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불쌍한 남자가 있습니다.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만끽하던 어느 날 남자의 친구는 따분하다는 듯 행한 일련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남자의 인생은 지옥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남자의 주변 친구들은 다 죽어 버렸고 남자를 쫓아다녔던 여자애는 죽어서 도깨비가 되어 남자의 뱃속에 들어앉아 버렸습니다. 하지만 친구 하나 잘못 사귀어서 인생이 지옥으로 변한 남자는 친구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사기를 당한 사람이 잘못이라는 것처럼 성모 마리아 같은 심정으로 삶의 목표를 사람 구하는데 평생을 보내려 했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오다기리 츠토무, 친구의 이름은 마유즈미 아사토(이하 하사토), 그리고 그 중심에 마유즈미 아자카(이하 마유즈미)가 있습니다. 강력한 이능력을 가진 여자만 대를 잇는 당주가 될 수 있고 우대받는 집안에서 남자로 태어나 당주가 되기 위해 여자로 살아야 했던 아사토, 어느 날 남자라는 게 뽀록나 여동생 아자카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나야 했던 아사토, 쫓겨나기 전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을 몰아붙인 어머니를 죽이는 것, 그리고 현재 그는 동생마저 증오하며 죽이기 위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는데요.


사실 오다기리는 아사토가 저지르던 동생 살해 계획의 재료에 불과했습니다. 주변에서 불가사의한 죽음을 보여주며 동생을 끌어내 죽이려 했지만 좀처럼 동생은 흥미를 보이지 않았죠. 남매의 싸움에 휘말려 오다기리는 강제로 도깨비를 배에 심어야 했고 마유즈미는 다 죽어가던 그를 거둬들여 그의 배에서 도깨비가 나오려 할 때마다 봉합해주며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사토의 계획대로 차근차근 동생의 주변을 고사 시켜가던 때에 오다기리가 마유즈미의 곁에 있게 되자 그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죠.


문제는 평범남 오다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능력이 펼쳐지는 세계에서 팔이 잘리면 피를 흘리고 배에 구멍이 나면 죽는 고통을 느끼고 공포를 체험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남매의 싸움에 휘말려 죽어가는 일반인을 구하고자 노력하는 것뿐, 하지만 아무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위선자처럼 사람들을 구하겠노라 노래를 부르며 쫓아다니지만 언제나 한발 늦어 모두가 죽어갑니다. 그의 친구도, 자기를 따르던 여자도 모두, 그러다 겨우 현실을 직시합니다. 아무도 구할 수 없다는걸요.


이 모든 건 아사토에 의해 일어난 비극, 아니 '아자카'라는 이능력을 가진 여자애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나은 마유즈미 가(家)에 의해 일어난 비극입니다. 당사자인 마유즈미도 알고 있지만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당주가 되었지만 자신의 운명을 거스를 경우 다음 세대를 태어나게 할 자궁을 빌려주는 여자로 전락할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마스코트같이 오도카니 서 있을 뿐, 여튼 그녀는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습니다. 오빠 아사토가 자신의 이목을 끌기 위해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호수에 빠져 아무리 발버둥 쳐도 물가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오다기리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편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마유즈미는 그를 외면합니다. 방바닥에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오다기리의 잠겨진 집 문을 뜯고 들어와 하는 말이 '너의 뱃속에 있는 도깨비를 내가 가져도 될까?' 뭐 이런 천하의 머리에 꽃 꽂은 X을 보았나 싶었을 겁니다. 사실 여기까지가 마유즈미가 보여주는 무관심의 궁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아비를 잃은 도깨비가 세상으로 나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걸, 그리고 관심병이 도진 오다기리에겐 당근보다 채찍이 필요하다는걸요. 결국 이런 것입니다. 개뿔 가진 것 없는 주제에 사람을 사람을 살리겠다고 설치더만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네? 같은, 나서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마유즈미에게 사사건건 시비나 털던 주제에 여기서 좌절하고 뒹굴 거리고 있냐? 같은, 지 잘난 맛에 설치던 그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방법이 틀려먹은 게 아닐까 하며 상황은 오다기리에게 천벌을 내립니다.


아사토와 엮인 후 주변 모두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아무리 발버둥 처도 구할 수 없었던 사람 중에 유일하게 단 한 사람을 구해낸 적이 있습니다. '시라유키' 당주가 되기 위해 혀가 뽑힌 소녀, 마유즈미에 미치진 못하지만 강대한 이능력을 가진 그녀는 집안을 배신한 오빠를 상대로 처절한 싸움 끝에 오다기리의 도움으로 살아 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사토가 개입된 거 같은데 필자의 기억력은 붕어 머리 수준이라서 정확하게는 모르겠고 하튼 시라유키는 소심한 자/살을 꿈꾸는 오다기리를 구하고자 아사토에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지내다 보니 고향이고 지나보니 연민을 느낀다고 하였던 가요. 유일하게 구해주었고 구원받았던 시라유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소심한 자/살을 그만두고 마유즈미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오다기리에게서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잖아!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마유즈미는 움직이지 않았겠죠. 하지만 슬슬 결판을 내야 될 시기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손을 내밀어 주지 않습니다. 단서를 제공할 뿐, 그런데 단서를 찾아 돌아오던 길 오다기리의 눈에 비친 건 산산조각 난 마유즈미의 시체였으니...


인간이 되다만 인간이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단을 일으킨 아사토를 재끼고 오다기리는 대지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인가, 궤변에 궤변이 난무하고 지 잘못도 아니면서 모든 걸 끌어안으려는 볼썽 사나운 모습을 더 이상 안 보겠다는 것마냥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모든 시작점이 된 아사토와 오다기리의 싸움, 마유즈미가 없는 상황에서 오다기리는 승산이 있나? 이계로 끌려가 뱃속의 아이 '우카'를 순산한(?) 오다기리의 운명은, 엄청 시리어스하고 재미있어지네?는 개뿔...


맺으며, 이전까진 소소한 개그라던가 정말로 피가 보일 정도로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였는데요. 하지만 이번 에피소드는 오다기리가 아사토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어 진정한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인지라 그의 내면적인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자칫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사람의 내면의 표현이 꽤나 훌륭합니다. 필자에겐 남정네의 이야기 따위 관심이 없어서 그저 흘려 읽었지만요. 어쨌건 그래서 오다기리는 인간이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제 버릇 어디 가나요.(1)


그동안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던 마유즈미는 사실 손을 내밀어 준다기보다 등을 떠밀어 주며 앞으로 나아가길 바랐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곳곳에서 감지되었습니다. 그래봐야 마유즈미 주변은 오다기리뿐이지만요. 하지만 사실 오다기리를 이용해 오빠를 치려고 했으니 성모 마리아 같은 인종은 되지 못하긴 합니다. 그래도 모든 사람은 구하지 못해도 곁에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마냥 오다기리를 챙기는 모습에서 냉혈한은 아닌 듯하였고요.


 

  1. 1,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오다기리는 인간입니다.
    여기서 인간 만들기란 성장하다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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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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