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신간은 아니고요. 이미 e북으로 5권까지 나왔고, 이번에 종이책으로 1권이 나왔습니다. 뭘까 싶어 궁금증이 생겨 구입은 하였습니다만. 이세계 전생 라이프 계열로서 글자 그대로 모험보다는 일상생활을 즐기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주인공은 현실 지구에서 40대 샐러리맨으로 블랙 기업에서 혹사당하다 죽어 이세계로 전생하였죠. 전직 프로그래머로서 실력을 살려 대장장이로 전직해서 무기 등을 만들어 팔아 생활을 해나갑니다. 전생하면서 관련 치트를 받았고, 그 치트 덕분에 품질이 매우 좋은 무기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그렇게 품질 좋은 무기들을 만들었다고 시중에 막 풀어놓거나 아무에게나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깨닫긴 하지만 자신이 만든 무기로 인해 이세계 밸런스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아무튼 어느 날 곰과 사투를 벌이다 패하여 사경을 헤매던 '사먀'라는 호랑인 수인(메인 히로인)을 주워다 치료해 주었더니 무슨 박씨 물어오는 제비마냥 그녀는 주인공에게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야생동물을 사냥해 오는 등 아예 주인공 집에 눌러 앉아 버립니다.

둘이서 무기도 만들고 어쩌고 하다가 만들어진 무기를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근처 마을에 갑니다. 혹시 약속된 일처럼 강한 마물이 주인공에게 시비 걸었다 패하거나 다쳐서 주인공이 보살펴준 끝에 반려동물이 되는 에피소드 있을까 했지만 없습니다. 습격하는 산적도 없고, 도적도 없고, 강도도 없고, 쫓기는 영애도 없고, 시비 터는 귀족도 없습니다. 양념이 삼삼하게 된 반찬을 먹는 기분입니다. 숙주나물 무침은 언제나 맛있죠. 좌판을 열어 진열했더니 처음엔 당연히 잘 안 팔립니다. 하루아침에 떼부자 되는 건 공상에서나 있는 일이죠. 하지만 그렇게 몇 번 좌판을 열었더니 조금씩 팔립니다. 기름 좔좔 흐르는 뚱땡이 귀족이나 양아치가 자릿세 내라고 시비 걸까 하는 약속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밥상이 온통 풀밭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드워프 소녀가 다짜고짜 도자개를 하며 제자로 받아 달라고 합니다. 주인공이 만든 무기에 매료되었다나요. 주인공은 인큐버스가 아님에도 이성을 매혹하는 스킬을 가졌나 봅니다. 이로써 두 번째 히로인이 탄생합니다. 알고 보니 주인공이 받아주지 않았다면 객사할 뻔했다나요.

시종일관 무기를 만들고, 마을에 가서 팔고, 무기 만들고, 팔고, 식구가 늘었으니 집도 만들고, 사냥하고, 낚시하고, 진짜 충실하게 이세계 라이프를 구가합니다. 마물과 싸움 붙을까 했더니 주인공이 지나가면 다 도망가 버립니다. 이걸 읽고 있는 필자 인생 재미없습니다. 근데 주인공 지구에서 혹사당하던 사축 아니었나. 이왕 이세계 왔으니 좀 더 충실하게 놀고먹고 나이 40(전생하며 30) 되었으면 2세라도 만들던지. 그런 낌새도 없으니 필자 지갑은 울고. 날 밝으면 무기 만들고 뭐 만들고, 나무 짜르고 패고, 물 길어 오고 사슴 배 가르고, 토끼로 스테이크 만들고, 새(버드)로 뭐 만들고, 사슴 뼈는 왜 버리는데? 수프 만들 때 국물 내면 얼마나 좋은데. 숙성은 들어봤나? 겨울철 아니면 야생동물은 누린내 심하다는 건 알고? 이래서 이런 작품 집필하는 작가들 시골에서 몇 년 살게 해야 된다니까. 고증이 하나도 없잖아요. 아무튼 집을 만들었으니 침대도 만들고, 오! 드디어 2세 계획이라도? 그런 거 없다. 쓸데없이 일러스트는 고퀄이네. 전부 쑥맥인지 나이 최소 20대(사먀도 25세)면 알 거 다 알지 않나? 왜 낭낭 18세처럼 얼굴만 붉히는 건가요.

마법 하나면 모든 게 해결이고 설명이 된다지만, 이왕 이세계 라이프를 주제로 했으면 그에 따른 리스크나 어려움도 표현해도 좋았지 않았나 싶더군요. 가령 위생 문제, 과거 중세 시대를 막 벗어날 시점 비누를 개발하면서 영아 사망률이 극단적으로 낮아졌다고 하죠. 주인공은 비누를 언제 개발하려는지 기약이 없습니다. 지구에서 나이 40이면 비누에 익숙해졌을 텐데, 이세계에서 씻을 때 찝찝하지 않나.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전염병 문제도 있을 텐데 호수의 물을 그냥 쓰네. 그 호수에 잡아온 사슴이나 멧돼지 담가 뒀잖아? 연못이나 호수 관련 유툽에서 생닭을 넣어두니 거머리가 그렇게 달라붙던데, 이세계에는 거머리 없나. 멧돼지 해체할 때도 멧돼지는 기생충 끝판왕인데 이세계 멧돼지는 기생충이 없는 걸까. 그래도 옛날에 얻어먹은 적이 있는데, 고기는 맛있긴 하더군요. 이런 고증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이왕 슬로 라이프를 그린다면 이런 어려움도 있다는 걸 표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괜실이 미디어에서 귀농 라이프 보고 나도 귀농하는 것처럼(했다가 90% 망함), 본 작품 보고 나도 이세계 하는 사람은 없길 바랍니다.

맺으며: e북으로 5권이나 정발 되었으면 나름 잘 팔린다는 뜻일 텐데, 이쪽 계통 독자들의 취향을 알다가도 모르겠군요.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생활도 나름 신선하긴 합니다. 복잡한 복선이나 플래그도 없고, 주인공을 놓고 히로인 간 치정 싸움도 없으니 술술 읽힙니다. 돌려 말하면 독자들의 상상력을 부풀릴만한 모험담도 없다는 것이군요. 그리고 무기 만드는 장면들도 쇳물을 틀에 붓는다, 두들긴다, 그냥 완성되어 버린다 같은 단순한 과정을 거칩니다. 이게 제일 불만이었군요. 작가는 사전 정보를 수집하지 않은 걸까요. 중세 시대를 표방한 판타지니까 단조보단 주조에 중점을 둔 거 같긴 한데, 타이틀에 대장간을 붙였다면 혼을 불러오는 그런 제조를 독자들이 바랐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본 걸까요. 무사들이 진지하게 싸움에 임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웃긴 점은 드워프 소녀가 주인공이 작업하는 걸 보며 정성이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치트 때문에 정성을 다해버리면 세계 멸망급 무기가 탄생하게 되긴 합니다만, 이걸 어떻게 조절하는 게 작가의 능력이겠죠. 픽션에 많은 걸 바라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고증에 가까운 노력이라도 보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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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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