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중고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1권 -추천작- (스포주의)
이 작품은 리뷰 쓰기가 좀 곤란한 작품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쪽 계통에서 '중고'라는 은어는 비처녀를 의미하기 때문이죠. 요즘 세상에 비처녀가 무슨 문제 일까 할 수도 있지만 그게 그렇지 않는 게 오타쿠 문화 전반을 이루는 연애물(게임 포함)에서 비처녀는 주로 애 딸린 엄마등 주로 히로인이 가진 파급력이 미치지 못하는 엑스트라 한정이고 순수하고 깨끗해야될 진히로인(1)이 비처녀일 경우, 플레이어(독자)의 감정에 반한다 하여 거센 비난이 폭주하게 되고 심각할 때는 매출에도 영향을 끼쳐서 좀처럼 비처녀 히로인은 기용하지 않는게 철칙입니다. 단적으로 몇 년 전 모 애니메이션에서 비처녀 히로인 때문에 제작사는 항의하는 시청자 때문에 몸살을 앓아야 했고, 넷상은 전쟁터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어쩐 일인지 아x나가 이런 대접을 받고 있기도 하죠.
'아라미야 세이이치'는 연애 시뮬 게임에 등장하는 2차원 여자애들에게만 관심을 가질 뿐 3차원 여자는 거들떠도 안 보며 성인용 게임을 구입하기 위해 알바까지 하는 진성 오타쿠입니다. 여동생은 그런 그를 동정이라 놀리며 쓰레기 보듯이 하지만 학교에는 진성 오타쿠라 소문이 나지 않아 그럭저럭 학교생활은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여동생하곤 한 살 터울이고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흔히 오빠와 여동생의 촌수를 초월한 츤데레 사랑 어쩌고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아라미야'는 어느 비 오는 밤 야겜을 구입하고 돌아오던 길에서 불량배들에게 겁탈당할뻔한 여자애를 구해주게 되고, 다음날 학교에서 그 여자 애가 전교에서도 알아주는 불량소녀에 원조교제까지 하는 인생 막장 테크 타고 있는 같은 반 여학생 '아야메'라는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어디서 아라미야의 취향을 듣고 왔는지 노란색 머리를 검은색 트윈테일로, 불량스러운 복장을 버리고 학생 버전의 교복을 입고 온 아야메에게서 고백을 받으면서 2차원 생활은 종지부를 찍습니다.
주인공 아라미야는 뼛속 깊이 처녀론자인데요. 사실 이게 좀 거북합니다. 좀이 아니라 상당히요. 초반 이것만 보고 책을 덮는 분들도 다수 있지 싶군요. 그의 성격은 야겜 여주가 비처녀라는 이유만으로 1만엔 가까이라는 게임을 쓰레기통에 버릴 만큼 그가 신봉하는 처녀론은 매우 다크 합니다. 사실 요기까지 보면 역시 진성 돼지 오타쿠, 나가 죽어! 밥맛,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필자도 첫 번째 페이지부터 괴성을 지르며 컴퓨터를 부수는 주인공의 행동에 역시 이 작품을 잘 못 구입했나 했었거든요.
여튼 그녀의 고백이 있은 후, 처녀 2차원 여 캐릭터만 신봉하는 아라미야는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원조교제를 하는 등 비처녀인 아야메를 일고의 가치도 없이 내치게 되고, 그녀는 이에 기죽지 않고 끊임없이 도시락을 해주는 등 어필을 해나갑니다. 그리고 아라미야의 이상에 맞는 이성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겠다며 야겜을 구입해 연구를 시작하며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그녀와 황당한 아라미야는 그녀의 노력에 거짓이 없고 한편으로는 야겜 동지가 늘어났다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게 되어 갑니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가 크게 진전도 나빠지지도 않는 어느 날 같은 반의 '하츠시마 유우카'가 느닷없이 끼어드는데요. 성우 일을 하며 카스트 제도에서 상위권에 속한 그녀는 아야메보다 더 당황스럽게 아라미야에게 고백을 하며 대시를 시작하면서 이거 또 별 볼일 없는 주인공에게 달라붙어서 하렘으로 가는 구도인가 했습니다. 실지로 상당한 분량 동안 유우카는 아라미야와 아야메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둘을 갈라 놓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이렇게 끼여든 유우카에게 반감을 가질 독자가 상당히 많으리라 봅니다. 접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주인공에게 부비부비를 시도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짜증지수가 올라가기도 할 겁니다.
불량스럽지만 차분하고 말이 별로 없는 아야메와 반 분위기를 휘어잡고 나를 거스르면 학교 인생 쫑 날 수 있다는 유우카의 행동에서 누가 날라리이고 누가 모범생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아야메와 유우카의 2파전이 시작되고 아라미야는 아야메에게 따라다니는 불량소녀에 원조교제라는 딱지가 어울리지 않는 조신하고 정의로운 성격이라는 본 모습을 보아 가게 되면서 그녀가 왜 뒷골목 타이틀을 달고 다니는 것인지 의문을 품어 갑니다. 여담으로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아야메의 처녀니 비처녀니 하며 보는 이들을 들었다 놨다하는 진행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그리고 아야메가 초등학교부터 알고 지내온 '손고 나오스미'라는 남학생이 개입되면서 그녀, 아야메가 그동안 받아온 부당한 대우를 받게한 원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고, 아라미야는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아야메를 본의 아니게 도와주면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싶었던 그는 태풍속으로 몸을 날리게 됩니다.
아라미야는 '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 최강'에서 나오는 '시라사키 카오리'와 비슷합니다. 카오리는 주인공 '나구모 하지메'가 사실 타인을 도와주는 착한 애라는 본모습을 보고 그를 좋아하듯이, 아라미야는 아야메의 본모습을 보아가며 사실 그녀는 부당한 처우를 받을 만큼 나쁜 녀석이 아니라는 걸 알아 갑니다. 불량소녀라 여겨지며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수 없었던 지난 나날, 이것은 불우한 가정사가 가져온 그녀의 비극이었습니다. 부모의 관심이 필요했던 사춘기 소녀는 불량스러움으로 지금의 기분을 표출하였고 그것이 고착화되어 발목을 잡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야메를 도와가는 아라미야를 보고 있으면 지금은 돌아가신 '카츠노 아키나리' 작가가 집필한 MM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 '사도 타로'가 '유우노 아라시코'를 구하기 위해 힘도 없으면서 권투 하는 상대를 찾아가 결투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2차원 밖에 관심이 없었던 그가 3차원 여자 아야메를 만나 그녀가 가진 2차원의 여자애들과 같은 순수함을 엿보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를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장면은 애처롭습니다.
'아야메가 내 이상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유치한 문구입니다. 자신의 신념 속에 가둬둘 거 같은 저 발언은 과연 오타쿠 답 네...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아라미야는 아야메가 부당한 대우를 받게 한 출처를 찾아가며 진실을 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아야메는 중학교 시절부터 집요한 집착을 보여온 '손고(아야메 소꼽친구)'를 위시한 불량배들에게 몹쓸 짓을 당할뻔합니다. 그런 그녀를 구해주며 아라미야는 그동안 그녀의 본모습에서 보아온 자신의 이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습니다. 그리고 유우카가 왜 자신들 사이에 껴들었는지도 밝혀 집니다. 유우카 때문에 아야메는 겁탈당할뻔 하였지만 어리석고 안타까운 그녀의 가족사정이 들어나면서 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주인공이 왜 처녀 2차원 여자만 찾는지 이유가 나옵니다. 그 이유가 들어나면서 초반에 그가 보여준 진성 돼지 오타쿠 같은 행동은 사실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왜 2차원 여자애만 찾고 그가 왜 처녀만 찾게 되는지 알아가면서 그럴 수밖에 없겠다. 하는 동정을 하게 됩니다. 이점은 내청코의 하치만과 비슷한 구도입니다. 사실 필자는 이 작품을 보면서 내청코의 분위기를 느껴서 책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사회 비판적인 시각은 안 나오지만 분위기는 빼다 박았습니다. 특히 아야메의 경우 독설 날리지 않는 유키노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2)
이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승전결 입니다. 깔끔하게 사태를 매듭짓고 인간 관계를 정립 시키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추리물과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원인이 있고 해결 과정이 있고 답이 있습니다. 아야메를 중심으로 그녀에게 쏟아지는 부당한 현실을 파헤치며 악의적이고 노골적인 집념이 그녀를 아무도 없는 사지로 몰아넣었지만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모 작품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진실을 알아가는 구도는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결국은 소문은 소문일 뿐이고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진부하지만 재미로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는 생과 사를 넘나든다고 하죠.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접점이 없던 인간이 모여 상대방이 가진 순수한 마음을 꿰뚤어보고,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는 취미를 이해해주며 곁에 머무는 클리셰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주인공이라도 그가 보인 작은 선의로 시작된, 몇 년간 사람의 온기를 별로 느끼지 못 했던 아야메에게 그날 밤 겁탈당할뻔하였던 자신을 구해준 아라미야가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그의 이상이 되어 여친이 되겠다는 꿈을 꾸게 할 정도로... 그래서 필자는 아주 드물게 이 작품을 추천 합니다.
- 1, 이건 필자가 그렇다는게 아니고 이쪽 계통에 은근히 그런 흐름이 있다는 것 입니다.
- 2, 냉정한척 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한다던지 하는 약간 나사가 빠진 듯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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