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세계 전이물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한 개 학급 학생 40여 명이 이세계로 전이하였죠. 치트를 부여받아 먼치킨을 찍어가는 흔해빠진 양산형이지만 치트는 선착순이라는 차별점을 두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하지만 특징은 거기까지고, 일명 인싸들이 좋은 능력 다 받아 가고 주인공은 찌끄레기만 받아 간다는 클리셰를 채용하고 있죠. 그리고 법률이라는 통제가 없으면 인간의 본성이 나온다는 왕도물이기도 한데요. 1권에서는 그에 맞게 능력 강탈이라든지 매료라든지 타인을 지배하고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학생들이 출몰했고 그들이 지배하는 콜로니(공동체)를 건설하는 등 세계가 멸망하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같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어 그나마 신선하긴 했습니다만. 주인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스킬을 받아 쩌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구에 있을 때부터 쩌리였던 그는 곧바로 아이들과 헤어져 혼자 아싸 생활을 즐기던 중 여학생들을 괴롭히던 인싸들의 뚝배기를 따버리고, 의자왕이 되어 버렸습니다. ????

이번 2권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살던 동굴을 빼앗기고 홈리스로 살아가던 주인공이 그녀들의 조언에 따라 마을로 내려왔다가... 그녀들에게 잔소리 듣는 게 지겨워 던전에 있다는 페로몬 반지를 찾아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쩌리이자 무능력인 주인공이 인싸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근데 이미 1권 후반부터 무능력 먼치킨이 되었고, 인싸들 뚝배기 따면서 여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우상으로 숭상 받고는 있지만 주인공만 모르고 있습니다. 자, 이쯤 쓰면 이성의 호감에 둔감한 풋풋한 청춘 러브 동정 놈이라고 생각하실 거 같은데요. 엄밀히 따지면 그렇긴 한데, 문제는 주인공이 경계성 지능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히로인들은 주인공이 걱정되어 위험한 일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면, 주인공 왈: 난 잘못 없는데 꾸중을 듣네? 혹시 선물을 안 줘서 그러나? 이성의 호감을 남(히로인들) 탓하며 여관 주방을 빌려 케이크를 치덕치덕 만들어 주는 게 주인공입니다. 히로인들이 바라는 건 이게 아니죠.

던전에 들어가려면 무기가 필요하고, 오타쿠들을 협박해서 구입할 무기 리스트를 만들어라고 했더니, 리스트에 '동료', '상식'이 적혀 있습니다. 그걸 그대로 점주에게 내밀어 사겠다고 하니, 점주 왈: '동료를 사지 않으면 없는 거니? 상식도 우리 가게엔 없는데, 너는 없니? 없는 거 같네'. 아, 진짜 웃겨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주인공은 상식이 없는 게 맞아요. 카스트 최하위 오타쿠들도 주인공에 의해 머리가 불에 타는데도 그렇게 적어냈으니 오죽했을까 하는 느낌이죠. 고블린 슬레이어에서는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고블린 엠퍼러 같은 것도 동네 마실 다니듯 잡고, 바람 씌러 마을 밖에 나갔다 오크 떼를 혼자서 다 때려잡고, 마을에서는 마물떼가 쳐들어온다는 첩보에 따라 만반의 대비를 했더니 주인공이 다 잡았네? 그래서 여학생들이 위험하게 왜 혼자서 잡아라며 잔소리했더니 호감도가 낮아서 꾸중하는 거라며 남 탓을 오지게 해대죠. 기본적으로 협동심도 없어요. 히로인들도 주인공이 그렇게 걱정이면 같이 붙어 다니던가.

맺으며: 주인공은 타인과의 소통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상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죠. 의심을 하고, 그렇게 믿어 버립니다. 독백은 남 탓 80%고요. 히로인들은 히로인대로 감정이입이 정말 대단합니다. 주인공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이 세계는 우리들이 흘린 눈물로 잠길 거라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죠. 이는 인싸들에게 겁탈 당할 뻔하고 죽임을 당할 뻔한 걸 주인공이 구해줬으니 그에 따른 호감도 표현이라 어느 정도 개연성은 있습니다만. 도가 너무 지나친 경향을 보이죠. 그리고 주인공의 능력이 어떻게 되는지를 가늠하기보단 자기들보다 약하다는 편견(주인공은 이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먼치킨)에 사로잡혀 극도로 보호하려 들고, 간도 쓸개도 다 빼주는 걸 넘어 기둥서방을 위해 몸을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한쪽으로 몰빵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물론 필자 주관적 느낌). 마음이 부풀어 갈수록 잔소리가 늘어나며 그럴 때마다 주인공은 호감도가 없어서 그런가 해서 페로몬 반지 원정대를 꾸리죠. 주인공은 대단히 4차원적인 성격으로 타인의 감정을 곡해하고, 안 좋은 쪽으로 해석해댑니다. 한마디로 피해 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을 향한 히로인들의 호감은 Max인데 반해 주인공의 히로인들에 대한 호감도는 언제나 마이너스로 인식 중이고 그럴수록 호감도를 올려야겠다며 기행(2권에서는 페로몬 반지 원정대)을 펼쳐 갑니다. 문제는 단순한 착각에 따른 러브 코미디라면 훈훈하기나 할 텐데, 주인공은 자기가 느끼는 착각이나 오해(히로인들이 주인공에게 호감이 없다는 것들)를 진심으로 믿고 있으며, 자기 탓으로 생긴 오해를 풀기보단 자기는 잘못이 없고, 상대가 잘못(잘못 없는데 왜 꾸중하느냐는 식)이라는 식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있어서 솔직히 보고 있으면 러브 코미디같이 달달한 게 아니라 이런 발암도 없는 거라는 느낌을 들게 하죠. 이걸 두고 경계성 지능 장애라고 하죠? 감정선은 시종일관 히로인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흘러갑니다. 물론 이런 설정 자체가 작가가 의도한 러브 코미디의 한 장르라고 치부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솔직히 너무나 유치해서 결국 반도 못 읽고 도서를 집어던지게 되었군요. 필자 라이트 노벨 리뷰 역사 10년 동안 이렇게 집어던진 건 이 작품이 유일합니다. 후반에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어서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군요. 인간의 본성을 까발리는 아포칼립스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변질이 될 수 있을까 상당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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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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