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초난관 던전에서 10만 년 수행한 결과, 세계 최강 1권 리뷰 -최약 무능의 하극상-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유명한 검술 유파 차기 계승자, 할아버지는 용사와 마왕을 무찌른 유명인, 남부러울 거 없는 생활, 친구 관계도 양호하고, 여자 소꿉친구에 약혼녀까지 둔 인싸중에 인싸. 주인공의 미래는 약속된 거나 다름없었죠. 그래서 내심 천벌을 받으라지 생각했던 필자의 마음을 하느님이 들어 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주인공은 13살 때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됩니다. 본 작품은 이세계 전생물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전생하는 건 아닙니다. 마왕이 있고, 용사가 있고 성녀가 있습니다. 나중에 주인공과 어떤 접점이 있을지 모를 용사는 성녀가 소환으로 지구에서 불러온 학생(아마도)입니다. 이 세계 주민은 13살 때 신전에서 기프트를 받습니다. 한마디로 능력이 무엇이고 직업이 무엇인지 정해주는 것이죠. 주인공 친구들은 창술과 대마법사를 받습니다. 소꿉친구는 상급 검사직을 받습니다. 약혼녀는 검성을 받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 세상 제일의 무능'을 받습니다. 뭐 한마디로 그냥 아무것도 못하는 일반인이라는 것이죠.
능력이야말로 그 사람의 가치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주인공은 벌레 이하입니다. 약혼은 파기되고, 이유 없이 욕을 먹고, 길을 가면 사람들이 돌을 던집니다. 기프트를 선사하는 신(神) 아레스의 축복을 받지 못한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합니다. 손바닥 뒤집은 친구는 주인공을 두들겨 패고 약혼녀를 빼앗으려 합니다. 도장에서 기절할 정도로 두들겨 맞고, 주변 아이들은 낄낄 거리고 비아냥댑니다. 약혼녀가 좀 더 주인공을 감싸줬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유일한 아군인 할아버지는 그저 주인공이 돌아올 장소가 없어지지 않게 지키는 것뿐. 이제 주인공은 차별이 없는 학원 도시로 가서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가지고 나아가 헌터가 되는 길을 찾으려 합니다. 일단 왕도에 있는 어머니의 부름을 받아 길을 떠나는 주인공을 배웅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1권에서 엄마는 언급만 될 뿐 안 나옴). 본 작품은 여느 무능력 먼치킨의 계보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비슷한 작품을 꼽으라면 흔직세가 있겠죠. 나락으로 떨어지고 기어 올라와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주인공은 10만 년이라는 시간을 던전에서 보냅니다. 탈출 불가능한 던전에서 먹을 것이 없어 독충을 씹어 삼키고, 흔직세의 나구모가 그랬던 것처럼 팔이 뜯기고 죽음에 직면하게 되죠. 주인공에게 내려진 시련 1,000층이 되는 던전을 클리어 하라. 내려갈수록 방대해지는 맵과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살아갈 가망이 없는 환경. 주인공에게 주어진 것은 절대 부러지지 않는 나무 봉과 꽁지 빠지게 도망가게 해주는 신발, 그리고 물건 감정이라는 스킬. 상처를 회복해 주는 포션. 이걸로 아득한 시간 동안 홀로 지내야 합니다. 주인공은 왜 이 던전에 처박히게 되었나. 그것은 여행을 떠나는 날, 만난 성녀이자 이 나라의 왕녀 때문입니다. 할아버지의 의뢰와 주인공 친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친구들은 나라에서 중요 인물이 되었음)를 바탕으로 왕녀는 주인공이 어떻게 생겨 먹었나 싶어 보러 왔고, 그길로 왕도로 같이 가게 되었죠. 그리고 왕족물에서 흔한 클리셰인 왕위 쟁탈전과 왕녀를 견제하려는 귀족의 납치극에 휘말리게 된 것입니다.
주인공이 떨어진 던전은 신(神)들의 시련장으로, 신들이 대신(代身)을 뽑는 던전이었습니다. 원래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던전(들어갈 수 없다는 언급은 없지만)이지만 주인공이 기프트를 받을 때 누군가의 개입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것 때문이겠죠. 던전에 들어간 순간 외부의 시간은 정지됩니다. 던전 안에서의 시간은 흐르나 주인공은 노화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10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련을 하고 마물을 쓰려트려 자신만의 능력을 길러 가죠. 중간에서 얻은 도감이라는 수집 책자를 이용해 마물을 사육하고, 지독한 환경을 이겨내 내성을 얻어 갑니다. 이 던전은 신들이 시련을 돌파하는 곳. 그런 곳을 인간의 몸으로 돌파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해내죠. 10만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힘을 길러 신(神)에 해당하는 마물을 사역하고 부하로 삼아갑니다. 이기지 못할 거 같으면, 내성을 얻기 위해, 이길 수 있는 스킬이나 능력을 얻을 때까지 수천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수행합니다.
그리고 대망의 10만 년(하고 77년) 되던 날, 1,000층에 도달한 날. 최종 보스는 주인공을 보자마자 살려 달라고 빕니다.
맺으며: 무능력자가 힘을 얻어 먼치킨이 되는 흔한 이야기입니다. 이 무능도 알고 보니 무한의 성장(혹은 가능성)이라는 신급 초레어 기프트였다는 이야기를 그리죠. 결국 신들에 선택된 주인공은 무능이 아니며, 기프트를 받을 때 누군가의 개입은 던전에 들어가면서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아무튼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의 성격인데요. 무능이라는 기프트를 받고 세상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망가지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괴롭힘을 당해도 원망이나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건 힘을 얻었을 때는 나약한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앞 길을 막거나 부조리한 것을 보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머리를 터트려버리는 성격으로 바뀌어 버린다는 점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힘을 얻기 전에는 공손한 존댓말로 대했던 왕녀에게 반말을 해댄다는 것이고, 언제부턴가 명령질까지 하게 되었죠. 그리고 주인공은 왕녀로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습니다. 읽다 보면 왕녀가 제일 영악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주인공이 강해졌다는 걸 알자마자 적들을 치는데 이용하려 들고, 나와 세상을 바꾸자며 가스라이팅 해대죠.
단점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해 보자면요. 무능력 먼치킨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인공을 붙잡기 위한 왕녀의 몸부림은 처절하기 보다 발암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주인공은 허접일 때 세상 부조리를 겪으며 세상에 대해 원망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죠. 던전에서 드랍되는 책들을 읽고 신급 마물을 만나 지식을 넓혀 가며 그동안 자신이 받았던 부조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원래 세계로 돌아왔을 때 염세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왕녀 또한 부조리한 인간과 다를 바 없다며 매도해대며 떠나려는데, 왕녀는 주인공 소꿉친구를 인질로 삼아 그를 붙잡으려 하죠(이 시점에서 왕녀 목이 떨어져야 하나 메인 히로인이어서 살은 듯). 모두가 잘 사는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이상론을 펼치면서도 납치극에 대한 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시녀를 고생 시키고(능욕 당할 뻔, 주인공이 구해줌), 제1 왕녀이면서 내 편은 거의 만들어두지도 않아 왕위 쟁탈전 중인 동생에게 처 발려 버립니다. 분명 밝은 성격에 사람들을 모으는 다정함을 엿보이는 왕녀지만, 이건 작가가 캐릭터를 잘 활용 못한다고 해야 할까요. 더 참을 수 없는 건 그런 왕녀의 손을 잡는 주인공...
조금 더 써보자면, 일단 1권 한정입니다만. 의미 없이 벗어더지는 판치라와 의미 모를 호감도 상승이 없어서 좋습니다. 주인공의 어딘가 성격이 결여된 듯한, 핀트가 맞지 않는 착각 등은 좀 신선했습니다. 가령 신들의 시련이라는 던전을 클리어 해놓고 자신이 강하다는 인식보다는 던전이 허접했다고 착각한다든지. 세상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를 앞에 두고도 약하다며 다른 놈이겠지 한다든지. 그래서 더 강해지도록 노력해야지 하는 통에 주변을 기겁하게 만들죠. 하지만 흔직세처럼 타종족을 군기로 강화 시켜 군사조직으로 만드는 장면들은 좀 마이너스입니다. 던전에서 신급 몬스터들(진짜 신이라고 지칭됨)이 주인공을 우러러본다든지, 이런류 작품에서 이런 설정은 꼭 빠지지 않더라고요. 강해진 이후 마이웨이를 보여줄 것처럼 해놓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초식남 주인공도 조금은 발암이고요. 왕녀 납치극이나 주인공이 머물던 마을의 위기에서 부자연스러운 장면들이 더러 있습니다. 급하게 웹본을 수정해서 도서로 출간했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제법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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