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읽다 보면 이런 노래가 떠오릅니다. 태진아의 '미안 미안해' -행복 찾아서 꿈을 찾아서 저 멀리 떠나야 해-(저작권에 걸리려나),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무우라도 심어야지 같은 야망으로 대륙을 통일하고 성군 정치로 태양제라는 닉네임을 부여받으며 말년까지 칭송을 받았던 황제가 죽은지 10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손자 놈이 3대째 왕위를 이어받아 나름대로 대륙을 잘 굴리던 어느 날, 황제는 여명 계획이라는 거창한 프로젝트를 시행하시는데요. 거기에 끌려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던 코드네임 13번, 이후 '노엘'이라 이름 지어지는 소녀는 태양제 손자 놈이 죽도록 싫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라면 으레 사랑하는 이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말년에 한날한시에 떠나는 게 행복일까? 기본적인 행복은 무엇일까, 배가 고파 밥을 먹고 포만감에서 오는 만족감? 한정판을 손에 넣었을 때? 누군가에겐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며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삶이 행복이라 할 수 있겠고,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았을 때 일 수도 있겠고,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이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 않을까요.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노엘'은 친구가 알려준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무엇일까. 친구의 죽음에서 행복의 편린을 발견하는 그녀, 행복하지 않으니까 죽은 것이다. 때론 섬뜩함을 선사합니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행복'이라는 키워드가 둥둥 떠다닙니다. 연구소를 떠나 시골마을 거쳐 만나는 사람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그녀는 적, 아군 가리지 않고 답을 알기 위해 반란군에 들어가고 토벌군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악덕 영주를 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반란군에서도, 그 반란군에게서 구해주게 되는 영주 가족들에게서도, 손바닥 뒤집듯 토벌군에 가담해서도, 행복이라는 답은 얻지 못합니다. 왜냐면 사람에게 있어서 저마다 추구하는 행복은 다 다르기에, 시행착오는 필연이 되어 가죠. 그리고 노엘은 인연이 닿아 영주의 아들 엘가와 직속상관이 되어가는 신시아와 약속을 나눕니다. 행복이란 무엇인 가의 답을 언젠가 찾자고...


기껏 지옥 같은 연구소를 빠져나왔더니 왕위를 둘러싼 전쟁에 휘말려 버립니다. 3대 손자 놈의 아들들 4대째가 되겠군요. 판타지에서 흔한 집안싸움 같은 것이 일어나고야 마는데요. 가족이라도 수 틀리면 전력으로 까부순다를 이 작품에서도 이어가고 있죠. 서로가 파벌을 만들어 너 죽고 나 살자식으로 음해하고 독을 타고(이건 비유) 암살을 시도하는(이것도 비유), 그런 시궁창 속에 노엘은 굳이 발을 들여서 개헤엄을 칩니다. 이 과정에서 노엘은 배우지 못했기에 모르는 순수함과 배웠기에 잔혹해지는 이중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주게 되는데요. 연구소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그녀에게 있어서 사람을 선악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친구인가 아닌 가로 나눠 버립니다.

옛날에 이런 소재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비밀 연구소에서 각종 실험을 당하던 주인공이 탈출하여 악에 맞서 싸우는, 지금 당장 몇몇 작품이 떠오르는데 제목은 생각이 안 나는군요. 이런 작품의 주된 내용은 연구소에서 탈출한 주인공을 처단하기 위한 자객을 상대하고 정부의 관계자에게 회유 당하고, 그러다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 친해지죠. 자기 있을 곳을 만들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합니다. 때론 모든 걸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다 자객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고 분노로 점철된 주인공은 복수극을 펼치기도 하죠.


그 과정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찰을 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연구소에서 행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실험을 당하며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게 되고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에 행복을 알게 되죠. 그리고 자신이 받았던 부조리와 불합리를 깨달아 가고요. 이런 것도 있죠. 행복의 증표인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 자신과 대적하게 되는 아픔, 이것을 뛰어넘었을 때 주인공은 진정으로 행복이라는 환상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노엘'또한 그런 경우입니다. 악의 연구소에서 철이 들 때부터 인간병기로 키워진 그녀, 소모된 동료 대신 추가된 친구에게서 그녀는 행복이라는 환상을 알아갑니다. 이제는 죽어버린 친구, 주검 앞에서 그녀는 약속합니다. 행복을 찾겠다고, 그리고 그녀는 길을 떠납니다. 시골 마을에서 만난 친구들, 그리고 전쟁터에서 만난 동료들에게서 행복이란 무엇인지는 묻고 다니죠. 하지만 돌아온 답은 하나같이 자기 주관적이었고 노엘이 알고 싶었던 행복과는 거리가 멀기만 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을 알 수 있을까, 자칫 섬뜩하게 들릴 수 있는 이 질문에 답을 과연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일단 2권이 나오면 구입은 하겠는데 딱히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행복 찾기라는 키워드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실상은 악의 연구소에서 키워진 인간병기가 세상 밖으로 나와 전쟁의 주역이 되어 날뛴다는 이야기 그 이상은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적을 맞아 싸우고 같은 시설의 동료를 만나 필연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클리셰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죠. 선악은 나눠져 있지 않습니다. 선악의 개념보다 친구인가 아닌 가로 나눠서 니편 내편이 되어 싸우죠. 노엘 역시 딱히 이쪽 진영이 마음에 들어서 몸을 담는 게 아닌 친구로 지내자라고 말을 건네 상대가 수락하자 몸을 담는 희한한 모습을 보이게 되요.


그런 면에서 약간 사이코 기질이 있는 노엘의 언동과 행동이 천진난만하여 흐뭇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연구소에서 주입받은 잔혹함이 숨어 있죠.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웃으며 사람을 도륙하는 섬뜩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군사학을 전수받은 경험으로 마치 양웬리처럼 전쟁의 판도를 바꾼다거나 도적의 무리를 자기 수하로 만드는 등 하나의 영웅적인 면모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해서 얻는 시기와 질투라는 클리셰도 따라오고요. 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기만 하죠. 자신으로 인해 정세가 크게 바뀐다는 걸 개의치 않는, 그런 그녀의 천진난만한 겉모습에 속아 넘어가는 어른들 하며 대략 난감은 이런 게 아닐까 했군요.


맺으며, 행복 찾아 삼만 리 같은 것입니다. 자신에게 행복을 가르쳐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와 여행 중이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애초에 행복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상태이니 찾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지만 행복이란 저마다의 주관적이다 보니 도움이 되지 않게 되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애틋함을 심어줄 만도 하겠건만 그런 게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녀에게서 감정이입을 못할 수도 있는데 돌이켜보면 감정 표현에 서툴러 항상 웃는 것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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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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