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히로인을 들라면 이 작품의 히로인 여신관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그녀의 모험가 시작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일명 히로인 굴리기라고 할까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신참 파티와 고블린 퇴치하러 갔다가 싸움에 패배해서 죽는다면 덜 얼울했을지도 모를 능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블린을 얕잡아 봤던 뼈아픈 실책으로 파티는 궤멸, 이것도 단순한 궤멸이 아니라 남자는 다짐육으로 여자는 능욕 코스였으니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은 그녀에게 트라우마를 짊어지게 하기엔 충분했었을 겁니다.


그때 그녀를 겸사겸사 구해준 게 고블린 슬레이어였죠. 그도 고블린 퇴치 의뢰를 받았었고, 마침 여신관 파티와 겹친 게 그녀에겐 보통의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근데 보통 이럴 때 위험에 처한 여자를 구해 줬으면 다정한 말을 건네며 안심 시켜야 되는 게 인지상정이 건만 이 남자는 그런 거 관심 없고 오히려 그녀를 부려 먹기 바빴죠. 무뚝뚝한 도시남 +_+ 스타일 때문이었까요. 그녀는 심통 하나 안 부리고 그가 지시하는 데로 잘만 따랐죠.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말을 순순히 따르다니 간이 보통 큰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아니 뭐, 스피드라는 영화에 보면 사건 때 만난 남녀는 오래가지 못한다고는 합니다만. 그걸 비웃듯 이들의 관계는 지속형으로 발전해가죠. 아마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었을까 항상 고블린 고블린 하며 그 외엔 관심이 없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를 챙겨준답시고 자연스레 파티를 맺어 다닌 게 벌써 1년입니다. 돌이켜보면 이 사람이라면 지켜 줄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겠죠. 어딘가 방정맞지도 않고. 그렇다고 음흉하지도 않고. 말하면 '그래, 그런가'뿐이지만 제대로 대꾸도 해주니 여자 입장에서는 안심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고블린 슬레이어는 사람 부려 먹는 게 험하죠. 여자라서 봐준다가 아닌 하나의 동료로써 대우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여신관은 쫓아가기 바빴습니다. 그래도 이게 살아가는데 유용하다는 걸 고블린 사냥에서 증명이 되면서 여신관은 오히려 그에게 더욱 친밀함을 느껴 갑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걱정도 앞서고 본부인 같은 마음도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이번 영애 검사 구출 작전 때 그의 등을 지키며 분전하는 모습은 딱 수십 년을 같이 산 부부와도 같았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통째로 영애 검사 구출작전입니다. 늘 초보 모험가가 그러듯 영애 검사(1)도 파티 맺고 고블린 사냥 갔다가 파티는 궤멸, 그녀는 붙잡혀 몹쓸 짓을 당하고 정신 붕괴 직전까지 갔다가 고블린 슬레이어 파티에게 구해진 후 이들과 같이 행동하게 되는데요. 그녀는 여신관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신관도 사실 고블린 슬레이어가 아니었다면 영애 검사와 똑같은 길을 걸었을 것인데요. 이때 옆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신관은 그에게 구해지고 살아가는데 지식을 얻고 전투에서 경험을 쌓으며 의연하게 대처해나간 끝에 이젠 그의 등을 지킬 정도가 되었죠. 트라우마를 안고 있으면서도 주저하기 보다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한 겁니다. 아무리 고블린 슬레이어라도 실수나 죽을 수 있음에도 그를 믿고 따라가는, 그에 반해 영애 검사에겐 아무것도 없게 되었죠. 부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 서려 지원한 모험가는 초반에서 주저앉고, 몸도 버리고, 머리카락도 잘랐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덤으로 성격도 안 좋습니다. 귀족이라는 녀석입니다. 그럼에 받은 대미지가 컸던 것이겠죠.


어딘가 공황상태에 빠진 그녈 일으켜 세운 게 바로 고블린 슬레이어였습니다. 고블린 성체에 잠입하면서 패닉에 빠져 파티를 위기에 빠트리고 독설을 내뱉고 대려 가 달라고 할 땐 언제고 와선 깽판이나 부립니다. 그런 그녀에게도 고블린 슬레이어는 여전히 평등한데요. 일거리를 주며 일하라는 투로 처음 만났던 때의 여신관과 똑같이 대우하며 비난도, 비아냥도, 쓸데없는 다정함도 없습니다. 그저 그는 살아남기 위한 길을 제시하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뿐... 하지만 이것만으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그녀에겐 있었나 봅니다. 이후 이야기에서 그녀는 여신관이 걸었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오픈된 엔딩을 내놓습니다.


맺으며, 개인적으로 1~5권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였습니다. 고블린 슬레이어를 둘러싼 인간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지 않나 합니다. 오직 고블린만을 생각한 차도남이 여신관을 맞이하고 엘프를 위시한 동료들을 맞이하면서 동료들의 소중함과 따스함을 배워가는, 소치기 소녀나 길드 접수원 누님 등 이전부터 이런 느낌이 있어 왔는데 5권에서 완성된 느낌이랄까요. 혼자보다 둘이 좋고 둘보다 여럿이 좋은 그럼에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라고 하면 벌받겠죠. 떠들썩한 걸 싫어해 혼자 떨어져 있어도 동료들은 그걸 서운해하지 않고 오히려 챙겨주는 것에서 그가 받고 있는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1. 1, 이 작품은 등장인물 이름은 거론 안 되고 포지션으로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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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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