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악마 빙의라는 병이 발현해 썩어 문드러진 채 팔려가던 '알파(히로인)'를 구출한 주인공은 마력 조작 시험을 하다 그녀의 병을 치료해버렸었죠. 이에 놀라워하는 그녀에게 적당한 거짓말로 시작한 악의 무리 디아블로스 교단은 실제 했고, 주인공의 설정을 착각한 알파는 곧장 부하들을 주워 모아 그 교단과 사생결단을 펼치기 시작 하였더랬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보고하면 주인공은 그런 설정인갑다하고 장단 맞춰 주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더욱 중2병에 빠져 사는 주인공이 코믹스럽게 그려져 흥미로웠죠.. 그러니까 주인공 입장에서는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디아블로스 교단의 만행을 어디까지나 설정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 그런 주제에 자기는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다며 마치 울트라맨처럼 슬라임 갑옷으로 치장&변장해서 뒷골목을 누비며 악당을 처치하는데, 웃긴 게 그 행동으로 교단 관계자들을 쓸어 버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을 구하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주인공은 선행을 베풀지 않습니다. 알파도 사실 선행으로 구해준 게 아니죠. 몇 날 며칠이나 마력 조작 시험이랍시고 쪼물딱 거렸고 어쩌다 그녀의 병이 고쳐진 것이거든요.

그럼에도 히로인들의 주인공을 향한 착각은 나날이 부풀어져 올라가는데, 주인공이 별다른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은 그게 정답인 양 받아들여지고, 의미 없이 한 행동도 마치 자기(히로인)를 위해 희생하는 것으로 비쳐서 호감으로 이어지는 웃지 못할 일도 여전합니다. 사실은 이런 언동이나 행동은 어디까지 주인공에게 있어서 어둠의 실력자라는 설정 놀음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죠. 그 최대 피해자가 1권에서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학원이 반파되던 사건에서 자신을 구해준 주인공을 향한 사모하는 마음을 키워갔던 '로즈 오리아나'가 되겠습니다. 교단에 의해 나라를 빼앗길 위기가 찾아왔고, 꼭두각시가 된 왕(아버지)을 직접 처단하며 나라를 되찾고, 국민들을 위해 분연히 일어났지만 악마 빙의가 발현되어 모습을 감춰야만 했죠(3권 읽은 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그리고 얼마 뒤 주인공은 모르는 주인공을 수장으로 하는 '섀도우 가든'에서 어째선지 그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번 4권에서는 그 '로즈 오리아나'편 마지막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섀도우 가든에 속해 어느 임무에서 교단과 함께 행동 중이던 엄마(왕비)를 만나게 되고 그 길로 자국으로 돌아갔던 그녀는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고, 집어삼키려는 흑막과 조우합니다. 악마 빙의가 발현되는 사람은 보통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흑막을 처치하지 못하죠. 어느 방에 갇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면서 문득 처음 주인공을 만났던 날을 회상합니다. 우숫광스러웠던 첫 만남을 지나 어느덧 그를 사모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죠. 그리고 운명이 얼마 안 남았을 때, 그녀는 주인공과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엄청난 착각을 하기 시작하죠. 주인공은 그저 자신의 설정에서 '로즈'가 무슨 용사처럼 일어나길 바랐을 뿐, 그녀를 구하려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은 선행을 베풀지 않습니다. 온 세상을 그저 설정으로만 대하고 있을 뿐이죠.

주인공은 그저 어디까지나 자신이 설정한 대로 중2병 대사를 씨불이고, 히로인들은 거기에 감명받아 의미를 부풀려 용기를 얻고, 찬사를 해대죠. '로즈' 역시 착각을 해서 용기를 얻고 자신이 가야 될 길이 무엇인지 깨달아 가죠. 어쨌거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잖아요. 흑막을 까부수고 바닥에 떨어진 민심을 회복하고 나라를 되찾는다. 그런데 흑막도 예사롭지 않는지라 일이 커지고, 주인공은 또 중2병이 도져서 어둠의 실력자 납신다 같은 모습으로 로즈의 싸움에 개입은 했는데... 어째서 누가 봐도 깨름찍하고 위험해 보이는 흑막이 소환한 게이트에 뛰어 들어가냐고요. 그냥 생각 없이 사는 게 분명합니다. 부하들이 스스로 악마의 빙의자들을 찾아내 치료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부하에 부하에 부하들을 불려도, 장사 수환을 발휘해 세계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시켜놓아도 애초에 자기가 설정 놀음에 빠져 있다 보니 이게 긴가민가, 호텔에서 호화 생황을 해도 부하들이 돈 내주는 것이겠지, 엄밀히 따지면 주인공이 회장인데.

게이트에 뛰어들어 눈을 떠보니 일본, 그리고 일본은 붕괴했습니다. 로즈 에피소드가 끝이 나고 제2편, 일본 붕괴 편에서, 앞 전에 로즈 에피소드에서 흑막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이 세계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닌 다차원이고, 그 다차원은 서로 충돌 중이라는 것, 뭐 대충 지구는 이세계랑 다차원 충돌을 일으켰다는 것, 근데 불행하게도 주인공은 그걸 듣지 못했죠. 일본에 도착한 주인공을 맞이해주는 건 대규모 마물, 그러나 주인공 입장에서는 날파리에 지나지 않으니 패스. 중요한 건 일본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누굴 만나느냐입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 하나, 이세계로 전생하기 전에 주인공은 이미 중2병에 취해서 폭주족에 시비를 털고 있었다는 거. 전생 전에 그 기술(?)을 바탕으로 지인을 구해주게 되었고, 마음 쌓아갈 시간도 없이 이세계로 전생하게 된 주인공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그 사람과 재회하는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2편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있을 곳 없이 괴로워하는 히로인을 구하라, 하지만 주인공은 선행을 베풀지 않죠.

맺으며: 이세계 전생물이자 치트물로 접근하면 여느 이세계물과 다를 바 없습니만, 중2병과 착각을 집어넣음으로써 차별을 유도하고 있죠. 본 리뷰에서 세 번 정도 언급한, '선행을 베풀지 않는다'의 뜻은 주인공은 어둠의(장소에 따라 명칭이 바뀜, 일본에서는 칠흑) 실력자라는 설정을 철저히 지켜 놀이로 치부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진짜 위기에 빠졌는지에 대한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이 설정한 놀이에 편승해 줬으면 하는 의미로 그저 말 툭 던져 놓거나 약간의 행동으로 이 사람이 일어나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움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로즈'도 그렇고, 일본에 돌아와 만나는 지인도 그는 구해주지 않습니다. 이게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착각물 답게 주인공의 행동으로 인해 구해질 사람은 구해지고, 해피한 마무리로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주인공 추종자는 더욱 늘어나, 간부급만 열댓 명에, 현장 직원만 666명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 되었죠.

사실 주인공만이 아니라 주인공은 모르는 주인공을 수장으로 하는 조직 섀도우 가든도 그저 교단과 싸운다는 이념 아래 뭉쳐 있을 뿐 서로 사이가 별로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인들도 아니죠. 악마 빙의자들을 고문하고 실험하고 죽이려 했던 교단에 복수심에 불타 사생결단을 내려 할 뿐. 그 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이번 4권에서 주인공 따라 일본에 왔던 '베타'가 보여준 행동이죠. 일본에서 모은 가전제품을 이세계로 들고 가지 못해 마침 근처에 쓰러져 있던 2편 주인공 지인을 주워 이세계로 데려간 이유도 인명은 소중하니까가 아니라 신문물 발명 때문이었으니까요. 이런 장면들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악당이라도 정신 차려 사람들을 구하는 여느 작품과 궤를 달리한다고 할까요. 1편(1권 말고, 4권 1편)에서 부하와 싸우고 있는 사람이 교단의 소속인지 일반인인지 확인도 안 하고 그냥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게 주인공이죠. 그 부하도 진짜 부하로 여기기 보다 예전에 구해준 적이 있는 거 같은? 그런 느낌으로 대하고요.

어쨌거나 1권부터 이어져온 로즈 오리아나의 에피소드는 끝이 났습니다. 물론 완전히 끝난 건 아니고요. 섀도우 가든 666번으로 계속해서 쩌리로 등장하겠죠. 그리고 이번 4권에서 주인공 부하가 대려 운 일본 지인은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을 못했는데, 5권에도 나온다면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옛 지인을 만난다의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지만, 주인공은 그 지인의 인생에 개입하기 보다 방관자의 입장에서 최소한만의 개입만 하려 하는 게 특징입니다. 착각물 답지 않게 그 지인과의 첫 만남부터 해서 지금까지의 장면들이 진실하게 흘러가는 게 상당히 흥미로웠군요. 그리고 베타가 보여주는 일본 가전제품에 대한 욕심과 인터넷에서 댓글 공방은 이번 4권 최대 백미이니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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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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