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히로인이 울면서 나 좀 구해줘라고 합니다. 귀족 영애로 자란 고아의 운명이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고, 내 의지대로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도 없고, 그저 다른 귀족과의 연결 고리로서 매매혼을 강요 당하는 히로인은 울면서 주인공에게 매달립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4권에서 주인공 여친(약간 각색)이 된 '스노우'는 주인공이 기억을 봉인 당했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주인공의 기억을 찾아줄 생각도 없었고, 관여할 생각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게으르게 지냈습니다. 그러다 집안 행사에서 집안이 정해준 약혼자를 만나면서 자신은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 도망치기 위해 주인공 바짓가랑이를 잡았으나 냉정한 주인공은 뿌리치고 말았습니다. 사실 스노우는 제3자처럼 주인공을 방치한 것도 있죠. 이걸 논외로 한다 쳐도 주인공으로서는 남의 집안 사정에 개입해 봐야 좋을 거 없고, 무턱대고 그녀를 받아들여서 도피처를 마련해 준들 임시방편도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뭔가 다독여 주거나 안심할 수 있는 말이라도 전해주면 좋으련만, 미적지근하게 제3자처럼, 남의 일처럼 대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스노우'는 망가지죠. 그녀는 주인공을 붙잡기 위해 광기에 찬 집착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사실 울고 싶은 건 주인공인데.

미궁 10층 보스였던 아르티가 그랬고, 노예 소녀 마리아가 그랬고,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히로인들 상당수가 주인공을 향한 맹목적인 집착을 보여주는 게 특징이며, 그 끝이 좋지 않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이번 5권에서는 스노우가 그 전철을 밟아 가죠. 여기서 차이점은 자유가 없는 삶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사람은 오직 주인공뿐이라며 사랑의 감정보다는 도피처로서 집착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을 벗어던진 건 주인공이 싫어한다는 타산이 깔려 있어서이며, 지금 비굴할 정도로 웃는 건 불쌍하게 보이면 주인공이 외면하지 못할 거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죠. 의존증은 점점 커져서 주인공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집착으로 변해가는데, 여기서 답답한 건 주인공입니다. 기억을 잃었음에도 이전 사례처럼 끝이 좋지 않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본능처럼 깨달은 것인지 매물 차게 차버렸으면 신경을 끌 것이지 여지를 남겨두고, 미련도 완전히 거두지 않음으로써 스노우의 집착을 키운다는 것이군요. 그런데 그녀의 집착은 엉뚱하게도 메인 히로인인 라스티아라와 디아에게 쏟아지게 됩니다. 그녀들은 주인공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와 있었죠. 얼마 뒤에 열리는 무투대회에서 주인공이 차고 있는, 기억 봉인의 매개가 되는 팔찌를 부술 계획을 짭니다만, 스노우도 참전하면서 결국 그녀는 최종 보스로 자리 잡습니다.

이번 5권에서는 전에는 없던 비굴할 정도로 헤픈 웃음을 보이고, 날로 심해지는 스노우의 집착을 어떻게 할 것인지, 두들겨 패려고 해도 대륙에서 최정상급 실력을 가져 호락호락하지도 않죠. 그리고 주인공의 기억을 봉인하고 있는 팔찌를 어떻게 부술 건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투대회에서 이겨 주인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스노우, 주인공을 묵사발 내서 반격 못하게 만든 다음 팔찌를 부술려는 라스티아라와 디아(팔찌를 부수면 기억이 돌아옴). 그런 그녀들을 묵사발 내려는 스노우(주인공이 기억을 찾으면 떠날 것이기에). 거기에 갑자기 설명 들어가는데, 영웅에 집착을 보이는 30층 가디언 로웬(주인공의 검 스승)의 참전은 일을 꼬이게 만들고, 누군가에게 창조되어 수많은 시간 동안 30층 보스방에서 로웬과 다투고 있었던 리퍼(주인공 몸에 기생하게 된 여자애 유령)는 주인공이 기억을 되찾기로 마음먹게 한 결정적인 공로자이면서 어째 반대하고 나서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몰고 가죠. 사실 리퍼에 대해 좀 애매한 게, 도서 페이지가 많아(e북 리더기 기준 거의 600페이지) 집중력이 떨어진 필자가 건성을 읽어서 그녀의 진의가 무엇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뭔가 복선이 있는 거 같은데, 일단 이번 5권에서는 큰 의미는 없어 보였군요. 문제는 로웬, 6권에서 새로운 최종 보스로 나올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맺으며: 기승전결이 많이 마려운 5권이었습니다. 스노우의 집착 이면에서는 주인공의 우유부단함이 있고, 이 우유부단함은 발암에 가까웠군요. 기억을 봉인 당하고 얼마간같이 지내면서 정이라도 들었는지 어중간하게 대하면서 스노우에게 여지를 줬고, 이게 궁극적으로 주인공 본인은 물론이고 라스티아라와 디아에게까지 위험하게 했으니까요. 그리고 팔찌를 부수는 에피소드도 이렇게까지 질질 끌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페이지를 많이 할애하고, 일본 작품들 특유의 문제점인 실컷 싸우다 너 좀 치는데? 같은 분위기 잡으며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듯이 또 싸워대는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팔찌를 벗을 생각은 있는 건지 같은 연애질하며, 그걸 또 훼방 놓는 히로인들. 이번 5권에서도 주인공을 영입하기 위해 겉몸이 달아가는 여 기사들이 나오죠. 한 명은 아줌마라 히로인이라 부르기엔 좀 어폐가 있지만, 아무튼 주인공에게 아주 환장을 합니다. 여기서 문제를 더 키우는 게 주인공. 무투대회에서 주인공이 내가 이기면 널(상대 여기사) 내 방(침실)에 대려 가겠다고 선언한 것에 여기사 중 하나가 얼굴 빨개지며 쫄래쫄래 따라가는 건 또 뭔가 싶었군요. 전체적으로 보면 주인공은 이렇게 여지를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사를 그 짓(?) 하려고 데려간 건 아니고(스포일러라 자세한 언급은 생략), 문제는 주인공 빼고 다 그런 짓(?) 하려고 데려가는 줄 안다는 것. 근데 정작 주인공은 그 많은 히로인들의 정조를 철저하게 지켜준다는 것이죠. 이게 더 애간장 태우게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 하기야 삐끗하면 인생 나락 가는데 섣불리 아랫도리를 놀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주인공 기억을 되찾나?는 다음 6권 리뷰에서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여왕에게 하사받은 라프타리아(메인 히로인)의 고향 마을 재건 및 개척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뿔뿔이 흩어지고 노예로 팔려 갔던 마을 아이들을 되찾아와 주인공의 노예로 만들어서 사병화하는 일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죠. 근데 노예로 팔려가 고생한 아이들을 왜 다시 노예화하냐면, 용사인 주인공의 기(氣)를 받으면 일반인 보다 성장률이 좋다나요. 다음 파도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 중이고, 전력은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기에 아이들도 싸워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죠. 뭐 아이들도 맛있는 밥을 얻어먹을 수 있으니 싫지만은 않나 봅니다. 새집도 생기고, 주인공이 막아주고 있어서 또 나쁜 노예상에 팔려갈 걱정이 없는 데다 그의 지시에 따라 강해지기까지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죠. 그러다 보니 '아트라' 같은 10살짜리 꼬마 여자애가 주인공을 향한 맹목적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는 지경에 이릅니다. 뭐 아트라는 노예로 팔리다가 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렸는데 주인공에 의해 구원받았으니 맹목적이 되어도 이상하진 않을 겁니다. 전투 실력도 개화해서 아마 주인공 다음으로 강하지 않을까 싶군요. 자칭 라프타리아를 연적 관계로 여겨 티격태격하며 본 이야기에서 스파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죠. 특기는 친오빠 옆구리 찌르기. 주인공에게 당면한 걱정거리는 밤마다 침대에 숨어드는 아트라를 어떻게 하는 것.

이번 12권은 몇 가지 굵직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가 마을 재건에 관한 것인데 딱히 흥미로운 건 없고, 두 번째로는 아이들이 주워온 마물 알을 부화 시켰더니 드래곤이 태어났고, 뭔가를 집어먹고 탈 났는지 마룡이 되어 날뛰는, 갑자기 마왕 강림 같은 좀 황당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전력 하나가 아쉬워 마물도 조련 시키는 지경이라서 드래곤이라니 웬 떡이냐 싶었죠. 근데 파도가 오기 전에 그 드래곤에 의해 세계가 멸망할 뻔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보는 필자도 황당했고. 세 번째로는 사성 용사 중 마지막으로 애먹였던 활의 용사에 관한 것입니다. 걸레에게 속아서 주인공을 악으로 규정하고 날뛰는 꼴불견을 보여주는 게 가관이죠. 주인공 입장으로서는 파도에 대비하려면 용사로 선정된 놈들이 반드시 있어야 부하가 덜 걸리는지라 창의 용사, 검의 용사에 이어 활의 용사까지 자기들만의 정의에 빠져 남의 말을 안 듣는 정신 이상자 놈을 갈아 마실 수도 없고 아주 환장하는 시추에이션이 벌어집니다. 네 번째로는 라프타리아의 집안 사정. 새끼줄 꼬듯 계속해서 이야깃거리를 창출해야 되는 작가의 입장에서 새로운 이야기는 늘 골치거리이죠. 그래서 준비한 게 라프타리아의 집안 사정. 발단은 주인공이 무녀복에 꼽혀서 그녀에게 입힌 것에서 시작. 마을이 불타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히로인이 한 명 합류합니다. 불법 연구로 추방된 김에 주인공을 찾아와 굳이 그의 노예가 되죠. 주인공보다는 그가 조련중인 마물에 관심이 있다는데, 남자로서 패배감이 들 만도 하지만 주인공은 걸레에게 된통 당했던지라 여자가 진심으로 부딪혀와도 이제 속지 않죠.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를 꼽으라면 어째 하나같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히로인들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일단 기억나는 것만 열거해 보자면, 걸레는 주인공 인생을 종 치게 만들었죠. 적이 되면 강하지만 내 편이 되면 약해지는 술주정뱅이(라프타리아 고향 언니)도 있습니다. 이번에 라프타리아 집안 사정이 드러났을 때, 그녀를 보호하려 술주정뱅이가 내뱉은 말은 가히 충격적이죠. 라프타리아를 대신해 언제든 원한다면 동침하겠다는데 정작 주인공은 게이게이 빔을 맞았는지 반응조차 안 해서 패배. 머더 피에로라는 흉악한 이명을 가진 가위녀(이상한 상상 ㄴㄴ)도 있고, 주인공을 신(神)으로 여기며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빠순이(하지만 두 번째로 강하지), 있을 거 다 있으면서 자신은 남자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훈도시녀(엑스트라지만 은근히 분량이 있음), 더 있었던 거 같은데 생각이 안 나네. 정상인은 라프타리아 뿐. 하지만 주인공은 그녀를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죠.

맺으며: 마을을 재건하라고 했더니 인외마경으로 만들고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마룡이 날뛰는 에피소드는 조금 신선한 설정들을 보여줍니다. 안티 마법으로 공격해오는 마룡이라니 그동안 여느 판타지물에서는 못 보던 것을 주인공에게 선사합니다. 활의 용사는 창용사나 검의 용사도 마찬가지지만 어떻게 용사로 선정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똥멍청이입니다. 고귀한 혈통이라는 라프타리아 집안 사정은 뜬금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복선이 나왔던가? 정작 당사자(라프타리아)는 무덤덤, 먹는 건가요? 옷을 갈아입다 집이 불타는 경험은 좀처럼 할 수 없을 텐데 그녀가 해냅니다. 원인은 주인공이 그녀에게 무녀복을 입힌 것이 발단. 무녀복은 선전포고라고 그녀의 집을 불태운 닌자가 언급하는군요. 갑자기 나와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여담이지만 무녀복이 엄청 잘 어울린다면서 일러스트 하나 없는 불편함을 보여줍니다. 13권은 아마 라프타리아의 모국에 관한 얘기가 아닐까 싶군요. 걸레를 기승전결 시키지 않아 좀 불만입니다. 창 용사에 붙었다가 배신하고 검의 용사를 이간질해서 주인공 못살게 굴고, 활의 용사에 붙어서 또 못살게 구는 걸 넘어 어마어마한 빚까지 떠넘기는 빗치를 언제 참교육 시킬 건지. 이거 이러다 마왕급으로 성장시키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요.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1억 년에 한 번 태어나는 미소녀라니 처음엔 이놈의 외모지상주의인가 했습니다만, 그건 단순히 여주의 자뻑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테니까요. 무슨 말이냐면 이 작품의 여주는 절찬리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방구석 폐인이거든요. 3년 전 등교 거부를 하고 자기 방에 처박혀 지나고 보니 이블 킥으로 연결되는 자기애 소설을 쓰고 있더란 말이죠. 이는 후에 두고두고 협박에 이용당하는 처지가 되는 불쌍한 소식이기도 합니다만. 여주가 왜 3년이나 은둔형 외톨이로 지냈을까. 이걸 밝게 이야기할 게 아닌데, 이게 떡밥이었을 줄이야. 본 작품은 마법이 왔다 갔다 하는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흔한 이세계물이나 전생물은 아닙니다. 여주는 왕국인지 제국인지 하여튼 나라 중추를 담당하는 귀족의 영애로 태어났고, 종족은 흡혈귀. 가족 모두, 나라 전체가 흡혈귀의 나라죠. 왜 흡혈귀인지는 단순히 힘이 강하다는 기준으로서의 선택이 아닌, 여주의 힘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주에 대한 개연성 준비를 먼저 해둠으로써 후에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원성을 미리 차단하고, 이야기 측면에서는 처음부터 떡밥을 던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주는 흡혈귀이면서 피를 못 마십니다. 흡혈귀는 피로 영양분을 흡수하는 특성상 피를 못 마시는 그녀는 로리 체형이 되었죠. 이게 그녀의 고뇌일까?

시작은 전장에서 여주가 대장군이 되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장면부터입니다. 은둔형 외톨이인 그녀가 어째서 군을 통솔하고 있는가. 이거 또 일본 우익에 해당하는 제국주의의 산물인가 싶었습니다만, 아니었고, 여주의 입장에서 보면 반전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녀는 지금의 대장군이라는 직함을 극혐중이거든요. 일이 이렇게 된 원인은 며칠 전으로 돌아갑니다. 운둔형 외톨이인 딸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황제에게 간언하여 계약을 맺었습니다. 3달에 한 번 전쟁하지 않으면 폭사하게끔요. 그것도 딸이 자고 있는데 몰래. 아버지 딴에는 밖으로 나가 생활 좀 하라고 한 게 군의 통솔이었단 말씀. 문제는 피를 못 마시는 여주는 체형만 로리인 게 아니라 능력도 없어요. 순간 무능력 먼치킨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그녀는 진짜로 능력이 없습니다. 문제는 실력주의인 제국에서 능력이 없다는 건 곧 쓰레기라는 뜻이고, 일개 병졸이 아닌 군을 통솔하는 대장군이 능력이 없다? 들통나면 소각처리(하극상) 되는 세상에서 여주는 자신에게 능력이 없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허세를 잔뜩 부려야 되는 처지에 놓이죠. 이제 그녀가 군복을 벗고 원래의 운둔형 외톨이로 돌아가려면 3개월에 한번 전쟁에서 계속 이기거나 하극상 당해 하직하거나, 황제의 자리에 오르거나.

그렇게 살얼음판 같은 생활을 이어가는 딱딱한 이야기인가 싶었습니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게 본 작품의 성향은 라이트 노벨이라는 것이고, 라이트 노벨이 진지해지는 건 늑향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본 작품은 개그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전임자를 무능하다는 이유로 하극상 치른 부하들의 살기등등한 건 처음뿐이고 여주를 보자마자 아이돌 취급하며 연호하는 아저씨들(부하들). 섹드립은 덤. 대장군에 취임하면서 서포트하게 된 시종은 여주의 엉덩이와 가슴을 틈만 나면 문질러 대는 변태고, 황제도 로리 할망으로 시종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이 여주에게 성희롱을 해대죠. 약간 흥미로운 건 판치라 같이 그저 벗겨 먹는 저급한 느낌이 들지 않는, 자칫 어두침침한 분위기에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보다 밝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야 여주는 3년 전 등교 거부하며 운둔형 외톨이가 되었고, 요즘같이 학폭이 이슈인 세상에서 등교 거부는 간과할 수 없는 사회의 문제 중 하나니까요. 그걸 희석 시키듯이 성희롱이 등장하고, 저렴하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개그성 발언도 적적히 섞음으로써 분위기를 띄우는 게 예사롭지 않습니다. 여주도 반발하며 씩씩 거리는 것도 재미있죠. 사실 이 모든 건 저렴하다는 느낌 보다 운둔형 외톨이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는 응원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주가 왜 운둔형 외톨이가 되었나. 전반부는 능력 없는 여주가 세상 밖으로 나와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비추었다면, 후반은 등교 거부하게 된 원인을 다룹니다. 현실 세계에서도 나보다 잘나 보이면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비단 학폭만이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그런 성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학폭으로 다루고 있는데요. 여주는 학폭을 당하고 있는 어떤 여자애를 구해주면서 학폭 대상이 되고 맙니다. 여주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능력이 없죠. 문제는 여주가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게 또 가해자의 성미를 건드렸고. 여기서 흥미로운 건 가해자가 왜 가해자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가정 사정 등을 정말 디테일 있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짝 가해자도 주변의 기대에 맛이 가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피해자라는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사람이 태어나 성장할 때 성격과 인격은 주변의 영향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는 걸 잘 표현하고 있죠. 그에 따라 자신은 피해자라 여기게 된 가해자의 폭주는 나라에 위협으로도 다가오기도 하는데요. 그리고 지금, 대장군이 된 여주 앞에 과거의 망령(가해자)이 찾아옵니다. 진뜩진뜩한 타액처럼 엉겨 붙는 가해자를 마주한 여주는 뱀 앞에 개구리 신세가 되고, 여주가 왜 피를 마시지 않는지 대한 이유가 밝혀집니다.

맺으며: 처음엔 비탄의 망령은 은퇴하고 싶다처럼 무능력 주인공이 주변의 착각으로 영웅이 되어가는 이야기인가 했습니다만, 그야 능력 없는 여주가 능력이 있다고 부하들이 착각하기 시작하거든요. 여주는 쫄아서 허세를 잔뜩 부려 사태를 키우고. 근데 초반에 언급했듯이 종족을 왜 흡혈귀로 했는지에 대한 떡밥이 회수되면서 비탄의 망령 같은 작품과는 적절히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군요. 사실 이건 후반에 가서야 드러나는 이야기이고, 무능력이 들통나는 게 무섭지만 인연을 맺은 사람을 소중히, 우락부락한 부하들을 처음 봤을 땐 그 모습에 쫄았지만 속은 순수한 아저씨 같은 그들을 미워할 수 없는 동료애 같은 걸 보여주기 시작하죠. 변태 시종도 우직하게 여주를 보살펴 주니 정이 들기 시작하고요. 이런 일련의 과정이 후반 학폭 가해자의 등장으로 맺은 인연을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특징으로 작용하죠. 그녀의 능력 유무를 떠나 자신들을 정있게 대해주는 상관(여주)을 걱정해 주는. 여기서 또 흥미로운 게 여주가 무능력하다고 들통이 나도 하극상을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느낌을 들게 하면서도 그건 그거 이건 이거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 작가의 유쾌함도 엿볼 수 있었군요. 적절한 개그와 섹드립(전체 연령가 치고 수위가 좀 쎈 부분도 있긴 함)을 싫지 않게 배치하는 작가의 능력이 제법 좋습니다. 이 섹드립도 이성 간은 아니고 백합 위주로 진행되는 게 특징이죠.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느닷없지만 이번엔 서두를 건너뛰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취미 엔터테인먼트 오타쿠 세계에서 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요소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바로 여자 초등학생, 로리 짐승 귀 소녀 + 노예 속성. 당연하게 주인공과 특별한 사이가 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죠. 좀 더 어두운 루트로 가면 선을 넘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 같으면 아청법으로 잡혀갈, 하지만 정식 출판본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에 환상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사실 필자에게 있어서 이런 요소는 오타쿠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 장본인격으로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실제 현실에서 취미 생활로 만화, 애니, 라노벨등을 얘기하면 저런 이미지를 들이밀며 혐오감을 내비치는 사람이 적지 않죠. 이번 2권에서는 누명을 쓰고 더 이상 학원에 있을 수 없게 된 주인공이 길을 떠나며 만난 문제의 여우 귀 소녀 '라티파'와 인연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 라티파의 캐릭 설정이 아주 화려하죠. 이전 생은 여자 초등학생, 이세계에 여우 귀 소녀로 전생, 노예와 다름없는 학대 받던 일상, 암살자로 키워져 주인공을 암살하러 왔다 참교육 당하고 오빠! 오빠! 속성이 되어버린. 참고로 늑대 귀 소녀도 나옵니다.

2천 년대 들어서며 안 좋은 뜻으로 변질되어 버린 오타쿠들이 좋아할 만한 모든 요소들을 이 '라티파' 하나에 몰빵을 했습니다. 전생(지구에 있을 때)에서는 등하교 때 같은 버스를 타며 잘~생긴 주인공에게 뿅 가서 상사병을 앓던 초등학생(여학생), 이세계로 넘어와서는 여우 귀 수인 로리 소녀(10살 전후) +노예 속성. 작가의 취향이 고상하기 그지없죠. 표지는 비율이 이상하지만, 속 일러스트는 꽤나 정성스레 그려져 있습니다. 오타쿠들에겐 환상의 세계죠. 늑대 귀 소녀도 있다니까요? 뭔가 막 저속한 말을 쓰고 싶지만, 필자는 저속하지 않기 때문에 고상한 말만 쓸려고 노력 중이라서 재미없는 리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번 2권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뭔가 아구가 잘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랄지, 작위적이랄지, 하필 주인공을 눈에 가시로 여겼던 귀족가에서 학대받던 애가 라티파였고, 암살자로 보내져 만난 게 전생에서 짝사랑했던 잘생긴 오빠였고, 노예 목걸이의 강제성 때문에 주인공을 죽이려 들지만 주인공에게 구해지고 눈물 흘리지만 전생 때 그 잘생긴 오빠인지 처음엔 몰라보는 드라마 같은 시추에이션. 구해주었으니 책임지라는 듯이 의존증을 발휘하는 라티파.

그렇게 주인공에게 거둬진 라티파는 그와 함께 동쪽으로 길을 떠납니다. 오빠 속성이 되고 나서 주인공과 거의 호각으로 싸운 실력을 잃어버린 건지 연약한 아이가 되어 버리는군요. 나날이 주인공에게 의존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그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 증세로 대성통곡을 하죠. 자아가 거의 완성된 후 이세계로 온 주인공에 비해, 라티파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했던 어린 나이 그대로 전생하여 학대받는 나날을 보냈으니 기댈 곳이 보이지 않으면 정서 불안이 와도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몇 달을 같이 지내며 차츰 안정을 찾아가는 게 인상적이죠. 그리고 미개척지에 있던 정령인들(엘프, 드워프 수인 공동체) 마을에 도착하여 지내면서 라티파의 인간관계가 넓어지고,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오빠 의존증이 많이 호전되어 가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게 되자, 라티파에게 있을 곳을 마련해 주고 싶었던 주인공은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많은 히로인이 나오지만 그 이상의 단계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라티파 또한 이전 생에서 같은 버스를 탔고, 같은 일본인이라는 걸 알아도 보내 주려 합니다. 하기야 대학생(주인공)이 초등학생 소녀와 맺어지는 게 더 이상한 거죠.

맺으며: 이 작품이랄지 2권까지랄지, 특징을 몇 개 알아냈습니다. 주인공은 남자 캐릭터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1권에서 주인공을 못살게 굴었던 대부분의 캐릭터는 남자 캐릭터였죠. 이번 2권에서도 양아치들에게 시비를 받습니다. 누굴 만나든 첫 대면 때 오해를 사서 두들겨 맞습니다. 1권에서 왕녀 납치 오해를 받아 다짜고짜 두들겨 맞았죠(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 못 받음). 이번 2권에서 양아치들에게 삥 뜯길 뻔했고, 정령인 마을 입구에서 라티파를 유괴한 줄 오해받고 정령인들로부터 엄청 두들겨 맞습니다(후에 엄청 사과는 함). 여성 캐릭터들이 엄청나게 나오고 대부분 주인공에게 호감을 보냅니다(일부 귀족 여성 제외). 거의 다 첫눈에 반함. 그런 주제에 썸 타는 건 없다는 것(철벽 방어?). 심지어 담임 선생과 5년이나 같이 동고동락하다시피 해놓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아랫도리에 뭔 문제 있나?). 정령인 마을에서 한창때의 여자애들과 동거하게 되었는데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습니다. 있었는데 편집된 건가? 그 흔한 같이 목욕도 하고, 실수를 가장해 알몸을 본다든지, 그런 게 없는 아주 건전한 전연령가를 보여주죠. 재미없어. 그리고 가장 불만인 점은 권선징악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5년 내내 주인공을 괴롭히고 누명을 씌운 귀족 나부랭이들에게 복수를 하지 않은 것, 암살자로 라티파를 보낸 귀족도 그냥 둔 것, 나중에 해결 하나? 그리고 느닷없이 정령인 마을을 습격하는 정체 모를 놈의 존재는 무엇이고, 1년 넘게 후속 습격이 없는 것에서 대체 뭐 하러 왔는지 설명조차 없다는 불편함. 이번 2권은 좀 많이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정령인(흔히 엘프)들의 나라 유그드라와 나아가 세계의 명운이 걸렸던 세계수 보물전(흔히 던전)을 무사히 격파한 주인공과 그 일행. 인간들을 배타적 시선으로 대했던 정령인 황녀는 눈에서 하트가 발사되고, 수백 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를 주인공이 해결해 주었으니 앓던 이 빼준 정도가 아니었죠. 세계수 보물전 없앤다고 정령인 전사들을 갈아 넣어도 해결 못했거든요. 망하기 직전이었죠. 근데 문제는 주인공이 정말로 유능해서 해결해 주었나?는 이 작품 주인공에게 있어서 난제나 다름없습니다. 그는 무능하거든요. 마을 사람 A의 전투력이 30이면, 주인공은 4 정도. 대신에 운빨 하나만은 탑 클래스라서 주변이 알아서 해결해 주니까 고맙긴 한데 그럴수록 주인공 평가는 올라가고 그에 따라 도망(은퇴)은 요원하기만 한 개미지옥 같은 나날이 주인공의 삶이죠. 주변이 주인공 말을 착각하고 확대 해석해서 마치 신(神)의 개시를 받은 양 사태를 해결해버리니까, 자기 실력임에도 주인공 말을 듣고 해결했다며 그를 추켜 세워주니 어느새 세계에서 몇 없다는 레벨 8이 된 게 주인공. 그리고 지금, 주인공은 레벨 9 승급 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인공 심정: 일이 왜 이렇게 돌아가지?

사실 레벨 8은 실력만 있으면 어찌어찌 올라갈 수 있는 급이지만, 레벨 9는 실력만으로는 불가능한, 그야말로 신뢰와 정의의 아이콘. 세계에서 진짜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는 레벨 9.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은행 대출에서 이자 0% 우대를 받는 VVIP 고객? 아무리 주인공의 활약에 눈뽕 맞았다지만 정령인 황녀가 나라를 개방하고 인간들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은 전대미문. 인간들이 그동안 숱하게 개방을 시도했지만 하지 못했던 것. 인간들에게 있어서 정령인들의 나라는 신대륙 발견이거든요. 그것을 주인공이 단 한 달 만에 이루어 냈으니, 그 어렵다는 레벨 9 승급도 따놓은 당상... 이긴 한데. 그렇다고 공짜로 승급 시켜줄 순 없고 대신에 어떤 의뢰를 해결해 주어야겠습니다. 헌터 협회는 시험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골칫거리 의뢰를 던져 주는데. 판타지 작품에서 한 번쯤 등장하는 고대 테크롤로지를 이 작품에서도 재현해 봤습니다. 지금은 망해버린 고대 시절 때 만들어진 첨단 무기를 장착한 공중 요새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빅뉴스는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200년 전 공중 요새는 라x타처럼 신의 벌을 내려 지상을 태워버렸다나요.

장거리 빔 포로 모든 걸 다 태우고, 태워진 자리에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 흉악함에 그동안 헌터 협회는 몇 번이고 공략에 나섰지만 실패. 한 것을 주인공 보고 해결 하라네요. 그러니까 공중 요새를 파괴하는 거까진 바라지 않지만 움직이지 못하게 하라는 것. 경계선 지능인 주인공은 이해한 건지 못한 건지 하겠다고 선언. 마침 레벨 9 승급 시험에 도전한 쩌리 두 명과 공중 요새로 잠입은 합니다만. 난다 긴다 하는 고렙 헌터들 떼거지들도 빔 포에 다 타버렸는데, 주인공이라고 별 수 있나? 근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인공 운빨 하나는 기가 막히다는 거. 근데 문제는 이 의뢰가 함정이었다는 것. 잘못 뽑은 꽝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함정에 빠진 것. 주인공만 모르는 상황. 헌터란 보물전에서 팬텀(흔히 마물)을 상대하며 공략하는 탐험가(흔히 모험가)인데, 보물전도 아닌 로스트 테크롤로지의 진수인 공중 요새를 공략하라는 것부터가 에러인데, 공중 요새에서 헌터들을 낚아 어찌하려는 술수에 걸려든 함정. 이제 운빨이 다하고 주인공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오나?는 아니고, 어차피 이 작품은 그런 진지한 이야기와 거리가 머니까요. 진지하게 고생하는 건 그의 주변인들뿐.

공중 요새에는 사람이 살고 있고, 나라가 세워져 있었죠. 로스트 테크롤로지는 미래 지향적으로 첨단을 달리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뭐 그런 세계였습니다. 그것을 운영하는 왕족이 있었고, 지금 마침 왕위 계승전이 벌어지고 있었죠. 어느새 이야기는 지상에 흩뿌려진 공포가 아닌 공중 요새를 장악하기 위한 왕위 쟁탈전으로 변경됩니다. 주인공은 그 왕족 중 어느 왕녀 근위로 발탁되는데... 사람이 얼마나 무능하게 보였으면 밀입국한 주인공을 경계심도 없이 대뜸 왕녀 근위로 발탁하냐고요. 어쨌거나 세계의 위기는 이 왕위 결정전이 끝나는 결과에 따라 달렸습니다. 주인공이 담당하는 왕녀는 페기 왕녀. 경계선 지능인 주인공은 자신이 받은 의뢰가 함정인지도 구분 못한 채 왕녀 관찰하기에 바쁘고, 왕녀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초콜릿에 관심을 보입니다. 온실 속 화초로 자란 왕녀에게 세상 밖에서 온 과자는 흥미의 대상. 이제 이 초콜릿이 불러오는 나비 날갯짓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밑밥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아주 그리운 파티를 만나죠. 이들도 주인공을 우러러보고 있는 착각물에서의 엑스트라지만 지금은 천군만마. 주인공은 정령인 나라 다음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12권을 기대하시라.

맺으며: 착각물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죠. 주인공이 뭔 말을 할 때마다 착각을 불러오고 그 착각은 기적을 불러옵니다. 주인공에게는 안 좋은 의미로, 주변인들에게는 최상의 상태로. 그 일환이 이번 레벨 9로의 승급 시험. 쭉정이 주인공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지라 당연히 바라지도 않는 일이죠. 마을 사람 A에게도 지는 주인공에게 난공불락 공중 요새를 어찌하라니. 그러나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주변인들로 인해 주인공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고, 휩쓸리고, 해결되어 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 정령인들의 나라를 개방 시켜 막대한 이익을 얻어다 준 주인공, 이번에도 공중 요새 공략에 성공하면 떨어질 콩고물은 막대할 터. 아무리 내가 무능하다고 어필해도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민폐라는 소리를 듣는 주인공. 은퇴는 요원하기만 하고, 휩쓸리다 보니 구국의 영웅이 되어가는 쭉정이 헌터. 이번 11권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악역 영애에 해당하는 제1 왕녀(주인공이 맡은 왕녀의 언니)의 기를 꺾어 놓는 부분이었군요. 왕위 쟁탈전이 달아올라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제1 왕녀를 말 한마디로 얌전한 양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주인공이기에 가능하다는, 그가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이 남자가 살아가는 방법 같은? 사실 착각물이기에 가능하다는 것도 있지만요. 아무튼 착각물이라고 해서 싸구려 느낌이 없는 게 특징인 작품입니다. 가끔 주인공이 자신을 너무 낮추고, 이해를 못 하는 경계성 지능을 보여주어 마이너스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무난합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번 14권은 쉬어가는 이야기 같습니다. 주인공인 아저씨 분량은 전체의 1/3도 안 되고 대부분 주변 인물들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군요. 아저씨가 이세계로 온 후 만나고 인연을 맺은 귀족 자제들의 연애 이야기라든지, 한창 젊은이들의 관심사하면 이성이죠. 누가 누굴 좋아하네, 집안 사정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약혼을 해야 한다든지 같은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먹히느냐인데, 적어도 필자는 그런 거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필자 같은 사람을 위해 개그로 승화 시키려 했나 봅니다만, 코드가 맞지 않습니다(뭐 어쩌라는 건지). 이 작품에서 내놓은 개그는 주로 일본식 만담 개그이고, 필자의 경우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더군요. 굳이 필자 심정을 표현 하라면, 풋풋함보다는 사나이들 질 낮은 주먹다짐 같은? 실제로 할아비들은 젊은이들 모임에서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으니까. 사실 애초에 이 작품은 판타지를 끼얹은 일본식 예능 프로그램 같은 거라 면역이 없는 독자가 본다면 좀 당황스럽죠. 사회에 문제가 되는 책임 없는 쾌락도 존재하고, 걸리지만 않으면 도둑질이 아니라는 얘기도 들어가 있기도 하고.

그래도 그런 얘기만 있으면 당장 불쏘시개로 던져질 거 같은지, 본 내용을 찔끔찔끔 식 넣어 놓기도 했습니다. 사이비 종교 국가에서 원시 총을 개발하여 전장에 투입 임박이라는, 이세계물에서 빠질 수 없는 신문물 전파도 들어가 있죠. 당연히 소동이 일어나고 혁명이 되고, 누구나 스나이퍼가 되어 주로 위정자들 목숨이 위태로워졌네 어쩌네. 근데 이 사이비 종교는 아저씨가 자근자근 밟아 주었는데도 잡초처럼 참 끈질기게도 살아 있군요. 지구에서 용사들을 마구 소환해서 별의 기력을 박살 내는 바람에 종말을 향해 갈려가도 아랑곳하지 않다가 아저씨에게 개박살나고, 뒤처리된 용사들이 원념이 되어 똘똘 뭉쳐서 교회들을 박살 내고, 영문모를 일들이 벌어지지만 아저씨는 강 건너 불구경, 그 불난 곳이 아저씨 집이어야 했는데. 이 아저씨도 신문물을 마구 개발 해대는 주제에 전파할 생각 없다며 사람들 약 올리고. 기생충 누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 도시 하나가 궤멸되어도 나 몰라라. 작가는 뭔 억하심정인지 누나를 리타이어 시킬 듯 말 듯 기승전결 마렵지? 안 하지롱(이게 이 작품에서의 개그 코드) 같은 만담식 개그성 집필을 해가는 통에 보는 이는 어이 상실.

그러다 문득, 젊은이들의 연애는 꾸준히 내놓으면서 아저씨 연애는 왜 하다 마냐는 겁니다. 누나 때문에 여자 혐오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긴 한데, 40 넘은 아저씨는 연애하면 안 되나? 제일 처음에 크리스티나? 아니 세레스티나인가, 히로인 이름을 거의 비슷하게 지어 나서 막 헷갈리는데, 게다가 히로인들 일러스트는 바키(검색 요망) 어머니삘이고. 아무튼 세레스티나와 이어주려다 40 넘은 아저씨와 16살 여자애는 너무 했나? 싶었겠죠. 로리콘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근데 로리콘을 당당히 표현하면서 왜 아저씨는 안 될까? 어딘가 망가진 히로인들만 나오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아니 교회의 루..루셰리스인가는 빼고, 하여튼 이세계 히로인들이나, 지구에서 폭사하고 날아온 히로인들이나, 맛이 가버린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상식인으로서, 사실 맛이 가버린 건 아저씨도 매한가지라서 이어주기엔 힘들었겠죠. 그래서 제자가 되어 엑스트라로 전락해버린 게 안타까운. 이후 교회의 루셰리스(이름 맞나 모르겠네)와 이어주려고 호감도 작업을 했으면 밀어 주던가, 요즘은 그녀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맺어지면 완결 시켜야 하는 강박증이라도 있나?

맺으며: e북 중독에 걸려서 하차한 작품도 다시 보는 폐해랄까요. 본 작품의 경우 12권에서 하차했는데, 한 달 구매 금액 맞춘다고 구매했다가 고문 당하고 있습니다. 발매사인 L노벨은 우리나라 라이트 노벨 출판계에서 메이저 회사니까 이런 작품 발매도 가능하겠죠. 자금 여유를 떠나서 리스크 관리도 그만큼 잘 하실 테고, 다른 출판사였으면 진작에 절판 시켰을... 필자도 뭐 대충 읽고 내버려두면 되겠지만 인터넷 서점에 리뷰 올리고 받는 포인트 700점은 꽤 크거든요? 뭔가 목적을 위해 수단이 잘못된 느낌인데, 보고 있으면 오글 거리고, 내가 다 창피하고, 이런 낮은 수준의 개그를 용케도 쓴다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용기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그런 작품이죠. 본 내용인 사신과 4신의 이야기는 질질 끌며 하다 말다 하다 말다, 귀여운 호러 정령들 이야기는 재미있었는데 왜 계속해 주지 않는 걸까, 엑스트라 출연진들 연애는 만담 개그 열혈물로 변질되어도 심혈을 기울여 하면서 아저씨 연애는 도외시되고, 가만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면 손에 가시가 돋는지 독자(적어도 필자)들을 티벳 여우 일자 눈섭(티벳 여우로 검색하면 이미지 바로 나옴)으로 만들어 버리는 제주가 남다르더군요.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래서 이 작품 안 볼려 했던 건데. 오글거려서 볼 수가 없어요. 아무튼 프로트제 쿠데타 진압 작전도 막바지입니다. 주인공 일행은 한때 궁지에 몰리기도 했으나 사랑과 정의라는 미명 아래 야금야금 활약한 끝에 주도권을 되찾아 왔습니다. 여기에는 황제 대리로 나섰던 히로인의 역할도 컸고. 웃긴 게 쿠데타 주모자가 바지 사장으로 내세운 대리가 역으로 칼을 들이밀었다는 것이군요. 거기에 더해 사실 2천 년 전 영웅(외전 7.5권, 8.5권 참조)인 주인공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주모자는 운이 다한 것이죠. 그때(2천 년 전) 그 황녀가 그때부터 주인공에 대한 각종 특례에다 종교로 승화 시켜 놓았고, 그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은 상황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에 발을 올린 순간, 이것이야말로 모든 청소년들이 바라는, 영웅의 귀환이라는 꿈이 실현되는 그런 열기가 있었죠. 물론 필자는 오글거려서 빨리 넘겨 버렸지만요. 원래는 이런 영웅 대접을 받기 싫어하는 주인공이지만, 사태 해결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 2천 년 전 영웅이 공식적으로 살아 있다는 게 밝혀짐으로써 그에게는 특례로 쌓인 막대한 재산과 원한다면 황제의 자리에도 오를 수 있는 권한까진 아니어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그런 욕심이 있었으면 애초에 히로인들이 들러붙진 않았겠죠.

근데 이대로 끝내긴 아쉬웠는지 범인(주모자)이 발악을 한다는 클리셰가 등장하는군요. 곱게 안 죽는다 이거죠. 처음엔 금방 잡힐 거 같았던 주모자는 황제(히로인 엄마)와 황녀(황제 대리)를 납치해서 협박하기 시작하는데,이야~ 흥미를 끌겠다는 작가의 사명감이 너무 앞섰는지 그래도 은하(약간 과장)를 관장한다는 제국의 황제 경호가 이리도 무 쓸모라니 같은 일이 벌어지죠. 잡혀간 히로인(유부녀지만)을 구출하는 건 용사의 사명. 마침 주모자가 타고 도망간 건 사악한 용 모습의 티라노. 배경은 스케일 크게도 우주. 용사는 만인의 추앙을 받는 주인공, 파티원들은 9명의 히로인들과 엑스트라 황녀들. 청소년들이 바라는 꿈과 희망이라는 소재가 한가득입니다. 비하 아니고요. 필자가 한 10년만 젊었으면 가슴 웅장해지는 그런 장면들이 연출됩니다. 금방 죽을 거 같았던 주모자도 마왕이 되어 없던 힘이 생깁니다. 호랑이 기운? 주인공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영웅이고, 주모자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무우라도 썰어보고 싶은 영웅 갈망 같은 뭐 그런 마음이 있었나 본데, 그래서 영웅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에게 질투를 느꼈고, 힘이여 솟아라 했더니 진짜로 힘이 솟아 주인공을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전개가 참 희한하더군요. 그리고 지금 주인공에게 필요한 건?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맺으며: 옛날 한 10권쯤 읽었을 때 이 작품의 끝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포르트제에서 황제로 등극하고, 메인 히로인인 '티아'를 본처로 해서 '클란'을 두 번째로 두고 나머지를 제3부인, 제4부인 이렇게 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럴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군요. 하지만 마왕을 무찌른 용사를 두러워 하는 사람들에 의해 용사도 마왕으로 몰리는 상황은 판타지물에서 간혹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가능성은 높아도 실현 가능성은?라고 접근하면 회의적이긴 하죠. 이번 사태에 모든 사람이 한마음 한뜻이 아니라는 모습도 보여 주었고. 그래서 주인공이 도주를 선택한 점에서 현실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아무튼 포르트제 편은 이걸로 끝이 나고 지구로 돌아가 다시 일상생활이 이어진다고는 하는데, 이 작품에서 일상생활은 솔직히 무료하고 오글거림의 대명사인지라. 거기에 9명이나 되는 히로인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더 불어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작품에서 작품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한 서로 배려하고 아끼고 하는 건 좋으나 그로 인해 지리멸렬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 판치라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이만큼이나 되는 히로인을 모아 놓고도 긴장감이 없는 게 아쉽죠. 아무튼 우주를 오가는 과학과 사랑과 정의의 마법 소녀(악의 마법소녀들도 있음)라는 특이한 조합을 메인으로 해서 이번엔 주인공을 돕기 위해 엑스트라 황녀들이 몰고 나온 전함의 웅장함(일러스트는 없지만), 2천 년 전 황녀의 유령(환생체지만 존재가 유령과 비슷)까지. 이번 26권은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총평을 하자면, 이거저거 섞음으로써 자칫 한 발짝만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이야기를 절묘하게 잘 섞는 작가의 능력은 좋으나 결국 사랑의 이름으로로 귀결 시키다 보니 손발 간수를 잘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는 작품입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사실 레진에서 발매될 때부터 보려고 했던 작품입니다만, 하도 사람들이 발암 환상기라고 해서, 발암을 싫어하는 필자는 멀리했던 작품이군요. 아닌 게 아니라 진짜 환상적인 발암의 연속을 보여줍니다. 근데 희한하게 눈살이 찌푸려진다거나 거부감이 드는 발암이 아닌 대놓고 발암짓을 해대니까 오히려 시원한 느낌? 주인공이 슬럼가에서 누명을 쓰고 왕궁으로 소환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이유 없이 볼따구니를 연속으로 맞아야 하는 부조리, 납치된 왕녀 찾아 줬는데, 왜 납치범으로 오해해서 두들겨 팰까? 주인공이 슬럼가에서 사는 천민이라서? 신용이 없기 때문에? 주인공 나이 고작 7살, 밥도 못 빌어먹어서 체격은 더 작을 터. 이런 애가 삼엄한 경비를 뚫고 왕녀를 납치했을 거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그냥 돈 몇 푼 지어주고 보내면 될 걸 굳이 왕궁으로 소환하는 바람에 납치범과 한패가 아니냐고 모진 고문 당하고. 하루아침에 부조리를 몇 개나 겪게 한 히로인은 사과도 없어. 어찌어찌 누명이 풀리지도 않은 애매한 상황에서 이번엔 왕이 딸을 구해준 보답을 해준다네? 야이~ 이병에게 갑자기 별 4개랑 독대하라면 할 수 있나? 여전히 다짜고짜 볼따구니 때린 히로인이나, 왕궁으로 소환한 히로인이나 미안해하는 구석은 전혀 없고, 주인공이 구해준 히로인은 멀뚱멀뚱? 여기는 지옥?

이 작품은 정령 환상기 보다 발암 환상기로 한차례 유행한 적이 있어서 아는 분들이 제법 있을 거라 생각하는군요. 주인공은 트럭과 버스 사고에 휘말려 이세계에 전생하게 되었죠. 동방에서 왔다는 부모에게 태어나 아빠는 일찍이 돌아가시고 엄마는 엄마를 노리는 무뢰배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런 역사를 가진 아이가 죽을 위기에서 주인공의 인격이 각성한 방식의 이세계물입니다. 주인공(각성하기 전의)은 엄마를 죽인 무뢰배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나 주인공으로 각성하게 되는 동시에 마침 왕녀 유괴 사건에 휘말려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죠. 까지는 좋은데 행운 스탯치가 마이너스 수만은 되는지 온갖 고초를 겪게 됩니다. 납치된 왕녀를 찾아온 4인방 히로인 중 하나에게 볼따구니 두들겨 맞고, 어느 히로인은 왕궁으로 소환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게 하고, 왕은 딸을 구해준 보답이랍시고 마법 학원에 집어넣어 버리죠. 왕족만 다닌다는 학원에 평민 이하 천민을 집어넣는다는 의미. 이 멍멍이 같은 시추에이션은 무엇? 당연히 귀족 학생들은 달가울 리 없는 경지를 넘어 주인공을 아주 짓밟아 버리죠. 볼따구니 때린 히로인은 강 건너 불구경, 왕궁으로 소환한 히로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구해준 왕녀는 언니(볼따구니 때린女)가 말 섞지 말라고 했다고 4년이나 방관.

그나마 4인방 중 상식인은 있었습니다. 학원 강사이기도 한 약관 12세 히로인. 얘도 뭔가 한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아무튼 학원에 입학한 주인공을 케어해주고 말동무해주며 주인공이 정신 붙잡는데 일조하게 되죠. 그리고 홀딱 반하는 건 덤. 주인공 때 빼고 광내니까 미남이네요. 역시 남자는 얼굴. 자상한 마음씨는 덤. 5년 동안 이 강사 히로인 덕분에 정신 붙잡으며 학원을 다닙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주인공을 얕잡아보고 괄시하고 욕하는 아이들. 사실 주인공이 왕의 명령으로 내려온 낙하산이긴 한데, 왕명으로 온 애를 이렇게 밟아도 되나? 싶지만 왕이나 히로인들이나 뒷일 감당은 주인공에게 다 떠넘겨 버리고 나 몰라라. 5년 동안 주인공을 왕궁으로 소환한 女는 끝끝내 코빼기를 보이지 않네. 나와서 사과하라고. 나, 마왕 될 자신 있답니다?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일상 속에서도 저런 놈들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주인공이 대인배. 엄마 죽인 놈을 찾아 복수를 해야 하는데, 언제 할 거지? 학원 다니며 힘 좀 키운 거 같던데. 하지만 이 생활도 곧 끝이군요. 애들에게 뭘 시키는 거냐는 생각을 들게 하는 군대식 천리행군(약간 각색)에서 드디어 아이들이 일을 터트려 버립니다. 아무리 온화한 주인공이라도 질색팔색할 일을요. 스포일러라 자세히는 말 못 하지만 이 나라에 미련은 없습니다.

맺으며: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이렇게 시원시원한 발암은 오히려 흥미를 마구 유발하는군요. 왜 더 일찍 접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 발암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능력이 좋습니다.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솜씨가 좋더군요. 엄마의 부조리한 죽음, 슬럼가에서 이용만 당하는 삶, 우연찮게 왕녀를 구출하였으나 선입견에 사로잡힌 히로인들에 의한 구타, 왕궁에서의 모진 고문, 지옥 같은 학원에서의 생활, 그럼에도 보답받지 못하는 인생. 4년이나 방관한 왕녀가 마지막에 너 님(주인공) 좋아해요라는 시추에이션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사실 슬럼가 소년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집(기숙사)과 굶어 죽을 일 없는 급식만으로도 보답받았다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죠. 그런 걸 다 흘려버리는 대인배 기질을 가졌긴 한데, 돌려 말하면 되받아처주지 않으니까 카타르시스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술술 읽힐 정도의 필력. 사실 이 작품은 귀족과 왕족이라는 악이 명확하게 그려져 있고 주인공은 그 악의를 받아도 어찌할 수 없는 나약한 소시민의 입장이라는 현실적인 측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당해도 언젠가 대갚음해 줄 거라는 밑 작업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있었군요. 시작부터 먼치킨은 아니지만 점점 성장한다는 설정도 있고. 주인공을 알아주는 히로인들도 생기기 시작하면서 암울한 미래만 기다리는 건 아닌 느낌도 있습니다. 리뷰에선 미처 언급 못한 소꿉친구에 대한 복선이 언제 풀릴지 궁금하고, 그 외 복선에 몇 개 있어 보이던데 무리 없이 진행하는 솜씨가 괜찮은 1권이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늑대와 향신료에서 호로는 늑대의 화신으로서 사람 머리 꼭대기에 앉아 가소롭다는 듯이 세상을 바라봤다면 이 작품의 고양이의 화신 페네시스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순백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죠. 뭐 고양이 화신이라고 해도 늑향의 호로처럼 정령의 일종은 아니고, 흔히 판타지에서 등장하는 수인의 한 종족에 불과합니다. 특징은 흔하디흔하게 나오는 것이 아닌 매우 희귀한 종족으로서 종교적 입장에서는 늑향과 마찬가지로 이단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이군요. 공통점은 외로움을 억수로 타는 호로처럼 페네시스 또한 자신이 있을 곳을 위해서 의존성 집착을 보인다는 것이고요. 오죽하면 자신의 일족을 몰살시킨 기사단에 의탁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니까요. 주인공 공방에 파견되어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 주인공에게 매번 놀림을 당하고, 뒤늦게 놀림당했다는 걸 알아도 되받아치지 못해 인간 불신에 빠져가는 모습들이 흥미롭죠. 사실 주인공 입장에서는 신앙을 위해선 사람 해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연금술사와 상극인 성가대에서 감시를 목적으로 파견된 페네시스가 달가울 리 없었긴 합니다만, 주인공이 그녀를 놀리는 것은 매사 수동적인 데다 세상 경험이 너무 없어서 이러다 사기당해서 팔려가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애가 백치미다 보니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던 것이죠. 당연하게 돌아오는 건 마이너스 호감도. 하지만 있을 곳이 절실했던 페네시스는 싫어도 같이 동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1권에서 공방 전임자의 사망 사건을 파헤친 끝에 범인을 붙잡으며 기사단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과 동시에 기사회생 시킨 주인공은 그 보답으로 페네세스를 받아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왜 기사단 얘기가 나오고 페네시스를 받아오는 얘기가 되느냐는 설명이 길어지니 패스하고요. 2권 전반부에서는 페네시스가 악의 소굴에서 주인공 공방으로 이전되고 다시 있을 곳을 위해 주인공이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해나가는 모습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연금술사이고, 사실 말이 연금술사이지 주인공이 하는 일은 주로 철광석을 가져와 철로 제련하고 어떻게 하면 고순도의 철을 만들 수 있나를 연구하는 것으로 페네시스는 그의 조수가 되어 철을 제련하는 일을 하게 되죠.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여전히 짓궂은 말을 내뱉고 페네시스는 토라지는 일상이 펼쳐집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될 것은 흔히 청춘 러브 코미디처럼 달콤 쌉싸름한 분위기가 아닌, 어디까지나 페네시스에게 사회 경험을 시켜주는, 웃음기 없는 교육 같은 장면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새 주인공 마음 한켠에 그녀가 자리 잡고 있다는, 남녀가 한자리에 있으면 서로 의식 안 할 수가 없다는 클리셰도 동반하고 있긴 합니다. 이게 어느새 주인공에게 있어서 그녀는 남에게는 못 준다까지 성장시키긴 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있죠. 그보다는 시급히 해결해야 될게 수동적인 그녀를 능동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고, 이에 따끔한 말과 자상한 말로 그녀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단과의 전쟁이 북쪽으로 확장되고 동시에 최전선도 북상하면서 지금의 도시는 최전선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연금술은 그의 아이덴티티이자 목숨. 연구야말로 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기에 최전선을 따라 자기도 북상할 것인지 고민에 빠지게 되죠. 따라가면 되지 않나? 이단과 싸우는 기사단에서 안 끼워주니까 문제죠. 너 님 아니어도 많은 게 연금술사이기에 경쟁도 치열하고요. 그렇담 남은 건? 뇌물이죠. 이 시대는 그래도 돼요. 근데 뭘 바치지? 2권 전반부에서는 페네시스가 주인공 공방에 기거하게 되면서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법을 그리고, 후반부는 북쪽으로 가기 위해 인간의 길을 벗어나는 주인공을 그립니다. 연금술을 위해선 그게 성인(聖人)의 뼈일지라도 용광로에 던지는 걸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망가진 주인공이기에, 뭐 교회에 발각되면 당연히 이단으로 목이 매달릴 일이죠. 1권에서 실제 목이 매달릴 뻔하였으나 교회와 대립하는 기사단 소속이라 겨우 목숨을 건졌고, 그런 일이 있음에도 수단을 찾는 것에서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당연한 것입니다. 아무튼 기사단이 흘깃할만한 무언가를 찾아야 하고, 마침 좋은 무기가 떠오르게 되죠. 하지만 제조법이 실전(失傳) 되어 이제 이 도시에서 그 제조법을 아는 사람은 단둘. 주인공 눈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죠. 그리고 누가 늑향 작가 아니랄까 봐, 부부 사기단이 등장하는데...

맺으며: 이용당하는 삶이라도 있을 곳을 위해선 밤에 남자들만 있는 공방에 찾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페네시스를 두고 볼 수 없어서 인간의 존엄과 삶의 목적을 깨닫게 해주는 자상함을 그리는 것과 동시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인간 이하의 짓을 해대는 주인공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작가가 그걸 해냅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자 여자를 발가벗겨 용병 집단에 던지겠다고 협박하는 주인공은 이 작품이 처음이지 싶군요. 뭐, 명분을 만들어 여자를 강x 하거나, 뭣대로 이유를 붙여 죽이는 주인공을 둔 작품들 보다야 순한 맛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사실 주인공이나 페네시스나 둘 다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하죠. 주인공은 연금술을 위해 악마에게도 영혼을 팔 기세고, 페네시스는 있을 곳을 위해 몸이 더러워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려 하니까요. 물론 진짜 그런 일하는 건 아니고 그만큼 각오가 서려 있다는 의미. 근데 하필 만난 게 주인공이고, 언제나 짓궂은 주인공에 의해 매운맛으로 세상 살아가는 법을 깨우쳐가게 되죠. 이제는 그의 조수가 되어 용광로 앞에서 땀 뻘뻘 흘리며 철 제련에 힘쓰는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세상 물정 모르고, 심하진 않지만 대인 기피증에 타인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고(아직도 안 고쳐짐), 어떻게 이때까지 생존할 수 있었는지 주인공도 의아해할 정도. 그런 그녀가 주인공을 만나 조금씩 마음을 완성해가는 게 흥미롭긴 한데, 문제는 주인공도 정상인이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온기를 원하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주인공에게 기대는 그녀. 그 이면에는 일족이 몰살되어 혼자가 되었다는 과거가 있다는 것. 좀 많이 칙칙한, 잿빛 같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3권부터는 조금 더 다양한 감정을 가지게 된 페네시스를 그리지 싶긴 한데, 보고 있으면 숨이 막혀 더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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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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