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열살 최강 마도사 1권 리뷰 -탄광 소녀-
이 작품은 '저, 능력은 평균치로 해달라고 말했잖아요!(이하 능균)'의 자매품 정도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다른 점은 이세계 전생은 아니라는 것, 신에게서 능력을 받지 않는다. 정도군요. 주인공이자 히로인 '페리스'는 강대한 마력을 잠재 능력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자각을 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위기에 처한 마을 소녀 '앨리시아'를 구해줄 때 폭주하게 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게 되고 그녀(앨리시아)의 인도로 마법학교에 들어가 마법 제어를 배운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은 비참함 그 자체로군요. 그녀(페리스)는 철이 들 때부터 노예가 되어 광산에서 마석을 캐며 썩은 빵으로 연명하고 속옷조차 지급되지 않는 열악한 곳에서 그저 이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매일 혹독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정체불명의 마술사의 공격으로 광산은 소멸, 페리스도 여기에 휘말려 죽을뻔하다가 겨우 목숨을 건져 마술사의 추격을 피해 마을로 숨어들었고 거기서 운명의 앨리시아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보다 두 살이 많은 앨리시아를 아흔다섯 살로 봤던 페리스...
괴한에게 납치당할뻔한 앨리시아는 부랑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던 그녀(페리스)를 생명의 은인으로 받아들여 씻기고 먹이고 좌우지간 공들여 대우해주게 되는데요. 보통은 있을 수 없죠.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도 어디서 사는지도 모를 말뼈다구 같은 더러운 애를 집에 들이는 것도 모자라 침대에 눕히고 씻기고 먹을 것을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요. 귀족 계급은 나오지 않았지만 앨리시아의 집안은 못해도 중급 귀족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이쯤 읽었을 때 이 작품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계급(카스트?)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평민과 귀족은 어울려 살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을 겁니다. 더욱이 페리스는 노예 신분, 그러니까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책벌레의 하극상이나 월드 티처, 전생검 같이 사실적인 이야기가 아닌 만인이 생각하는 좋은 방향, 즉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방식의 작위적인 이야기가 주체가 되지 않을까 했던 것이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보게 되면 열에 아홉은 그 아이가 잘 되길 바라잖아요. 이 작품은 그런 계열입니다.
그래서 역겨운 장면 가령 페리스의 마력을 탐내서 억지로 양녀로 들인다던지 씨받이로 키운다던지 같은 지저분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부담 없이 읽을만하죠. 이후 앨리시아와 함께 수도로 가서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으레 여러 에피소드를 거치며 친구도 만들고 앨리시아가 다시 위기에 빠지는 등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어 갑니다. 이 과정에서 참으로 평화로운 나날을 지내며 지난 아픈 과거를 떠 올리고 상처를 보다듬어주는 이야기도 좀 넣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런 것보다 조금 특출난 애를 괴롭힌다는 클리셰를 꼭 넣어야만 했는지 아쉬웠군요.
이 작품의 재미있는 부분? 글쎄요. 애가 광산에서 워낙 시달림을 받으며 살아와서 그런지 매번 저자세로 일관해서 무슨 일이든 사과부터 하는 통에 조금은 질립니다. 철들 때부터 광산에서 노예로 지내다 보니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이게 모에 포인트이긴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꼼지락 꼼지락거리는 게 햄스터 같다고 할까요. 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쓰는 분들이라면 조금은 먹히지 않을까 싶었군요. 하렘은 나오지 않습니다. 역 하렘도 없겠다 싶었군요. 여자애들만 주구장창 나옵니다. 여기서 페리스(능균으로 치면 마일)의 마력 하며 여자애들끼리 뭉치는 것하며 능균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필자는 접하지 않았지만요.
자신이 여자인지도 모르고, 열두 살 여자애를 아흔다섯 살로 본다던지, 문자도 모르고, 빵 이외엔 음식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페리스, 세상 물정과 상식 결여는 어딘가 근본부터 잘못되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녀의 지식은 어딘가 어긋나 있습니다. 작가는 얼마만큼 처절하게 가라앉히고 얼마나 띄워 주려는 걸까. 학교 친구들 앞에서 자신을 노예라고 당당히 밝히고 광산에서 땅굴을 팠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그녀는 어딘가 애처롭습니다. 앨리시아에게 버림받으면 광산에 가서 땅굴을 파겠다는 그녀, 그렇기에 페리스를 절대 놓지 않으려는 앨리시아에게선 엄마의 그림자를 엿보게 합니다.
그래도 좀 아쉬웠던 게요. 옛날 필자는 이런 만화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척추 장애(꼽추)를 안고 마을 사람들에게 냉대와 괄시 괴물이라 매도를 당하며 살아가던 어느 소녀의 이야기. 어느 날 지나가던 꼬마가 엄마에게 묻길 '저 언니 등이 왜 저래?'라고 하자 엄마는 '등에 날개가 들어 있단다'라고 했었고, 그 말을 긍정이라고 하겠다는 듯이 소녀가 등에서 솟아난 날개를 펼치고 창공을 날아 오르는 장면을 끝으로 엔딩을 맞이했었던, 사실 이것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중요한 건 내면이라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긴 합니다만.
여튼 페리스도 초반에 그녀가 처했던 탄광 소녀 시절에서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른 저 소녀처럼 높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중반 이후부터는 역시나 라이트 노벨답게 흘러가는군요. 이럴 거면 뭐 하러 탄광 소녀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그녀의 과거 트라우마는 쉽게 잊혀지고 맙니다. 조금 더 현실감 있게 자신이 노예라는 신분을 자각하며 이 삶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을 내비쳤더라면 극중 분위기를 조금 더 끌어올리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설정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호의를 주의하라는 메시지도 넣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맺으며, 사실 이 작품은 이세계 전생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흐름입니다. 이세계 전생해서 먼치킨이 되어 간다는 방식을 이세계 주민으로 바꿔 놨을 뿐이랄까요. 거기에 세계멸망 복선이라던지 주인공 진짜 정체는 이것이다라는 클리셰등, 흥미로운 요소는 솔직히 없었습니다. 거기다 설정 구멍은 시베리아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도 끄떡 없을 정도로 허술했군요. 가령 앨리시아가 유괴범들에게 노림을 받고 있는데도 호위를 붙이지 않는다거나, 페리스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면서도 방관 모드로 일관하고, 좀 더 다나카나 하다못해 월드 티처처럼 귀족들이 그녀(페리스)를 둘러싼 분쟁이라도 보여 줬더라면 좋았지 않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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