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주의

뭔가 불온한 움직임이 있어 시찰 명목으로 서도에 온 지도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도적들의 습격도 받고,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이려는 영주와 기싸움도 하고, 황해(메뚜기 떼) 재난을 예견한 '마오마오'가 동분서주하며 재난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 식량은 궤멸적 상황에 빠지고 말았죠. 아직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라한네 형(마오마오에겐 사촌 오래비쯤)이 주도하는 식량 부활 프로젝트는 근근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런 와중에 서도를 다스리는 영주가 서커스단(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소속 사자(호랑이던가)에게 물려 비명횡사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졸지에 '진시'가 사면초가에 빠져가는 형국이 되어 버리는데요. 왕도에서 쩌리로 지내는 왕제(왕의 동생, 진시)가 서도에 와서 영주를 죽이고 자기가 영주가 되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중상모략이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마오마오는 이 멀고 먼 서도에까지 끌려와 여러 사건을 해결하고, 진시를 보살피며 나름 억척스럽게 살아가고는 있었습니다만.

1권부터 마오마오에게 한 가지 따라다니는 게 있습니다. 납치와 감금. 인신매매단에 납치되어 팔려간 끝에 후궁에서 2년간 의무복무를 해야 했고, 멸망한 줄 알았던 어떤 일족들에게 납치&감금되는 등 그녀의 수난은 끝이 없었죠. 근데 이번 12권에서도 또다시 그녀는 납치&감금되는 사태와 직면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사망한 영주 뒤를 이을 차기 영주 자리를 놓고 집안싸움에 진시와 마오마오는 휘말려 가죠. 당연히 장남이 이으면 되겠지만 자기 멋대로 살겠다고 뛰쳐나간 상태고, 둘째와 셋째는 정치학을 배우지 않아 자격 미달. 딸내미는 논 외. 근데 민심은 장남에게 쏠려 있고, 둘째는 평범남, 셋째는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는 등 진시 입장에서는 아주 골치 아픈 상황에 처합니다. 대놓고 말하지 않고 있지만 진시 보고 영주가 되라는 여론도 있어서, 이곳은 혼돈의 도가니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던 중 장남이 독화살을 맞는 사건이 터지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사실 다 읽고 나면 별것 아닌 내용들입니다. 근데 별것 아닌 내용이지만 그 과정을 그리며 눈을 못 떼게 하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한데요. 이쯤 서도에 비밀로 이웃 나라 왕자가 망명해오고, 하필 장남이 거기에 관련이 되면서 독화살 맞은 그를 치료한 마오마오 때문에 진시가 이웃 나라 왕자를 납치에 관련된 거 아니냐는 오해를 살 위기에 빠지죠. 마오마오는 진시 직속 시녀(표면상)거든요. 그러니까 장남이 이웃나라 왕자를 납치했고, 그를 마오마오가 치료했으니 그녀를 부하로 부리는 진시도 한 패 아니냐는 누명. 그러던 중 아직 누명 사건을 몰랐던 마오마오는 누군가에게 납치&감금 되어버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마오마오를 납치했고, 납치한 이유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누가 진시에게 누명을 씌우려 하는가입니다. 사실 작중에서 누가 납치했는지 밝히긴 했습니다만, 작가는 현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하기 보다 무슨 사태가 벌어졌다는 듯 진지하게 만듦으로써 집중력을 높이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 시킵니다.

이제 문제는 누가 그녀를 왜 감금했느냐겠죠. 그래서 작가는 그 사람(마오마오를 납치한)이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오마오를 지키려 납치한 거 아니냐는 추리를 하게 함으로서 집중도를 높이는 재주가 좋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흘러가지만 마오마오에겐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은 채 그녀(독자 포함)에게 추리를 해보라는 듯한 장면들을 넣어 더욱 집중 시키게 합니다. 이로써 마오마오는 또다시 감금&납치되는 일이 벌어지고,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끌려가다 산간 오지에서 도적들에게 또 납치되는 수난을 겪게 되죠. 사실 이 작품처럼 여주인공을 험하게 굴리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은데요. 도적들 마을에서 정조의 위기도 찾아오고 인질로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며 나름대로 사태 파악을 하는 등 어쨌거나 살기 위해 노력은 하는데 약과 독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마오마오로서는 진시가 구하러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입니다. 근데 구하러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맺으며: 영주의 저택을 밭으로 다 갈아엎어 버리고(정확히는 그리하라고 사주), 온실을 약초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등 관리인들에게 피눈물 흘리게 하는 마오마오의 만행(?)은 여전합니다. 납치되는 와중에 약초를 던져주자 덥석 물어 버리고, 혹시나 돌림병이 아닐까 실험한다며 양조장 가서 술 퍼먹고 꽐라 되는 등 그녀의 기행 또한 여전합니다. 하지만 이번 12권에서 최대 흥미 포인트를 꼽으라면 죽은 영주의 손녀 '샤오홍'과 마오마오의 관계가 되겠습니다. 이제 7~8살인 샤오홍은 마오마오가 납치될 때 동반 납치되어 고생을 많이 하죠. 엄마에게서 별다른 관심을 못 받는 거 같고, 아빠는 일찍이 사망한 듯해서 정을 갈구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꽤나 안타까운 캐릭터죠. 거기에 원래 소심한 성격으로 영주의 손자(장남 아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하고도 이렇다 할 반항조차 못했었던 그 아이가 마오마오와 지내며 강단을 키워 미니 마오마오로 각성해서 그 손자를 혼내주는 장면은 이번 12권에서 최대 백미가 아닐까 했습니다.

12권까지 오면서 마오마오와 같이 지내면 좋겠다는 캐릭터는 진시를 제외하고 없었는데 샤오홍은 약사 제자로 받아들여 같이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군요. 그만큼 마오마오와 캐미가 잘 맞는다고 할까요. 작가도 그런 복선을 띄웠기도 하고요. 마오마오가 척하면 착하고 알아듣는 게 일품이죠. 그러고 보면 의외로 아이들에게 인기 있다고 할까요. 그녀의 교육방식은 말 안 듣는 아이에겐 주먹이 먼저 나가지만 착한 아이에겐 한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이죠. 처음엔 귀찮아 하면서도 정이 들었는지 서서히 샤오홍을 꼼꼼하게 챙겨주는 게 나중에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태가 일단락되고 진시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장면을 넣음으로써 맺어지는 것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이전부터 계속 그런 느낌인데). 어쨌거나 서도 편은 이걸로 끝이고 다시 왕도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작가가 인간성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많이 보인 12권입니다. 사람에게 가치를 매기고, 그 가치에 따라 배 아파 낳은 자식일지라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버릴 수 있다는 냉혹한 인간성을 마오마오 측근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군요. 그에 반해 도적에게 쫓길 때 샤오홍을 버리면 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는 마오마오의 인간성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놓으니 마오마오 곁에 찰떡같이 붙어 있으려 하고, 미니 마오마오가 되는 샤오홍도 꽤나 인상적이죠. 어쨌거나 영주 자리를 놓고 자중지란을 펼쳤던 집안싸움은 싱겁게 막을 내립니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여러 복선을 넣음으로써 누가 범인이고, 이 캐릭터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를 유추하게 하는 능력이 좋아서 결과는 아무것도 아니어도, 중간 과정이 매우 흥미로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게 특징입니다. 그리고 후반, 이제 대놓고 손을 잡고 쪽쪽 하는 진시와 마오마오를 보고 있으면 어쨌거나 응원하게 되더군요.

 
블로그 이미지

현석장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15)
라노벨 리뷰 (861)
일반 소설 (5)
만화(코믹) 리뷰&감상 (126)
기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