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 전생이나 전이되고 나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독자들의 눈 요깃거리를 선사하는 화려한 마법이나 드래곤을 일도 양단하는 훌륭한 검술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요구되는 건 배짱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카오루'는 그에 충족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녀는 22살 OL로써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인생을 맛보지도 못한 채 파열이라는 끔찍한 일을 당하고 죽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신이 사는 공간에 소환된 그녀는 여신의 실수를 빌미로 삼아 자기 입맛대로 능력치를 골라 이세계로 전생합니다.


능력치라고 해도 그녀가 고른 건 포션 만드는 능력과 언어 구사 밖에 없어요. 왜 그랬을까, 그야 당연하잖아요. 눈에 띄는 짓거리해봐야 찍혀서 귀족들이나 왕족들의 손발이 되어 개고생할 뿐이니까요. 아무리 일기당천이라도 그 이상의 전력으로 밀고 온다면 당할 재간이 없는 겁니다. 시중에 떠돌고 있는 능력물은 사실 독자의 입맛에 맞춘 결과이지 실상은, 역사적으로 봐도 답이 나오잖아요. 예로 이순신만 해도 그의 능력을 시기한 조종의 농간으로 한때 고초를 겪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카오루는 포션을 만들며 도시 한 귀퉁이에서 자그마한 가게를 차리고 현세에서 못다 한 가족을 만들고 오손도손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부모님에겐 꿈에 나타나 이세계에 우리 가계의 핏줄을 마구 흩뿌리겠다고 한 부분은 웃프기까지 했군요. 여자의 몸으로 눈에 띄어봐야 좋을게 없다는 걸 그녀는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왕을 무찔러 사람을 구하고 공주와 맺어지고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는다. 그거 다 허구입니다. 백보 양보해서 그렇게 된다고 칩시다. 그 이후엔? 힘을 가진 용사는 새로운 마왕이 될 뿐이죠.


그런데 우리의 여신 세레스티느(이름 맞나)님은 상당히 어방한 구석이 있습니다. 원래는 그녀(여신)가 담당할 관할이 아님에도 카오루 담당 남신을 사모하고 있었던 그녀(여신)는 그녀(카오루)의 요구를 들어 놓고도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버립니다. 아니 뭐 카오루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는 실수를 범하긴 했지만요. 카오루가 물었던 마법은 있는데 그 마법이 아닌, 마법이 있으니까 당연 회복술도 있을 줄 알았던 카오루는 자신의 능력, 포션 제조가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지 지금은 몰랐겠죠.


결국 그녀의 포션 제조 능력도 화려한 스킬에 버금가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회복술이 없는 세상에서 회복 포션의 가치,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마법적인 스킬에서 몸으로 제조하는 포션으로 바뀐 것뿐, 지금까지의 이세계 먼치킨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사실 요기까지면 식상해서 책을 덮어버리겠지만 작가는 카오루의 영약함 부각 시켜서 이런 식상함에서 벗어난다는 것이군요. 이게 이 작품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그녀는 이세계 전생하고 나서 부모도 없고 빽도 없는 평민으로 살고 있으니 귀족에게는 황금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죠.


그래서 냉큼 데려가 피와 땀을... 아니 단물을 쪽쪽 빨아먹을까 했던 하급 귀족을 보기 좋게 격침 시켜 버리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줍니다. 함정을 파서 빠트린 뒤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으로 빠트리는 영악함, 내가 살아남는 법, 그것은 남을 짓밟고 올라서서 아무렇지 않게 음해하는 것, 내가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야 15살 여자아이니까요. 기어이 왕궁에서까지 그녀에게 손길이 미치고, 그녀는 보란 듯이 음해를 통해 위기를 빠져나가는 과정은 악마가 나타났다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할 지경입니다.


물론 진짜 악마 짓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라는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닌 그저 그녀의 능력만을 요구하는 상대만 그렇게 대합니다. 어찌할 수 없는 부조리를 당해 신음하는 사람을 보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합니다. 혹은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줬던 사람이라던지, 그녀는 처세술이 뛰어나다고도 할 수 있죠. 자신을 이용하려는 인간을 힘들이지 않고 언변으로 배척하고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이나 부조리를 당한 사람들을 만나면 발 벗고 도와주는, 그러다 보니 점점 그녀의 소문은 날로 커져만 갑니다.


애초에 소문나지 않고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여신의 어벙함(마법 관련) 때문에 오히려 부각되어 버립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높은 귀족들이나 판타지에서 빠지지 않는 신을 모신다는 신전의 노림 등을 염려해 먼저 뒤통수를 치기도 하는 모습은 기존의 이세계 전생물의 틀을 비트는 게 아닐까 했군요. 영악함이 상당히 부각되어 있어요. 보통은 귀족의 보호를 받으며 안락한 미래를 약속받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건 개고생이나 다름없다고도 설파하는 등 자칫 판타지계의 이단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왜, 귀족에게 보살핌 받는데 개고생이냐고요? 그야 자기 편한 대로 살 수 없으니까요. 자식을 낳아봐야 유모에게 빼앗겨 거의 얼굴을 못 보고, 싫어하는 귀족과 대화, 남편은 씨를 늘려야 된다면서 당당히 바람피우지, 바람난 상대와 그 아이들과의 동거, 미치지 않고서야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다는 카오루는 참 현실적이다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왕궁 연회장에서 당당히 말하니 이보다 더 기개가 있을까 싶기도 했군요. 그리고 냉큼 도주, 그리고 다음 도시에서는 이왕 이렇게 된 거 거하게 판을 키워 버리는 대범함까지..


맺으며, 자신을 구속하려던 귀족의 집에서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 게 애가 참 태연스럽습니다. 다음 도시에서 그걸 팔아서 밑천으로 쓴다던지 간도 크고요. 길 가다 자신은 여신이다라고 태연히 거짓말도 하고, 그녀의 미모(?)에 반해 벌레가 꼬이기도 하고, 웨이트리스 일이나 가정부 일등 참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신데렐라가 될 수 있었음에도 자유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다던지 네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냐 같은 상황도 참 많이 벌어져요. 그 와중에 선행도 많이 하면서 추종자를 불리기도 하고, 그러다 소문이 퍼지면서 국가적으로 판이 커지는 게 나비 날갯짓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인생은 확전일로를 걷습니다. 이거 2권이 기대되긴 오랜만이군요.

그런데 번역에 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문법상 어색한 건 거의 없었는데 일본 발음을 그대로 번역한 게 몇개 보이더군요. 물론 원서를 보진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 들게 했던 '네, 네에...'라고 해야 될 부분을 하, 하아...라고 한다던지... 의문점이 들 때 으레 하는 '얼레'는 '어라'라든지 '어머'로 했더라면 좀 친근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군요. 오타도 틈틈이 보였지만 S노벨이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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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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