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벌써 3권까지 나와 있으니 신작 아닌 신작입니다. 세계관은 '보이드'라는 이계와 연결된 판타지 세계로서 그 연결로 인해 세계 곳곳에 어비스라 불리는 침식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비스트라는 마물이 등장하여 인류를 위협하는 세상입니다. 어비스를 정화하려면 그 중심에 있는 로드(대충 보스급)를 물리쳐야 하고, 이를 담당하는 게 '시커(대충 모험가)'입니다. 시커는 모험가처럼 직업군이 있는데 그중에서 전사를 제1로 쳐주며 검사 등 나름대로 쓸만한 직업군이 존재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이유는 대충 눈치 해셨겠지만 주인공은 그 직업군 중에 가장 쓸모없다는 [화술사]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술사는 '화술'에서 의미하는 것 그대로 쉽게 말해서 말빨로 동료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고 버프를 걸어 능력치를 올려주는 역할이죠. 때에 따라서는 강력한 직업일 수 있으나 힐러보다도 못한 방어력에 직접적인 전투에 참여도 못하는 주제에 지켜줘야 하는지라 한마디로 짐짝 취급 당하기 일 수입니다.

주인공은 당대 최강이자 시커의 정점에 올랐던 할아버지의, 최강이 되라는 유지를 받들어 세계 최강이 되고자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쓰레기 취급받는 화술사란 말이죠. 그래서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주인공을 특수부대 뺨칠 정도로 혹사 시켜 대인전(1 : 다수 포함)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얕보이지 말라"는 유언도 남깁니다. 그러나 이 유언으로 인해 손자의 성격이 파탄 날 거라는 건 그땐 예상 못 했겠죠. 어비스화된 마을에서 로드를 쓰러트리다 동귀어진하여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품에 안고서 유일하게 남은 혈육(부모는 일찍이 사고로 사망)이자 부모 대신 길러준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주인공이 지키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최강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만큼은 진짜 눈물 날 만큼 흥미로우나 얕보이지 말라는 말까지 충실히 지키려 하는 주인공은 조금이라도 얕보였다 생각되면 1년 넘게 같이 지낸 동료라도 죽여버릴지도 모를 냉혹한 성격이 되어 버렸죠.

냉혹함이야 몸뚱아리 하나로 마물과 싸워야 하니 냉혹해질 수밖에 없다곤 치더라도요. 문제는 주인공 성격입니다. 언쟁을 벌이다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보다 어린애 떼쟁이 같은 비아냥을 내뱉고, 행색이 꾀죄죄하다고 사회 낙오자로 깔보고, 실력이 자기보다 아래라 여겨지면 얕보고, 자기가 당하면 몇 배로 되갚아줄 일을 주인공은 서슴없이 해대죠. 동료와의 의견 조율에서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기 보다 내 말을 밀어붙이는 독불장군식. 그러다 자기 말 안 들어주면 파티에서 빠지겠다는 협박. 사실 이건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작품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것은 노골적인 주인공 보정, 이런 성격 파탄자라도 정의는 주인공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성격을 덮어줄 소재로, 작가는 그의 동료들에게 나쁜 짓을 저지르게 함으로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철퇴를 내리게 하죠. 그리고 마을 촌장을 거짓말 좀 했다고 어린 딸이 보는 앞에서 눈을 파내버리는 행위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촌장 사건은 후반에도 이어지는데, 결국 주인공은 거짓말했다는 이유로 촌장의 재산을 몰수했고, 그러해서 빚을 못 갚은 촌장은 사채꾼에게 끔찍하게 죽어야만 했죠. 거기에 그 촌장의 어린 딸까지 사채꾼들에게 희생되었는데도 주인공은 일말의 가책도 없습니다. 필자가 살다 살다 이런 뭐 같은 주인공은 처음이군요. 물론 촌장이 주인공에게 거짓말을 했고(하지만 주인공에게 있어서 헤쳐나가지 못할 거짓말은 아니었음), 사채꾼에게도 중상모략은 했을지언정 그것조차 뛰어넘지 못할 주인공은 아니었단 말이죠. 결국은 얕보이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은 손자의 성격을 파탄 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하나 남은 파티원은 시커에 염증을 느끼고 탈퇴해서 고향으로 가버렸고, 동료를 노예로 팔아버린 극악무도한 (위 철퇴 내린 대목) 놈으로 찍혀 주변은 그와의 접점을 피하는 지경까지 왔는데도 되레 그들을 폄하하기 바쁩니다. 동료 모은다는 공고를 내놨지만 누구 하나 거들더도 안 보죠.

...까지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고, 결국 읽다 보면 주인공이 왜 그런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클리셰이긴 합니다만, 얕보이지 말라는 의미는 주인공에게서 찾는 게 아니라 작중 현실에서 찾아야만 하죠. 본 작품은 아기자기한 파스텔톤 동화가 절대 아닙니다. 강x과 음습한 괴롭힘과 살인이 횡행하고, 어떻게 하면 상대 뒤통수 칠 수 있을까 같은 약육강식 같은 세상이죠. 여자를 납치해와서 아이를 낳게 하는 등 상당히 다크 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세계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자신의 실력을 보충하려 정보꾼에게서 정보를 모아 대처하고, 대처 불가능일 때는 폭력단(조폭)을 끌어들이는 걸 마다하지 않죠. 주변을 얕보는 것도 그만한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휘어잡지 않으면 먹히기 때문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얕보이면 끝이라는 강박증 비슷한 걸 보여준다도 할까요. 불쌍하기도 하지만 표현 방식이 철저한 일방통행식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상당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맺으며: 그렇다곤 해도 도가 지나친 부분이 꽤 있습니다. 최강이 되기 위해선 누구라도 이용하려 들죠. 동료의 마음조차 하찮게 여깁니다. 그렇다 보니 주변은 주인공을 외면하고, 결국 동료로 들어오는 건 어딘가 망가진 캐릭터일 수밖에 없게 되죠. 하지만 요기서도 짜증 나는 게 결국은 주인공은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나쁜 짓 한 동료를 노예로 파는 부분에서 동료가 왜 나쁜 짓을 했는지에 따른 근원을 없애기보다는 그냥 동료가 나쁜 짓을 했으니 너, 노예 이러니까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을 폄하하고 깎아내리고, 자신이 그렇게 당하면 무슨 일이 있어서 반드시 죽이려 드는 주인공이 제정신인가 싶더라고요. 19금 빠진 회복술사의 주인공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결국은 회복술사처럼 동료로 들어오는 건 머리가 불쌍한 캐릭터뿐이죠. 그리고 더 참지 못하는 건, 이런 주인공이라도 히로인들이 들러붙는다는 것이고, 마치 그의 내면은 착해빠진 소년이라는 것처럼 행동하니 이질감이 장난 아닙니다.

주인공이 왜 그런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나 하는 복선을 밑바탕에 깔고는 있습니다. 세상이 썩었고, 믿을 놈 없는 세상이자 눈뜨고 코베이는 세계니까요. 그런데 평상시에는 애들에게도 거지에게도 자상한 일면을 보여줍니다. 도시에 안 좋은 약이 퍼질 때 신경 써주고, 결국 그 근원을 뽑아 버리기도 해서 정의의 편인건 맞습니다. 라는게 주인공 보정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만. 그런데 첫인상이 성격 파탄자로 각인되다 보니 끝까지 색안경 끼고 보게 되더군요. 어느 등장인물이 이런 표현을 합니다. "자비 없고 교활한 놈". 주변에서 욕먹는 최흉이 되더라도 최강이 되어 주겠다는 게 주인공의 마인드죠. 사실 이때까지 이런 주인공은 못 만나온 주인공으로서 짜증도 짜증이지만 나름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했죠. 정상적인 사람들은 주인공을 외면하고(물론 여관 주인이나 상점 주인은 잘 대해주지만), 결국 그의 곁을 지키는 건 어딘가 불편하고(주로 머리가) 사회에서 동떨어진 사람밖에 없거든요. 일단 2권까지 보고 계속 볼지 정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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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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