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나츠키는 헥사만의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이 인간을 차별함으로써 존속을 보장받은 근미래, 멜리스의 침공은 인간들의 가치관을 바꿔버렸습니다. ​'각인' ​전조도 없이 손등에 나타나는 헥사라는 증거인 각인은 인간의 존엄을 말살해버립니다. 발각 즉시 인권은 지워지고 일명 보관소라는 감옥에 갇혀 평생을 썩어야 되는 운명,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은 범죄자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핍박받지 않겠노라고, 자시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에 내몰리지 않겠노라고, 여기 한 남자의 인도로 수십 년간 박해를 받아온 헥사들의 반란이 시작됩니다.


멜리스가 최우선적으로 노린다 하여 헥사들을 고기 방패로 내몬 인간들에게 철퇴를,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약자는 어디까지나 약자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사그라질 뿐이죠. 하지만 약하다고 해서 꿈틀거리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노 게임 노 라이프의 리쿠가 그랬던 것처럼 나츠키의 지략과 인도로 헥사들은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서기 위해, 도약하는 개구리가 움츠리는 것처럼 한껏 몸을 낮춘 헥사들은 미래라는 꿀과 젖이 흐르는 가나안을 찾아 도약을 준비합니다. 이번 4권은 그 서막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십 년이나 고기 방패가 되어 덧없이 쓰러져간 동료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최전선에서 이들은 성공을 기약합니다.


참 이렇게 써놓고 보니 비장하기 그지없군요. 사실 좋게 말하면 우리들은 인간이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목이 생각 안 나는 어떤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저는 인간입니다.' 인간들에게 박해를 받아온 하프의 눈물 어린 호소,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악은 마족, 마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그 애니메이션과 오버랩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약자는 더 이상 꿈틀대기만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죠. 이들이 아니면 멸족을 피할 길 없는 인간들의 무지를 일깨워주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맞서기로 한 것입니다. 개혁이자 반란, 혹은 프랑스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권리와 자유를 찾기 위한...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진지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머리고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이 작품은 수십 년 동안 핍박받으며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되받아 쳐주지 그랬냐라는 진행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헥사는 인간보다 우월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 나츠키는 이런 이들을 인간의 진화형이라고 떠받들어 주죠. 그러니 인간에게 꿀릴 것도 없고 그들에게 핍박받을 이유도 없다고 선동을 해댑니다. 무지한 헥사들은 덥석 물어서 좋다 하고요. 멍청한 사람들, 그동안 얼마나 무지하게 살아왔는지 대변해주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헥사들이 살고 있는 섬을 경호하는 자위대와 미 7함대는 사실 경호라기보다 이들을 감시하는 목적이 크다고 할 수 있겠죠.


여튼 이들이 왜 멍청하냐고 하면, 이들에겐 텐넘버(10명)라 불리는 최정예 사단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마치 막부 시절 신선조를 모티브로 한 작품에서 나오는 사무라이처럼 매우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에피소드에서 일부 텐넘버들은 굉장한 활약을 보여주죠. 진짜 광녀(狂女)처럼요. 그동안 대인전을 상정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번에 쳐들어온 육지 인간들을 맞이하여 대승을 거둔 걸 감안하면 의지 문제가 아니었나 합니다. 고작 나츠키라는 남자 하나로 헥사들의 환경은 급변하기 시작하는 것에서 좋게 말하면 모세의 기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우둔한 지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좌우지간 라이트 노벨에서 히로인은 빠질 수 없는 요소라는 건 필자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간혹 보다 보면 내용보다 벗기기로 승부를 띄우는 작가가 더러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일본에서조차 쓴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죠. 이 작품도 그러한 면이 강합니다. 하나같이 거유이고 미녀라 칭합니다. 평범하고 못생긴 사람은 표현조차 되어 있지 않는 전형적인 지상 외모주의를 보는 거 같았군요. 진히로인 셀렌의 경우만 봐도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죠. 물론 이런 점이 흥미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지한 내용을 희석하게 되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하죠. 그래서 본 작품도 내용을 다 갉아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욱 심각한 건 주인공의 근성론과 자기만의 정의를 강요한다는 것


​2차 대전 일본군이 병사들에게 자주 했던 것이 근성론인데요. 역설적이게도 근성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걸 2차 대전 일본군이 보여줬죠. 노력하면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패배를 인정하지 마, 몇 번을 도전하든 이길 때까지 해, 뭐라는겨?라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헥사만의 나라를 만든다는 비전을 제시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너희들의 피로 이룩하는 거야!라는 게 주인공 나츠키의 본심이죠. 결국은 주인공도 헥사들들을 배척한 인간들과 다를 게 없습니다. 타인을 이용해 나를 지키는 것과 타인의 피로 결과를 이끌어 낸다는 동의어가 아닐까요. 그걸 좋다고 덥석 물어서 나츠키를 연호하는 헥사들의 멍청함은 학을 떼게 합니다.


작중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저 女는 속아서 배가 부르게(임신) 될 거라고, 여튼 이것뿐이면 다행이지만 자신만의 정의를 타인에게 강요도 합니다. 늘 영웅물을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힘이 있다고 노블레스가 되어야 할까? 거들어주지 않는다고 배신자라고 낙인이 찍혀야 되는 걸까. 어떤 영웅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웅도 인간이고 맞으면 아프고 찔리면 죽는다. 공포를 느끼는 건 일반인과 매한가지이고 남들과 다른 건 그저 마음이 조금 강할 뿐, 읽다 보면 자신의 정의로 타인을 판단하지 마라라고 몇 번이나 되뇌게 만듭니다. 2차원식 적 아니면 아군? 그런 주인공을 바라보며 하트가 되는 히로인들 하며 학생들 하며 구x질이 다 치밀어 오릅니다.


맺으며, 소재는 좋습니다. 메키닉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풀어 놓는 작품도 드물죠. 인간이 인간을 배척하는 추악함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갉아먹는 요소가 상당히 많습니다. 의미 없는 쭉쭉 빵빵 히로인의 난립과 섹드립, 편협적인 사상에 물들어 있는 주인공, 힘이 있으면서도 자력으로 뚫기 보다 주인공 나츠키에 연연하여 새끼 새가 어미를 바라보듯 매달리는 상황, 그런 주인공이 아니었으면 언제까지고 고기 방패에 피가 쪽쪽 빨렸을 헥사들, 이런 점들은 블랙 불릿에 나오는 이니시에이터처럼 인간들에게 배척이라는 단물을 받아먹으며 자라온 헥사들의 분노를 희석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블로그 이미지

현석장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50)
라노벨 리뷰 (895)
일반 소설 (5)
만화(코믹) 리뷰&감상 (126)
기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