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완결 난 작품이어서 이들이 보여주는 조마조마한 연애는 사실 크게 와닿지가 않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결말을 알고 있어서인지 리뷰에 대한 반응도 미적지근하더군요. 그래서 리뷰로 먹고사는 필자는 17권이나 되는 장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야 되나 하는 괴로움도 없잖아 있고요.(먹고 산다고 해서 어디서 돈 받는 거 아니냐고 하실 텐데 그런 소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필자이기에 누가 호응을 해주든 말든 리뷰는 계속됩니다.(18권이 나오기 전에 완결 따라잡을 수 있기를..)


좌우당간 이번 에피소드는 이별이라는 균열을 간신히 봉합했나 싶었던 호로와 로렌스의 관계는 여전히 삐걱대고 있었고 상처는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나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전 도시에서 로렌스가 실없는 소리를 내뱉었던걸 계기로 그동안 마음속에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결국은 오다가다 만난 남남'이라는 갈등이 수면으로 올라와 이들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는데요. 이전에는 애교로 사람도 죽일 거 같았던 호로는 그 일을 계기로 애교는 줄고 가시 돋친 복어가 되어 로렌스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로렌스 또한 옆에서 보면 간과 쓸개까지 내주며 호로를 대하는 게 죽고 못 살 정도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나 마음 한편으로는 상인으로써의 길을 가고자 호로를 연인 같은 관계라기보다 타인으로써 대하며 외면하는 모습을 간간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이 둘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죠. 로렌스는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있었습니다. 호로가 평소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하는 요망한 짓거리에 스트레스받아, 먹는 건 조그마한 여자애 같지 않은 대식가여서 언제나 자신의 지갑을 얇게 하여 이거에 대한 스트레스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혼자가 집에 가라는 둥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절대 밖으로 꺼내면 안 될 말을 내뱉고 맙니다. 평소 같으면 웃으며 넘길 호로였으나 마침 고향이 멸망했다는 소식과 맞물려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던 것인데요. 이 또한 호로도 은연중에 마음속에서 로렌스가 무의식중에 내뱉었던 여러 말이 가시가 되어 있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몸은 성인이라도 마음은 이성에 대한 면역이 없는 건 둘 다 매한가지여서 오해를 풀 타이밍을 잘 못 잡아 균열은 가속화되어버립니다. 지나고 나니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이렇게 균열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하며 둘 다 자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오해를 풀고 균열이라는 상처가 봉합 되었나 했지만, 새(버드) 수인 디아나의 소개로 호로의 고향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모으기 위해 들린 테레오 마을에서 겉으로는 봉합된 거 같았던 이들의 균열과 상처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무언가를 말하는 상대에게 '그렇다면, 어쩔 건데?'라며 때에 따라 가벼운 농담처럼 들릴 거 같았던 반론의 말은 지금의 관계가 된 두 사람에겐 가시로 다가옵니다. 새로운 히로인 엘사가 운영하는 교회에서 호로의 고향에 대한 정보를 모으던 중 엘사가 다른 마을 교회랑 다툼이 있다는 걸 알고 자신들의 처지(교회에 있어서 호로는 이교도)를 감안해 그만 철수하자는 로렌스의 말에 호로는...


이들의 관계가 여기서 파탄이 나는 거 아닐까 할 정도로 호로는 제정신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로렌스와 여행을 하고 그를 바라보며 외로움을 달래 왔으나 이젠 재미있는 수컷일지언정 몸을 위탁할 위인은 되지 않는다 여겼겠죠. 쪼잔하게 사사건건 먹는 걸로 시비 틀고 방심하고 있으면 '네가 알아서 가'라고 농담 아닌 진담 형식으로 마음에 스크래치를 아무렇지 않게 내놓으니 이건 언제 버림받을지 모를 애완견 같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눈앞에 고향과 동료의 정보가 있는데 그만 철수하자는 그를 바라보는 호로의 눈은 상처받은 맹수가 다가오는 모든 것을 적으로 간주하는 그것이었습니다.


확실히 이전 도시에서 사건이 있은 후 호로의 요망한 짓과 애교는 많이 줄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며 웃으며 부탁하여 로렌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그녀지만 지금은 정(情)에 기대어 그에게 간신히 부탁하는 호로의 모습에서 그동안 천진난만한 소녀 같은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로렌스도 간신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며 지금의 관계가 끝나지 않을 선에서 자신의 뜻을 죽이고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장면에서 더 이상 그녀를 이성으로 대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것은 언젠가 끝날 여행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요이츠를 몇달 안에 찾을 수 있는 거리까지 왔습니다. 처음부터 마음속에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을 겁니다. 종착지가 정해진 여행의 결말, 호로의 고향 요이츠에 도착하면 그녀는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녀는 모른다고 답하였습니다. 그녀도 로렌스와는 언젠가 헤어져야 될 동반자라고 마음속에 품고 있었기에 진실된 마음을 주고 있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봉하나 잡아서 여행길이 외롭지 않도록, 배를 곪지 않도록 로렌스의 주머니만 노리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4권은 필자가 일에 치여 피곤해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은 난해했습니다. 이들의 관계를 역설하고 상처를 봉합하려는 모습을 보이긴 했던 거 같은데 여전히 썩은 동아줄 혹은 망가진 나무다리를 건너는 듯한 아슬한 관계를 유지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군요. 사실 메인은 주근깨가 인상적인 엘사가 주인공임에도 어차피 엘사도 로렌스와 호로가 지나는 길에 우연히 일어난 희극에 지나지 않으니 크게 언급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지만 그녀(엘사)의 친구 에반과의 관계에서 로렌스와 호로가 나아가야 될 길을 제시한 것은 틀림이 없긴 했지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한번 뱉은 말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교훈은 이들에게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합니다. 한쪽은 산전수전 다 격은 상인이고 한쪽은 수백 년이나 살아온 자칭 현랑이라 자부하는 늑대면 뭐하나 싶은, 정신은 애들마냥 상처받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주워 담고 마음 아파하고 이별을 무서워하여 다가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의 풋풋한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갈등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언젠가 헤어져야 될 관계를 진전 시키지 못하는 갈등, 그렇기에 이후 살아가야 될 방편도 마련해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이 불러온 파국, 달달하지만 어쭙잖은 연애물보다 현실을 들이대며 진지한 연애는 살벌하기 그지없습니다.


맺으며, 호로의 귀여움이 별로 없어서 읽는데 고생좀 했군요. 여전히 로렌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그를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지만 예전보다 많이 줄었습니다. 마치 사춘기와 반항기를 동시에 겪던 소녀가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른이 되어 있더라 같은 분위기랄까요.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동화적인 분위기에 젖어 살던 이들이 드디어 현실을 직시하고 언젠가 헤어져야 될 상대에게 더 이상 정(情)을 주지 않는 관계가 되어버린 듯한...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바라봅니다. 이 여행이 언제까지고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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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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