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근 한 달 만에 신(神)에 의해 이세계로 보내진 1천 명 중 300여 명이 리타이어 했습니다. 여기서 리타이어란 물리적으로 사망한다는 뜻입니다. 신(神)은 자신이 이세계에 보낸 이들의 삶을 지구로 송출해 하루 내내 일거수일투족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이세계로 보내진 사람들은 자신의 채널에 시청자가 늘어날수록 각종 혜택을 받습니다. 주인공 '히카루'는 원래 1천 명에 포함되지 않았었습니다. 주변에서 선택된 건 소꿉친구 '나나미'였죠. 어릴 적부터 같이 지내온 이들은 이제 가족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나나미'가 이세계에 가서도 무사하게끔 정보를 모아주는 등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세계에 가고 싶었던 괴한에 의해 '나나미'는 목숨을 잃었죠. 마침 그 현장을 목격한 주인공도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주인공은 이세계에 소환되어 있었죠. 그리고 그런 그에게 도착한 메시지 '소꿉친구를 죽이고 이세계로 전이한 살인자'. 이것은 그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작용합니다.

이번 2권을 한 줄로 표현 하라면, '어느 날 갑자기 내 마음속에 들어온 너'. 1권에서 나나미가 살해당한 것에 대한 충격과 그 죄를 뒤집어쓴 충격, 살인자 주제에라는 매도의 말을 퍼붓는 지구인들(지구에서는 생중계를 보며 해당 전이자에게 메시지 보낼 수 있음)에 의한 대인기피증,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받을 가족들. 주인공은 마음이 망가져 버리죠. 그리고 그의 삶에서 안주할 곳이 되어 주고 싶었던 '리프레이아(히로인, 이하 리프)'. 리프는 자신을 구해준 주인공에게 한눈에 반해버리죠. 그리고 그날 저녁에 고백으로 이어지는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가는 기행을 펼칩니다. 주인공은 거절하려던 찰나 고약하게도 신(神)은 이때라는 듯이 시청률 경쟁 이벤트를 개최합니다. 1등 상품은 "소생의 비약". 사망한 사람 중에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 중 딱 한 사람 살릴 수 있는 비약이죠. 주인공은 무슨 짓을 해서든 1등이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눈앞에 여신이라고 해도 믿을 미모의 '리프'를 이용하려 하죠.

시종일관 시청률 1위를 하기 위해 주인공은 리프와 '푸르'라는 고양이 수인을 고용해 던전에 들어갑니다. 사실 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1권 후반부터 그랬지만 2권은 리프가 얼마나 주인공을 사모하는지, 그리고 그런 마음을 이용한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절절한 마음들을 굉장히 흥미롭게 풀어 냅니다. 리프는 항상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따라가려 하고, 던전에서 그의 지시라면(탐험자 계급은 리프가 더 높음)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려 합니다. 주인공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시청률 1위를 만들어 가죠. 그래서 초반에는 여자의 마음을 이용해 파렴치를 일삼는, 지구인들이 매도했던 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어서 꽤 나쁜 인상을 받게 합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며 리프의 마음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부분들은 꽤나 가슴 아프게도 하죠. 이 시청률 이벤트가 끝나면, 리프는 빛의 세계로 자신은 어떻게 되든 좋다고 진심으로 바랄 정도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 우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소꿉친구 '나나미'를 소생 시키려 하죠. 그런데 지금 그의 곁에서 마음을 표현했고, 그 마음을 알게 된 주인공이 '리프'가 사망한다면 어쩔? 설마 이젠 개도 안 물어갈 소재를 쓰진 않겠지? 결과는 직접 확인들 하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본 작품을 다크 판타지 작품 순위에서 최상위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설정만 놓고 본다면요. 하지만 인간관계와 진행을 놓고 본다면 최하위에 놓겠습니다. 결과를 본 필자의 소감은 '엄청 상냥하면서 역겹다'. 경우에 따라 본 작품은 출판사의 메인 작품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설정들이 우수합니다. 유x브를 모티브로 해서 각종 특전을 받기 위해서는 시청률을 올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되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죠. 주인공은 마음이 망가져 홀로 어둠에 묻혀 살아가길 희망합니다. 그런 어둠 속에서 끌어내는 역할이 '리프'였고요. 리프는 빛 속성으로서 주인공에게 늘 빛을 선사하려 합니다. 주인공은 어느새 그녀가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는 걸 깨닫죠.

그래서 마음이 망가진 주인공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리프'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 예로 리프는 주인공을 도시 밖으로 이끌며 하늘이 이렇게 푸르다는 것을, 들판이 이렇게 녹색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 행동이 결실을 맺어 처음으로 주인공은 웃을 수 있게 됩니다(비유하자면).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주인공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좋아한다며 겉몸이 달아가기만 합니다. 그런 그녀를 떼어 놓기 위해 주인공을 자신의 정체와 그녀를 이용했다는 것까지 밝히지만 리프는 '그래서요?' 얼핏 용서한다는 의미로 비칠 수 있으나 리프는 주인공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른 집에 불이 나도 내 집이 아니면 관심이 없듯이, 그런 행동을 보이죠. 나아가 또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던전에서 마왕(던전 보스 같은 거)과 일전을 벌이며 주인공의 지시를 깡그리 무시하고 닥돌해서 주인공의 염원을 박살 내버리는 장면은 대체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게 만듭니다.

이래서 설정은 좋은데, 인간관계와 진행은 꽝이라는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뭐 사실 막판에 리프의 발암적인 행동으로 인해 주인공이 짊어지고 있던 짐의 무게가 낮춰지기도 했고, 진짜 소중한 건 눈앞에 있다는 걸 깨닫는 계기도 마련했으니 리프의 명령 불복종은 나쁜 행동은 아니었긴 합니다만, 문제는 그걸 보고 있는 독자들이 이해를 하느냐는 별개죠. 그동안 소꿉친구를 살리기 위한 고생은 그냥 이벤트를 위한 퍼포먼스였나?라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엔딩 스포일러 안 하려니 리뷰가 두루뭉술해지는군요.

어쨌거나 필자의 주관입니다만, 히로인 선택을 잘못해서 다 말아먹는 2권입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아서 홀로 살아가려는 주인공의 애잔한 마음은 자칫 고구마가 될 수 있었으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절절히 표현하고 있어서 답답함은 없었군요. 소꿉친구가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장면을 봐야 했고, 자신도 죽임을 당해 이세계로 넘어온 것도 모자라 사람들이 살인자라고 매도한다면 보통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겠죠. 그래서 '리프'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면, 주인공이 왜 이리 필사적으로 사냥에 나서는지에 대한 이해를 하고, 주인공이 정체를 밝혔을 때 그를 포근히 감싸주며 이제 괜찮다는 말이라도 건넸다면 주인공은 구원받았을 테죠.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는다는 이 작품에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정체를 밝혔는데 그녀는 관심 없다는 듯이 와닿지 않는다는 듯이, 남의 나라 얘기하듯 관심 없다는 듯이, 그보다 '너 좋아해'. 그 자리에서 이 말이 왜 나오지?

맺으며: 다크 판타지로서의 설정은 꽤 높은 점수를 줄만합니다. 이제 앞으로의 관건은 지구에서 보내온 메시지를 주인공이 읽느냐 계속 읽지 않느냐군요. 메시지 창 앞부분에는 살인자라는 매도의 말로 도배되어 있어서 트라우마 작렬 중인 주인공은 절대 읽으려 하지 않고 있죠. 이후부터는 주인공이 누명을 벗었고, 응원의 메시지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주인공은 양지로 나올 수 있을까. 3권에서 새로운 만남이 있을 예정입니다. 아마 이 만남이 주인공에게 있어서 리프는 해내지 못했던 주인공의 인생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주인공에게 지구에서의 반응과 메시지를 보여준다면, 주인공의 인생은 지금부터 달라질 것인가. 그리고 그 인물에 의해 주인공이 바랐던 염원도 이루어질 수 있을 듯한 예감이 들었군요. 그런데 고양이 수인 '푸르'는 왜 나오다 마는 건가요. 푸르도 1권에서 주인공이 구해준 고양이 수인으로 던전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죠. 일러스트도 잘 뽑아놓고, 성격도 매사 긍정적인 집고양이 같아 호감이 엄청 가는데 중반부터는 아예 언급조차 안 하네.

 
블로그 이미지

현석장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13)
라노벨 리뷰 (859)
일반 소설 (5)
만화(코믹) 리뷰&감상 (126)
기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