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처형 소녀의 살아가는 살아가는 길 4권 리뷰 -죽이기 위한 여행, 살리기 위한 여행-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세계에 도착한 지구인, '길 잃은 사람'들은 순수 개념이라는 초상적인 힘을 얻습니다. 그 힘은 도시를 증발 시킬 만큼 강력한 것이었죠. 여기까지 보면 여느 이세계 전생물에서 볼 수 있는 먼치킨 부류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한 가지 설정을 추가합니다. 모든 행동과 결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능력을 쓰는 지구인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기억입니다. 능력을 쓸 때마다 깎여나가는 건 기억이고, 마모되는 건 마음입니다. 그렇게 능력을 행사할수록 자신이라는 존재는 지워지고 남게 되는 건 인간형태를 한 순수 개념이라는 마도입니다. 이 마도는 이세계에 재앙을 뿌립니다. 1천 년 전, 이세계에 흘러든 5명의 지구인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구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고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 방법은 이세계를 멸망 시킬 수 있는 거대한 것이었죠.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법을 모으면서 순수 개념을 너무 쓰는 바람에 4대 인재라는 현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이세계로 흘러드는 지구인은 삭제 대상이 됩니다. 1천 년 전, 4대 인재로 인해 문명이 멸망 직전까지 갔던 이세계인들에게 있어서 지구인은 재앙 그 자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아카리(히로인)'가 이세계로 흘러들었을 때 그녀의 운명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순수 개념은 [시간], 죽음을 맞이하면 제일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시간대에서 다시 부활을 힐 수 있는 그녀는 불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유일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대륙을 소금으로 바꿔버린 4대 인재 중 하나인 '소금 검'을 쓰는 것. 그녀를 소금 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죽이도록 명령받은 사람은 '메노우(여주인공). 메노우는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아카리를 소금 검이 있는 곳으로 대려 가려 합니다. 그녀들의 여정은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여정을 통해 아카리는 메노우를 정말 좋아하게 되죠. 그녀는 메노우를 위해서라면 이세계가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아카리의 순수 개념은 [시간], 3권에서 그녀는 시간 회귀 중이라는 사실을 '모모(히로인, 여주 보좌관)에게 털어놓습니다. 메노우는 아직 모르고요. 회귀 발동 조건은 메노우의 목숨. 이 능력이 발동되면 아카리는 이세계로 흘러 들어와 처음 도착한 곳에서 새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녀는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숱하게 회귀를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순수 개념을 쓸 때마다 깎여나가는 건 기억, 그녀에게 있어서 이제 일본에서 지냈던 기억들은 희미해졌습니다. 어느 분기점으로 가든 죽어버리는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노력할수록 사람이 아니게 되는 그녀에게서 헌신적인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 4권에서는 여정 중에, 어느 타임라인을 타든 메노우가 왜 죽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세계는 메노우 같이 처형인들이 자신들을 희생하며 지켜야 될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고 역설하기 시작합니다. 아카리는 모모와 같이 메노우 곁을 떠납니다. 자신이 떠나면 그녀가 죽지 않는 분기점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서.
메노우가 죽였을 거라 여겼던 마논과 만마전(새끼 손가락)이 살아 있었군요. 이들과의 재회는 처형인으로서의 가치관을 흔들어댑니다. 그리고 스승의 재등장으로부터 이세계는 그렇게 착하지 않다는 것, 지구인들이 순수 개념화된 후, 그 이용 가치가 밝혀지면서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죠. 그리고 지구인들이 순수 개념화되어 인재로 발전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교회 상층부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교회에 대항하는 제4 계급들의 대두는 메노우로 하여금 선택을 강요합니다. 지구인들을 희생 시키지 않고 공존을 모색할 것인가, 이대로 처형인을 계속할 것인가. 이 시점에서 왜 메노우가 여정 중에 죽어야만 되는지에 대한 답이 명확하게 밝혀집니다. 그녀는 아카리를 좋아하게 되어 교회를 배신하는 것도, 자기 일을 내팽개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기 일을 너무나 충실히 하려는 게 오히려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다는 반전은 이번 4권의 최대 흥미 포인트입니다. 아카리는 메노우 스승에 붙잡혀 소금 검이 있는 대륙으로 압송됩니다.
맺으며: 이번 4권의 포인트는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하는 구분을 짓는 것입니다. 이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4대 인재가 일어난 원인을 밝히면서 지구인이라고 마냥 피해자는 아니라고 역설합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이세계를 멸망으로 이끌어도 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죠. 그리고 이세계도 지구인들을 인재화 시켜 무언갈 얻으려 한다는 것에서도 착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래서 본 작품은 권선징악형과는 거리가 먼데, 가령 친족에게서 학대를 당한 마논과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어 힘을 행사했을 뿐인 만마전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목적을 위해서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제물로 받치는 가해자로 등장하죠. 교회는 지구인들을 없애면서 이세계를 인재로부터 지켜 나가는 선(善)이지만, 그 지구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배제(마논도 그 피해자, 엄마가 지구인)하고 이용해 무언갈 만드는 악(惡)의 축이기도 합니다. 메노우는 그런 사실을 알아가며 혼란을 겪어 가죠. 이 4권을 기점으로 죽이기 위한 여행은 근본부터 바뀌어 살리기 위한 여행으로 넘어갑니다.
또 다른 포인트를 꼽으라면, 아카리의 메노우 사랑을 들 수가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여정 중에 좋아하게 된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기꺼이 받치고, 내가 없어져도 내가 있었다는 흔적은 남아 있을 거라는 대목은 심금을 올리죠. 그리고 안타깝게 하는 건 능력을 쓸 때마다 그녀의 기억이 소실된다는 것이고요. 메노우를 지키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고, 스승에게 붙잡혔을 때 따라온 메노우와의 재회에서 더 이상 쫓아오지 말라고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서 애잔함이 묻어나죠. 그리고 아카리가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 메노우는... 자, 처형인으로서 이세계를 지키기 위한 올곧은 마음을 가진 사상 최강이라는 스승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메노우는 스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지금 메노우가 걷고 있는 길을 이미 걸어왔던 스승은 제자에게서 무엇을 바라게 될까. 장르가 백합이고, 라노벨 다운 가벼운 이야기들이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있지만, 설정만 놓고 본다면 대단히 우수한 작품이죠. 근데 인기를 못 끌다니... 출판사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발매 텀 좀 줄여주세요. 앞에 이야기를 다 까먹어서 다시 읽어야 되는 수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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