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월드 티처 6권 리뷰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사실 엔딩만 놓고 본다면 이보다 좋은 것도 없을 겁니다. 마치 동화의 한 장면처럼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주인공과 맺어지는 히로인이란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상향은 이상향일 뿐 보통은 히로인 비처녀 논란에 휩싸일 위험 때문에 이런 결말을 잘 내주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 게 현실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조금 파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리뷰 도입부부터 대뜸 결말을 언급하는 게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포주의(혹은 네타)라고 제목에 써 두었으니 상관은 없겠죠. 여튼 주인공과 맺어지는 히로인, 작가가 큰 결심을 하였습니다.
어릴 적 노예상인에게 붙잡혀 4년여 동안 갖은 고생 끝에 주인공 '시리우스'에게 구출되어 오로지 그만을 바라봐온 에밀리아, 지금은 죽고 없는 에리나에게서 시종으로의 몸가짐을 배우고 그를 보필하며 지내오길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무수한 남정네의 가슴을 태우고 대시를 마다하고 그만을 바라보며 일직선을 달려왔던 그녀, 하나 밖에 없는 가족 동생 레우스가 저주받은 아이라고 판명 나 원래라면 일족의 방침에 따라 처분해야 되었지만 규율 따윈 하찮다는 시리우스의 일갈에 더욱 그를 사모하게 되었는데요. 죽을 만큼 힘든 시기에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고 사람의 정을 느끼게 해주고 하나 밖에 없는 동생마저 구원해주었으니 호감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가 없었겠죠.
여튼 이번 에피소드에선 그녀가 안고 있는 트라우마가 밝혀집니다. 어릴 적 마을을 습격한 마물에 의해 부모님은 목숨을 잃어야 했고 그 장면을 목격한 에밀리아는 크나큰 고통과 공포를 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숨겨왔는데요. 그러나 학교 졸업 후 고향을 찾게 되면서 숨겨왔던 트라우마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자꾸만 커져만 갑니다. 마물에 의해 멸망해버린 고향, 흔적도 찾을 수 없는 부모님 유해, 엄습해오는 공포가 그녀를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주한 부모님의 원수 특대 마물, 한편 시리우스는 그저 그녀가 이 시련을 넘어 성장하길 바라며 이번엔 손을 내밀어 주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도움이나 구출 없이 성장하는 히로인은 언제 봐도 눈이 부십니다. 이 시련을 뛰어넘어 그에게로, 상냥한 그의 등 뒤에 숨어 그가 지켜주길 바라는 나약한 나날을 보낼 것인가 단단한 껍질을 깨고 화려한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를 것인가, 다시 찾은 고향 마을에서 부모님의 원수 특대 마물을 앞에 두고 에밀리아는 각오를 다집니다. 이 시련을 뛰어넘어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라고 해도 이 작품의 작가는 어딘가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그걸 잘 살리지 못한다고 할까요. 각오는 다지는데 박진감이나 결의가 잘 느껴지지 않아요. 에밀리아가 트라우마에 빠지는 부분도 석연찮고, 싸우는 것도 죄다 먼치킨이고, 조금 더 힘들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는 카타르시스라는 게 없어요.
피를 토하고 나자빠지더라도 분연히 일어서며 과거를 곱씹으며 지금까지 있어왔던 일들을 읊조리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소망하고 다짐하며 적을 물리치는 것, 이런 건 사실 소년 영웅물에서나 있을 법하고 속된 말로 중 2병 작렬 같은 이야기이긴 한데, 사실 이 작품도 있긴 있어요. 하지만 잘 살리지를 못합니다. 느닷없는 부모님의 원수라느니, 또 느닷없는 자식의 원수라느니라며 뜬금없이 남매(에밀리아&레우스)의 할아비가 나와서 츤데레가 되어 설치기도 하고, 이때까지 주인공 일행에게 대적할 상대가 없게끔 표현되어 왔음에도 고작 마물 따위가 이들의 적이 될 수가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작가가 잘 알 텐데도 이런 흐름이라니 좀 많이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건 부차적인 문제고 진짜는 주인공과 히로인의 맺어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여 년간 오직 그만을 바라보고 온 에밀리아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겠죠. 에헤헤..v 사실 이 부분도 좀 애타게 하는 게 있었으면 어땠을까 했습니다. 주인공이 워낙 먼치킨이다 보니 연적으로 대적할 조무래기는 눈 씻고 봐도 없고 에밀리아가 일직선으로 그만을 바라보는 통에 옆에 끼어들 여지도 없어서 눈에 빤히 보이는 스토리는 식상하기 그지없죠. 그러나 이 작품 자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닌 전생의 느낌으로 이세계에서 제자들을 키운다거나 넓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힌다가 주제이다 보니 부차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맺으며, 작중 이야기 템포가 널뛰기해서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이좋게 지내다 우울해지는 에밀리아 때문에 작중 분위기가 심각해지나 싶다가 전혀 그렇지 않은 분위기로 가다가 또 분위기가 다운되고, 그럴 때마다 네가 가서 좀 봐줘라며 대놓고 연결하려는 분위기는 딱 라이트 노벨답다 싶기도 했는데요. 거기에 작가가 감정 표현을 훌륭하게 처리는 하고 있는데 잘 살리지 못하는 느낌? 능글맞다? 닭살 돋는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결국은 이렇게 흘러가서 시리우스와 에밀리아의 기정사실을 만들어버리는 뻔뻔함도 대단하고요.
그나저나 이번 문맥 파괴 중 최대 압권은 일처다부제였군요.이야~ 에밀리아에게 숨겨진 남편이 있었다니(물론 이건 비꼬는 것). 작가의 실수인지 번역의 실수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편집부에서 제대로 검수를 안 한 것인지 그동안 숱하게 출판사에 이의를 제기해도 알았다고만 한 게 벌써 6권째인데 아직도 문맥 파괴는 고쳐지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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