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무시우타로 유명한 이와이 쿄헤이의 신작입니다. 전작인 무시우타는 초반이 절판이 되어 이젠 구할 수가 없어 필자는 끝끝내 접해보지 못했군요. 전작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던지라 이 작품도 기대를 갖고 구입을 하였는데요. 아직은 1권이라서 그런지 많은 복선이 깔리고 캐릭터들의 성격이 정립되어 가는 수순이다 보니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려가는 부분은 상당히 세밀하며 아픈 과거를 가슴에 품은 채 잃어버린 연인과 가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등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군요. 그 외에는 전형적인 라이트 노벨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심도 있는 이야기는 최대한 피하고 주 독자층인 청소년의 입맛에 맞게 역경을 딛고 영웅을 지양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시라비'작가가 보여주는 일러스트는 굉장히 각이 잡혀 있습니다. 캐릭터들이 군더더기 없이 잘 표현되어 있어요.


주 이야기- 어느 날 전조도 없이 나타난 보라색 연기로 뒤덮인 도쿄, 넓이가 특정되지 않은 보라색 연기로 원통 형태의 태두리가 생겨난 도쿄 중심부에 EOM이라 불리는 미지의 생명체 '하멜른'이 강림하여 수백만의 거주민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후 <도쿄 액습>이라 불리는 미증유의 대재앙에서 주인공 '아카즈키 렌지'는 두 살 연상의 연인 '오사토 유이'를, 히로인 '유미이에 카나타'는 친동생을 잃어버렸습니다.


2년 후, 렌지와 카나타는 [레이더,raider]가 되었습니다. 대재앙으로부터 간신히 혼란을 수습하고 딛고 일어선 일본은 그 근원지를 <크리티컬 에어리어>라 칭하고 지금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는데요. 하지만 가족을, 연인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은 <스폿>이라는 <크리티컬 에어리어>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 불법으로 침입하는 걸 서슴지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칭 레이더라 부르게 되었으며 정부는 불법으로 간주하고 막고 있지만 역부족


그런데 모든 레이더가 연인을, 가족을 찾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니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걸맞은 꿀꿀한 이야기도 보여줍니다. 재물을 탐닉하기 위해, 다른 레이더를 죽이기 위해, 그래서 항간에서는 레이더에 대한 소문은 좋지만은 않습니다. 렌지와 카나타는 주변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며 오늘도 <크리티컬 에어리어>로 발을 들이는데요. 이들이 레이더로 활동한 시간도 벌써 1년하고 8개월이 지났습니다. 모든 걸 거부하는 극한의 세계 <크리티컬 에어리어> 거기엔 EOM이라는 통상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 미지의 생명체가 있습니다.


서바이벌, 인간을 거부하는 곳 <크리티컬 에어리어> 극한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카나타가 연예인으로 활동하며 벌어들인 수입으로 군대 뺨치는 장비로 무장하고 있지만 한순간의 방심이 생사를 가르는 통에 늘 긴장을 연속입니다. 이 부분이 참 디테일 있게 표현했더군요. 폐허 속을 나아가면서 서로가 맡은 포지션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서로가 등을 맡기고 때론 '크립티드'나 EOM과 조우하여 격렬하게 싸우기도 하고 패배하여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도 하면서도 목숨만은 부지했다는 안도감...


작품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이런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들통나면 사생결단으로 전투에 임해야 되는 크립티드나 EOM에 들키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손에 땀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내일이 있기에 또 이들은 도전을 합니다. 이 모든 사태의 근원이 되는 EOM '하멜른'을 무찌르고 연인을, 가족을 되찾기 위해... 그러나 이것만 있으면 곧 재미 없어진다는 걸 작가도 인지했는지 복선을 깔기 시작합니다.


전조도 없이 나타난 보라색 연기와 EOM은 구 종인 인류를 멸절 시키고 새로운 종의 탄생을 알리기 위한 사전 포석일까 하는 복선을 주인공 렌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렌지의 연인 '유이'를 쏘옥 빼닮은 히마와리와의 조우는 그 가설은 더욱 신빙성을 얻어 갑니다. 2년전 <도쿄 액습>때 렌지와 같은 장소에 있다가 재앙에 휘말렸다가 살아난 이름 모를 어떤 소녀, 지금은 히마와리로 불리며 정부기관인 구무청에 소속되어 렌지와 적대하는 관계에 놓인 그 소녀는 처음 만난 렌지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대미문의 아포 칼립스를 맞이하여 인류가 맞서 싸워 나간다는 이야기지만 실상은 주로 레이더와 <됴코 액습>이라 불리는 대재앙을 관할하는 '구무청'이라는 정부기관과 구역 싸움입니다. 정식으로 허가받아서 <크리티컬 에어리어>를 탐색하는 구무청과 <스폿>이라는 장소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에어리어로 침입하는 레이더가 서로 상생하긴 애초부터 글렀죠. 거기다 레이더는 희생자들의 재물까지 손대고 있는 판이었으니 세간의 평도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등장인물 간의 감정적인 대립이 볼만 합니다. 다들 뾰족합니다. 성격이, 어딘가 다들 모났습니다. 누군가를 헐뜯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마냥 시건방진 말만 늘어놓습니다. 아픔을 이해하려는 배려보다 겉모습으로 판단하여 그 사람을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난 성격으로 사람을 찌르면 죽을 거 같은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 주기도 합니다. 그것이 '오사토 유이'라는 것에서 이 작품의 향방은 정해진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파탄은 예정된 거나 다름없다는 것처럼 차분하게 렌지와 카나타에게 다가옵니다. 오사토 유이를 빼닮은 '히마와리'의 등장으로 사태는 격랑 속으로 흘러가는데요. 무엇보다 우선으로 '하멜른'을 쓰러트린다. 오로지 이것만을 위해 1년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준비해온 것들이 렌지에 의해 파탄이 나기 시작합니다. 연예인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과 불법적으로 스폰서를 맺으며 모든 것을 쏟아부은 카나타에게 있어서 가족인 친동생을 구하기는커녕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미래가 확정되어 버렸습니다.


이 작품이 19금이었다면 지금쯤 카나타는 AV에 출연하고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내몰리게 되는데요. <크리티컬 에어리어>를 탐색하기 위해 조달한 장비와 훈련에 필요했던 트레이너 고용비를 모두 카나타가 부담하고 있었는데 한순간 눈이 돌아간 렌지에 의해 졸지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카나타, 이 부분은 정말 책을 짚어 던지기도 했군요. 유이와 쏙 빼닮은 히마와리와의 조우는 렌지가 그동안 필사적으로 찾으려 했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말의 동정과 이해는 갔습니다만...


맺으며, 적을 만나 싸우고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역경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다 좌절도 겪고 다시 일어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통쾌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처가 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일도 벌어지고, 한편으로는 자기가 싸지른 똥을 치우려는 듯 상처를 내고 마데X솔을 발라주기도 하고, 북 치고 장구치고, 병 주고 약주고 하는 일이 참 많이도 일어납니다.


그러다 결국은 인류의 적은 EOM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던지기도 하는데요. 아직은 조그마한 뉘앙스에 지나지 않았는데 보통 이런 아포 칼립스의 상황 이면에는 반드시 자칭 진화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명분이랍시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인간들의 개입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도 이런 느낌이 느껴지기도 했군요.


어쨌건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적인 대립은 볼만했지만 그 외에는 크게 여타 작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월한 형님 밑에 열등한 동생이 보여주는 능력물이라는 클리셰도 동반하고 있고요. 기모(밥맛)를 외치는 여동생 아사히는 오빠인 렌지를 벌레보듯 여기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렌지를 걱정한다던지하는 여동생 포지션 클리셰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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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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