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검은 신(神) '쿠로'가 등장합니다. 지상을 파괴와 혼돈에 몰아넣은 것과 동시에 창조를 담당했던 '만 색(万色)의 혼돈'을 쿠로 포함 여섯 신(神,1)이 천년이나 걸쳐 싸워 물리친 게 3만 6천여 년 전, 지상에 다시 평화를 깃들게 한 이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지만 만 색의 혼돈이 사라진 이후에 태어난 지상 종족이 워낙 약해 죽음을 관장하는 자신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즉사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린 쿠로는 달로 이주하여 그동안 사색에 잠겨 지내왔습니다. 무려 3만 6천여년이나요.


그렇게 오늘도 달에 떨어지는 운석을 헤아리며 보내던 어느 날 쿠로 앞에 문이 나타났습니다. 네코야 양식점으로 통하는 그 문이, 호기심이 발동하여 들어간 그곳에서 그녀는 발견합니다. 일생일대의 음식을, '치킨 카레'에 환장하게 된 그녀는 무려 100그릇이나 비워 버렸습니다. 그런데 돈은? 있을 리가 있나, 처음엔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았는데, 문제는 여기 네코야는 붉은 여왕이라 일 컬 여지는 적(赤) 색 신이 관할하는 곳으로 네코야에 해를 입힐만한 자가 있다면 그게 누가 되었든 배제해버리는 불같은 성격의 붉은 드래곤의 성역이라는 건 익히 알려져 있죠.


수만 년 전 같은 팀이 되어 눈앞의 적(enemy)을 물리친 동료라도 그건 옛날 일, 타이밍 좋게 나타난 적색 신과 마주한 쿠로, 일촉즉발의 기운이 감돕니다. 붉은 여왕 왈: 이 가게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 쿠로 왈: 치킨 카레, 이로써 아무도 몰랐던 세계가 멸망할뻔한 사건은 간신히 일단락됩니다. 참고로 붉은 여왕은 '비프스튜'를 좋아 하는데 만약 쿠로가 비프스튜를 좋아한다고 했다면 세계 존망을 건 사생결단으로 이어졌겠죠. 붉은 여왕이 가져가는 비프스튜의 양은 정해져 있는데 여기에 쿠로가 꼽사리 끼면 붉은 여왕의 몫이 줄어들거든요.


여튼 그렇게 만나 그동안 못했던 화포를 푸나 했더니 쿠로가 먹은 100그릇 분량의 치킨 카레의 값을 치를 수 있냐는 붉은 여왕의 말에 쿠로는 '돈?'이라며 화폐 개념 따윈 개나 줘 버렸다는 반응, 그래서 무전취식은 예로부터 그릇 닦기라고 정해져 있듯이 여기에 취직해 갚으라는 붉은 여왕의 말에 선뜻 승낙하여 이렇게 쿠로는 네코야의 웨이트리스가 되었습니다. 일당은 치킨 카레, 그런데 얘가 한두 그릇 먹는 게 아니어서 네코야 점주 입장에서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듯합니다.


사실 위 쿠로가 등장하는 부분은 굉장히 짧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길게 풀어 놓은 것은 쿠로가 등장하는 장면 이외엔 거의 다 먹는 것에 할애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1권부터 쭈욱 그래왔듯이 늘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여 자신의 세계에선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접하며 신세계를 경험하는 레퍼토리가 비슷비슷합니다. 한가지 다행인 건 늘 새로운 음식이 나온다는 것인데요. 물론 기존에 등장했던 사람들과 음식도 표현되곤 하지만 메인은 늘 새로운 음식과 사람들입니다.


이젠 세상을 떠난 시종장이 1주일마다 가져다주었던 몽블랑을 잊지 못해 사설탐정을 고용해 출처를 알아내려는 영주 부인, 적색 신을 섬기는 대신관 라미아(몬스터)의 인도로 처음 네코야를 방문한 젊은 남자 신관이 경험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대신관 라미아의 손녀와 결혼하게 된다는 조금은 황당한 에피소드라든지, 귀신에 쫓겨 들어간 네코야에서 널부러 자던 과객이라던지, 돈이 없어도 내쫓지 않고 늘 한결같이 응대해주는 네코야를 통해서 서로가 인연을 맺어 가는 등 조금은 훈훈하기도 한 소소한 에피소드가 눈을 즐겁게도 합니다.


이번 3권에서 이전 1~2권과 조금 달라진 거라면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인연을 조금 더 중요시했다는 것이군요. 음식으로 이세계 침공하는 건 여전하지만 그것보다 쿠로의 등장이라던지 어느 요양 중인 황녀가 시종과 함께 디저트를 먹는 등 음식 앞엔 누구나 공평하다는 걸 역설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1~2권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여왔지만 3권에서는 조금 더 진전된 느낌이랄까요. 거기다 요염한 차림의 엘프라든지 19금에 근접한 이야기라든지 사람이 살아가는데 빠지지 않는 요소도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그건 그렇고 위에서 필자가 이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언급했듯이 비단 이 작품만이 아니고 여타 이세계물을 보고 있자면 역시나 문화 침략이란 무섭구나 하는 걸 느끼곤 합니다. 네코야에서 내놓는 음식을 잊지 못해 1주일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모습이라던지, 심지어 몇 년을 기다린 소녀도 있고요. 던전과 같은 곳을 지나며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집착한다던지, 은화 1천 개도 아무렇지 않게 내놓으며 음식의 출처를 알아봐 달라는 영주 부인 등을 보고 있자면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음식에 국환 되지 않고 자신이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물을 기대하는 것이 뭐가 나빠할지도 모릅니다. 넓게 보면 새로운 것에 열광하여 밤새도록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는 판국에 이런 작품이 뭐가 나쁘냐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순응되고 그것에만 묶여 있게 되고 그것 없이 살 수 없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뭐가 문제인지 답은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그래서 미국 등지에 보면 이런 문물을 멀리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는 합니다만...


맺으며, 좌우지간 고작 엔터테이먼트의 한 장르를 가지고 너무 심각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돌이켜보면 한편으로는 좀 웃기기도 합니다. 비아냥이 아니라 우리도 살아가면서 새로운 것을 접할 때면 우와!!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세계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이 접하지 못한 음식에 우와!! 할 수 있는 것이기에, 필자가 너무 현실적으로 들이미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네코야의 점주에 대한 복선이 조금식 풀리고 있습니다. 그의 할머니 '요미'의 출신에 관련된, 그리고 네코야가 이세계의 문과 연결된 게 우연이 아니라는 복선 등, 외에 쿠로의 귀여움이 많이 묻어나는 일러스트가 눈길을 끕니다. 카레빵을 먹으며 세상 다 가진 듯한 표정은 정말 좋았군요. 3만 6천여 년이나 사색에 잠겨 있어서인지 네코야에 와서는 생각하는 걸 그만둬버리고 조금 멍한 구석을 보여주는 모습이 조금은 귀엽게 다가옵니다. 한가지 아쉬운 건 작가가 크게 어필하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1. 1, 금색, 적색(붉은 드래곤), 청색, 녹색, 백색, 그리고 쿠로가 담당하는 흑색, 이렇게 여섯 신(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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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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