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토벌에 있어서 정석적인 전개는 용사가 시작의 마을에서 출발해 동료를 모으고 왕녀를 만나 사랑을 약속받고 여행의 종착역에서 마왕과 결전을 벌이는 것이잖아요. 보통 해피한 판타지라면 여기서 마왕을 토벌하고 인류에게 평화를 그리고 왕녀와 결혼하면서 아름답게 끝을 맺는 게 클리셰이자 이상석이라 하겠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용사는 어떠할까, '토도 나오츠구'는 용사로 선택되어 이세계로 전이 당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창 날뛰고 있는 마왕을 쓰러트려 할 운명을 하사받게 되죠. 각종 가호하며 장비 그리고 하렘이 빠지면 섭하지 등 용사가 가져야 할 덕목(?)을 두루 가지고 출발을 합니다.


왕녀는 안 나오지만 나름 귀족가의 영애 둘을 동료로 받아들였고, 작중에는 안 나오지만 마왕을 쓰러트리면 왕녀에 준하는 여자와의 사랑도 약속되어 있었겠죠(1). 그렇게 핑크&장밋빛을 안고 떠난 여행길,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토도는 분명 용사로써 소환되었고 그에 준하는 가호 등 용사가 틀림이 없지만 우리가 아는 흔한 용사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용사는 맞는데 용사가 아닌? 뭔 말이냐면요. '허접' 토도를 표현하자면 이 단어 하나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이세계 전생물에서 주인공이 사기급 스킬을 받거나 각성해서 먼치킨이 되는 걸 흔히 보잖아요. 그거 다 거짓이라는 양 이 작품은 혼돈을 선사합니다.


남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 두수 앞을 내다보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 이게 옳은 일이니까 하는 것이다.라는 즉흥적인, 생각이라는 걸 포기하고 이게 맞다 싶으면 직진뿐인 행동력, 이걸 자신만의 정의라고 하는 걸까요? 동쪽의 나비 날갯짓이 궁극적으로 서쪽에서 태풍이 될 것이라는 걸 꿈에도 모르는 식으로 하는 행동, 순수하니까? 그나마 자신의 정의를 타인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긴 한데 이게 또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다 떠나서 지금 토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적의 능력과 실력을 가늠하지 않고 돌격하기라는 것입니다.


초보가 대뜸 엔딩 보스에게 덤비는 짓은 누가 봐도 무모하잖아요. 시작의 마을을 나서자마자 마왕과 맞닥트리는 건 아니지만 토도는 그만큼 무모한 행동을 잘 합니다. 그렇담 지식이 없으면 배우면 되는 것이고 실력이 없으면 기르면 됩니다. 그걸 위해서 '아레스'라는 사실상 이 작품의 주인공을 붙여 두었는데 토도는 그가 남자라는 이유로 파티에서 방출, 그리고 그가 빠진 승려라는 자리를 메꾸기 위해 지금 언데드 총본산 대분묘라는 미궁이 근처에 있는 마을에 왔습니다. 그리고 도토는 대분묘 언저리에서 언데드가 내쏜 괴전파에 기절, 용사로 선택되고 그에 걸맞은 사명감을 가진 용사가 언데드에 기절하고 징그럽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사실 평화로운 일본에서 살다가 이세계로 전이되어 대뜸 싸우라고 하니 의지는 있어도 몸이 안 따라주는 건 어쩔 수 없겠죠. 뭣보다 용사는 시작의 마을에서 출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를 가르칠 아레스라는 승려를 붙여 주었건만, 애가 남자 공포증이 있다며 하루 만에 너 님 해고 이럽니다. 기가 찰 노릇이죠. 그렇다고 이세계나 마왕에 대해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막연히 마왕을 무찔러야 된다고 하니 여행을 하고 있는 것뿐, 그래서 그가 하는 행동은 소풍 성격의 그 이상으로 비춰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고생은 아레스가 몽땅 뒤집어쓰고 있죠.


아레스는 이번에도 언데드를 무서워하는 토도를 위해 무던히도 애쓰면서 새로운 승려로 고아 '스피카'라는 12살 소녀를 붙여주게 되는데요. 여기서 중대한 분기점이 발생합니다. 용사를 키워서 마왕과의 싸움에 대비하는 아레스의 가르침은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는 것인데요. 그의 용사 교육 방식은 자신의 몸을 불 살라 안전하게 용사의 렙업을 도우는 가령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 고기를 잡아서 주는 게 아레스의 교육 방식'이라는 겁니다. 이건 전재가 잘못된 것이죠. 그래서 아레스의 동료인 실전파 '그레고리오'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돌발적으로 삐거덕 거리게 되고 급기야 스피카마저 아레스의 교육 방식은 잘 못 되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문제는 이 작품에서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는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이어 갈려는지 알아채는 인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스피카도 뭐가 문제인지 알고서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아레스는 상냥하기에 교육받기엔 부적합하다는 견론을 내려 버리죠. 스피카가 아레스의 도움을 받아 초반에 광렙을 이룬 것에서 그의 교육하에 있는다면 분명 멋지게 성장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고기를 아무리 잡아줘도 고기 잡는 법을 모른다면 언제까지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걸 제일 처음 깨달은 게 스피카라는 아이러니, 고작 12살짜리 소녀가 아레스라는 운동장만 돌다가 드디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과정의 중심엔 아레스의 동료 그레고리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작가의 언급은 없었지만(후기에 있으려나) 실전파인 그는 이론으로 배우는 것보다 몸으로 때우며 배우는 게 성장하는데 적합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는데요. 아레스처럼 뒤에서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단서를 주며 네가 알아서 해라. 성장하지 못한다는 너의 그릇은 거기까지라는 논리, 사실 이렇게 순화하며 썼지만 그레고리오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에 몸을 두는 중증 골수 신도인데요. 신앙만 있다면 안 되는 것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허접한 용사를 신앙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처단하려는 궁극적인 사이코입니다.


사이코지만 그레고리오의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자 죄'다라는 논리는 마왕을 무찌르는데 있어서, 그리고 성장하기 위해 용사보다 더 큰 고뇌를 안아 버린 스피카에게 있어서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 지 하는 길잡이가 되어 버립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는 부분이었군요. 고아로 성장해 얼굴이 반반하다는 이유로 선발되어 용사 파티에 집어 넣어진 스피카, 타의에 의해 성장하길 강요받으면서도 자기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 아레스에게서 길을 본 게 아니라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자 죄라고 하는 그레고리오의 말에 그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장면은 이 작품이 가진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줍니다.


요컨대 이런 거죠. 성장하기 위해선 몸으로 부딪혀 봐야 할 때도 있다는 것, 아레스의 용사 교육은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건 그렇고 스피카의 성장을 보건대 얘도 예사롭지가 않군요. 엑스트라로 그칠 줄 알았는데, 아레스에게 경험치 쩔 받을 때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모습하며 어딘가 흐뭇하게 합니다. 초반엔 쭈뼛쭈뼛 거리던 애가 후반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본질을 다시 보게 하는, 그녀를 보며 성장이라는 것에서 본디 자신의 한계는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맺으며, 사서 고생하는 아레스와 그걸 평가하며 옆에서 무뚝뚝하게 비아냥 거리는 아멜리아와의 찰떡궁합이 재미있습니다. 여기에 길치 동료가 늘어나면서 다음 권은 더욱 재미있어질 듯, 깊이 생각 안 하고 표면적으로만 움직이는 용사 토도에겐 여전히 발암물질이 떠다니고요. 그에 따른 에피소드 중 남자?! 여자? 뭐? 남자를 좋아해? 등 아레스에게 들통나지 않은 토도의 정체 때문에 일어나는 이야기는 배꼽을 빠지게 합니다. 스피카는 귀엽지만 야무진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무능을 대표하는 용사 곁에서 그녀는 자신이 나아갈 길을 보게 되죠. 무능을 인지 못하는 용사와, 무능을 뛰어넘기 위해 일어선 스피카

오직 신앙만이 장땡이라고 외치며 신앙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그레고리오 때문에 생기는 긴장감은 자칫 무미건조해질뻔한 이야기에 감초를 던집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방식은 과격해도 아레스의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메시지를 던지죠. 그래서 용사에게 최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무능을 대표하는 용사에게 있어서 신앙의 힘이야말로 정의라고 외치는 그레고리오와의 만남은 지옥 편도 티켓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죠. 아레스는 그걸 알기에 그와 만나는 걸 회피하게 했으나 그걸 비웃는 용사에 의해 파토되어 가는 과정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했습니다. 세상사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필자는 웬만하면 추천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추천합니다.


 

  1. 1, 왜 과거형이냐면 이야기가 진행 되면서 용사의 정체로인해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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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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