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변경의 노기사 2권 리뷰 -죽을 자리를 찾아서, 있을 곳을 찾아서-
'발드 로엔', 나이 58세, 중세 시대를 표방하는 이 작품에서 58세란 적잖은 나이인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쉬는 것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죽을 자리를 찾아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기사로써 소임을 다하고자 청춘을 받쳐 모셔왔던 테루시아 가(家)를 떠나 유유자적 여행을 하던 중 그의 성품과 검 실력에 매료되어 어느새 동료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그와 함께하게 되었죠. 못된 영주를 혼내주고, 사람들을 도와주며 여행하길 어언 1년여, 그런 그에게 당도한 슬픈 소식, 젊었을 적엔 사모하였기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고, 늙어서는 그녀의 안전을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전해진 그녀의 부고는 그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불러왔을까. 하지만 그녀의 아들이 장성하여 한 나라의 왕으로 추대되는 것을 지켜본 그에겐 미련은 없어 보였습니다.
젊은 여기사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발드에게 또 어떤 여행길로 인도할까. 발드는 고든과 줄챠가와 여행을 하던 중 어느 숲속에서 마비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던 여기사 구해주게 됩니다. 모시는 왕녀에게 자신의 강함을 선물하고 싶었던 그녀는 무리하면서까지 머나먼 변방으로 여행길에 올랐고 동행하던 다른 기사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려던 차에 어떻게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는 모면하였으나, 이렇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버렸군요. 여차여차 그녀를 들어 옮기는 발드와 그의 일행들, 깨어난 그녀는 이들에게 마수를 잡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합니다. 내년 경무회(무술 대회 같은 거)에 나가려면 실적이 필요하고 마수를 쓰러트리면 인정받는다는 그녀의 말에 남존여비인 이 시대에 그녀의 말과 행동은 괴짜로 비칠 수밖에 없었어요.
유유자적 여행을 하고 싶었건만 가는 곳마다 어찌 된 일인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여기사를 구해줬더니 이번엔 그녀를 노리는 일단의 기사들과 마주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야만 했고, 그녀를 알면 알수록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빠져 가요. 이것도 인연인가 싶어 발드와 그의 일행은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그녀의 나라를 향해 여행길에 오릅니다. 이 작품은 이런 느낌이 강해요. 길을 가다 인연이 닿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사정에 얽혀 사건으로 이어지고 발드와 그의 일행은 해결을 해가죠. 그 과정에서 나쁜 놈들을 응징하고 백성들을 구해주며 명성을 쌓아가요. 그리고 하나의 인연이 끝나면 또 여행길에 오르고 다시 새로운 인연과 만납니다. 이 과정에서 소란스럽지 않게 자극적이지 않게 정통 판타지를 지향하며 파스텔 분위기를 자아 가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먹방,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먹방이 되겠습니다. 누구는 딱딱한 빵에 말라비틀어진 육포를 씹고 포도주로 입가심을 하는 반면에 발드는 들판에서 강에서 식자재를 구하는 솜씨가 대단히 좋습니다. 미지의 음식을 두고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이것은 무슨 맛일까 하는 두근거림을 앞세워 한 입 베어 물고 천상의 맛을 표현하죠. 세상사 근심을 다 털어내는 맛, 늘그막 그에게 남은 건 음식 밖에 없다는 것마냥 이야기의 반은 음식으로 소화합니다. 보통 먹방은 처음은 신선해도 비슷한 레퍼토리가 이어지면 지루하기 마련이나 이 작품의 작가는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매번 새로운 식자재가 나오고, 맛을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상상력을 자극하죠. 현실에서는 구할 수 없는 공상의 식자재라서 더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여기사를 맞아들여 그녀에게 검을 가르치기 위해 한 곳에서 머무는 발드와 그의 일행, 여기서는 상당히 서정적인 장면들이 흐릅니다. 남자들 3명.. 아니 이후 발드가 양자로 맞아들이는 '커즈'까지 4명이 있는 곳에서 여자 하나라는 분위기가 어색해질 만도 하겠건만, 같이 수련을 하고, 같이 폭포에서 알몸으로 허물없이 수영을 하고, 먹을 것을 구해와 요리를 하고, 다 같이 모여 숟가락을 담그는 캠핑 같은 분위기, 며칠이라는 시간은 분명 짧다고 할 수 있으나 지금의 상황은 추억이 될만한 것들이었기에 이후 그 장소에서의 추억을 곱씹는 듯한 여기사의 얼굴은 아련함을 넘어 먹먹하게만 하였군요. 귀족으로써, 기사로써 본분을 위해, 그리고 모시는 왕녀에게 강함을 선물하기 위해 19살이라는 나이에 머나먼 길을 떠나야만 했던 그녀에게 그 장소는 모든 걸 내던지고 모두와 마음 놓고 지낼 수 있었던 장소, 나도 분명 거기에 있었다는 단 하나의 추억...
여기사의 여행은 아직 계속됩니다.
맺으며, 위의 리뷰는 3부의 이야기고, 4부의 이야기도 있지만 어려움에 처한 아인(수인)과 동료 고든을 도와준다는 이야기인데 일부로 리뷰에선 뺐습니다. 사실 3부보다 4부가 더 흥미진진합니다만. 아무튼 여느 열혈 라노벨과는 다르게 무리난제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권선징악형에 가깝긴 한데 나이 든 영감에게 뛰라고 하는 건 가혹하다는 걸 아는지 작가는 길을 떠난 노기사의 따뜻한 성품과 검 실력에 매료되어 동료들이 모여들고, 들리는 마을에서는 그의 백성을 위하는 성품을 칭송합니다. 젊었을 적 백성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그의 다짐은 늙어서도 변함이 없었고, 힘들고 괴로운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는 걸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잊고 성을 탈환하는 그의 담력은 늙었다고 해서 쇠하지 않습니다. 영감이라도 할 때는 한다는 이런 것들이 이 작품의 매력이죠.
다만 발드의 연(聯) 하고는 인연이 없어서 언제나 엇갈리기만 하는 것에서는 마음을 짠하게 하죠. 어릴 적부터 보필해왔던 테루시아 가(家)의 영애 '아이드라'를 다른 영지로 시집을 보내야 했을 때, 그녀가 갓난 아이를 안고 1년여 만에 돌아왔을 때, 그녀의 안전을 위해 떠나야만 했을 때(연聯부터 여기까지 1권의 이야기), 이런 것들이 먹먹하게 감성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이번 아이드라의 아들 쥴란의 이야기에선 통쾌함도 있었습니다. 아이드라를 괴롭혔고 발드로 하여금 길을 떠나게 했던 이웃 영주의 최후는 후련함을 선사하죠. 그리고 이번엔 여기사를 만나 다시 옛 감정을 되살리는 발드에게서 애틋함이 엿보였군요. 그래서 3권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만. 설마 3권도 또 2년 뒤에 나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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