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번 3권을 다 읽고 느낀 점은, 여주 '모니카(이하 여주 혹은 그녀)'를 제2왕자 호위로 붙인 결계의 마술사 '루이스 밀러'는 아마 곱게 죽지 못 하겠다였군요. 여주가 어릴 적, 그녀의 아버지가 금기를 범했다며 화형 시킨 자들, 시키라고 광분한 사람들, 그녀에게 학대를 일삼았던 삼촌, 학원에서 그녀가 평민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괴롭힘을 자행했던 귀족 학생들, 그녀가 칠현인이 되던 날 자신을 배신했다며 매도의 말을 쏟아냈던 친구. 이 모든 게 어우러져 그녀를 후천적 대인 기피증으로 만들었습니다. 친구의 매도의 말에 섞여 있었던 대로 그녀는 산속 오두막에 숨어살기로 했죠. 그런 그녀를 끄집어 내어 억지로 제2왕자의 호위로 붙인 '루이스'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번 3권 후반을 보면 그는 그녀의 가정사를 비롯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는 듯했습니다. 이런 그라도 그녀에 대한 평가는 신랄하면서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죠. 그녀는 "인간을 무서워하기에 무자비해질 수 있다, 생각 이상으로 뒤틀렸고 무감정한 마녀다".

이번 3권에서 if 하나가 던져집니다. 만약 그녀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고, 사회생활에 대한 내공을 키우고, 자신의 전문분야(수학과 마법)의 경험을 축적한다면? 당대 내로라하는 학원 3곳이 체스 대회를 엽니다. 그녀는 선수로 선발되죠. 당연히 극도의 낯가림으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지만 발버둥 처봐야 자중하지 않고 실력을 뽐낸 죄를 치러야만 하죠. 그녀는 상대 선수와 시합을 하며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쥡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학생회 동료의 독백이 그녀의 성격을 대변하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면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는 그녀는 낭비 없는 수를 두고 승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자비하다". 만약 그녀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게 될 때, 그녀는 어떤 모습이 될까. 학생회 동료 왈: 무시무시한 괴물이 될 것이다. 루이스는 이런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봤기에 제2왕자 호위로 붙인 것일까. 이놈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에 대한 것도 이 작품의 포인트입니다.

2권 리뷰에 어느 분이 댓글로 제2왕자의 복선에 대해 알려 주셨는데, 사실 제2왕자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필자였지만 말씀을 듣고 복선을 찾아봤습니다. 3권을 읽기 전이었던지라 꽤나 충격을 받았군요. 덕분에 3권에서 제2왕자에 대한 복선이 더욱 두드러지게 알게 되어서 중화되었긴 합니다만. 본편에서는 그의 정체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 섣불리 언급은 안 하겠습니다. 이걸 빼고 작중 상황을 보자면, 정치적으로 왕국을 좌지우지하는 '크록포드 공작'이 있다는 것이고, 제2왕자는 공작의 외손자라는 것이죠. 공작은 손자를 차기 왕으로 만들어 꼭두각시로 삼으려는 중이고, 이걸 막으려는 불순분자들이 암살을 시도 중입니다. 여주는 왕자를 호위 중이고요. 그러다 2권에서 제2왕자의 암살을 저지했을 때 공작의 꿍꿍이도 일부 밝혀집니다.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여주 모니카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고 제2왕자의 편에 서게 되었을 때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인기피증은 조금씩 치료가 되는 중이죠. 친구는 나날이 늘어가고, 윽박지르던 학생회 동료들은 어느새 그녀를 새침하게 챙겨주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드레스를 챙겨주고, 호흡법을 가르쳐 주고, 괴롭힘 당하면 상대가 누가 되었든 여주를 감싸주는 일이 늘었습니다. 자기주장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유도된 것이지만 제2왕자와 축제에 가기 위한 잠행은 그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줍니다. 어느새 형태를 가지지 못했던 말이 형태를 가지게 되었고, 친구들 한정이지만 이제 낯가림도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반동인지 제2왕자에 대한 암살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그에 대처할수록 그녀의 정체는 발각될 위기에 빠져가죠. 이번 3권에서는 이전 학원에서 여주에게 강한 집착을 보였던 옛 친구가 등장하여 그녀의 정체를 알아채는 바람에 그녀는 더욱 위기에 빠집니다. 그녀의 정체가 칠현인이라는 게 발각되면 더 이상 왕자 호위는 할 수 없게 되니까요.

친구를, 우정을 소중히. 이제는 친구라고 불러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나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다는 괴로움, 친구가 암살에 연루되어 잡혀갔을 때의 안타까움과 내막을 알리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 남을 속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여주는 끝끝내 오열하고 말았죠. 남들에게 괴롭힘 당해도 내가 못나서 그렇다는 소심함, 상대가 날 속여도 내가 똑 부러지지 않았기에 나에게 잘못이 있다는 비굴함, 이 작품은 속이는 사람이 나쁜가, 속는 사람이 잘못인가 같은 철학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그렇기에 집착을 보인 끝에 매도의 말을 퍼부어 여주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옛 친구를 이번 체스 대회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여주는 때때로 답답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매도의 말을 퍼붓는데 왜 되받아치지 못하는가. 그녀는 마지막으로 사람을 믿어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믿음은 보상받지 못하고, 체스 대회에서 옛 친구를 철저하게 발라 버리죠.

별을 읽는 마녀는 3권을 기점으로 그녀의 운명이 크게 바뀐다는 점을 내놨습니다. 그리고 주변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제2왕자에 대한 암살의 수위는 더욱 높아집니다. 축제 때 주지육림(이게 압권이란 말이죠.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을 즐기며 이제 낯가림하지 않게 된 왕자와 접점을 크게 만들어버린 그녀가 왕자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행동에 나서게 될까. 공작은 손자의 목숨 따위 게이치 않으려 합니다. 왕자는 정해진 자신의 미래를 부수기 위해 무언갈 준비 중에 있죠. 어떻게 보면 학대받던 여주가 개천에서 용이 나듯 신데렐라 계열을 표방하고 있으나 세계가 요동치는 혼돈 속에서, 만약 왕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여주가 대인 기피증을 고쳤을 때의 폭발력은, 그런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재주가 좋습니다.

맺으며: 뭔가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여주의 사역마 네로(고양이)와 루이스의 계약 정령 린의 개그 코미디가 자칫 짓눌릴 거 같은 내용을 밝게 해줍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상처받고 그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도 사람들이라는 역설적인 면도 보여줍니다. 학대받았던 아이가 비굴해지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몰입감이 꽤 높습니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자기 잘못인 양.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은 학대의 반동이겠지요. 이런 모습들을 매우 안타깝게 비춥니다. 그렇다고 학대의 주범들이 처벌을 받느냐? 그것도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더욱 현실미를 띕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상당히 궁금해지는 작품이죠.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녀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고 사회 경험을 더욱 쌓게 되어 자신을 괴롭히고 나아가 친구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하게 될지. 그 편린이 이번 체스 대회라 할 수 있습니다. 옛 친구를 철저하게 밟아 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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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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