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마을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쪼그마한 여자애가 폭신폭신한 곰 옷을 입고 와서 모험가가 되겠다 하니 모험가를 물로 보나며 교육 좀 시키려는 선배를 오히려 때려눕혀 버렸죠. 그 길로 마물들도 마구 잡아서 생태계를 교란 시키고, 놀이동산 어트랙션같이 생긴 곰 하우스를 빈터에 세워 집이랍시고 살고 있으니 구경꾼이 몰려드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집주인도 곰 옷차림 하고 있으니 오락에 굶주려 있는 이세계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구경 꺼리죠. 덕분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감금 생활 같은 나날이 이어집니다. 이번 2권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일들이 일어난다고 해도 여느 이세계 전생물처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마을을 다스리는 영주의 지명 의뢰를 받아 갔더니 너 님이 유명하다길래 그냥 보고 싶어서 불렀다니 미친 건가 싶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영주 딸내미와 통성명도 하는데 뭔가 이런 장면이 이야기 구성에 필요한가 싶은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솔직히 종이책 기준 8천 원이 넘는 작품치고는 내용이 부실한 건 아닌가 싶죠. 아무튼 피나의 어머니가 결국 쓰러졌습니다. 약도 없고, 신관을 부르려니 엄청 비싸고 그저 죽음을 예감하고 아이들(피나에겐 동생이 있음)을 부탁하는 장면은 본다면 여주로서 가만히 있을 순 없죠.

이웃 마을에서 커다란 뱀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옛날에 드라곤이 출동하면..라는 인터넷 개그가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여주가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뱀이라도 여주 앞에서는 뱀탕 신세죠. 사실 이런 마물을 잡고 피나의 마물 해체 쇼보다 뭔가 좀 악덕 귀족이 나타나 여주의 능력을 탐내서 내 것이 되어라를 외치고 그런 귀족을 여주가 발라버리는 클리셰 덩어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없어서 안타깝단 말이죠. 뱀을 잡은 여주는 더더욱 유명해지고 가는 곳마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관공서에서 누군 길게 줄을 서서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여주는 프리 패스.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선배 모험가를 뚜까팬 것도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죠. 그녀를 거스르면 아주 그냥 죽어! 그리고 정해진 약속처럼 소문과 충고를 등한시한 바보도 등장해서 개기다 아이고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같은 일도 벌어지고. e북 가격도 만만찮은데 계속 봐야 하나. 그리고 마침내 필자의 마음을 알았는지 고아원을 등 처먹는 악덕 귀족 등장, 근데 엉뚱하게도 영주에게 불똥이 튀는군요. 여기서 여주의 성격을 알 수 있는데 아주 음습하게 괴롭히는 게 특기인가 봅니다. 뭐 처음부터 유명인이라길래 보고 싶어서 부른 영주에게 좋은 인상이 생길 리 없으니 당해도 싸긴 할 겁니다.

맺으며: 이 작품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귀여움보다는 기행으로 승부를 본다. 폭신폭신한 곰 옷에 능력도 곰과 연관이 있고, 집도 곰 하우스고, 소환수도 곰돌이에 곰순이 같이 귀여움 가득 묻어나는 이야기를 펼치면서 그런 걸 부각 시키기 보다 거리가 먼 마물 때려잡기 등 기행 일색입니다. 한 번 부르려면 엄청나게 비싼 신관 대신 무료로 병을 치료해 주고, 뜬금없이 고아원 돕기를 하고, 그러면서 뽐내지를 않는 것도 기행이고, 이세계 주민들 입장에서 그녀는 성녀인가? 이러면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나서 사람들이 몰리고, 국가 권력이 탐내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으니 허술하단 말이죠. 써먹기 좋은 호구가 여기에 있잖아요. 물론 고위 모험가도 여주를 이기지 못하니 함부로 접촉했다간 뼈도 못 추리게 되겠지만요. 작가는 왜 이런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을까. 안전 노선으로 가겠다는 건 알겠는데 재미가 없단 말이죠. 사실 여주가 쳬육계다 보니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그 역할에 피나를 투입하려나 했나 본데 칼 들고 마물 해체쇼 하는 소녀에겐 다소 부담이 되겠죠. 그래서 영주 딸내미와 피나 여동생을 투입하는 등 작가 나름대로 노력은 하는데 빛을 보는 건 언제일까.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본 작품은 이세계 전생물입니다. 주인공은 열 일하는 트럭에 치여 이세계로 전생했던가 그럴 거고, 전생하고 보니 마을 사람 A였죠. 처음엔 그에 따른 불평등도 있었지만 그런 건 소소하고, 문제는 소꿉친구인 '코델리아(메인 히로인, 이하 여주)'의 생사 여부였습니다. 본 작품은 전생물의 트레이드 마크인 전생자에게 주로 내려지는 용사라는 직업이 특이하게도 이세계인에게 내려지고 있었죠. 동서남북 4명이 존재하고 여주는 동쪽의 용사던가 그럴 겁니다(1~3권 읽은 지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 사실 이것도 중요한 건 아니고요. 주인공이 처음 이세계에 도착했을 때 엄청 허접했었고, 그에 따라 여주를 지키지 못해 그녀가 사망해버리는 비극을 맛봤고(아마도), 그게 싫어 회귀하여 다시 시작한 게 지금(이것도 아마도). 회귀하자마자 열렙해서 지금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먼치킨이 되었으나 문제는 전생자가 주인공 말고도 발에 치일만큼 많다는 것이고, 주인공 및 전생자들 기준으로 잡는 건 너무 가혹하겠지만 여주는 용사 주제에 허접하다는 것.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 말빨도 없고 그래놓으니 교회 간판으로 엄청나게 이용당하고, 전생자들에게 두들겨 맞고, 정조가 위험에 처하는 등 재난을 겪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녀를 지켜줄 백마 탄 왕자님은 누구일까. 주인공이죠. 근데 안 도와줌.

지금 주인공에게 있어서 시급한 것은 모험가 등급을 올리는 데 있습니다. 직업이 마을 사람 A다보니 어딜 가나 하찮게 보고, 용사인 여주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거든요. 그래서 모험가 등록을 하고 A 랭크 정도 되면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길드에 등록하러 갔습니다만, 예쁜 엘프 접수원으로부터 분수도 모르는 놈이라고 억까 당하죠. 물론 가만히 있을 주인공이 아니고, 길마 나오라고 해, 어? 내가 길마하고 어제 싸우나도 같이 하고 어! 다 했어 어! 물론 99% 필자 각색입니다만, 억까 당한 건 100% 사실입니다. 아무튼 길마가 주인공이 잘 아는 동네 아저씨라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모험가 등록하고 길을 가는데 저주받아 다 죽어가는 엘프 소녀를 줍습니다. 주인공은 뭔가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게 코난급이랄지, 이 엘프 소녀 알고 보니 엘프와 수인(늑대)의 혼혈이라는 영문 모를 족보를 가졌고, 할애비가 죽이려 든다는 막장 가족사를 들고나오면 좀 의심을 하든지, 왠지 인류 보완 계획이 시작될 거 같은 이름을 가진 릴리스(세컨 히로인)가 줍는 걸 그토록 반대하는데도 귓등으로 안 듣는 바람에 고구마가 트럭째로 실려 옵니다. 릴리스의 우려대로 에필로그에서 지뢰를 주웠다는 장면을 보여 주는데, 예로부터 미인계와 아이는 적의 경계심을 무너트리는데 유효한 수단이죠.

아무튼 4권에서 심각한 건 주인공이 아니라 여주입니다. 교회는 그녀를 성장시키겠답시고 사교와 이단과의 전쟁 최전선에 보내버리죠. 거기서 그녀가 목격한 것은, 이세계는 마물을 없애서 경험치를 얻는 것보다 사람을 죽여서 얻는 경험치가 더 크다고 합니다.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이었죠. 선의 대명사이어야 할 교회가, 그 교회가 부리는 기사단은 변방의 사람들을 사교와 이단으로 몰아 그저 경험치 벌이와 학살이라는 놀이에 치중하고 있었습니다. 본 작품에서는 레이프, 성 노예, 매춘, 납치, 인신매매 등이 일상으로 벌어집니다. 악과 선의 반전이죠. 물론 본 작품은 어둠의 동인지 같은 성격이 아닌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편 힘이 없는 일반인들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변방에서 여주가 본 것은 기사단에 의해 집단 레이프를 당하고 있는 무고한 마을 여자들이었죠. 남자들은 꼬치에 꿰여 다 죽었고. 여기서 여주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용사란 이런 부조리에서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작가는 말합니다. 힘이 없는 용사는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고. 한편으로는 현실적이었습니다. 입만 산 용사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분위기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걸.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은 전생자로서 주인공도 애먹는 엄청난 능력자였거든요. 그래도 여주는 용사에 입각하여 부조리에 대들긴 하지만 단장에게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습니다.

교회 소속으로 어쩌지 못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부조리에 순응하고 살아야 할까, 용사라는 직업에 맞게 분연히 일어서야 할까. 두들겨 맞으며 그녀가 선택한 것은, 주인공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 왜? 이세계에서 용사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강할 뿐, 마음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기사단 단장이 보여주는 악의에 마음이 꺾여서 주인공에게 이별을 통보한 걸까? 기사단 단장은 순수 100% 악(惡)으로 만들어진 악마, 사탄이 현현하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죠. 여주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꺾을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 여기서 여주는 주인공을 믿는가(일본식으로 표현하면 しんずる)로 연결됩니다. 믿지 않았으니까 이별을 통보했고, 믿지 않았으니까 기대를 하지 않았고, 주인공을 은연중에 마을 사람 A라며 무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동안 자신(여주)을 구해준 게 몇 번이었는지 잊은 건 아닐까, 단장의 악의에 절망에 빠져드는 여주. 도망도 못 치고, 자결도 못하고, 모든 걸 내려놓고 자포자기에 빠져드는 여주.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누구의 얼굴일까. 그런 거 없습니다. 불쌍한 주인공. 그래도 공주님이 위기에 빠지면 구해주는 건 백마 탄 왕자님이라고 예로부터 정해진 사항이죠. 근데 이뇬이 왜 왔냐고 합니다.

맺으며: 사실 3권에서 하차한 작품입니다. 벌써 7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발암적 요소가 너무나 많아서 화내며 하차한 거 같은데,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나라는 요소가 흥미를 끌게 되어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본 작품에서 전생자(작중에서는 환생자)들이 보여주는 악의는 대단한데요. 법이라는 안전장치가 없어지면 인간은 어떤 짓을 저지르는가, 갑자기 힘을 얻으면 얼마만큼 타락할 수 있나, 4권의 최대 빌런인 기사단 단장(참고로 히로인)은 부모로부터 억압을 받아온 아이가 성장하여 제어장치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죠. 물론 이세계 사람들의 타락도도 아주 흥미로운 요소고요. 사람 무시하는 경향도 아주 도드라지는데 주인공이 모험가 길드에서 범죄자 취급 당하고 문전 박대 당하는 건 이 작품이 처음일걸요? 마음만 먹으면 주인공 혼자서도 이세계를 멸망 시킬 수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튼 위에서 언급한 발암적 요소는 4권에서도 이어집니다. 여주를 성장시키고 그늘에서 보좌하겠다는 주인공 때문에 여주는 엄청나게 험한 취급을 당하죠. 사실 이건 뭐 여주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니까 딱히?라는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용사면서 부조리에 굴복하는 모습도 사실 현실적이기도 하죠. 힘 없이 입만 놀리는 게 더 발암이라고 몇몇 작품이 알려주기도 했으니까요. 여주의 옹고집 똥고집 같은 자잘한 것도 제법 있지만 넘어가고, 현실적이지만 발암적 요소이기도 하다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까요. 그보다 아니 자길(여주) 구하러 온 주인공에게 왜 왔냐니 필자는 이게 더 어이없었지만요.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용사는 저주받았습니다. 금발 미남을 좋아하는 여신(6명 있다는데 나중에 더 나올지도 모름)은 자기 나름대로 호의랍시고 불로장생을 하사하였죠. 사실은 좋아했습니다. 용사를. 이게 2권 포인트가 됩니다. 500년 전 마왕(주인공, 이하 마왕)과 일전을 치르며 승리한 건 좋은데, 500년간 용사는 죽지도 못하고 폐인처럼 지냈죠. 부활한 마왕과 재회 후 우동을 얻어먹었습니다. 슬럼가에서 거적때기를 걸치고 초라하게 살아가던 용사는 꼴이 말이 아니었죠. 그래도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하는 선량한 마음씨는 변함이 없었고, 그 길이 아무리 험하고 힘들어도 자기를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500년 전 원수이자 호적수였던 용사가 마음만은 변치 않았다는 걸 알게 된 마왕은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죠. 이후 배신한 마왕의 부하의 난동에 궁지에 몰린 마왕을 도와주기도 했고, 배신한 부하를 없앤 후 이상한 인형에 집착하는 그(배신한 부하)의 비서가 용사를 서포트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슬럼가에서는 지내지 않게 되었나 봅니다만, 앞으로 마왕의 앞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기대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용사는 드래곤 볼의 베지터 포지션이 아닐까 싶군요. 참고로 마왕은 배신한 부하의 으리으리한 집을 강탈해서 마키나(메인 히로인)와 알콩달콩 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술잔을 나눈 맹우(비유적), 맹우가 위기에 처하면 구해주는 건 당연한 거다. 2권 히로인과 같이 들어간 욕실에서 할 말은 아닌 거 같지만, 대놓고 복선을 투하하고 그 복선대로 히로인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구해주는 마왕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왕은 6명 있다는 부하의 생사를 알려주는 오브젝트인가 뭔가가 있다는 아키하바라 마법 학원에 위장 전학을 합니다. 그 물건은 학원 지하 보물고에 있다는데 문제는 문을 열려면 열쇠 3개가 필요하고, 행방을 쫓다가 아키하바라(독립된 도시)의 존망이 걸린 일대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만, 정확히 마왕은 제3자의 입장이고 그 중심에 이번 2권 히로인이 있습니다. "히즈키" 마왕은 히지키(해산물 톳을 의미)로 불러서 매번 그녀로부터 태클을 받는 게 일이죠. 그녀는 마력이 없습니다(최대 복선이자 포인트). 마법 학원에 다니면서 마력이 없다는 건 치명적인 일. 그래서 집단 따돌림을 물론이고 괴롭힘까지 당하는 비운의 히로인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마왕을 끼얹으면 어떨까? 선두에 서서 그녀를 괴롭히던 금발 양아치를 마왕이 보기 좋게 뭉개버리자 뿅 가는 히로인. 운명의 여신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사가 '내가 위기에 처하면 구해줄 거야?' 사실 여기까지 제법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설명은 생략하고, 마왕은 당연하지를 외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아치가 여자 어떻게 해보겠다고 입에 발린 싸구려 멘트가 아니라 궁예(아주 중요함) 같이 근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대사를 날린다는 것입니다. 욕실이라는 클리셰 같은 장면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대사라니 좀 깨지만, 아주 그냥 복선은 복선대로 뿌리고 여심을 사로잡는, 굉장히 흥미로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는데요. 이후 복선대로 그녀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또다시 마왕은 그녀를 구해줍니다. 이거 스포일러 아니냐고요? 더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어서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히로인(히즈키)에게 어떤 위기가 찾아오고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냐죠. 사실 히즈키를 매개로 해서 더 흥미로운 장면이 있습니다. 좀 더 설명해 보자면, 히즈키는 누군가에 의해 무언가를 강림 시키려는, 매개란 재물 혹은 그릇이라는 뜻이고 어떻게 보면 강림술이라는 클리셰의 한 부분이지만 그 클리셰에서 히즈키의 상황과 마왕이 어떤 말을 하느냐가 이 작품의 백미입니다. 아주 그냥 여심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데 남자인 필자도 뿅 가겠더군요. 작가가 대사라는 표현력에 있어서 여느 작품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여서 보는 필자가 부끄러울(비하가 아닌 칭찬) 정도였군요. 그로 인해 두 명(최중요 포인트)의 히로인이 구원받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맺으며: 여전히 근미래 고도로 발전한 과학과 그에 따른 어둠을 다루는 사이버펑크 표현력이 상당히 좋습니다. 오히려 1권보다 진화했다는 느낌이군요. 작가가 준비를 많이 했고, 작가의 필력도 받쳐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해주었습니다. 거기에 궁예같이 근엄한 카리스마와 걸맞은 대사를 하는 마왕이 상당히 인상적이죠(그렇다고 아무나 때려죽이진 않습니다). 이번 2권에서도 히즈키를 구해주면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해 줍니다. 카리스마 있고, 목소리 좋고, 키도 크고, 상냥하고, 자상하고, 배려심 있고, 효자손같이 등도 잘 긁어 주고(히로인이 바라는 대사를 콕 집어서 잘 해준다는 의미), 힘도 있고, 돈도 많고, 욕실에서 히즈키가 빤히 바라볼 정도로 근육 덩어리고, 마왕은 모든 걸 다 가졌습니다. 그런데 연애는 미연시 게임으로만 배워서(이걸 상대에게 당당히 말하는 마왕) 여심을 사로잡는 말은 잘해도 정작 자신에게 향하는 여심은 모르는 벽창호 같은 면모도 있죠. 지고지순 마키나(메인 히로인)에겐 고백에 가까운 말을 한 거 같긴 합니다만. 뭐 어쨌거나 본격적으로 암흑 조직(길드)이 대두하여 마왕과 대립하는 구조를 띄기 시작합니다. 마왕을 배신한 부하도 여기 소속인데, 그 녀석은 우리 조직에서 최약체였다는 클리셰 덩어리 대사가 나와서 놀라기도 했군요. 그런데 열쇠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이것도 히즈키와 연관된 핵심 스포일러라서요. 아무튼 이 작품은 필자가 적극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이때까지 필자의 리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웬만해서는 추천하지 않죠. 덧붙이자면, 리뷰에선 언급하지 않는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도 있습니다. 이것도 최대 스포일러에 속하는 히즈키와 연관이 있어서 언급은 힘들지만 필자가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감동적이거나 그런 건 아니고 소름이 돋았다고 할까요. 물론 필자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여자다움이란 뭘까? 일본은 여자다움이라는 소양을 기르기 위해 다도회 학원도 있는 등 우리나라같이 양성평등을 주창하는 나라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 문화를 간혹 볼 수가 있죠. 뭐 필자도 평등주의자이긴 한데, 각자에겐 각자의 역할이 있으니까 굳이 똑같아질 필요는 없다는 주의이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이번 27권은 늘 그렇듯 큰 사건이 있은 후 쉬어가는 에피소드입니다. 몇 가지 옴니버스식으로 진행되는데요. 첫 번째가 티아를 주축으로 한 클란과 나나의 여자다움, 즉 여자력 키우기라는 낯간지러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자력 하면 으뜸가는 하루미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측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지식을 모아 뜨개질도 하고 아크로바틱 같은 희한한 운동도 하지만 사람은 원래 안 하던 짓 하면 무리가 오기 마련이듯 잘 될 리가 없죠. 하루미는 여자력은 높지만 주인공에게 존경을 받고 있어서 다른 히로인처럼 격없이 대해지는 게 소원이라고 합니다만, 애초에 현실적으로 따지면 하루미는 위계질서가 뚜렷한 학교 1년 선배에다 2천 년 전(7.5권, 8.5권 참조) 알라이아 황녀의 환생체인 그녀를 주인공이 격없이 대하는 건 무리가 따르죠. 그래놓으니 강하게 나가지 못하는 게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한데요. 아마 완결쯤 가서도 선택받지 못하는 인물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러면 2천 년 전에도 마음을 보답 못 받았는데, 환생하고 나서도 선택받지 못한다면 이보다 불쌍한 히로인은 없을 듯하군요.

두 번째는 시즈카에 영혼 기생 중인 화룡제 아르니아가 온천 달걀에 미쳐 날뛰는 이야기로서 몸무게에 민감한 시즈카가 곤란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언제부턴가 자기 몸에 깃들었던 아르니아 때문에 몸무게에 변화가 찾아왔고, 아직 모르던 시절에 다이어트한다고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그녀는 먹는 것에 굉장히 민감해 하죠. 이번 에피스도에서는 시즈카, 키리하, 루스가 등장합니다. 온천 달걀 이외에 신사에서 소원 기도를 올리는 것도 있지만 소원이야 뻔한 거고. 세 번째 이야기는 많이 먹기 대회라는 동네 축제에 참가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사나에와 티아, 주인공을 주축으로 해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출동해서 누구 위장이 가장 큰가를 겨루는데요. 그냥 일상생활 같은 거라서 패스. 네 번째는 포르트제에서 일어난 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해 몇 달이나 학교에 가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놓인 이야기입니다. 마법사 협회에서 등장인물들 대역을 내세워 등교는 시켰으나 명색이 정의를 추구하는 마법사 협회로서는 아무리 명분이 있다고 해도 학교를 안 다녀 놓고 다닌 것처럼 하는 건 아닌 거 같아 시험을 치르게 하지만 아무래도 상태가 안 좋은(주로 유리카) 몇 있다 보니 유급 위기가 찾아옵니다. 거기다 주인공과 티아간 경쟁심과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는 통에 왁자지껄해지죠. 티아로서는 편지 한 장만 남겨두고 지구로 돌아가버린 주인공이 못마땅해서 열받은 상태, 클란도 주인공에게 맨날 놀림당하며 곱게 못 죽을 거라 독설을 날리면서도 따라오는 게 흥미롭죠.

맺으며: 이번 27권은 너무 활약하는 것도 독이 된다는 철학 같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2천 년 전 나라 구한 것만으로도 영웅으로서 대대손손 전설로 내려온 인물이 실존하며 이번엔 행성(포르트제) 전체를 구하는 업적을 이뤘으니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는 말로는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죠. 주인공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도 만든 회사 주가가 오르고, 택시를 탔더니 이 택시는 주인공이 이용한 택시라며 전시가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본다면 광기로 여겨지기엔 충분할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열기가 식은 후의 일은 어떻게 될까. 군(軍)을 황제의 의중과 상관없이 단독으로도 움직을 수 있는 권한이 있고, 말 한마디에 경제가 좌지우지된다면? 택시를 탔는데 그 택시가 전시되었다니까요? 혜택을 받는 기업이 있으면 그렇지 못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고, 힘으로 인해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더 큰 힘을 가진 자가 존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공포를 불러오겠죠. 그래서 주인공인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지구로 돌아가버린 것에서 마왕을 무찌른 용사는 또 다른 마왕이 되기 전에 몸을 숨겨야 된다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거 같아 좀 씁쓸해지기도 했군요. 이런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황제가 되고 히로인들을 부인으로 맞이하는 엔딩은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들게 했습니다만, 이런 독자들의 마음을 예측한 건지 작가는 그에 따른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하는군요.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던전이 공략되지 않아 모험가들이 몰려들고, 몰려들면 퀘스트 발주하느라 정신없고, 모험가 = 무뢰배 공식답게 어중이떠중이 자기 잘난 듯 목소리 크면 이긴다는 마인드에 내가 누군 줄 알아?라며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모험가)을 상대하느라 오늘도 접수원은 이마에 핏대가 섭니다. 접수원 '아리나(이하 여주)'는 그런 모험가를 상대하느라 아주 죽을 맛이죠. 그녀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입니다. '평온'. 그런데 던전이 공략되지 않아 퀘스트를 받으려 북적이는 모험가들 때문에 평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중이죠. 거기다 선배와 상사는 서류 뒤치다꺼리를 걸핏하면 그녀에게 떠넘겨주는 바람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합니다. 야근을 없애고 일거리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선배들과 상사를 담그면 되나? 뭐 그럴 순 없고. 망할 모험가 시키들 얼른 던전을 공략해 줄 것이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무능하고 자빠졌다며 여주는 마음속으로 저주를 퍼붓습니다. 해야 할 일은 하나. 니들(모험가)이 힘들다면 내가 해주지. 그녀는 변장을 하고 한창 공략 중인, 길드 최고위 파티들이 고전을 하며 퇴각을 고려하는 최전선에 난입합니다. 그리고 커다란 워해머를 꺼내서 던전 최종 보스인지 뭔지를 단 한 방에 보내 버리죠. 이제 던전이 공략되었으니 야근은 끝이라며 룰루랄라 길드로 복귀만이 남았는데...

접수원직은 현실 공무원처럼 평생 직장이고, 복지도 좋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꿈의 직장입니다만, 투잡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주는 가명으로 모험가 등록을 해둔 상태고, 오늘같이 던전 공략이 지지부진하면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다혈질 소유자로서 세간에서는 그런 그녀를 '처형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여주가 처형인인지는 아무도 모르고요. 들통나면 접수원직에서 해고되니까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직접 던전에 내려갔다가 어느 파티 리더(이하 남주)에게 들통나버립니다. 평온을 사랑하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무난한 생활을 하고 싶었던 여주에게 위기가 찾아오죠. 처음엔 들켰을 거라곤 꿈에도 모르다가 남주가 찾아와서 너 님 처형인 아님? 이번에 파티에 결원이 생겼는데 접수원 그만두고 우리 파티에 가입하실? 여주는 이 세계에서 한 차원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투기로 비유하자면 이 세계 모험가들이 F-16 급이라면 여주는 F-22(랩터) 급이죠. 세간에서 처형인은 신비함으로 아이돌급 인기를 끌고 있으며, 길드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중입니다. F-22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녀만 있으면 던전 공략은 너무나 쉽게 가능하니까요. 그러나 모험가 대응 접수원 생활 3년 차, 당연하게도 그녀는 불안정한 삶과 대출도 안 되는 모험가 따위 하고 싶지도 않아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남주가 어떻게든 여주를 파티에 영입하기 위해 여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짓을 저지른다는 것이군요. 남주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기 싫을 정도로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될 짓을, 스토커라는 최악의 행동을 서슴없이 해댑니다. 여주가 가는 곳마다 미행해서 마치 우연인 듯 접근하고, 그녀의 의지 상관없이 파티에 들어오라 강제하는 통에 여주는 아주 기겁을 하죠. 워해머를 휘두르며 진짜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는데도 남주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스토커가 범죄인 이유가 여기에 있죠. 여자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만족만 추구하는. 기둥서방이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순진한 여자 꼬시듯 친한 척 굴고, 여주가 싫어하는데도 식당에서 옆에 붙어 앉는다거나(여기도 미행으로 따라옴), 나중엔 여주 집이 부서져 여관살이 중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아침에 찾아와 그녀를 불러 대죠. 자기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길드 마스터를 움직이고, 침실에 난입하고, 진짜 소름이 다 돋습니다. 이런 인간이 도시에서 최상위를 달리는 파티를 꾸리고, 자상함과 잘생긴 외모로 여자들에게 절대적인 신뢰와 호감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질이 나쁜 게 겉으론 선 한 척, 이면엔 전형적인 악당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싫어도 남주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악의는 없다 해도 행동 하나하나가 현실에서 심각한 범죄에 해당하지만 사법 쪽에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전형적인 스토커 형질이라는 것에서 굉장히 혹독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바로 여주의 행동이죠. 이런 질겁할 행동을 하는 남주를 진짜 반죽음으로 만들어서 곁에 못 오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여지를 줌으로써 남주로 하여금 스토커 짓을 계속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물론 진짜로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남주의 성격도 있고, 던전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그를 리타이어 시키면 야근이 끝도 없이 늘어나는 부조리도 있어서 이도 저도 못하는 중이긴 합니다만, 여기서 제일 문제는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 작가겠죠. 결국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처럼 흘러갑니다. 여주 주변을 맴돌며 짜증은 나게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짓은 안 하는, 악의는 없으니까, 서류 처리도 도와주고 친근하게 말도 걸어주니 조금씩 쓰레기 스토커(남주)에게 마음이 생기는 여주를 보고 있으면 아주 그냥 환장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히로인이 질 나쁜 남캐릭을 좋아하는 속칭 비처녀 논리가 아니라 범죄(스토커)에 굴복하는 이야기로 이끌어 가니까, 정상적인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준법정신에 반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니까 진짜 어이없음이 하늘을 찔러준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어느 순간부터 파티 영입에서 여친 만들기로 선회한 이야기는 여기에 기름을 붓습니다. 스토커가 결국 승리해서 싫다는 여자를 강제로 취하는 그런 느낌이 장난 아니었군요.

맺으며: 사실 지적할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할 스토커 짓에 대한 단죄가 없다는 것, 결국 그 스토커에게 굴복하는 여주, 파티 영입은 뒷전이 되고 여주를 여친으로 만들어보겠다고 변질되어 가는 남주, 이런 시키가 어째서 남주일까 생각을 들게 하는 저질스러운 행동들(싫어하는 여주의 감정을 철저히 무시하니까 여기서 반감이 제일 크게 온 듯),이걸 포장해서 순애로 만들어가는(여기서 두 번째 반감 생김) 작가, 절대적인 비밀이었을 터인 처형인이라는 이중생활을 지킬 생각이 없는 여주의 답 없는 행동들, 갈수록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버리는 게 웃겨 줍니다. 결국 야근도 자업자득이 되어 가고, 길드 마스터에게까지 정체가 발각되어 이용만 당하고, 길드 마스터가 내건 보상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아 먹튀 당하고, 그럼에도 처절하리만치 접수원직에 고집하는 여주, 그 이유로 어릴 적 어느 모험가와의 약속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개연성 없이 감정이입만 엄청 해대서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말은 불안정한 모험가의 삶이 싫다지만 남주의 으리으리한 삶에서, 그녀보다 능력이 한참이나 떨어지는 남주가 그 정도의 삶을 보여주는데 여주의 능력이라면 성(城)을 구입해서 안락한 삶을 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도 하지 않는 변태성, 중반부터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 하는 생각을 들게한 두 번째 작품입니다. 공교롭게도 첫 번째 작품도 본 작품을 출판한 출판사의 작품이라는 것이군요. 내게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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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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