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룽갈에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여 겨우 그림갈로 넘어왔습니다. 오크 마을을, 화룡의 둥지를 거치며 누구 하나 탈락자를 내지 않고 무사히 그림갈로 넘어온 하루히로 일행의 고난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다룽갈과 그림갈을 잇는 동굴을 나온 일행을 반겨준 건 지독한 안개, 그리고 자신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이들이 시작의 마을 오르타나로 돌아가기 위해선 수백키로나 되는 기나긴 여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무턱대고 움직이기 힘들어 하루히로와 유메가 정찰 나간 사이, 예전부터 유메를 의식했던 란타의 설레발로 하루히로와 유메의 수색에 나사게 되면서 란타와 메리가 2차 조난 당하고, 쿠자크와 시호루 마져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루히로 앞에 새벽의 연대 '록스 파티'가 나타나면서 한편으로는 든든한 아군을,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 했던 충격과 공포를 하루히로에게 선사합니다.


'재발하는 하루히로의 걱정증'


다룽갈에서 넘어오며 하루히로의 리더로서 잘해 나갈 수 있을는지 하는 걱정증이 재발합니다. 지금 가는 길이 그림갈로 이어지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자신이 옳은 선택을 하였을까, 누가 대신 나서 줬으면 하는 생각,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 늘 자기가 나서서 모든 걸 선택하고 실패하면 돌아올지 모를 책망, 후회, 죄책감에 억눌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그에게 '그걸로 괜찮은 거야?'​​라며 마나토가 말을 걸어옵니다.

죽어서 이젠 없을 그의 목소리가... 그리고 모구조의 목소리도... 이젠 그만 포기하고 싶었던 하루히로는 마나토처럼 파티를 어딘가로 이끌어 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기 시작 합니다. ​왜, '좋은 파티가 되었어'​라고 마나토가 이야기해주었으니까... 불사족 노라이프킹의 부하들과 맞서 처절한 전투를 벌려가며 자신에게 맡겨진 파티를 책임감 있게 끝까지 완수하려는 하루히로는 더이상 초식동물이 아닌 리더로서 빛을 발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을 절실히 느껴가는 파티원들...

 

'적지에서 만난 아군, 그리고 찢어지는 파티'

그림갈로 넘어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하루히로는 유매와 함께 정찰을 나가서 만납니다. 오르타나와 600키로​나 넘게 떨어진 적지 한가운데서 같은 클랜 소속의​ '록스'를 만나 이들과 동행하기로 합니다. 예전부터 새벽의 연대 클랜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그 행동에 따라 새벽의 연대 클랜 활동 반경이 엄청 넓어져 버렸습니다. 지금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는 록스의 말에 따라 하루히로 일행은 지금 당장 오르타나라 돌아가지 못하고 남겨진 파티원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전투에 휘말리며 피말리는 상황이 이어져 갑니다.

록스를 만난게 하루히로 일행에게 있어서 천운이나 다름 없었지만, 오크와 언데드가 득실거리는 이곳을 지도도 없이 빠져나간다는 건 있을 수 없었던지라 어쩔 수 없이 같이 행동​한 것이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번지게 되는데요. 하루히로와 유메가 돌아오지 않자, 하루히로와 유메를 구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란타와 메리를 대리고 나섰다가 2차 조난에 빠져 버리고, 남아 있던 시호루와 쿠자크는 예전부터 살고 있는 원주민을 만나 따로 행동하게 되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란타, 이 남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기어이 똥 덩어리 포지션이 빛을 볼 날이 왔습니다. 그동안 이것이 남자로서 정상적인 반응이라며 숱하게 파티 내 여성진​들에게 상스러운 말을 던지고, 나오는 대로 내뱉는 말로 인해 호감도를 끝 모르게 추락 시켰던 그, 시호루는 란타에게 '죽어버리지' 같은 독설을 아무렇지 않게 날릴 만큼 경멸을 하였고, 하루히로는 늘 파티에서 방출해버릴까 하는 생각에 빠지게 하였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차지하고 있는 포지션 덕분에 파티가 위험에서 벗어난 적도 있었고, 말은 썩어빠져도 일리는 있었적도 있었고, 전투에서도 한쪽을 맡아 밀리지 않고 잘 막아줘서 든든한 아군이었다는 것이 하루히로로 하여금 고뇌하게 하였습니다.


늘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머리를 조아리고, 말 싸움에서 밀린다 싶으면 뜻 모를 말을 뱉고 걸핏하면 성희롱을 마다하지 않던 그가 드디어 일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그림갈에 넘어와서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급기야 대놓고 여자를 안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통에 이번 에피소드에서 뭔 일 나겠다 했습니다. 오크, 언데드, 인간, 엘프, 드워프등 온갖 군상들로 합쳐진 '불사족 노라이프 킹'을 기반으로하는 '포르간'이라는 새로운 적의 집단을 마주하게 된 이 시점에서 조난 당했다가 '포르간'의 포로가 되어버린 란타와 메리, 최소한 메리만이라도 도망치게 했더라면 란타는 파티에서의 호감도 업은 따놓은 당상이었건만 그만 차버리고 말았습니다.


제목에 스포일러라고 해뒀으니 조금 심한 스포일러를 하자면, 그 란타가 어디 가겠습니까. 포위되자 머리 조아리기 신공으로 냉큼 포르간에게 항복을 해버립니다. 결국 여기서 하루히로 파티에게 분기가 찾아왔습니다. 파티로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하는 분기점, 한때는 유망한 파티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입은 험해도 나름 실력과 의리 면에서는 타인에게도 인정 되었던 란타, 그동안 축 처지는 작품 분위기를 띄워주는 소방수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 그, 겉으로는 잘란척 폼을 잡아도 본심은 유약하기 그지 없었던 그가 어째서 제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요. 란타 때문에 메리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메리의 각오'

이 작품은 이세계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통 판타지에서 오크나 고블린이 마을 여자를 잡아다 어떤 일을 벌이는지 잘 아실 겁니다. 메리는 각오를 다집니다.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아니 하루히로 파티를 만나기 전 예전 파티원들을 전멸로 이끈 자신은 살 가치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히로 파티를 만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있어도 괜찮다는, 힘들 때 누군가가 어깨를 빌려준다는 안도감, 다룽갈에서 급속도로 가까워진 시호루와 유메와 많은 우정을 쌓았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한때 자신을 구해주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란타는 머리 조아리기를 시전하여 적의 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루히로는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에게, 하루에게 도와줘​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나약해지는 자신, 고개를 떨구고 한없이 지난 나날을 생각합니다.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결코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는 마음, 하지만 모든 게 끝나고 살아나더라도 다시 하루히로 파티에 얼굴을 내밀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가슴이 아려 옵니다.


'애틋해지는 관계'

그동안 하루히로 파티에게 연애는 남의​ 이야기였습니다. 시호루는 마나토가 죽은 후 더 이상 남자를 이성으로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일행과 떨어져 쿠자크와 시호루는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무언가가 싹트는 모습을 보이지만 갈 길은 좀 멀어 보입니다. 이성으로써 연애 감정을 일절 몰랐던 유메는 이성을 좋아한다는 개념을 쪼금 알아 갑니다. 자기를 지켜 주려는 하루히로의 등을 바라보며,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랑인지는 알지 못 합니다. 하루히로도 이성보다 가족으로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짐작할 뿐...


그리고 대망의 하루히로와 메리의 관계는 정말 애틋합니다. 작가가 쪼금만 더 극적으로 표현했다면 진짜 이거 보는 사람들 죄다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렸지 싶은데 작가가 이상한 데서 절제하고 그러는군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메리는 하루히로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약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애써 둑을 쌓아둔 듯하였습니다. 이걸 부수면 걷잡을 수 없게 되겠죠.


하루히로는 처음으로 메리를 인식하고 그녀를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애써 파티원으로서, 동료로서 걱정한다지만 필사적으로 메리를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루히로가 멋있게 다가 옵니다. 그도 이젠 누군가가 등을 조금 밀어주면 이 또한 메리를 향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게 될 겁니다. 시호루는 그걸 알고 있습니다. 쿠자크도 어느 정도 눈치 체고 있고... 모두가 떨어져 있기에 비로소 소중한 걸 알아 갑니다. 부족해도 지친 삶에 버둥거려도 누군가가 곁에 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히로는 목숨을 걸었고, 메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약간 뜬금없는 진행은 분위기를 좀 먹습니다.'

다룽갈에서 넘어와 그림갈에 도착하고 록스 파티를 만난 건 좋은데 뜬금없이 일본 사무라이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마을은 좀 아니다 싶군요. 판타지를 지향하는 장소에 일본색이 짙은 폐쇄적이고 사무라이 집단 같은 마을을 집어넣는 건 좀 마이너스군요. 물론 록스 파티와 하루히로 일행이 앞으로 닥칠 복선을 대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굳이 판타지 분위기를 망쳐가며 그런 마을을 넣었어야 했었군요.


맺으며

​사람은 살아가면서 베푼 만큼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죽여가며 파티원들을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하루히로의 마음이 유독 강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흑자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도 하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게 있습니다. 하루히로가 리더로서, 남자로서 얼마나 믿음직한지는 시호루와 유메의 행동에서 절절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그의 희생정신에 보답하듯이 다룽갈에서부터 몸을 사리지 않고 용감무쌍하게 싸워대는 유메, 1인 몫을 하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는 쿠자크는 애처로웠습니다. 독설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이 더 힘들면서도 유메를 위로해주고, 늘 누군가가 지켜줘야만 했던 시호루는 더이상 울지 않는 성장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하루히로는 언제나 걱정병이 도지지만 도망치지 않습니다. 뿔뿔이 흩어지고서야 하루히로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아가는 파티원들(란타 빼고)이 애잔합니다.

뜬금없는 사무라이 마을 관련 진행을 빼고는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했습니다. 특히 메리의 다짐은 눈물을 자아냅니다. 시종일관 록스 파티와 포르간 전투에 휘말린 전투를 펼치며 사선을 넘나들고 초심으로 돌아간 듯한 하루히로 일행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서 주몬지 아오 작가의 작품 답지 않게 엄청 진지하였습니다. 뭣보다 란타 빼고 하루히로 일행의 연애 관계도가 진전을 보여서 매우 흥미로웠군요. 


그래서 필자는 조심스럽게 자주 있지 않는 추천작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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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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