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늑대와 향신료 12권 리뷰

라노벨 리뷰 | 2017. 10. 18. 01:02
Posted by 현석장군

 

늙지 않고 평생을 젊음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건 주변 사람들이 나만 남겨두고 떠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 고향의 산하(山河)가 변해 간다면 더욱 참기 힘들겠죠.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습니다. 수백 년을 살아온 호로에게 있어서 변해가는 산하는 우리 눈엔 몇십 배로 빠르게 한 풍경에 해당하겠죠. 파슬로에 보리 밭에서 어린 묘목이 큰 나무로 성장하는 걸 곁에서 지켜봤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오랜 세월이 흘러 호로의 고향인 요이츠는 어떻게 변했을까, 인간에게 배신 당하다시피 수백 년을 풍작을 관할했던 마을을 뒤로하고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고향을 찾아 여행을 오른 지도 산천의 풍경이 변할 정도로 시간이 지났습니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상에 맞물려 호로의 고향에 대해 들려오는 소문은 하나같이 암울하기 그지없었는데요. 늘어나는 인간과 그에 호응하듯 개발 열풍은 호로의 고향에도 미치고 있었습니다. 광맥을 찾아 산천을 황폐화 시키는 인간의 손길은 결국 이교도의 땅인 요이츠까지 뻗치고 있었고 이에 하루빨리 고향을 찾고 싶었던 호로는 겉몸이 달아 갑니다. 자신이 없을 동안 달을 사냥하는 곰에 의해 멸망해버린 고향, 뿔뿔이 흩어진 동료들, 동족 없이 나만이 동떨어진 듯한 세계에서의 외로움, 거기에 고향마저 없어질 판이니 호로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한 재난은 없었을 겁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요이츠가 있는 북쪽 지방의 지도를 얻기 위해 은세공사 '프란'의 찾았던 로렌스 일행이 그녀(10대 소녀로 추정)의 부탁을 받아 이교도와 정교도가 이상하게 섞여 살아가는 '타우시그' 마을에서 겪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교도의 상징인 마녀가 살고 있는 숲, 그리고 정교도의 상징인 천사가 날아올랐다는 폭포의 전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이런 것들에 숨겨진 진실을 풀어가면서 드러나는 결말은 애틋한 사랑이었는데요. 마치 로렌스와 호로의 미래를 엿보는 것처럼 이들에게 있어서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요상하게 작가가 가슴 아리는 이야기는 사양하고 싶은지 조금만 더 분발하면 진짜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될뻔하였는데 아쉽게도 옆 샛길로 들어가 버립니다. 한때 성녀로 추앙될뻔하였던 마녀의 최후에서 로렌스의 미래상을 옆볼 수 있었지만 작가가 '헤어질 땐 웃으면서'라고 정해버린지라 어쩔 수 없었지 않나 싶기도 했군요. 요컨대 흔한 클리셰는 필요없다였겠죠. 무슨 말이냐면 영원을 살아가는 호로와 짧은 생을 살아가는 로렌스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에야 엔딩까지 나와 버렸으니 이런 말은 소용없겠지만요.


여튼 마녀의 숲과 천사가 날아올랐다는 폭포를 조사하면서 의외의 결과로 프란이 지목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의 흔적을 쫓고 있었던 프란,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그녀는 무리하게 로렌스 일행에게 부탁을 하였고 그런 프란 모습에서 로렌스는 호로와의 관계를 생각합니다. 자신도 좋아하는 호로를 위해 이렇게 필사적이 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상대를 위해 위험도 마다하지 않을 용기가 있을까, 결국 이교도와 결별하기 위해 찾아온 영주에 의해 칼이 들이대지고 목숨이 위태로워집니다. 호로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로렌스의 각오를 새롭게 확인해갑니다. 원래는 멍청이라며 코웃음치며 갈궜을 로렌스를 도와주는 모습에서 호로의 마음도 로렌스 못지않게 그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원래 이런 게 이런 작품이 추구하는 아이텐티티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가 살아가기 위해 타협을 하고 다시 한번 그 마음을 확인하는, 물론 서로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니 겉으로는 굳이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이번 에피소드는 프란을 통해서 호로와 로렌스는 한층 더 서로를 의식하게 되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처음엔 프란을 죽일 듯이 싫어하다가도 그녀를 통해서 자신들(호로와 로렌스)의 관계를 엿보게 되자 꼬리를 살랑거리며 알랑방귀 뀌는 호로를 보고 있자면 웃음이 떠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내 남자에 찝쩍 거리는 암컷은 용서 못한다고 후반 로렌스가 프란의 방에서 나오자 자고 있었던 호로가 언제 일어났는지 방에서 나오고 있던 로렌스를 맞이할 땐 기겁할 뻔도 하였군요.


맺으며, 갈수록 먹보가 되어가는 호로의 귀여움은 극에 달합니다. 고기를 눈앞에 두고 신나 하다가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분위기로 흘러가자 세상 다 잃은 듯한 표정은 압권이었군요. 거기에 여전히 몸짓 표현은 예술이라 할 만큼 작가의 표현력이 좋습니다. 로렌스의 다리를 꼬리로 탁탁 치며라든지 로렌스가 팔을 둘러 어깨동무를 하고 호로의 앞머리를 만지작거린다던지 둘이 말을 타고 가는 장면에서는 움직이는 호로의 귀 때문에 등이 간지럽다던지하는 디테일은 여타 작품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지 않나 하는군요. 그런데 한가지 불만이자 아쉬운 건 표지가 본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는 코미컬라이즈가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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