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책벌레의 하극상 3부 3권 리뷰 -우리들의 시작은 지금부터(아마도)-
영주의 양녀, 귀족이 되었다고 고분고분 해질 리가 없습니다. 바탕이 바탕이다 보니 이건 범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죠. 그렇지 않아도 한눈만 팔면 어른조차 감당이 되지 않는 일들을 저질러 버리는데 영주의 양녀라는 거대한 권력을 손에 쥐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애가 현대적 상식과 지식, 개념을 탑재하고 있다 보니 이세계 보통 사람(평민) 같았으면 모가지가 댕강 잘려 나갔을 일을 해버리는 통에 주변 어른들은 늘 골치를 안고 살아가죠. 결국 이런 일들이 합쳐져서 영주의 양녀가 될 수밖에 없었느니 이것도 능력일까요.
그래서 핫세 마을에서 일으킨 고아들 빼돌리기는 이세계와 귀족 개념에 대한 무지와 민폐의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아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세계의 상식을 뒤엎고 그들을 구해 내려다 충돌이 일어나 마을 통째로 멸족 당하는 위기에 빠지게 만들어 버리죠. 영주가 만들고 양녀가 주관한 신전에 빼돌렸던 고아들을 되찾겠다고 마을 사람들이 공격해버린 것인데요. 당연히 반란으로 치부되고 토벌령이 내려지게 되면서 마인은 자신이 얼마나 부주의했는지 통감하게 되고 이전 세계의 자신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어쨌건 겨울이라서 인쇄와 종이 제작을 중단한 마인은 여러 귀족들을 만나 영주의 양녀로써 기반을 다지고 사교계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책벌레에서 돈벌레가 되어 귀족들 상대로 돈을 악착같이 벌기도 하고, 말빨도 많이 늘어나서 뺀질이 오빠 빌프리트와 초등학생 양아버지를 구슬려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는 등 사람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는 일상을 이어가는데요. 여담으로 드디어 페르디난드에게도 먹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튼 사교계에 데뷔한다는 명목으로 만난 귀족과 자재들에게 사기(?)를 치고 페르디난드의 꿍꿍이로 시작된 마인의 성녀 만들기는 발전을 거듭해 어느덧 여신급이 되어 버렸습니다.
귀족원에 들어가는 10살이 되기 전 신식을 다스릴(1) 약을 만들려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재료를 모으고, 고아원을 돌보고, 세례식을 주관하고, 마력을 그릇에 담는 봉납식 등 신정장으로써의 일도 척척해나가며 참으로 억척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이게 다 자기가 판 무덤이니 어쩔 수 없죠. 그래서 그런지 작중 분위기는 매우 밝은 편이군요. 그러다 이젠 가족이라 부르지 못하는 엄마와 아빠와 언니를 만나 문득 그리움에 복받치기도 하고 우라노의 기억이 없었다면 진작에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날도 지속됩니다.
팥 없는 찐빵이라니, 귀족으로써 됨됨이를 배우라는 페르디난드(신관장)의 성화에 못 이겨 지금까지 평민 입장에서 보여 주었던 아장아장, 깨작깨작 햄스터 같은 행동이 많이 줄어 버렸습니다. 정말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사실 이 작품에서 마인의 귀여움은 아이덴티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특히 페르디난드와 죽이 척척 맞아 음흉하고 음습한 검은 속내를 서로 숨기며 후후후 하하하며 투닥투닥 거리는 건 몇 번을 다시 읽게 할 정도로 흐뭇했는데 많이 줄어 버려 뭣보다 아쉬웠는데요.
그래서 그럴까요. 마인과 페르디난드의 관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페르디난드는 마인을 보살피며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도움을 주면서 관계를 이끌어 왔죠. 그 이유로 그녀를 곁에 두면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돈이 되고 마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는데요. 하지만 그녀(마인)의 전생의 기억을 보게 된 이후부터 아닐까 싶군요. 그동안 어딘가 가까이 오길 거부하는 듯했지만 이 날을 경계로 지켜줘야 될 존재로 격상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기억을 더듬은 후 심지가 굵고 멈춰 있기보다 늘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그녀의 강함 이면에 외로움과 그리움이 존재 한다는걸 깨달아 버립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이면에 숨겨진 감정을 바탕으로 그녀(마인)가 한번 품에 들어온 존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마치 거기에 끌리듯 그리움에 복받쳐 펑펑 우는 마인을 귀찮아하면서도 다독여 주기도 하고, 어느덧 구시렁거리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딸처럼 대하다 보니 남들은 다 피하는 그의 뒤에서 아장아장 쫓아 다는 게 이상하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녀의 허약체질을 걱정하여 비싼 약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기도 하고, 이번에 마인의 약이 되는 재료를 구할 때 결계에 막혀 위기에 빠진 그녀를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필사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따로 행동했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늘 그녀 곁을 지키고 있게 되었군요. 그렇다면 둘의 관계는 러브러브 하겠네? 해도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이게 또 쪼는 맛이 있달까요. 주변은 일찌감치 저렇게 될줄 알았다는 뉘앙스지만 정작 본인들은 둔감계인지 아직 둘 다 명확한 속내를 내비치지 않고 있습니다. 비밀의 방에서는 둘 다 허물없이 대화하곤 하지만요. 보다 보면 마인 쪽 보다 페르디난드가 더 신경을 쓰는 모습입니다. 츤데레라서 그런 거 모른다고 일관 중이지만요.
마인이 영주의 양녀가 되면서 친엄마를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다음부터는 피바람이 불지 않을까 싶군요. 벌써부터 차기 영주 자리를 놓고 마인 쪽과 빌프리트(영주 친아들)간 파벌이 형성되어 버립니다. 복선에 몇 개나 투하된 지 모를 정도인데요. 마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온통 종이 만들기에 빠져 지내고요. 10살 때 들어가는 귀족원 복선도 엄청 투하되어서 아마 4부부터는 다른 영지 아이들과도 피바람이 불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뭐, 마인은 마력 하나는 세계 제일이라서 위압만 가하면 다들 꼬리 내리겠지만요.
맺으며, 초중반은 조금 지루한데요. 귀족들을 만나 관련된 이야기나 장사 이야기 등으로 빼곡해서 사실 좀 무미건조합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번 에피소드는 앞으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가려면 어쩔 수 없었지 않나 합니다. 가령 마인의 친엄마로 설정된 귀족가(家)의 등살(벌써 시작됨)과 차기 영주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암투의 서막 편이랄까요. 어쨌건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마인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 되었던 페르디난드가 아닐까 하는데요. 너 구하려고 했던 게 아니거든?라고 하면서도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모습은 장렬하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 1, 라기보다 신식 때문에 뭉쳐진 마력을 풀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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