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비를 부르는 사나이. 피리 부는 사나이 확장판인가? 아무튼 뭔 행사만 했다 하면 비를 불러서 취소시키는 사나이가 있습니다. 초딩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소풍을 4년 연속 비를 내리게 하여 취소시키고, 중딩, 고딩, 대학, 직장을 다녀도 야외 행사만 했다 하면 비를 내리게 합니다. 한 날은 주인공이 참여 안 하면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해 보니 주인공 탓 맞다는 게 밝혀지죠. 그러니 주변에서는 [비의 남자]라고 놀림 아닌 놀림을 받는 등 유년 시절은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문득 아프리카나 중앙 아시아에 주인공을 갖다 심어두면 땅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찮은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작가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나 봅니다. 이세계로 보내 버리는군요. 어느덧 그의 나이 30대, 회사 마치고 퇴근하던 길에 빈혈이 와서 철퍼덕 엎어진 끝에 일어나지 못하고 눈 떠보니 이세계고, 눈앞에 여고생 나이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있고, 그녀의 손을 덥석 잡는데, 경찰 아저씨 불러야 되는 상황이랄지 같은 이벤트가 벌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에 발매되었고, 2권으로 완결되는 작품입니다. 비를 뿌리고 다니는 어느 30대 노총각이 비명횡사해서 눈 떠보니 이세계더라가 주된 내용입니다. 먼치킨이 되어 잘난 맛에 살아가는 파이트 계열은 아니고, 농사짓는 힐링 계열인데요. 주인공의 체질을 이용해 채소를 기르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이라면 써먹을 곳이 많죠. 농사지을 때 물은 반드시 필요하고, 군사적으로는 홍수를 일으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같은 일도 찍을 수 있는 능력이라 하겠습니다. 주인공은 이세계에 도착해서 여고생에게 구해진 후 마침 형편 좋게도 대현자라는 그녀의 할아버지의 제자가 되어 마력을 조작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비를 자기 의지로 조종할 수 있게 되면서 채소 기르는데 적합한 밭의 물뿌리개로 전락하죠. 참고로 지구에서 비를 몰고 다녔던 건 체질이 그랬던 게 맞았고, 이세계같이 마법의 마짜도 몰랐던 세계이니 컨트롤 방법을 당연히 몰랐던 주인공은 튕겨나서 이세계로 오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하늘에서 30대 남정네가 툭 떨어졌는데, 이놈이 어디서 굴러먹던 말 뼈다귀인지로 모를 텐데 냅다 주워서 간호해 주는 히로인(여고생)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뭐, 세계관 자체가 평화롭기 그지없는, 토끼 마물이 최강으로 나오는 그런 세계이니 면역력이 있을 리가 없겠죠. 아무튼 마을 사람들은 수백 년 전에 비(雨)로 인해 뭐 안 좋은 트라우마가 있는지 비를 몰고 다니는 주인공을 경원시하는군요. 시골 텃세? 먼저 다가가서 저는 나쁜 놈 아닙니다라고 오해를 풀어야 하겠건만 텃세 비슷한 감정을 가지는 주인공, 하기야 지구에서 좋은 소리 못 듣고 자랐으니 피해 망상쯤은 가질만하겠죠. 사부의 권유라 쓰고 물뿌리개를 이대로 방치하는 건 좀 그렇고 하니 밭을 개간해서 채소라도 길러볼 테냐?라는 스승 대현자의 말에 따라 우리네 조선시대나 유럽 중세 시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풀을 뽑고 쟁기질을 하며 밭을 개간해 갑니다. 보통 이렇게 만들면 영주에게 세금으로 다 뜯기던데...

밭을 개간했으니 채소를 심어야 되는데, 마침 형편 좋게 영주로부터 고대 비(雨)채소라는 아주 희귀한 씨앗을 받습니다. 겸사겸사 딸내미도 받고. 이세계에 가면 하렘은 따놓은 당상이군요. 아무튼 이제 비를 조종할 수 있게 되었고, 밭도 만들었고, 씨앗도 받았고, 남은 건 2세 만들? 30살이나 먹었으면 알 거 다 알지 않나? 자식 농사도 중요하건만 이런 건 없어서 실망. 숲에서 늑대 새끼도 줍고, 품앗이 하듯이 서로가 좁고 줍는 흐뭇한 시간이 흘러갑니다. 다르게 말하면 지루하다고도 하죠. 지구에서 [비의 남자]라며 놀림받은 게 트라우마가 된 건지 늘 비에 신경 썼던 주인공의 마음을 알아채기도 한 듯, 히로인들은 그의 마음을 치유해 주려는 듯 에반게리온 신지 성인판 이야기들은 좀 낯간지럽습니다. 자기보다 절반이나 어린 여자애들에게서 마음의 치유를 받는다 한들 보는 이는 그저 경찰 아저씨를 불러야 하나 하는 생각만 들게 할 뿐이죠. 토끼 3마리에게 휘둘려서 진흙탕에 나자빠지는 주인공 따위 필요 없어요.

맺으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주인공의 체질도 잘만 쓰면 큰 힘이 된다는 둥 이야기를 확장하는 설정은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농사꾼 그 이상은 아닌지라 시종일관 평온하게 흘러갑니다. 수백 년 전, 비(雨)의 시대의 전설에 빗대어 주인공을 신성시하려는 복선도 좀 있고, 소문이 퍼지면 능력을 시기하여 해부하려는 사람도 나올 거라는 좀 시리어스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그냥 한낱 농사꾼의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댕댕이를 주워 밭의 허수아비로 써먹고, 하루 종일 밭 개간에 채소 돌보는 이야기가 주류입니다. 히로인들이 나와도 손잡는 건 고사하고 그저 밭 김매는 이야기만 이어지죠. 이것들 사는 보람이 없어요. 이왕 이세계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면 거름을 만들며 똥도 먹어보고 고생을 좀 해봐야지, 비(雨)로 다 퉁처버리니까 어디서 흥미를 느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다못해 악덕 영주가 나와서 밭을 가로챈다거나 세금을 못 내서 히로인을 대신 잡아간다거나 같은 위기도 좀 겪어야지, 세상을 너무 물로 보는 거 같더라고요. 밭은 개간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지렁이 같은 것도 나올 거고, 이걸 이용해 닭을 기른다든지, 2권에서 보여주려나? 꼬라지 보니 안 나올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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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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