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11권은 용사 '율리우스'의 이야기입니다. 이 캐릭터는 여주인공(거미녀)의 반 친구 중 '슌'의 형으로서 순수한 이세계인이죠. '슌'은 필자가 남자 주인공이 있으면 딱 맞을 거라고 표현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형인 율리우스는 그동안 사이드 스토리 S에서 등장하여 대미궁에서 여주와 싸우기도 했고, 여주가 지상에 출몰했을 때 만나기도 했었죠. 여느 작품이라면 이렇게 인연을 맺어 가다가 친구가 되거나 연인 사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장밋빛 미래를 그려볼 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얄궂게도 인마 대전이 발발하고 얼마 뒤 율리우스는 운명을 달리해야 했었죠. 11권은 그의 과거를 그립니다. 용사 율리우스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마음으로 용사의 길을 걷고 있는지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죠.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 될 수 있다는 용사라는 무게, 용사라는 이름이 가지는 중책.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자신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듯 사랑을 포기하는 장면들은 가슴을 아프게 하죠. 성선설 기반으로 한 발암 용사가 아닌, 판타지의 정석 용사를 그대로 체현해 놓은 율리우스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그의 11살일 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시기는 세계적으로 엘프에 의해 한창 유괴 사건이 끊이질 않던 때죠. 이걸 해결하기 위해 용사를 중심으로 각국에서 인원이 차출되어 모입니다. 하지만 율리우스는 고작 11살, 아무리 신(神)이 점지한 용사라도 역전의 맹장들에게 그는 풋내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영웅담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죠. 허수아비 지휘관이 지금의 용사 율리우스의 입장입니다. 현실로 빗대어 보자면 군(軍)에서 막 부임한 초임 소위의 위치라고 할까요. 능력은 되지만 신뢰는 못 받고 있죠. 율리우스는 어떻게 해야 병사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유괴 조직을 추적하면서 올곧게 사람들을 구하려 하고, 구하지 못할 때는 마음 아파하는 등 참으로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힘들고 괄시 받아도 꺾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신뢰를 얻어 가죠.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는 혼자가 아닌 성녀와 동료들이 있고, 그를 지지해 주는 부관이 있다는 것이 위안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의 나이 22살, 여주(거미녀)와 마왕은 이세계를 구하려 인마 대전을 일으키고, 율리우스는 참전합니다.

만약 여주(거미녀)가 자신들이 하려는 일을 용사에게 털어놨다면 미래는 다르게 흘러갔을까 하는 궁금증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바탕엔 이세계 사람들 절반 이상을 희생 시켜야 한다는 전재가 깔려 있는지라 한 명이라도 구하려는 용사는 분명 거부하고 결사적으로 항전했을 테죠. 결국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인 게 마왕과 용사. 자세한 건 핵심 스포일러라 언급은 힘들지만, 이세계는 마모되어가는 톱니바퀴와 같습니다. 이대로는 멀지 않은 미래에 분명 궤도를 이탈하여 붕괴하고 말 것입니다. 여주는 마왕 따라 어느 유적지에서 봉인된 여신(10권 리뷰 참조)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여주는 이세계의 기반이 되는 시스템(스킬, 능력치)이 어떻게 운용되는지를 보았죠. 죄악을 저지른 인간들은 자신들을 대신해 그 감당을 여성 한 사람에게 짊어지우고 태평하게 살아가는 세상. 그래서 여주는 용사 율리우스를 치우려 했겠죠. 마왕과 싸우게 하면 분명 마왕은 질 테니까요. 마왕이 지면 이세계는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걸 듣고 율리우스는 미래를 여주에게 맡기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맺으며: 12권이든 13권이든 다시 한번 여주와 율리우스가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든 11권이었습니다. 중2병식 진행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가슴 아픈 장면을 연출해 주지 않을까 싶군요. 12권을 구매해뒀으니 리뷰 끝나는 데로 바로 읽어 보아야겠습니다. 그만큼 이번 11권에서 용사 율리우스가 보여주었던 선한 마음은 참으로 구구절절했군요. 하지만 여주와 마왕이 아직 어린 율리우스와 조우했으면서도 바로 치우지 않고 훗날로 미룬 점에서 의외로 무덤덤하게 끝나 버릴 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여주와 마왕이 하려는 일과 연관이 있고, 용사가 가진 큰 힘은 보탬이 될 테니까요. 핵심 스포일러와 연결되어서 자세히 언급은 힘듭니다만. 요컨대 용사는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이라는 것. 몇 권인지는 까먹었는데, 인마 대전이 일어나고 여주가 용사를 치웠을 때 악당의 길로 가기로 했나 하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만, 지금에서 보면 이세계를 구하려면 어쩔 수 없겠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이 작품은 퍼즐을 흩트려 놓고 조금씩 맞춰가는 방식이다 보니 그때그때 느낌을 다르게 해서 좋게 말하면 흥미가 돋고, 나쁘게 말하면 머리 아프게 하는 게 특징입니다. 아무튼 학교에 입학한 흡혈녀 소피아의 히스테릭이 더 심해졌다는 것과 그 반동인지 나쁜 짓을 저지르다 여주에게 된통 혼나는 소소한 재미를 가미해두었군요. 마지막으로 이번 11권은 여주와 마왕이 군대를 이끌고 엘프 진영으로 쳐들어가는 인마 대전 직전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게임 센터에 갇혀 버렸습니다. AR 게임이 주류인 시장에 VR 게임 통칭 AM이 출시되자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에 테스트 플레이 기회가 찾아왔었죠. 이에 6학년(전부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일단 41명) 학생들이 참가하게 되었고 갇혀 버렸습니다. 소드 아트 온라인에서는 로그아웃 불가였으나 본 작품은 로그 아웃은 되지만 로그 아웃하고 보니 게임 센터가 게임과 융합된 세계관으로 변질되어 있었죠. 영능력적으로 설명하면 이계나 명계나 그 중간쯤 되는 세계? 센터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지금의 상황을 종식 시킬만한 단서는 없습니다. 아이들을 인솔해온 선생님이나 센터 직원들은 괴물로 변해 버렸습니다. 1권에서 주인공 일행과 아이들은 이런 괴물과 싸워야 했고, 3명이 희생되었죠(이중 한 명은 주인공에게 테이밍 됨). 그리고 한시름 놓을 사이도 없이 이 와중에 대장 놀이하려는 쓰레기의 출몰로 인해 주인공은 궁지에 몰려갑니다. 서로 협동해도 모자랄 판에 반 친구가 사망한 책임을 주인공에게 덮어 씌우고, 빵 셔틀을 시키죠. 이건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주인공은 그걸 또 받아들이면서 고구마가 트럭째로 달려오니까 이 작품을 보실 분은 현실에서 사이다를 준비하시는 게 좋습니다. 사실 이런 아포칼립스에서는 내 코가 석자인데, 빵 셔틀 할 여유(이유는 아래서 설명) 따윈 없죠.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이 무능력한 것도 아니거든요. 게임과 융합하면서 아이들도 다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아무튼 이번 2권에서는 왜 아이들이 게임 센터에 갇히고 게임과 현실이 융합되었는지에 대한 단서가 조금 풀립니다. 주인공 쌍둥이 여동생에게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1권에서 괴물과 맞닥트려 처절한 싸움 끝에 이길 수 있었던 건 여동생에게 깃든 힘(정확히는 다른 거지만)의 덕분이었죠. 이게 아마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가 될 거 같아 아직 밝히긴 힘듭니다만. 이 힘은 아이들 모두에게 깃들어 있고, 각성한 아이들부터 쓸 수 있는 뭐 그런 흐름을 보여줍니다(각성이라고 하는 건 좀 어폐가 있지만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힘은 그 아이의 본연의 힘이 아니라는 것이고, 뭔가의,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었지 않았나 하는 유추를 하게 합니다. 이 유추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주인공 일행은 다시 게임에 접속해서 낙오된 소꿉친구를 찾으러 갑니다.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필자도 잘 모르겠습니다. 소꿉친구를 구해오면 해답(적어도 여동생에 깃든 힘의 근원)을 내놓겠다는 식으로 집필 해놓고 정작 구해오니 2권에서는 해답을 내놓지 않는 불친절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 소꿉친구에게도 미지의 힘이 깃들어 있는 것에서 아이들끼리 신화(神은 아님) 싸움이라도 시키려나 싶은 느낌을 들게 합니다. 뭔 리뷰가 이래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2권은 그런 이야기가 주류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캐릭터 개성은 대장질하려는 쓰레기 외엔 이렇다 할 것도 없고, 큰 에피소드도 없거든요.

맺으며: 주인공은 사람을 너무 믿습니다. 빵 셔틀로 찾아낸 식량을 아무 의심 없이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적이 될지도 모를 다른 아이에게 맡기는 우둔함은 머리를 절레절레 하게 만들죠. 소꿉친구를 찾고 로그 아웃하고 보니 내 캡슐(게임에 접속할 때 드러눕는 기기)이 다 망가져 있는 걸 보고 괴물이 그랬지 않았을까 하는 헛다리 짚는 것(딱 봐도 식량 털어간 놈이 부순 거구먼), 자칫 게임 속에 갇혀 못 나올뻔했는데 왜 가볍게 생각하지? 대장질하는 쓰레기는 단박에 유추해 내는데도 현실을 외면하듯 유추 못하는 주인공이 압권이었군요. 여동생과 친구들을 지켜야 될(여동생이 더 쎄지만) 주인공의 두뇌는 386보다 못한 분석력을 보여줍니다. 참고로 비유적인 거니까 386이라도 연산 속도는 인간보다 엄청 우월하지 않나? 하는 태클은 사양합니다. 빵 셔틀 하는 이유도 반 친구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정의감 같은 거여서 발암으로 다가오죠. 위에서 언급했듯이 반 친구들도 능력을 다 얻은 상황이고 내가 돌볼 이유는 없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걔들은 주인공을 도와주기는커녕(한 명 도와주러 합류하긴 하지만) 대장질하는 놈팡이의 말에 넘어가 주인공을 괄시하기까지 하는걸요. 그런데도 악착같이 애들 있는 데로 돌아가려 하니 매우 못마땅하게 다가오죠. 그렇다고 카리스마 있게 애들을 설득하는 것도 아닙니다. 살인자 취급받는데 돌아가고 싶나. 그리고 이야기를 너무 질질 끌기도 합니다. 하나의 상황을 놓고 뭔 설명을 그리도 하는지. 270여 페이지 중에 200여 페이지를 소꿉친구 찾는데 할애하면서 이렇다 할 흥미로운 이야기도 없고, 현 상황(융합된 이유 등)을 분석하는 것도 없고, 대장질하는 놈을 끌어내리고 애들을 효율적으로 써먹을 궁리도 하지 않고, 마치 어미 새처럼 내가 다 해줄게 하니까 주인공이 뭐 성모라도 되나? 싶은 게요. 초등학생답게 시야가 좁다는 개연성은 있지만, 보는 독자는 답답해 미치죠.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2권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죽음이 서로를 갈라 놓더라도. 3권을 한마디로 표현 하라면, 빌어먹을 동정은 훈제나 되어 버려라. 1권에서 제스는 시할아버지(국왕)에 의해 기억이 봉인되었고, 2권에서 오작교의 견우와 직녀처럼 돼지(주인공)는 제스(메인 히로인)와 다시 만났지만 너 님 누구세요?인 상황을 가슴 아파할 겨를도 없이 전란에 휘말려야 했었습니다. 암약하는 술사(이하 불사자)에 의해 저주받은 시할아버지는 비명횡사, 돼지도 제스를 감싸고 저주를 받아 죽어가던 상황에서 봉인된 기억을 되찾았던 제스.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했던(2권에서 전란) 둘의 관계는 앞으로 장밋빛 인생만 있을 것인가. 있어야겠죠. 근데 돼지가 지구에 귀환해 있는 동안 제스는 왕자와 약혼한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죽음조차 둘의 사이를 가르지 못했는데 그깟 약혼이 대수겠습니까. 3권에서 뭔가 남자들끼리 피 터지는 싸움이라도 일어날 줄 알았더니 왕자도 여자 손 한번 못 잡아본 동정 소년. 돼지가 돼지라서 봐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남편(왕자) 보란 듯이 와이프가 돼지에게 사랑의 어필을 하고 있는데도 동정답게 말 한마디 못하는 쑥맥. 그런 어필을 받는 돼지는 여친이 다른 남자와 잘 되는 걸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며 응원해 주는 아싸 타입. 다들 나이 먹을 대로 먹어놓고 뭔 청춘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건지.

1권에서 돼지와 제스를 갈라 놓았던, 혼자서 몇 개의 나라를 쌈 싸 먹을 사상 최강의 마법사였던 국왕(제스 시할아버지)은 불사자에 의해 어이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제스에게 봉인된 기억을 풀 단서를 준 걸로 보아 국왕으로서 엄격하지만 한편으로는 할아버지 같은 자상한 면모를 보여 주었죠. 이번 3권에서 북부 반란군과의 전쟁은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나 불사자의 위협은 여전했기에 그를 없애기 위한 단서를 모아갑니다. 불사자의 능력인 저주는 매우 성가셔서 막을 방도도 없고, 한번 맞으면 100% 죽음으로 몰고 가기에 마법사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었죠. 문제는 불사신이기에 보통의 방법으로는 죽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왕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지보(보물 같은 거)를 모아 물리치기로 결정합니다만, 그전에 1권에서 돼지의 심장을 철렁하게 했던 이케맨 노트가 이끄는 예스마 해방군과의 연합 전선을 꾸리기로 합니다. 그러나 예스마를 노예나 다름없이 다루는 왕국과 그 예스마를 해방하기 위한 해방군은 절대 섞일 수가 없는 관계죠. 이걸 협상을 통해 융합해야 되는 임무가 돼지와 제스 그리고 왕자(제스 남편)에게 맡겨집니다. 사실 이건 엔딩까진 그렇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 겉절이 형식으로만 언급해 두겠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불사자를 죽일 방법을 찾는 것이고,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하거든요.

사실 불사자를 없애는 건 과정일 뿐이고 진짜 이야기는 돼지와 제스의 관계를 풀어내는 데 있습니다. 제스는 자신의 기도로 이 세계에 와준 돼지가 고마웠고, 그와 여행하며 정이 들었고, 예스마 사냥꾼들에게서 목숨을 바쳐 지켜주는 그를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돼지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만, 자신은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 몸. 그녀의 마음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아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죠. 돼지는 전이나 전생이 아닌, 뭐랄까 정신체만 이세계 돼지에 깃들어 있고, 본체는 지구에서 코마 상태에 있습니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고, 국왕(제스 시할아버지)이 이때다 싶으면 지구로 돌아가라는 유언 아닌 유언을 남겨 두었던 점, 시기를 못 타면 영영 지구로 못 돌아갈 수 있다는 점, 원래 세계(지구)에 미련이 있다는 것, 돼지로 살고 싶지 않다는 것등이 주인공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럼 냉큼 돌아가 버리던가. 제스가 매번 마음을 부딪혀 오면 엉뚱한 말로 논점을 흐리는 통에 이 시키 훈제나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군요. 아닌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그런 돼지를 보며 구워 버리겠다고 벼르는 중이기도 하고요(물론 다른 이유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부딪히는 제스에게서 한편으로는 의존증을, 한편으로는 측은함을 보았습니다.

맺으며: 사실 이 작품은 굉장히 시리어스합니다. 마법사 숫자를 줄이겠다고 태어나는 여자애들을 예스마라는 이름의 노예로 팔아버리는 왕국, 그 노예 소녀를 납치해 도륙해서 파는 사냥꾼들. 이번 3권에서도 인간은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나 하는 걸 보여주죠. 예스마는 마법의 재료가 되어 비싼 값에 팔려가는 현실. 그냥 팔려가는 게 아니라 산 채로 조각조각. 이를 방관하는 왕국. 불사자는 수많은 예스마들을 사냥해서 그 신체 일부를 먹고 불사신이 되었죠. 이번 3권에서도 많은 예스마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돼지와 제스는 그런 슬픈 세상이 없도록 행동에 나서죠. 그 결과 제스는 뜻하지 않게 자신의 탄생의 비밀을 알아 갑니다. 상황은 시할아버지가 죽고 시아버지가 차기 국왕이 되면서 상황이 좀 나아지나 했더니, 더 악화 일로(예스마들이 처한 상황)를 달려가는 등, 돼지와 제스의 앞날은 순탄치만은 않다는 메시지를 곳곳에서 던집니다. 돼지에게 더욱 의존해가는 제스가 우려스럽기도 하죠. 이젠 거의 막무가내가 되어 갑니다. 그럴수록 돼지는 도망가고요. 근데 도망가는 것도 그냥 도망가는 게 아니라 내가 희생해서 다른 남자(왕자)와 잘 지내게 해주겠다는 식이라서 좀 꼴불견이기도 하다는 것이군요.

아무튼 이로써 암약하는 술사 -불사자-편은 끝이 났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불사자를 통해 악이 누구이고 선이 누구인지 물음을 던진다는 것입니다(이전에도 던졌지만 이번엔 더욱 명확하게). 100년 전 마법사들에 의해 수천만명이 죽은 전쟁을 되풀이 않기 위해 태어나는 여자애들을 사지로 내몰아 마법사 숫자(예스마는 마법사)를 줄이려는 왕국은 정의인가, 그런 왕국은 멸하려 했던 불사자는 악인가. 현재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왕국에 지내는 돼지와 제스는 악에 동조하는 무리인가. 그러나 돼지와 제스의 행동은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엔딩에서 언급됩니다. 예스마들에게 희망이 생기기 시작하죠. 돼지와 제스의 관계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옵니다(정확히는 돼지의 마음). 요기부터는 사족, 걸핏하면 색드립을 해대서 제스를 질리게 만들고, 그런 주제에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돼지. (제스를) 남이 가져가면 화를 내지만 내가 가지는 건 주저하는 돼지. 같이 목욕하는 사이면 끝난 거 아닌가? 지구에 미련이 있으면 가서 돌아오지 말던가, 제스가 마음을 부딪혀 오면 어쭙잖게 딴말하는 돼지는 발암이었습니다. 왜 자신(돼지)은 행복해지면 안 되는 건가 하는 느낌을 들게 하죠. 제스도 의존증이 날로 심해져서 이러다 미저리 되는 거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했군요.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느닷없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5종족이 서로 생존을 걸고 박 터지게 싸우던 게 엊그제인데, 마치 거짓말처럼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이해하며 공존을 선택한 결과일까? 주인공은 악마족을 설득했고, 만신족과 1년간 평화 협정을 맺고, 성령족과 친분을 쌓아 이대로 간다면 그가 5종족을 통합하여 리더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보였었습니다(나머지 하나 환수족은 경계 중). 이유는 모르겠지만 환수족 빼고 인간족 포함 4종족의 우두머리가 여성이었다는 것에서 노골적인 노림이 숨어 있지 않았나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만. 이대로 갔다면 이세계 전생식 하렘킹으로 끝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그동안 필자가 흑막으로 표현했던 '대시조'에 의해 인간을 뺀 4종족이 봉인되면서 대전(大戰)은 끝을 고했습니다. 이렇게 싱겁게 끝을 낸다고? 5종족의 특성을 가졌고 공존의 상징이었던 '린네(메인 히로인)'도 4종족이 봉인되면서 존재 의의가 없어져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별(星)에 남겨진 종족은 인간족 단 하나(다른 종족이 쬐금 남아 있긴 함). 언제부터인지 모를 전쟁이 끝이 나고 이제야 평화가 찾아왔으니 잘 된 일 아닌가? 비록 한솥밥 먹던 린네가 사라지고, 츤데레에 은근히 주인공을 잘 따랐던 엘프녀 '레이렌', 아저씨 취향이었던 슬라임녀를 희생 시켰지만.

 

 

근데 뭔가 찜찜하단 말이죠. 자칭 신(神)으로 군림하는 대시조가 지상에서 서로 죽자 살자 전쟁이나 벌이는 버러지들(5종족)이 아니꼬웠다면 인간들도 봉인했어야 말이 되는데, 왜 인간만 남겨 두었을까. 인간들이 살 곳을 바라며 아등바등 거리긴 했지만 그건 다른 종족도 마찬가지고. 대시조가 바라는 세상은 따로 있는 것인가? 그리고 세계를 윤회 시키는 이유가 뭘까, 궁금증을 자아내죠. 이번 7권에서는 에일리언(영화)의 시초를 찾아가는 프로메테우스(영화)처럼 대시조의 근원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대시조의 정체에 바짝 다가서죠. 주인공에 의해 대시조는 딱히 인간을 편애하지 않는 진실을 접하게 되면서 문득 '데이빗(영화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에서 최대 빌런)'이 떠올랐군요.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대시조는 필요에 의해 인간을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이제 주인공의 추리에 의해 인간만 남겨둔 이유는 대충 밝혀졌고, 4종족 봉인을 풀기 위해 대시조가 있다는 저짝 바다 어딘가에 있는 섬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이번 7권에서는 불행히도 만나지 못합니다. 대신 대시조의 권속 극락새인지 뭔지와 피 터지게 싸울 뿐이거든요. 그리고 대시조에 대해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되고요. 흑막 뒤에 또 흑막 같은? 작가가 어지간히도 이야기를 늘이고 싶었는지 좀처럼 명확한 정체를 밝히지 않는군요.

 

 

맺으며: 주인공 자기만 아는 추리는 조금 불편하게 합니다.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거든요. 1권부터 쉬지 않고 내리읽었다면 어느 정도 유추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7권도 6권에서 2년이나 지나 접했거든요? 솔직히 6권에서 4종족이 어떻게 봉인되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단 말이죠. 그래도 대충 유추해 보자면, 주인공이 있는 세계는 상자 정원이고,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인간 사육소가 된 지구를 다루는 어떤 만화 같은 느낌? 그럼 4종족이 더 있으면 먹이가 더 늘어나지 않나? 이 유추는 아닌가? 아무튼 주인공은 봉인된 4종족을 해방해서 대시조에 맞서 싸우는 그런 맥락 같습니다만(6권에서 4종족이 봉인되기 전에 그럴 기회가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주인공 정사(원래 세계)에서 4종족이 봉인되어 있었으니까, 덮어쓰기 된 세계지만 맥락으로 보면 정사로 되돌아온 건가?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분위기 메이커인 린네와 레이렌이 빠지면서 이야기는 팥 없는 찐빵이 되어버렸거든요. 아무튼 필자가 언급하지 않은 여러 가지 설정 등 이야기 자체는 평타 이상이긴 합니다. 대시조의 정체, 일명 덮어쓰기인 세계 윤회에 관한 것, 덮어쓰기가 진행되면서 인간들의 변화 등 알차게 들어가 있긴 합니다. 그런데 9권 완결이면서 봉인된 4종족을 언제 풀고 대통합해서 대시조에 맞서려는지, 시간이 촉박하지 않나 싶기도 하군요.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인조 미궁 크노소스] 소탕 작전은 많은 인명 피해를 낳고 겨우 제압 완료되었습니다. 흑막 중 하나였던 검은 머리 엘프 '피르비스'와의 혈투 또한 많은 피해를 낳았고, 어느 엘프 소녀에겐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안겨 주었죠. 살아남은 이들은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고, 도시를 재건해 갑니다. 엘프 소녀는 소란스러운 도시를 벗어나 엘프의 성지에 찾아갑니다. 아무리 긁어모아도 조금밖에 없었던 그녀의 재를 끌어안고서. 그리고 바람에 실어 보냅니다. 이번 13권은 엘프 소녀 "레피야"에게 있어서 '피르비스'는 어떤 존재인가를 묻습니다. 그녀(피르비스)와 파티 맺으면 죽는다는 징크스 때문에 인간관계를 단절 시켜가는 그녀를 구원해 주고 싶었는지 무던히도 쫓아다니며 마음을 부딪힌 끝에 겨우 친구가 되었다는 안도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맞닥트린 인조 미궁 사건. 눈앞에서 그녀(피르비스)가 마물에게 잡아먹혔다는 충격, 죽은 줄 알았던 그녀가 최강의 적이 되어 그녀(레피야) 앞에 나타났다는 충격. 그럼에도 손을 내밀고, 가공할 힘으로 공격해오는 그녀에게 맞서 싸우며 만신창이가 되어 가면서도 손을 내밀고. 상황은 나아질 기미 없이, 마치 그녀(피르비스)의 인생을 대변하듯, 처절하리만치 격한 공방 끝에 찾아온 구원. 죽음이라는 안식. 피르비스는 레피야에게 단검을 건넵니다.

이번 13권에서는 상실감에 마음이 망가져가는 레피야를 그립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몰살한 주범이기에 묘지에 묻힐 수도 없었던 그녀(피르비스). 감히 언급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름(작중에 피르비스라는 단어는 거의 언급되지 않음). 그렇기에 상실감은 더 커지고, 그녀의 뒤를 쫓게 되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가해자(피르비스)를 피해자로 둔갑 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피르비스의 인생을 보면 27계층에서의 일이라든지 그 이후 누구에게도 구원받을 길 없이 이용만 당하며 살아왔으니 어찌 보면 사회의 부조리에 당한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죠. 하지만 너무 많은 인명 피해를 냈기에 용서가 되지 않는 그런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레피야는 어쩌면 피르비스의 본질(순수한)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고, 그렇기에 더욱 마음이 망가져 이번엔 자신이 본질(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거 아닌가 싶은. 그녀는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었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녀(피르비스)가 남겨준 단검을 허리에 차고, 변화를 추구합니다. 후열에서 마법만으로 서포트하는 걸 그만두고 마법 검사가 되어 전열에 참가하길 희망하죠. 그 바탕엔 다신 누군가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녀의 본질이 아니죠.

본편 19권에서 메인 무대가 되었던 '학구'가 입항합니다. 학구엔 많은 학생들이 있고, 각 파밀리아에게는 우수한 학생을 스카우트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립니다. [로키 파밀리아]에서도 학생들 스카우트하려 대표로 레피야를 보내죠. 초반 레피야의 비장한 모습을 보여주다 갑자기 학구라니 이야기 매치가 안 되어 괴리감이 좀 있지만, 인조 미궁 사건 이후 애가 맛이 가고 있어서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뭔가 달라지겠다고 칼 들고 늑대 인간 베이트에게 겁 없이 수련 시켜 달라고 하질 않나(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음). 머리카락 잘라 버리질 않나(사실 레피야는 장발 빼면 팥 없는 찐빵인데). 성격도 좀 바뀐 거 같고. 이게 사건과 연관이 있었다면 사망 플래그를 마구 뿌려대는 형국이었죠.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학구'에 가 애들 좀 스카우트 해오라 시켰습니다. 가다가 토끼(본편 참조) 비스무리한 것을 보는 건 덤. 갔더니 스카우트 보다 애들 조교(아니 그 조교 말고) 좀 해달랍니다. 참고로 레피야도 학구 출신이죠. 아무튼 배정받은 애들은 4명. 애들에게 모험가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게 그녀(레피야)의 일. 근데 기껏 대학 보냈더니 졸업해서 허드렛 일 시키는 기분은 착각인가 싶습니다. 모험가라면 무뢰배 등 사회 밑바닥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이미지가 있는지라...

갑자기 레피야를 학구에 보내 왜 애들을 가르치라는 걸까.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 안 보였던 게 보이게 되고, 지금 자신의 변화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지금의 자신은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레피야는 피르비스의 환영을 쫓아 망가져가고 있었거든요. 이걸 자각하라는 건지 그 능글맞은 로키가 학구 일을 억지로 떠맡겨 버리죠. 근데 의도치 않게 선생님 일이 적성에 맞았는지 엉뚱하게도 모험가로서의 시야가 넓어지고 애들을 자상하게 잘 가르칩니다. 금쪽이도 개과천선 시키고. 학구 에피소드가 끝나면 그녀(레피야)는 아마 새로운 파티를 꾸려 리더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파른 성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피르비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그녀(피르비스)를 그리는 마음은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이대로 두면 폭주한 끝에 레피야에게 남는 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 해결책이 떠맡겨진 애들.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들어간 던전에서 약속된 듯이 재난이 일어납니다. 레피야는 자신의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애들을 지켜야만 하죠. 변화의 목적, 누군가를 다시 잃지 않기 위해(아마도). 그 목적을 다하면서 비로써 자신의 본질을 찾아갑니다.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걸. 사실 이 해석이 맞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맺으며: 레피야의 변화가 갑작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13권이었는데 작가가 의도하고 집필했다고 하니까 뭐... 그런가 보다 해야죠. 거창하게 이제부터 본편은 표면, 외전은 이면을 다루겠다고 선언도 하셨고. 그러니까 거울 같은 건가? 본편의 벨을 외전 레피야에게 투영 시키겠다는 뭐 그런 해석으로 비치는데 머리 아픈 건 필자 전문이 아니니 패스. 그 연장선인지 이번 13권에서는 언급하기 싫을 정도로 오글 거리는 부분이 꽤 많습니다. 외전은 꽤 묵직한 내용을 다루는 게 아이덴티티였는데 오글거리는 청춘 러브 코미디 같은 것을 넣어놔 조금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레피야라고 하면 무식할 정도로 강력한 고정 포대의 이미지가 있는데, 칼 들고 쫓아다니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이미지 체인지를 거치면서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군요. 그러고 보니 벨이 칼 들고 쫓아다니며 마법 난사하고 그랬는데, 이번 13권에서 레피야도 딱 그렇게 행동하죠. 거울 맞네. 벨이 영웅을 쫓고 있다면, 누구도 희생 시키지 않겠다는 레피야. 이 두 감정을 표리일체로 봐야 할까요? 흥미로운 건 평행세계에서 각각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에 사는 사이라는 것. 어쩌면 호흡을 맞춘다면 아이즈보다 더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아이즈와는 다르게 츤데레 같이 의식하고 있기도 하니까... 잘하면 아이즈 밀어내고 본처로 올라설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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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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