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로렌스와 호로에게 주워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콜은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신학 학교(대충 비슷할 겁니다.)를 다니며 학비 좀 벌려다 사기당해서 오늘내일하던걸 로렌스와 호로가 구해주었었죠. 그 뒤 이들과 같이 다니며 세상 물정을 알아가고 보살핌을 받으며 여정 끝까지 함께했던 콜, 로렌스가 온천장을 열었을 때 허드렛일을 하며 10여 년 분골쇄신도 마다하지 않았고, 로렌스와 호로의 딸 뮤리가 태어났을 땐 가정교사도 하는 등 참 바쁜 나날을 보냈었습니다. 그러다 요양차 오던 교회 고위 관계자들과 안면을 트면서 작금의 교회는 썩어가고 있다는 걸 개탄하며 나라도 나서서 개혁에 힘을 보태고자 큰 마음먹고 세속으로 나오긴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옛날 로렌스의 마차 짐칸에 숨어든 호로처럼 뮤리도 짐 속에 숨어들어 콜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북방 해적들의 섬을 뒤로하고 다시 윈필 왕국으로 돌아오던 콜과 뮤리는 폭풍을 만나 항구도시 데자레프에 불시착합니다. 교회와 대립 끝에 전쟁의 기운까지 풀풀 풍기고 있는 윈필 왕국에서 교회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되자 민심은 불안에 떨고, 마침 콜의 활약을 들은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를 찾아와 기도를 부탁하는 등 콜은 한시도 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바쁠 때면 꼭 일이 몰아친다고 하던가요. 어릴 적 소꿉친구들은 많았으나 나이가 있는 이성은 별로 없었는지 늘 곁에 같이 있어주는 콜을 보며 자란 뮤리가 그에게 연정을 품는 건 당연한 것이었을까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치 유아 때 크면 아빠랑 결혼할 거야처럼 콜을 바라보며 졸졸 따라다녔던 뮤리도 세상 밖으로 따라와서는 대놓고 우리 결혼하자고 졸라대니 두통이 끊이질 않습니다.

 

호로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대시 중인 뮤리, 그러면서 늑대의 화신답게 프라이드는 높아서 주위를 얕잡아 보며 거기엔 오라버니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마냥 놀려대는데 이거 참 머리 한대 쥐어박고 싶은데 그 모습이 또 사랑스럽고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한계입니다. 엄마를 닮아 먹을 것엔 환장하면서도 상대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어서 콜 혼자였다면 벌써 객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들을 뮤리 덕분에 넘긴 적도 많아요. 하지만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충실히 이행 중인 콜을 따라다니다 보니 뮤리도 참 고생을 많이 합니다. 폭풍을 만나 바다에 빠진 콜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고, 북방 해적들의 섬에서도 미덥잖은 오라버니를 대신한 적도 참 많았죠. 이렇게 구구절절 뮤리에 대해 떠드는 이유는 이번에 뮤리는 일대 중대사와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프이긴 하나 뮤리도 늑대의 화신으로써 길고 긴 세월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인간의 영역이 날로 넓어져가는 이 시대에 인간이 아닌 자들은 살 곳을 점점 잃어만 가야 하죠. 이단이라 치부되어 사냥의 대상이 되곤 하는 이들에게 안주할 땅이 있다고 하면 당연히 거기로 가는 걸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호로가 들었다면 기뻐서 자빠질 일이죠. 인간의 모습이라곤 해도 언제 들킬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땅, 콜과 뮤리는 항구도시 데자레프에서 '양의 화신 일레니아'를 만납니다. 그녀는 콜에게 인간이 아닌 자들에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곳을 찾았는데 거기로 가기 위한 준비를 도와 달라고 합니다. 제일 먼저 반기는 건 뮤리, 그녀 또한 인간이 아닌 자로써 원래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땅을 원하고 있었는데요.

 

자, 객지에서 사람을 함부로 믿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마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땅을 찾은 것처럼 신대륙에 가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있었던 일레니아는 콜에게 자금 모으는데 힘을 보태 달라고 하죠. 그러면서 지금의 윈필 왕국이 교회랑 반목하는 이유를 은근슬쩍 술술 내뱉으면서 콜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에 대한 의문을 심어줘버려요. 제방을 무너트리려면 쥐구멍만 한 굴만 있으면 된다고 했던가요. 그녀와 함께하면 할수록 윈필 왕국이 해왔던 일들에 대해 의문이 솟는 한편 기대에 눈을 반짝이는 뮤리를 보고 있자니 거절도 못하겠고 결국 그녀(일레니아)의 뜻에 따라 자금을 모으기로 하는데요. 다단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들린 건 물품이고 이걸 다른 사람에게 팔아야 되는 상황에 몰린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될까.

 

이 작품은 이런 게 있습니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로렌스도 사기라든지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진실을 파고 들어가 보면 가해자였던 사람이 피해자였던 경우가 있었죠. 이번 양의 화신 일레니아도 비슷한 경우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홀로 장사를 해오며 있을 곳을 찾았고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눈이 돌아갔다고 할까요. 그래서 소문에 의지했고, 들려오는 풍문에 기대어 신대륙을 찾아 거기로 인간이 아닌 자들을 이주시켜 나라를 세우겠다는 포부를 가지게 되죠. 거기엔 호로의 동족들이 떼로 덤벼도 이기지 못했던 달을 사냥하는 곰이 있음에도 가겠다는 그녀의 포부는 어딘가 일그러져 있는 듯하여 매우 안타깝게 합니다. 그래서 콜은 그녀를 도와 주려 하죠. 그리고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불구덩이 속이었으니...

 

맺으며, 현대에서 불로를 누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비결을 묻는 사람이 나오겠죠. 눈 깜빡이고 나면 어느덧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불로란 매우 매력적인 것입니다. 죽지 않아도 되는 것, 죽음이란 공포 그 자체입니다. 그걸 쫓기 위해 사람은 불로는 희망하고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표적이 되죠. 당연하게 미신이 생겨나고요. 결국 영원을 살아가는 자는 누군가에게 잡혀가 해부 당하던지 끓는 물에 던져지던지... 이 작품에 나오는 인간이 아닌 자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을 살아가고, 모태가 되는 존재(양, 늑대등)으로 변모하면 인간으로써는 어찌할 수 없는 힘을 보여주죠. 당연히 인간은 자신들과 다른 이질적인 건 배척하여 듭니다. 그 세파를 오롯이 받아온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그 세파를 이겨내기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싫어도 알게 되죠.

 

일레니아는 사실 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받은 게 아닌 있을 곳을 찾았을 뿐이긴 합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위에 아는 사람 없는 세상일 때, 두려움과 괴로움 그리고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테죠. 호로도 이런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로렌스의 마차에 무단으로 승차한 것이고. 그걸 알았기에 허황된 꿈인 줄 알면서도 뮤리가 동조하면서 콜로 하여금 고뇌케 하는 부분은 참 인상 깊다 할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늑대와 향신료 20권에서 로렌스와 호로는 딸내미 찾아 여행을 시작하였죠. 콜과 뮤리 둘은 나름대로 잘 헤쳐나가고는 있지만 조금 늦게서야 진실을 알아가는 콜과 뮤리를 보면 호로는 뭐라 할지, 게다가 목욕도 같이하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사이라고 알면 로렌스는 혈압으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에서의 유쾌함은 정말 기대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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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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