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을 잡자! 판타지 세계에 정통한 분들이라면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할 겁니다. 그야 판타지 세계에서 고블린이란 최약체에 지나지 않는, 신참 모험가도 손쉽게 사냥이 가능하고 그렇게 자신감을 얻어 모험가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플래그 같은 몬스터죠. 하지만 고블린을 얕보고 소굴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모험가도 많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재와 환상의 그림갈이라는 작품에 보면 고블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몇 명이나 달라붙어서 겨우 잡는 장면이 있습니다. 리 몬스터라는 작품은 아예 고블린이 주인공이 되어 무쌍을 찍어 대죠. 그 외에 고블린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도 여럿 있지만 글이 길어지니 생략하고요. 


남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최약체 고블린만을 죽이기 위해 10년을 보내온 남자가 있습니다. 외전 코미컬라이즈(1)에 보면 눈앞에서 유린 당하는 누나를 봐야 했고, 무력한 자신을 깨달아야 했던 그는 5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혹독한 수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5살이 되던 해에 모험가가 되어 오로지 고블린만을 죽이며 지내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최선인지만을 생각하며 달려왔습니다. 남에게 하찮다는 손가락질을 당해도, 그리고 이건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죠. 그는 남들은 모르는 고블린의 영악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혜를 부릴 줄 알고 동료의식이 없으면서도 동료가 당하면 복수심에 불타서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그렇게 무리 진 고블린에게 멸족한 마을도 부지기수라는 걸...


이번 에피소드는 외골수 고블린만을 죽이며 살아온 그에게 휴식 같은 시간이 찾아옵니다.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달려온지도 5년, '그래, 그런가...' 라며 커뮤니케이션 장애를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관심이라는 벽으로 타인과의 접점을 만들지 않았던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동료가 늘어나고 그를 눈으로 좇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이것은 세포가 증식하듯 자연스레 늘어난 것이 아닌, 사람은 착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에 응해준다면 설령 커뮤니케이션 장애라도 얼마든지 동료가 생긴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언제나 무뚝뚝해서 상대가 두 마디 하면 이쪽은 한마디로 간략화, 그걸 상대가 지적하면 귀찮아하는 게 아닌 고치려는 노력을 하고 부탁을 하면 '고블린인가?' 라며 언제나 고블린 우선주의지만 상대의 부탁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 의리와 우정에서 그를 따르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걸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자신이 안고 있던 근심을 덜어준 것에서 시작한 호감이 연애라는 감정으로 발전한 접수원 누님, 초보 시절 고블린에게 능욕을 당할뻔하였던 자신을 구해주고 모험가로서의 길을 알려준데다 남들은 가지 않는 가시 밭길을 걸으면서도 그게 당연하다 여기는 그를 바라보며 축복을 내려주는 여신관...


언제나 무리하는 소꿉친구인 그가 있을 곳을 지키고 싶어 고블린 대군이 쳐들어와도 꿈쩍하지 않았던 소치기 소녀, 그리고 얘는 어째서 호감도가 올라갔는지 미스터리인 엘프녀, 근데 문제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그는 둔감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애가 타는 건 어쩔 수 없겠죠. 하지만 이런 미묘한 주변의 변화가 그는 싫지가 않습니다. 크게 표현하고는 있지 않지만 자신을 좋아해 주고 따라와 주는 사람들을 보며 무언가를 느껴가는 고블린 슬레이어, 그런데 여러 여자들이 모여들면서 수라장이 펼쳐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태이 건만 다들 찍어 눌러서 쟁취한다기보다 남자로 하여금 돌아봐 주길 바라는 히로인들이라는 것에서 대단히 흥미롭기도 합니다. 시기하지 않고, 일선을 넘지 않고, 경쟁하지 않는, 이런 하렘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할만한 게 아닐까 했군요.


맺으며, 사실 이번 에피소드는 오전엔 소치기 소녀와, 오후엔 접수원 누님과 데이트라든지 여신관의 축제 준비 같은 이야기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와중에 고블린 슬레이어를 바라보며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부분은 조금 애잔하게 하고요. 특히 여신관이 그에게 우회적으로 축복을 내리는 부분은 대단원이라고도 할 수 있죠. 후반부는 그동안 조금식 언급되어 왔던 복선이 표면화 되어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원한을 품은 모험가가 등장하고 고블린 대군을 대동한 다크엘프의 침략으로 마을이 위기를 맞이해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후반부는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인증과도 같은 것이기에, 그런 그들의 도움을 받아 혼자보다 여럿이 노력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유대이자 정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1. 1, 현재 코미컬라이즈는 두가지가 있습닏.
    본편을 다룬 것과 주인공의 과거를 다룬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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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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