 이런 거라는 걸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사실 필자는 바랐습니다. 먼치킨 주인공이라도 팔을 뻗어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구하겠다는 신념이 무너졌을 때 주인공은 어떻게 될까. 이번 10권은 가수 이선희의 '그대 향기'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에피소드이기도 한데요. 피아는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찾아왔고, 소원대로 그를 다시 만나 이제야 꿈이 시작되건만, 피지도 못하고 접어야 할 때. 피아가 9년이나 기다렸던 그리움...은 작가가 살리지도 못해서 필자는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 여자에게 손댄 죄는 결코 작지가 않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양, 마력 해방이라는 중2병을 가미하며 날뛰기 시작하는데, 그럼 그렇지 이 작품이 원래 이런 분위기라는 걸 그동안 봐왔고 알고 있으면서 주인공과 작가에게 뭘 기대하였는지 씁쓸하게 입맛만 다시게 하였군요. 그런데 죽음을 맞이했던 피아는? 작중 분위기가 그렇게 놔두질 않는다고, 필자는 닭 쫓던 개가 되었다는 것에서 눈치를 채 주셨으면 합니다.
전생에서 에이전트로 일하며 각종 궂은일을 도맡아 하다가 객사한 후 이세계로 넘어온 시리우스, 그에겐 그를 가르친 스승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현세에 있을 때 어느 날 그를 놔두고 홀연히 모습을 감췄던 스승,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요리는 궤멸적이고 가사는 빵점인 스승을 대신해 어릴 때부터 모든 걸 해왔던 주인공은 걱정이 아닐 수 없었죠. 그런 스승은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스승은 이세계에서 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이게 최대 스포일러이긴 한데 맥락 없이 이렇게 써놓으면 어떤 스포일러인지 모를 테니 그냥 써봅니다. 그리고 피아가 10년을 못 채우고 마을을 뛰쳐뛰쳐나오게 만들고 그녀(피아)를 죽기 직전까지 만든 원흉이 스승으로 밝혀지는데... 스승을 통해 시리우스가 어떻게 이세계로 오게 되었는지 경천동지(까지는 아니지만) 할 비밀까지 드러나며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맺으며, 이번 10권은 피아의 어정쩡한 관계였던 마을과 가정사를 정리하고, 시리우스는 피아의 아버지를 만나 히로인들의 포지션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해주는 에피소드라 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 안 하고 쓸려니 자꾸 두리뭉실해지는군요. 아무튼 전생에서 가족이라는 유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주인공으로 하여금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알려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할까요. 여자를 하나도 아니고 여럿을 책임져야 되는 상황, 가족이 늘어나면 감당해야 될 무게, 부모에게서 가족을 꾸려가는 노하우를 전수받지 못한 걸 스승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며 히로인들과 더욱 유대를 돈독히 하려는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했습니다. 그나저나 역자 분이 바뀌면서 작중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럽게 변했습니다. 무엇보다 오타와 문맥 파괴가 없어지면서 읽는데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게 뭣보다 좋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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