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월드 티처 7권 리뷰 -알고보면 막장 드라마-
엘프 피아가 합류하였습니다. 9년 전 일정 나이가 차면 세상 밖으로 여행을 떠나야 된다는 일족의 관습에 따라 여행을 마치고 마을로 복귀하던 피아는 모험가 남정네들의 음흉한 마수에 걸려 위기에 빠졌었는데요. 그때 주인공 시리우스가 구해주게 되었고, 피아는 그의 성품에 그만 푹 빠져 버렸었죠. 10년 후 너의 와이프가 될 테니 받아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훌쩍 떠나버렸던 그녀는 9년째 되던 해에 느닷없이 가출하여 다시 시리우스를 찾아왔습니다. 9년 동안 줄곧 시리우스를 사모하며 지내왔다는 그녀, 그날 반나절 동안의 인연치고는 그녀의 연심이 심상치 않았는데요.
피아의 합류로 정체되어 있던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연인을 향한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노예로 잡혀 갖은 고생 끝에 탈출을 하였지만 마수의 습격에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에밀리아(&레우스), 그때 시리우스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하였고 그의 인도로 그녀는 시종으로써 길을 걷게 되었죠. 하지만 이후 동생 레우스의 방황으로 적잖은 동요를 보였고 이를 해결해준 게 또 시리우스였습니다. 거기다 성장해선 부모의 원수를 죽이는데 도움까지 받았습니다. 사실 에밀리아는 그와 맺어졌다고 해도 시종으로써 본처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본처 자리는 리스를 밀어주고 있죠.
그래서 에밀리아 다음으로 이제 리스 차례가 되겠습니다. 시리우스는 여행을 떠나기 전 그녀들(에밀리아, 리스)의 마음을 언젠가 받아 주겠다고 했고 그 다짐에 따라 에밀리아에 이어 리스 차례가 되었지만 그녀는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것이 피아가 합류하고 그녀(피아)가 등을 떠밀어 주자 냉큼 어른의 계단으로 올라 버립니다. 사실 좋아하는 사람끼리 맺어지는 건 축하해줄 일일 겁니다. 여느 고자 주인공과 다르게 히로인의 마음을 허투루 듣지 않고, 흘리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받아주는 주인공은 야구 동영상 이외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어쨌건 피아는 굉장히 적극적인 성격입니다. 우물쭈물하는 성격이 아닌, 길이 제시되면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가고자 하죠. 아니 길이 없더라도 만들어서 나아간다고 할까요. 그래서 9년 동안 시리우스를 잊지 못해 찾아왔고, 본처가 되지 못할 거면 첩이라도 상관없다는 듯 앞에서 알짱 거리던 리스를 떠밀어 큰 길로 나아가게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를 만들어 버리는 대범함. 한눈에 반한다는 이야기를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은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고들 합니다만. 만나자마자 이 사람이 내 운명이다라고도 하니까 피아가 시리우스를 바라보는 감정은 개연성은 있다고 봐야겠죠. 그러해서 피아의 등장은 이들에게 느리게 흐르던 시간을 가속화 시켜주게 됩니다.
사실 피아에겐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죠. 그녀는 엘프입니다. 인간과 같은 시간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럼에도 인간인 시리우스와 같이 지내려는 모습에서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잘 알 수 있어요. 그걸 담담히 언급하는 부분은 좀 씁쓸하게도 합니다. 인간과 엘프, 서로가 사랑해서 맺어져도 과언 행복했다 할 수 있을까. 엘프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찰나의 시간이고 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엄마보다 일찍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피아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요. 앞에서 알짱 거리는 리스의 등을 떠밀고 자신의 차례를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가는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피아 같은 장수종이 짧은 생을 살아가는 사람과 맺어진다는 건 이런 겁니다. 즉, 어떻게 발버둥 치든 남겨진 자에겐 슬픔이라는 결말만 있을 뿐이죠. 이걸 알면서도 시리우스와 맺어지는 피아, 그녀의 마음을 소중히 하려는 시리우스, 피아는 이 모든 걸 위해 에밀리아에게 술을 먹여 인사불성으로 만들어 버리는 등 굉장히 저돌적인 면을 보여줍니다. 거기다 가는 시간이 아쉬워하듯 시리우스와의 정열적인 침대씬은 앞서 에밀리아와 리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랄까요. 그렇다고 적나라하게 표현은 되어 있지 않으니 일부러 찾아보진 마세요. 이로써 히로인 3명을 순식간에 비처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정도 쓰면 온통 이런 이야기만 들었다고 오해하실 텐데 그렇진 않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무투제에 참가하는 이야기가 주류입니다. 비중 있게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뭐 주인공과 레우스가 워낙 먼치킨인데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들러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 자체가 스승인 시리우스가 제자인 나머지 일행을 교육한다는 것인지라 이런 무투제에 참가해서 제자들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그런류다보니 이렇다 할 에피소드는 없군요. 물론 껄떡대는 인간도 나오지만 참교육이 뭔지 보여주니까 이 또한 어찌 되든 상관없겠죠. 중요한 것은 히로인들이 시리우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일 것입니다.
맺으며, 부제목으로 왜 막장 드라마라고 썼냐면, 스승과 제자 사이에 불순한 교제 때문입니다. 불순하다는 건 좀 어폐가 있고 필자 주관적이지만요. 사실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가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와 여행을 하면서도 에밀리아와 리스는 그의 제자로 지내고 있죠. 시리우스도 틈만 나면 제자들이라고 언급하고 있기도 하고요. 피아도 제자로 받아 달라고는 하고 있지만 아직은 애매하니 패스하더라도요. 필자의 머리에 마구니가 끼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군요. 어쨌건 한꺼번에 히로인 둘과 맺어지는 전대미문(?)의 에피소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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