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그저 거들 뿐, 도박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라자루스'에게 다가온... 예전 같으면 리뷰에 닭살 돋는 멘트도 서슴없이 썼겠습니다만. 나이가 들고 보니 창피해서 더 이상 쓰지는 못하겠군요. 아무튼 제도(한 나라의 수도 같은 도시?)에서 도박으로 연명하던 주인공 '라자루스'는 도박에서 크게 이겨 어느 노예 소녀를 손에 넣게 되었죠. 그러나 이후 괴한에게 그녀를 빼앗기고 맙니다. 18세기, 치안이 유지된다고는 해도 아직은 무법자들의 세계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삼가하며 생활하던 그에게 노예 소녀 '릴라' 탈환 사건은 싫어도 모두의 주목을 받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제도에 있을 수 없게 된 그는 지방도시 '바스'로 잠시 몸을 피할 목적으로 여행을 떠났더랬죠. 가던 중 지주의 딸 '이디스'를 차지하려는 못된 남자를 응징하고 겸사겸사 메이드 '필리'와 함께 길동무로 삼고 바스에 도착은 하였습니다만.

 

온천의 도시 '바스', 우리 속담에 이런 게 있죠.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아무리 인터넷이나 전화가 없는 시절이라도 소문은 퍼지게 마련이죠. 주인공 라자루스가 한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이런 것입니다. 소문의 속도, 제도에 있었던 소란의 중심인물을 어딜 가든 있는 동종업자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죠. 하필 도착한 온천의 도시 바스에서는 도시 전체를 주무르는 의전장과 부의전장간 이권을 놓고 알력이 생성되어 있었는데요. 그러니 하나라도 많이 아군을 끌어들이고 싶었던 양 진영은 제도의 유명인 라자루스에게 눈독을 들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그러니까 라자루스가 바스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는 개미지옥에 빠진 것입니다. 머리는 제법 똑똑하고 눈치도 빠르고 분위기도 잘 살피면서 말은 온천의 도시라지만 이면엔 제도와 마찬가지로 도박으로 흥망성쇠를 이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발은 들인 우둔함은 몸으로 갚으라는 듯 온천의 도시 바스는 그에게 시련을 선사합니다.

 

자, 사회적으로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하면 될까. 무턱대고 내 사람이 되어라 해봐야 의심만 살 뿐이죠. 시간을 들여 친분을 쌓으면 되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땐 강경책이 상책입니다. 뒤늦게 바스의 분위기를 읽고 어쩌나 하며 라자루스는 여느 날처럼 묵고 있는 여관방에 돌아왔는데 그를 반기는 건, 누군가에게 죽을 만큼 얻어맞아 피떡이 된 채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10살짜리 소녀였으니, 여기서 티비 드라마라면 경찰이 들이닥칠 테죠. 이제 그는 바스에서 일어나는 의전장과 부의전장간 알력의 중심에 서고 맙니다. 그런데 피떡이 된 소녀는? 일단 병원에라도 대려 가야죠. 소녀의 이름은 '줄리아나', 아버지 얼굴은 알아도 이름은 모르며, 이름을 모르는 아버지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해맑게 웃는 소녀, 자신이 이렇게 피떡이 될 정도로 맞은 것에 의문을 느끼지 않으며 필요하다면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어딘가 망가져 있다는 알려줍니다.

 

철저하게 누군가에게 도구로써 키워진 그녀(줄리아나)는 라자루스에게 어떤 결말을 가져다줄 것인가.

 

딱히 알력이 있다고 해도 여러 사람이 말려드는 시리어스함은 없습니다. 도박이라는 주제답게 도박으로 상황을 해결하려 들고, 수가 틀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며 으름장을 놓긴 합니다만. 양 진영 중간에 끼인 라자루스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고심해가고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알아가죠. 자기들 문제는 자기들이 해결하면 될 것을. 시달리는 사람 심정 좀 헤아려주면 좋겠건만, 아랑곳하지 않고 함정을 파지 않나, 회유하지 않나, 사실 도박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거지 일보 직전인 그에게 있어서 양 진영 어느 곳에 속하든 이익만 챙기고 빠지면 될 텐데 고지식하게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다는 것에서 사람이 좀 고지식한 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유부단하게 있을 수만은 없는 게 '릴라'까지 은근슬쩍 잘못될 수 있다는 협박이 날아들고 도망가고 싶었던 그를 바짓가랑이 붙잡듯 붙들고 늘어지니 그는 이제 슬슬 빡쳐 갑니다.

 

상황이 나빠지지만 그런 건 알 바 아니고, 이 작품은 도박에 주제지만 메인은 러브코미디라고 작가가 단언해버렸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히로인이 제법 나오죠. 릴라를 필두로 해서 2권의 히로인이었던 이디스와 메이드 필리, 이디스는 나이가 너무 어려 연애전선에 투입은 힘들고 메이드 필리가 대신 그 자리를 꿰차고 있는데요. 그녀는 분명 엑스트라인데 등장할 때마다 독설이라던지 색기 등으로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라자루스와의 섬싱을 예고하고는 있지만 정작 라자루스가 남의 메이드와 엮이는 걸 꺼려 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디스는 아직 들러리로써 크게 활약하는 건 없군요. 그리고 이번 3권 히로인 '줄리아나' 10살이라서 히로인 대열에 올릴 수는 없지만 모든 건 '아버지의 뜻대로' 설령 죽으라고 하면 시늉이 아니라 진짜로 죽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제대로 망가진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 꽤 안타깝게 합니다.

근데 여담이지만 사실 줄리아나의 등장으로 주인공 라자루스가 어느 진영에 붙어야 되는지 진작에 밝혀주는 핵심인물이자 스포일러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작가가 이야기 강약 조절이 실패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군요.

 

아무튼 릴라, 그녀는 라자루스를 만나 노예로서 속박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띄게 되죠. 그 만나고 나서 표정과 감정이 조금식 풍부해지고 있는데요. 제도에 있을 때 경직된 사고관이었던 것이 이디스의 영지를 거칠 때 조금은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기 시작했고, 바스에 도착해서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심취하고, 무도회에 가고 싶어 하는 소녀의 감성을 내비치기 시작하면서 보는 이를 애틋하게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노예의 신분인 그녀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죠. 그래서 라자루스는 그녀를 해방 시켜 떠나보내려 합니다. 애초에 제도에서 그녀를 구해준 것도 상황이 그러해서 구해준 것일 뿐, 그녀를 떠안는다던지 같이 지낸다던지 하는 마음은 그(라자루스)에겐 없었죠. 왜냐, 도박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수가 틀리면 언제든지 뒷골목에서 살해당할 운명인 그에게, 그가 떠나고 나면 릴라는 혼자 남겨지게 될 테니까요.

 

노예로 살 것인가, 자유롭게 살 것인가. 릴라에게 두 가지의 길이 제시됩니다. 그리고 그와 그녀가 선택한 길은...

 

맺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바로 곁에서 공존하는 세계에서 아무 힘도 없는 주인공 라자루스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랄까요. 그는 이번 바스에서의 소동에 휘말리며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손에 들어온 소중한 것도 내팽개칠 수 있다는 마음을 내비치죠.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정이 많은지를 보여줍니다. 내면의 갈등을 꽤 리얼리티 하게 보여준다고 할까요. 도망가면 살 수 있는데, 하지만, 무도회에 데려가지 못하는 릴라를 위해 야외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댄스를 같이 춰주는 장면이라든지, 릴라를 버리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는다던지, 언제부터인가 눈을 뜨면 바로 곁에 있는 그녀가 눈에 밟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해서 주인공의 역린을 건드리는 꼴이 되어가는 악당들은 처벌되고 작가가 공언한 대로 이 작품은 러브코미디가 맞구나 하는 걸 새삼 알게 해줍니다.

사족을 더 쓰자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야기 강약 조절에 실패한 것인지 중반 이후 느닷없는 전개가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는 못쓰지만, 이번에 등장하는 줄리아나와 그녀의 모친 그리고 모친을 구하고자 획책한 인물에 관한 건데 어째서 이렇게 이어지는지 하는 설명도 없고 엔딩도 흐지부지로 끝내버리는 황당함이 있습니다.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것도 유분수지, 줄리아나의 모친을 구하고자 하는 이유도 나오지 않고 이후도 언급 없이 끝나버리는 불친절은 어쭙잖게 러브코미디로 엮으려다 실패한 게 아닐까 했군요. 완전히 옥에 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위기를 맞이해가며 뭔가를 유추하고 알아가는 장면에서는 독자들이 유추할만한 재료를 내놓지 않고 주인공만 납득해버리는 불친절도 있습니다. 이게 제일 짜증 났군요. 어떻게 보면 필자의 독해력이 딸려서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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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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