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신뢰하고 믿었던 동료가 사실은 적국 스파이였고, 정보를 본국에 넘겨주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럴 경우 여러분은 그 동료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게 될 것인가. 이번 3권에서는 그것을 묻습니다. 동료이자 스파이는 유유히 도망에 성공했고요. 남겨진 사람들은 그 동료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처단할 것인가,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두둔할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배신자 때문에 도시 사람들이 만(萬) 단위로 죽었고, 수천 명이 행방불명이 되었죠. 도시를 복구하면서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지 못했으니 잡혀갔거나 같이 쳐들어온 마물들에게 먹였을 거라 예상이 됩니다. 거기에 도시가 파괴되면서 유무형으로 피해를 본 사람도 있을 테니 피해자는 수만에 이른다고 봐야죠. 적군과 싸우며 산화한 병사들도 많고요. 이런 눈에 보이는 피해를 입었는데 그 배신자를 동료였다고 감쌀 것인가, 감싼다면 피해자들 앞에서 피치 못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주인공은 이전 생에서 검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크리스토'의 잠행에 동행하여 이웃나라로 향하였으나 나라가 침공 당했다는 소식에 급히 돌아옵니다. 돌아온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아비규환이었죠. 왕궁은 함락 직전이었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적을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보통 이런 장면에서 주인공이 돌아오면 일이 해결되곤 하지만, 본 작품에서 그런 장면은 없습니다. 주인공이 무능해서는 아니고, 아니 무능한 건 맞다고 해야겠군요. 왕궁이 함락 직전인데 입구를 막기보다는 배신자의 공격에 기절한 소꿉친구 '티나'를 우선시해서 전선에서 이탈해버리거든요. 물론 소꿉친구도 중요하죠.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될 일, 주인공은 기사단에서 제법 신뢰를 얻고 있는 인물로서 전선의 사기 차원에서 이 장소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주인공이 이탈하자 이 입구를 사수하던 전선은 붕괴되어 버리죠. 당연히 거기서 지키던 병사는 몰살되었을 테고요.

이탈한 자리에서 주인공은 동료이자 배신자와 조우합니다. 같이 지낸지는 이제 한 달, 이 한 달은 동료가 배신자였다는 충격을 받을만한 충분한 시간이었나?를 묻습니다. 주인공은 이미 몇 년이나 같이 지낸 사이로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배신자를 보자 충격에 손이 떨리고 발이 떨리고 그러해서 제대로 대응도 못해서 독에 당해 기절해버리는 주인공. 그리고 시작되는 "추억 팔이" 그러니까 너는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 무슨 일이 있어서 이러는 거야? 우리와의 생활은 거짓이었어? 사실은 너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지? 천진난만하게 도시로 나가 옷집에서 쇼핑을 하고, 얼굴을 붉히고, 친구라서 좋아 기타 등등의 기억이 홍수처럼 범람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배신자를 찾으려 합니다. 찾아서 단죄에 처하기 위해? 아뇨, 이 추억이 거짓인지 알고 싶어서. 주인공은 수만의 피해자보다 동료가 배신했다는 것에 더 아파합니다. 복구에 참여하면서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마음을 비치지 않습니다. 배신자를 찾아서 단죄 시키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추억만 부풀려 가는 장면들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소름이 돋습니다. 결국 배신자는 사실 착한 사람이고, 어쩔 수 없이 죄를 저질렀으니 잘못이 없다, 궁극적으로 "어서 와, 다녀왔어"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위해 배신자도 나름 마음고생 중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장치를 넣어놓고 있는데, 그렇다면 주인공은 그를 만나서 혼내줘야지, 죗값은 치르게 해야지 같은 마음을 갖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이런 게 전혀 없습니다. 이전 생에서 지키지 못했던 것과 다르게 이번 생에서는 내 팔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구하겠다고 선언했었습니다. 배신자도 그중 한 사람이고요. 그렇다면 배신자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은? 기사단에 입단해서 한 달 넘게 타인들과 인연을 맺어 왔는데, 기억 속에 그 옷집도 그렇고, 이들은 왜 안 지켜주었을까. 결국 주인공은 최 측근 지인들만 보호할 뿐이지 타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왕궁 입구를 벗어나면서 병사들이 전멸하도록 놔둔 것도 그렇고요. 그래서 이번 3권을 읽고 제목을 잘못 지어도 한참 잘못 지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국 주인공과 그 일행은 배신자를 찾아 나섭니다. 만나서 왜 그랬어를 물어보려나 본데...

작가는 사회에서 이러면 매장 당한다는 걸 알기나 아는지...

맺으며: 분명 출판사도 검수를 통해 읽고 발매를 하였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피해자에 대한 사죄나 애도의 마음이 없는 주인공과 그 동료 배신자에게서 우리의 과거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무튼 고작 한 달의 인연으로 배신자와의 추억 팔이를 도서 분량 2/3나 차지하고, 갈수록 미화하고 부풀려 가는 장면들은 어이가 가출하다 못해 우주로 날아갈 기세입니다. 누차 언급하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나 애도는 분량에 비해 거의 없어요. 고작 한다는 말이 시체를 수습하면서 이게 그 사람(배신자)의 죄구나라는 게 다죠. 이것도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과 같이 배신자와의 추억을 쌓은 여기사가 했던 말이죠. 이 여기사는 눈앞에서 엄마가 무너진 집에 깔려 죽는 걸 본 꼬마 소녀를 구해 놓고서도, 그 소녀에게 미안해하는 마음보다는 배신자와의 추억에 눈물 흘리는 장면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군요. 이건 번역의 문제일 수 있겠습니다만, 왕도의 인구가 50만이고, 그중에서 수만의 피해를 "그 정도밖에" 피해가 나오지 않아 "행운"이라고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정도의 피해라서 다행이라는 의미겠죠. 하지만 피해가 누구 때문에 생긴 것인가. 이걸 알고 있으면 이런 생각조차 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주인공은 전생에서 나라가 멸망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생에서 전혀 대응하지 않았죠. 배신자가 아니어도 주변국과는 언젠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 해도, 미리 대비하는 것과 배신자로 인해 기습 받는 건 크나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젠가 전쟁이 일어날 일이었다로 치부하는 주인공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러니까 배신자는 잘못이 없다고 우회적으로 감싸고 있다는 것인데, 이게 이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소꿉친구가 보내오는 호감은 전혀 인지 못하면서 옆 나라 왕녀 이레네(이전 생에서 연인 관계)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혀를 내두르게 하고, 기습 받은 것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밀을 밝히면 안 되는데도 밝혀버리는 주인공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내용이 11,000원이나 합니다. 살다 살다 이런 황당한 작품은 처음이군요.

요점: 나쁜 짓을 한 친구가 있으면 죗값을 치르게 해야지, 그럴 리 없다며 현실도피는 좋지 않다.

 
블로그 이미지

현석장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13)
라노벨 리뷰 (859)
일반 소설 (5)
만화(코믹) 리뷰&감상 (126)
기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