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고블린 슬레이어 10권 리뷰 -닭 모가지 비틀어도 시간은 흐른다-
세월 참 빠르군요. 여신관이 고블린 슬레이어와 파티를 맺은지도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3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15살에서 17살로,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 채, 지고신(神) 사원에 맡겨져 자라난 그녀는 '지키고, 치유하고, 구하라'라는 신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대상이 고블린이라고 하여도 죽음을 애도하는 등 경건하고 마음씨 고운 어른으로 성장은 하였습니다만. 하필이면 고블린 슬레이어와 파티를 맺은 게 그녀에겐 불운이었을까요. 가는 곳마다 개(犬) 똥 밭이었으니 허구한 날 구르는 게 일이고, 옷은 더러워지는 날이 끊이질 않고, 목숨은 남아나질 않고, 그렇다고 그이가 다정하게 대해주기나 하나. 뭐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데도 그녀는 왜 고블린 슬레이어의 뒤를 쫓아다니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샘솟죠.
처음으로 친구를 소개하는 날, 처음으로 그이를 집으로 초대하는 날,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날, 나의 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이를 바라보는 시점은 과연 어떨까 하는 궁금증은 누구나 한번 겪어 봤을 겁니다. 평가, 높은 평가를 받으면 그보다 기분 좋은 일이 없고, 낮은 평가를 받으면 어딘가 음울해집니다. 여신관은 처음으로 집이나 다름없는 지고신 사원에 고블린 슬레이어와 동료들을 대리고 가요. 대부분의 고아들이 그러하듯 그녀도 모험가의 길에 들어섰고, 잘 해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자기만의 생각이고 타인이 보기엔 어떨까. 어릴 때부터 그녀를 봐온 여승(신관과 비슷)들이라면 더욱, 그녀의 평가가 동료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것은 부정의 말이 아니라 온화하고 어딘가 들뜨게 만드는,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분위기, 그녀는 잘 해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걸 시기하듯 불온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지고신 사원의 어느 여승이 고블린의 자식이라는 소문, 여신관에 있어서 그 여승은 친언니와도 같은 존재,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고 결국 당사자에게까지 도달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란 여신관에게도, 아니라는 건 본인은 물론이고 여신관도 잘 알고 있다. 모험가들 사이에서 안줏거리로, 가십거리로, 진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자신이 말이 진실인양 퍼져 나가는데 반론할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여신관으로써는 미치고 졸도할 일, 분한 마음에 고주망태가 되어 보지만 해결될 리도 없고 마땅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인터넷 세상에서 악플이 달리는 느낌이 이런 걸까. 이럴 때 어깨를 다독여줘야 할 고블린 슬레이어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그도 그럴게 고블린 슬레이어는 지금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까.
자, 느닷없이 왜 지고신 사원에 불온한 소문이 붙은 걸까. 특정 인물을 향한 소문이라지만 집단에 소속된 인물이고, 그 인물은 포도주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바로 냄새가 나버리죠. 이익을 위해 어느 못된 상인이 개입한 걸까. 그러하다는 걸 뒷받침하듯 고블린 슬레이어가 머무는 목장에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개발의 여파는 어느 시절이고 있기 마련이라는 듯 목장을 매입하고 싶다는 상인의 말, 그리고 지고신 사원의 소문, 뭔가 있다는 걸 직감한 고블린 슬레이어는 탐정이 되고자 합니다. 그런데 내 본직은 고블린 퇴치다만. 고블린 슬레이어는 문득 자신 속에 망설임이 있다는 걸 자각합니다. 언제부터 내가 고블린 이외의 일을 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남의 일에 개입하게 되었을까. 12년 전 그날 이후 오로지 고블린만을 죽이기 위해 살아온 그가 누군가를 위해 나선다는 것.
짜증이 날 정도의 망설임, 여신관이 친언니나 다름없는 여승에 붙은 소문으로 인해 고주망태가 되어 술집에서 진상을 부려도 모른 채 할 정도로의 망설임. 하지만 이건 망설임이 아니라 답답함이었다랄까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는 것에서 오는 답답함. 누군가가 등을 밀어주고 이끌어주지 않으면 모르는 일, 그 모르는 일을 해야 되는 답답함과 망설임, 그걸 이끌어줘야 될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의외로 가까운데 있다고 역설합니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눈을 높이 들고 다른 곳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마냥 소치기 소녀의 당찬 말 한마디에 마치 길 잃은 어린 양이 다시 원래의 길로 되돌아가듯 고블린 슬레이어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안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심플한 조언에 마음을 정한 고블린 슬레이어.
그동안 간간이 용사에 의해 혼돈의 세력이 무력화되는 어딘가 멀리 떨어진 세계의 이야기를 조금식 가미하던 것이 이젠 대놓고 나날이 혼돈의 세력(판타지 용어로는 마족쯤 되려나요.)이 판을 키워 갑니다. 이미 이전에 고블린 슬레이어 파티는 다크 엘프와의 싸움도 여러 번 있었고, 이번에도 고블린 슬레이어는 혼돈의 세력과 마주합니다. 지고신 사원의 여승에 붙은 소문과 목장을 매입하고 싶다는 상인의 뒤를 캐던 고블린 슬레이어는 어떤 사실에 도달하죠. 목장으로서는 제2의 위기이고, 여신관에게는 고향집 같은 사원이 뭉개질 판입니다. 이럴 때 그는 어떤 움직임을 보여야 할까. 이것은 고블린 퇴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움직여야 되는 상황. 그의 망설임은 여기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그는 고블린 퇴치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하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은 미움을 받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그가 그동안 모험가를 해온 지도 벌써 7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세상에서 그와 여신관을 돕기 위해 여러 모험가들이 움직여 주면서 결국은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소치기 소녀가 말했던 것처럼 있는 힘껏 살아가면 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리고 또 한 명, 친언니나 다름없는 여승을 고블린 자식이라고 매도하게 만든 장본인을 앞에 두고 그녀(여신관)는 장본인을 매도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17년 동안 타인을 자비로 대하라는 신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고 여겼던 그녀는 소문의 장본인을 앞에 두고도 자비를 베풀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매도하며 분풀이를 할 것인가. 근데 장본인의 입이 아니라 고블린 슬레이어가 던진 의외의 말은 여신관의 마음에 파장을 불러옵니다.
맺으며, 이번엔 고블린은 꼽사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블린 퇴치가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이긴 한데 언제까지고 고블린만 잡고 있어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마냥 이젠 상위 단계인 혼돈의 세력과 싸움을 붙이려나 봅니다. 그래서 그동안 간간이 언급되었고, 언급되면 용사가 나서서 해결해버렸던 혼돈의 세력이 인간의 틈으로 파고들어 암약 하는 이야기인데요. 이번 10권은 용사가 미처 대처하지 못한 혼돈의 세력이 하필이면 목장과 여신관과 인연이 있는 지고신 사원을 노리게 되면서 일어는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블린 슬레이어가 파티와 함께하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적응을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해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는 걸 알아가면서 고블린 슬레이어도 나름대로 노력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번엔 이렇다 할 큰 모험은 없어요. 여전히 고블린은 나오고 퇴치는 하지만요. 그리고 혼돈의 세력이라는 큰 복선을 투하하면서 앞으로 이들에게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낳지만 용사가 활약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큰 위기는 닥치지는 않을 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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