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세계에 도착한 지구인, '길 잃은 사람'들은 순수 개념이라는 초상적인 힘을 얻습니다. 그 힘은 도시를 증발 시킬 만큼 강력한 것이었죠. 여기까지 보면 여느 이세계 전생물에서 볼 수 있는 먼치킨 부류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한 가지 설정을 추가합니다. 모든 행동과 결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능력을 쓰는 지구인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기억입니다. 능력을 쓸 때마다 깎여나가는 건 기억이고, 마모되는 건 마음입니다. 그렇게 능력을 행사할수록 자신이라는 존재는 지워지고 남게 되는 건 인간형태를 한 순수 개념이라는 마도입니다. 이 마도는 이세계에 재앙을 뿌립니다. 1천 년 전, 이세계에 흘러든 5명의 지구인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구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고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 방법은 이세계를 멸망 시킬 수 있는 거대한 것이었죠.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법을 모으면서 순수 개념을 너무 쓰는 바람에 4대 인재라는 현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이세계로 흘러드는 지구인은 삭제 대상이 됩니다. 1천 년 전, 4대 인재로 인해 문명이 멸망 직전까지 갔던 이세계인들에게 있어서 지구인은 재앙 그 자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아카리(히로인)'가 이세계로 흘러들었을 때 그녀의 운명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순수 개념은 [시간], 죽음을 맞이하면 제일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시간대에서 다시 부활을 힐 수 있는 그녀는 불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유일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대륙을 소금으로 바꿔버린 4대 인재 중 하나인 '소금 검'을 쓰는 것. 그녀를 소금 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죽이도록 명령받은 사람은 '메노우(여주인공). 메노우는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아카리를 소금 검이 있는 곳으로 대려 가려 합니다. 그녀들의 여정은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여정을 통해 아카리는 메노우를 정말 좋아하게 되죠. 그녀는 메노우를 위해서라면 이세계가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아카리의 순수 개념은 [시간], 3권에서 그녀는 시간 회귀 중이라는 사실을 '모모(히로인, 여주 보좌관)에게 털어놓습니다. 메노우는 아직 모르고요. 회귀 발동 조건은 메노우의 목숨. 이 능력이 발동되면 아카리는 이세계로 흘러 들어와 처음 도착한 곳에서 새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녀는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숱하게 회귀를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순수 개념을 쓸 때마다 깎여나가는 건 기억, 그녀에게 있어서 이제 일본에서 지냈던 기억들은 희미해졌습니다. 어느 분기점으로 가든 죽어버리는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노력할수록 사람이 아니게 되는 그녀에게서 헌신적인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 4권에서는 여정 중에, 어느 타임라인을 타든 메노우가 왜 죽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세계는 메노우 같이 처형인들이 자신들을 희생하며 지켜야 될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고 역설하기 시작합니다. 아카리는 모모와 같이 메노우 곁을 떠납니다. 자신이 떠나면 그녀가 죽지 않는 분기점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서.

메노우가 죽였을 거라 여겼던 마논과 만마전(새끼 손가락)이 살아 있었군요. 이들과의 재회는 처형인으로서의 가치관을 흔들어댑니다. 그리고 스승의 재등장으로부터 이세계는 그렇게 착하지 않다는 것, 지구인들이 순수 개념화된 후, 그 이용 가치가 밝혀지면서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죠. 그리고 지구인들이 순수 개념화되어 인재로 발전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교회 상층부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교회에 대항하는 제4 계급들의 대두는 메노우로 하여금 선택을 강요합니다. 지구인들을 희생 시키지 않고 공존을 모색할 것인가, 이대로 처형인을 계속할 것인가. 이 시점에서 왜 메노우가 여정 중에 죽어야만 되는지에 대한 답이 명확하게 밝혀집니다. 그녀는 아카리를 좋아하게 되어 교회를 배신하는 것도, 자기 일을 내팽개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기 일을 너무나 충실히 하려는 게 오히려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다는 반전은 이번 4권의 최대 흥미 포인트입니다. 아카리는 메노우 스승에 붙잡혀 소금 검이 있는 대륙으로 압송됩니다.

맺으며: 이번 4권의 포인트는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하는 구분을 짓는 것입니다. 이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4대 인재가 일어난 원인을 밝히면서 지구인이라고 마냥 피해자는 아니라고 역설합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이세계를 멸망으로 이끌어도 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죠. 그리고 이세계도 지구인들을 인재화 시켜 무언갈 얻으려 한다는 것에서도 착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래서 본 작품은 권선징악형과는 거리가 먼데, 가령 친족에게서 학대를 당한 마논과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어 힘을 행사했을 뿐인 만마전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목적을 위해서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제물로 받치는 가해자로 등장하죠. 교회는 지구인들을 없애면서 이세계를 인재로부터 지켜 나가는 선(善)이지만, 그 지구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배제(마논도 그 피해자, 엄마가 지구인)하고 이용해 무언갈 만드는 악(惡)의 축이기도 합니다. 메노우는 그런 사실을 알아가며 혼란을 겪어 가죠. 이 4권을 기점으로 죽이기 위한 여행은 근본부터 바뀌어 살리기 위한 여행으로 넘어갑니다.

또 다른 포인트를 꼽으라면, 아카리의 메노우 사랑을 들 수가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여정 중에 좋아하게 된 메노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기꺼이 받치고, 내가 없어져도 내가 있었다는 흔적은 남아 있을 거라는 대목은 심금을 올리죠. 그리고 안타깝게 하는 건 능력을 쓸 때마다 그녀의 기억이 소실된다는 것이고요. 메노우를 지키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고, 스승에게 붙잡혔을 때 따라온 메노우와의 재회에서 더 이상 쫓아오지 말라고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서 애잔함이 묻어나죠. 그리고 아카리가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 메노우는... 자, 처형인으로서 이세계를 지키기 위한 올곧은 마음을 가진 사상 최강이라는 스승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메노우는 스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지금 메노우가 걷고 있는 길을 이미 걸어왔던 스승은 제자에게서 무엇을 바라게 될까. 장르가 백합이고, 라노벨 다운 가벼운 이야기들이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있지만, 설정만 놓고 본다면 대단히 우수한 작품이죠. 근데 인기를 못 끌다니... 출판사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발매 텀 좀 줄여주세요. 앞에 이야기를 다 까먹어서 다시 읽어야 되는 수고가 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신작입니다. 올해 애니메이션으로 방영이 되었으며(11월 1일 자로 넷플릭스에서도 방영 시작), 애니메이션 호조에 힘입어 전격적으로 정발을 단행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일본에서는 이미 14권이 나왔음에도 이제 1권). 내용은 심각한 이지메를 당하던 주인공이 이세계에서 힘을 얻어 현실에서도 무쌍을 찍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권선징악적인 측면이 강하며, 돼지 오크라 불릴 정도로 못생기고 뚱뚱한 주인공이 이세계에서 얻은 힘 덕분에 미남(이하 이케맨)이 되어 모두의 선망을 한몸에 받고 신분이 상승한다는 신데렐라식 성장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주인공이 돼지 오크 같던 모습일 때는 할아버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주인공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도 않고 멸시를 하더니, 주인공이 이케맨이 된 후로는 엄청나게 빨아준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은 외모가 제일이라는 다소 위험한 사상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면이 중요하다는 설정도 넣지만 이케맨이 된 후로는 무엇을 말하든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는 방임, 먹을 것을 주지 않아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옷도 공원에서 세탁하는 처지에 이르죠. 쌍둥이 동생들은 한술 더 떠서 인간 취급도 안 해줍니다. 학교 친구들은 주인공을 매일 구타하는 것도 모자라 홀딱 벗겨 사진 촬영을 해댑니다. 쌍둥이 동생들도 동조합니다. 나중에 선생도 이지메에 개입했다는 게 밝혀집니다. 돈을 빼앗기고, 얻어맞고 기절하고 눈을 떠보니 달님이 보입니다. 이 일로 어찌어찌 얻은 아르바이트 자리는 잘렸습니다. 이 모든 게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어난 일이죠.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에서 양아치에게 능욕 당할 뻔한 히로인1(부잣집 딸내미)을 구해줍니다. 그녀는 못생긴 주인공의 겉모습을 보고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유일하게 주인공 편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을 물려받았지만 그걸 또 부모가 빼앗으려 합니다. 할아버지 집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문(도어)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너머엔 주인공을 개변 시켜줄 무언가가 있었죠.

이세계에서 얻은 힘을 현실에서도 쓸 수 있고 이케맨이 된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이 힘으로 그동안 이지메 했던 나쁜 시키들을 밟아줄 수 있게 되었죠. 또한 빈털터리에 오늘 먹을 양식도 구할 여력이 없었던 주인공에게 이세계에서 얻은 각종 소재는 일본 돈으로 환금도 되어서 며칠 만에 우리 돈으로 억대에 달하는 돈을 손에 넣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분기점이 생기죠. 하나는 돈을 흥청망청 쓰고, 이세계에서 얻은 힘으로 도시를 장악하는 길. 하나는 갑자기 졸부가 되었지만 소심한 성격에 돈을 어떻게 써야 될지 모르고, 얻은 힘도 어떻게 구사해야 될지 몰라 여전히 쭈구리 인생을 사는 길. 작가가 선택한 길은 두 번째 길입니다. 사실 필자가 바랐던 길은 이게 아닌데, 외모가 바뀐다고 성격도 바뀌지 않는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을 보여준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소심한 성격은 그대로죠. 자신감도 없고, 탐험심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래서 권선징악형이지만 그렇다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만한 통쾌함도 없습니다.

무쌍은 주로 얼굴이 합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하루아침이지만, 어쨌건 이케맨이 되자마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쳐다보죠. 여자들은 100이면 100 다 얼굴 붉히며 꺄악~ 거리고, 남자들도 질투보다는 선망을 보냅니다. 옷 사러 쇼핑몰 갔더니 잡지 촬영 제의를 받습니다. 페어로 촬영할 여자 연기자(히로인3)는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해댑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주인공 누구냐며 왜 이리 잘 생겼냐며 휴대폰 셔터 누르고 난리 났습니다. 성별 역전이라도 된 듯 여자들이 헌팅을 해댑니다. 가는 곳마다 현빈이 나와도 이 정도는 아닐 거다 같은 열광하며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이게 진정 현실이란 말인가. 이 세상 못생긴 남자들이여 어서 이세계로 가세요 같은 공익 캠페인인가? 며칠 전에 편의점에서 구해준 히로인1이 등장합니다. 왜 안 나오나 했습니다. 등굣길에 거대한 리무진을 타고 와 사실 나는 유명한 학원 이사장 딸이고, 우리 아빠가 널 전학 시키려고 하는데 OK? 합니다. 만약 주인공이 아직도 돼지 오크 같은 외모였다면?

전학 갈 예정인 학교에 맛보기로 하루 등교해 봅니다.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주인공만 쳐다봅니다. 세상에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땅바닥을 기며 오물을 씹던 돼지 오크가 오늘은 신데렐라가 되었습니다. 히로인1과 거리에 나갑니다. 사람들이 또 선남선녀 납셨다며 난리를 칩니다. 오! 신이시여 여기가 진정 현실이란 말입니까. 주인공은 이제 내 내면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며 좋아합니다. 뭔가 전재가 잘못된 거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외모가 바뀌니까 주변도 180도 바뀝니다. 이제 어딜 가도 돼지 오크는 없습니다. 잡지 촬영으로 이케맨 그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에 언급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사실 주인공은 친구들에게 너무 두들겨 맞아 죽어가고 있고, 이 모든 상황은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꾸는 꿈일 아닐까. 사람이 태어나서 모두의 선망과 이성의 호감을 받으며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꿈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주인공이 죽어가며 꾸는 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맺으며: 언제부터 일본 작품들에서 다정한 남자가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필자의 기억엔 일본식 이케맨은 호쾌하고 밝으며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이끄는 마성의 소유자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게 다 한류의 영향일까요. 그 왜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일이 많잖아요. 실제로 일본 여성들에게 여론 조사한 거 보면 한국 남자는 다정하다는 인식이 강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라노벨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한국식 다정함이 많이 보이게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필자의 망상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본 작품의 주인공의 경우도 이 다정함이 묻어나고 있죠. 극한의 방임과 괴롭힘, 세상에서 나 혼자라는 외로움, 어떻게 발버둥 처도 오늘 먹을 양식을 걱정해야 되는 지지리도 궁상인 생활, 시선의 따가움, 언제나 길바닥을 보며 걸어야 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비참함. 과연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을까? 특히 주인공은 지금 한창 사춘기죠.

왜 삐뚤어지지 않는가. 부모와 쌍둥이 동생들은 천하의 개x레기고, 할아버지를 뺀 그 누구 하나 주인공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주인공의 다정함은 여자 히로인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듭니다. 이 다정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세계에서? 나도 두들겨 맞으면 다정해질까? 픽션에서 현실을 들이미는 건 어리석다고는 합니다만. 비현실적이기에 주인공 성격을 꼬아 놨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을 괴롭혔던 쓰레기들에 대한 천벌은 이 작품에서 최대의 카타르시스였을 텐데 왜 1회용 엑스타라 악당 처리하듯 해버리는가. 스포일러가 자세히는 못 씁니다만. 주인공에게 깝치다가 허무하게 리타이어는 좀 아니잖아요. 어쨌건 다정함으로 히로인들에게 무쌍을 찍습니다. 이세계에서 히로인2(이세계 왕녀, 히로인3보다 먼저 만남)를 다정함으로 구해주고, 전학 간 학교에서 히로인4(말괄양이)가 들러붙고, 이 작품에서 말하는 무쌍은 이세계에서 얻은 힘이 아니라 얼굴을 뜻합니다. 이넘의 외모지상주의.

이 작품은 돼지 오크 때와 이케맨일때의 사람 반응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1권에서는 돼지 오크 때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케맨의 생활을 극단적으로 끌어내고 있죠. 적어도 주인공이 전학 간 학교에서도 과연 돼지 오크의 모습이라면 반겨줄까, 과연 잡지에 출연할 수 있었을까, TV에서 언급해 주었을까, 히로인들도 반겨줄까 같은 비교하는 철학적인 물음을 던졌더라면 좋았을 텐데 없습니다. 이게 상당히 아쉽죠. 필자 개인적으로 주인공을 개변 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내게 하고, 이걸 뛰어넘어 무쌍 찍는 걸로 해주었으면 좋았지 않나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외모만이 제일이라는 현실 비판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작가가 이걸 노린 듯합니다만, 진실은 모르겠군요. 아무튼 이러해서 열혈 통쾌함이 없습니다. 다정함으로 포장된 비참함이 있다고 할까요. 왜냐면, 주인공은 그동안의 괴롭힘을 대갚음해 주기보단 품어주는 길을 선택하거든요. 즉, 주인공이 희생하면 모두가 평안해진다는...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의 주인공은 구울(좀비)입니다. 판타지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마물로 변질 시키는 안개와 [청안병]이 유행 중입니다. 이로 보아 주인공도 청안병에 감염되어 구울이 되었지 않나 하는 추축을 하게 합니다. 청안병에 걸려 마물로 변질되는 개체는 천차만별로 고블린같이 마물 특유의 본능에 충실히 살아가는 존재부터 주인공처럼 사람의 마음과 정신과 지식을 가진 일명 [적안]까지 다양하나 이들에게 공통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 그중에서 주인공처럼 선(善)의 마음으로 인간들 편에 서서 살아가는 개체는 매우 드문 정도가 아니라 일단 1권에서는 주인공밖에 없습니다. 인간들에게 위협이 되는 건 고블린같이 조무래기가 아니라 주인공처럼 인간의 의식을 가진 개체로서 1권에서는 그 개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주인공은 인간들에게서 멸시를 받으며 교회의 개가 되어 청안병으로 인해 변질된 사람들을 사냥하며 연명하고 있습니다. 일단 기본 플롯은 이와 같습니다.

여기서 작가는 두 가지 설정을 추가합니다. 하나는 주인공이 과거에 지인을 구하지 못해 거기에 얽매어 마음에 병이 들어간다는 것, 또 하나는 그 마음의 병을 치료해 줄 히로인의 투입해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삶의 의지를 되새기게 하는 것. 4년 전 희대의 [적안]으로 인해 도시는 패닉에 빠졌고, 주인공(이때 이미 구울)은 스승과 사형과 파티를 짜고 토벌에 나서죠. [적안]을 거의 다 몰아붙이고 토벌에 성공하나 했으나 주인공은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적안]에 인질로 잡힌 사형을 구출하고 대신 내가 죽을 것인가, 아님 [적안]의 말대로 못 본 척 도망갈 것인가. 여기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죠. 왜 내가 대신 죽어야 하는가, 사형은 내가 죽는 걸 바랄까. 대신 죽어주지 않은 것이 잘못인가. 그로 인해 죽은 사형은 주인공을 원망할 수 있는가, 아님 주인공만이라도 살아주길 바라야 하는 게 옳지 않은가. 주인공은 그로부터 끊임없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집니다. 내가 대신 죽어야 했었다고, 못 본척한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히로인 '앨리스'는 청안병으로 인해 마물로 변해버린 엄마를 죽인 주인공을 찾아옵니다. 여기서 운명의 갈림길이 생기죠. 비록 마물로 변했다곤 하나 엄마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를 할 것인가, 고통뿐인 미래를 덜어준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낄 것인가. 사람들은 주인공의 본질(왜 살고 있는지)을 보는 것보다 구울이라는 마물이 마을 속을 걸어 다닌다는 것에 엄청난 혐오감을 드러냅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아군은 그에게 장비를 만들어주는 아멜리아(일거리를 알아봐 주기도 함) 외에는 없습니다. 주인공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든 개의치 않습니다. 그에겐 오로지 4년 전에 있었던, 지키기 못했던 스승과 사형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죠. 세간에서도 그 [적안]의 사태도 주인공이 일으킨 일로 각인되어 있고요. 이렇듯 주인공은 스스로 삶의 의지를 잃어가고 속죄만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앨리스'와의 만남은 주인공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가 이번 1권의 이야기입니다.

청안병은 블랙 불릿이라는 작품에서 나오는 가스트레아와 유사합니다. 생물을 마물로 변질 시키고, 마물로 변하면 생전의 집착에 연연하죠. 주인공같이 인간의 의식을 가진 자는 적안으로 불리며 블랙 불릿의 이니시에이터와 유사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지녔지만 결코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존재. 대부분의 존재는 마물로 변해 본능에 따라 인간을 공격합니다. 주인공이 언제 구울로 변했는지 1권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이게 이 작품의 최대 복선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그리고 히로인 '앨리스'는 주인공의 사형과 대척점에 있습니다.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주인공을 도망치게 하려 하죠. 이 점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삶의 의지가 되고 정신줄을 잡는 계기가 되어 갑니다. 주인공은 모든 걸 포기하고, 오로지 어떻게 사죄하고 죽을지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죠. 그래서 처음엔 쫓아내도 쫓아내도 달라붙는 앨리스가 귀찮아 죽을뻔하였으나 그녀가 흘리는 눈물과 혼자 두지 말라는 호소, 주인공을 지키겠다는 당돌한 선언 등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구원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1권은 주인공의 과거 청산입니다. [적안], 마물로 변질되었으면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지성과 감정을 가진 마물. 주인공에게 있어서 청산 대상자는.... 4년 전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형을 구해 냈더라면 사형과 스승은 죽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주인공은 그걸 청산하려 하죠. 히로인 앨리스는 주인공을 스승으로 모시며 배움을 갈구합니다. 첫 만남(과거 말고 1권에서의 첫 만남)은 고블린 슬레이어처럼 던전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하면서 시작됩니다. 겁이 많으면서도 타인을 구하려 하고, 주인공이 부조리한 대우를 받으면 그러지 말라고 나서서 말하는 당돌한 기질을 가졌죠. 타인의 기분을 억수로 살피고, 버림받을까, 미움받을까 상대의 기분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비굴함도 가졌습니다. 아마 엄마가 생전에 웃으며 살라는 강박증에 가까운 주입식 교육과 마물로 변해버린 엄마와 그런 엄마를 죽인 주인공으로 인해 성격이 비굴해지지 않았나 하는 추축을 하게 하죠. 작중에서 엄청 굴러다닙니다.

맺으며: 사람 선입견이라는 건 엄청나게 무섭다는 걸 본 작품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리뷰는 거의 중립적+@로 쓰긴 했습니다만. 표지 다음으로 나오는 컬러 일러스트를 봤을 때 딱 느낌이 왔는데, 이거 히로인 때문에 말아 먹겠다고. 히로인 앨리스의 성격이 나무나 이상합니다. 초반 자고 있는 주인공을 찾아가 대뜸 개연성도 없이 저를 제자로 삼아 달라는 것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데, 주인공이 뭐라 하든 말도 드럽게 안 듣고, 작중 내내 자신의 마음만 앞세울 뿐 주인공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보다는 나를 혼자 두지 마세요. 저 상처받았어요 같은 자신을 먼저 챙겨 달라는 모습들은 너무나 어이없게 만듭니다.

시종일관 되레 주인공에게 보호받는 주제에 제가 지켜 줄게요, 해놓고 마물에게 능욕 당할 뻔하지 않나. 물론 그녀의 과거를 생각하면 집착에 가깝게 누군가의 온기를 갈구하는 건 있을 수 있지만 이것도 사실 정신병이죠. 난처해지는 건 주인공인데, 아무런 영향력도 없으면서 주변에 대고 주인공에게 험한 말 하지 말라고 하면 비웃음 사는 건 주인공이라는걸. 히로인은 주인공이 사람들에게서 두들겨 맞기를 바라는 사이코 패스인가? 왜 이런 히로인을 기용했는지 진짜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초반에 한번 선입견이 생겨 버리니까 후반 진정으로 주인공을 사모하고 보살펴 주려는 마음이 퇴색되어 버리더라고요.

앨리스를 적어도 설정이 어느 정도 정착되는 중반쯤에 기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분위기와 동떨어진 높은 텐션과 비굴할 정도로 상대의 기분을 살펴대고, 만약 상대가 배려의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침몰해버릴. 돌려 말하면 엄청 귀찮은 캐릭터죠. 자신의 감정을 왜 타인에게 갈구하는가. 이렇듯 감정이라는 설정을 잘못 배치하는 바람에 약간은 괜찮은 분위기를 다 망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과거(히로인 과거도 포함)와 작중 설정을 초반에 밀어 넣고, 그다음에 히로인을 집어넣어야 했지 않나 합니다. 리뷰를 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결국 이렇게 쓰고 마는군요.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뭔가 활약 같지도 않은 활약을 했더니 황제께서 모임에 초대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헌터들은 어중이떠중이 무뢰배들이나 하는 직업으로 인식된 상황에서 황제가 초대했다는 건 정말로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는 일이죠. 영웅적인 헌터라도 극히 일부만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받는 그런 모임에 우리의 주인공이 선택한 길은? 도망가야죠. 갔다간 자신의 실력이 거짓이라는 게 들통 날 테고, 철저하게 방구석 폐인을 자처하는 주인공이 인싸들 밖에 없는 사교장에서 적응 못하고 토할게 뻔하거든요. 게다가 헌터 협회에서 클랜 하우스로 복귀하는데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쭉정이인 주인공이 난다 긴다 하는 실력자들이 모이는 사교장에서 배겨날 제간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선택한 길은 야반도주. 그런데 호위 없이는 클랜 하우스 밖에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주인공으로서는 반드시 누굴 꼬셔서 같이 도주해야만 하죠. 하지만 주인공과 엮여서 좋은 꼴 못 본 클랜 소속 헌터들은 하나같이 외면하는데...

어쨌건 지체할 틈이 없습니다. 대충 누구라도 주워 출발하려 하지만, 바캉스라 명명된 도주극에 참가한 면면들로부터 재난의 시작이라는 플래그를 세웁니다. 어둠이 깔리고 비까지 쏟아집니다. 헌터 협회는 주인공이 도망갔다는 걸 알아채고, 매번 매번 주인공에게 도발 당했다 여겨 뿔이 난 시골 출신 헌터 '아놀드'의 추격도 받습니다. 이건 바캉스가 아니라 빚을 지고 야반도주하는 빚쟁이를 뛰쫓는 채권자의 구도가 펼쳐지죠. 여기서 작가는 더욱 흥미로운 설정을 쏟아붓습니다. 고생은 주인공 일행이 다 할 거 같은데, 진짜 고생은 쫓아오는 채권자들이 다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난은 주인공 일행에게 들이닥치는 게 아니라 쫓는 자에게 들이닥치게 되죠. 사실 쫓는 자들도 나름 비중 있는 인물들입니다. 헌터 협회 직원도 비중 있는 히로인이고, 아놀드는 주인공과 대척점에 있다고 할까요. 무능력 주인공과 진짜 고생해서 성장한 아놀드, 근데 서로의 인식 차이로 원수가 되어 버렸죠.

분명 바캉스라 했는데 따라온 히로인들 때문에 바캉스가 바캉스 같지가 않습니다. 제노사이드 몬스터라 불릴 정도로 제도에서 재앙으로 취급받는 '리즈'와 사람을 무언가의 생물로 개조하는 걸 취미로 삼고 위법 약물을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시트리의 동행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재난이나 다름없었죠. 시트리가 만든 무언가의 생물과 무언가로 만든 키메라와의 동행은 비현실적의 끝을 달립니다. 어째서 바캉스가 언제부터 호러가 된 것이지? 같은. 설상가상으로 비 오는 한밤중에 평생에 한 번도 보기 힘들다는 번개 속성 정령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인 외의 존재 같은 히로인들 때문에 주인공이 마음고생한다면, 물리적으로 고생은 주인공 뒤를 쫓는 헌터 협회 여직원과 아놀드 일행이 한다는 것이군요. 주인공으로부터 헌터 레벨 7도 고전하게 만드는 번개 속성 요정을 떠맡게 되고, 오크 군단이나 이번엔 화속성 정령까지 떠맡게 되자 사람이 돌아버린다는 게 무엇인지, 끈기가 무엇인지 아놀드는 보여주려 하죠.

하지만 주인공 일행에서도 고생하는 이가 있었으니. 본 작품에서 비련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티노'. 처음엔 그저 헌터를 동경했을 뿐인데 언제부턴가 주인공에게 거둬져 제노사이드 몬스터 리즈의 제자가 되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죠. 주인공 대신 아놀드와 대결했다가 깔끔하게 발리고, 주인공이 내린다는 천 개의 시련인가 뭔가로 죽기 직전까지 가고, 리즈에게서 진짜로 소x을 지릴 정도로 수행이라는 명목으로 두들겨 맞고, 주인공은 신(神)이라는 리즈의 주입식 교육으로 그를 신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본 작품에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인데요. 사실 이 고생은 주인공이 해야만 하는 것인데, 대신 고생하게 되는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바캉스에 억지로 동행하게 되면서 번개에 지져지는 등 고생을 참 많이 하게 되죠. 하지만 그동안의 고생이 이번 바캉스로 인해 성장이라는 기틀을 잡게 하고, 주인공으로부터 인정받는 등 성장이라는 건 이런 건가 하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맺으며: 여전히 착각과 오해가 난무합니다. 그 착각과 오해는 주인공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효과를 부여한다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가령 주인공을 뒤쫓는 아놀드 일행의 평가를 올려주게 한다던가, 주인공이 가진 생각은 일반인을 초월한 무언가라는 등 지레짐작을 해대죠. 황제가 주최하는 모임에 초대된 것도 이 착각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주인공은 무능력 먼치킨이 아니라 진짜로 무능하고, 운은 지지리도 없으면서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다 해주는 지인 복은 있어서 고(高) 평가받고 있는 것뿐인 게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4권에서는 황제가 주최하는 모임에서 도망치기 위해 혈안이 된 주인공과 그 모임에 참석 시키기 위해 혈안이 된 헌터 협회 여직원, 그리고 도발에 도발을 받아 열받을 대로 받은 아놀드의 추격은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성장은 사람 잘못 만나 고생하는 '티노'가 다 하게 되고요. 자, 바캉스는 이제 시작입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왕녀의 시녀는 겁탈당할 뻔한 걸 구해주었더니 주인공을 무시합니다. 성녀이자 왕녀는 팔려가서 해부당할 뻔한 걸 구해 주었더니 자기 친구이자 주인공 소꿉친구를 인질로 잡아 협박하듯이 내 로열 가드가 되어 주세요. 이 xx 합니다. 주인공이 헌터 가입하려고 길드에 갔더니 접수처 누님은 주인공이 무능이라고 다 까발려 버립니다. 이 세계는 개인정보 보호법 따윈 없습니다. 그래놓고 납치되어 얘도 해부 당할 뻔 한걸 구해주었더니 왜 근본 없는 호감도가 올라가죠? 나이도 무려 주인공보다 5살이나 많으면서. 왕녀의 시녀는 귀족으로서 책임감 때문인지 뭔지로 대책 없이 나대다 주인공에게 왜 거금의 빚을 지게 만들까요. 본 작품의 주인공은 무척이나 상냥하고 다정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시녀는 무뢰배들에게 겁탈을 당했을 것이고, 왕녀는 해부를 당했을 것입니다. 접수처 누님 또한 겁탈 당하고 해부 당했을 것이고요. 그래서 히로인들이 다정한 주인공에 반해 그의 하렘에 동참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본 작품은 철저한 무능 멸시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신(神) 아레스의 가호라 여겨지는 기프트는 곧 그 사람의 능력이자 가치가 되죠. 그러니 무능을 받아버린 주인공은 신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배신자이자 쓰레기입니다. 이 소식은 대륙 전체에 퍼지게 되었고, 가는 곳마다 시비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았고, 억지로 떠맡은 로열 가드에서 해방되고자 주인공은 이런 여론을 역으로 이용하려 하죠. 왕녀의 시녀가 노예상에 시비를 터는 바람에 졸지에 거액의 빚을 지게 된 주인공은 빚 해결 겸 악당으로서 명성을 쌓고자 마침 무도회가 열리는 도시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활약할 필요도 없이 사람들은 일찌감치 주인공을 멸시 중이었죠. 무도회에 출전한 옛 사재들은 주인공이 부정으로 승승장구한다고 여론을 선동하고 멸시합니다. 귀족들과 대회 관계자들은 급기야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그를 축출하려 혈안이 되어 가죠. 주인공 보고 부정을 저지른다 욕하더니 자기들은 대놓고 부정 저지르는 게 여간 웃기지도 않습니다. M 성질이 있는 분들이라면 짜릿한 쾌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 무능이 보여주는 신진기예란 이런 거다를 보시라. 군더더기 없는 실력으로 승승장구하는 주인공. 그런데 사람들은 부정을 저질러 이긴 거겠지 하며 야유하지만 개중에 올바른 눈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고 그의 실력이 진짜 베기임을 알아가죠. 그야말로 길 가다 벼락 맞는 기분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무능이라고 다들 멸시를 해도 주인공의 참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가치는 기프트가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을, 행동에 있다는 것을, 말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번엔 유명 종파와 학원도시에서 그를 끌어들이려 혈안이 되어 가죠. 참 웃기지 않나요? 세상 무능이라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이용하려는 자들이 생겨났다는 것을요. 참고로 비하가 아니라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있어서 유명해지고 싶지 않을뿐더러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닌 세상입니다. 그저 그는 로열 가드에서 해방되고 돈을 모아 유유자적 여행을 하고 싶을 뿐이죠.

하지만 세상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잖아요. 주인공에게 동료를 잃은 어디 무슨 결사대라 지칭하는 조직이 주인공의 친구를 빈사로 만들고, 소꿉친구를 납치했습니다. 이들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역린이죠. 그리고 마족이 숭상하는 악(惡)군 군단이 이 세계에 현현하여 하필이면 주인공이 임시로 거주하는 마을을 노리네요? 주인공은 신(神)들을 사역 중에 있습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죠. 악신도 있고, 사신도 있고, 별별 신들을 주인공은 시련의 던전에서 마치 떨어진 밤을 줍듯 컬렉션에 수납을 해두었습니다. 그 신들은 주인공을 자신들의 신으로 숭상하며 마치 사이비 종교를 방불케하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죠. 그러니 누가 쳐들어오든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압도적으로 강한 주인공이 적들을 맞아 무쌍을 찍으며 카타르시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뭐 이건 기본으로 깔고 가지만 이후 그의 가치를 눈여겨본 사람들이 자신들의 진영에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가는 과정이 되겠습니다. 사실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는 자는 소수이고 나머지는 어떻게든 주인공을 이용하려 하죠.

왕녀를 해부하려 했던 이웃 제국, 엘프 왕녀(얘는 좀 뜬금없음), 학원도시는 분주해졌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주인공 할아버지와 경쟁 관계인 유명 종파는 주인공이 싸우는 것을 보고 저건 인간이 아니라고 평한 후 손을 떼버렸죠. 일단 왕녀이자 성녀가 먼저 침을 발라두긴 했지만 언제 주인공을 빼앗길지 모르고, 주인공은 로열 가드를 대신할 사람 찾은 후 뒤도 안 돌아보고 갈 거라 공헌 중인데 왕녀는 에이 농담을~ 하며 현실 도피 중인 게 소소한 재미이자 발암입니다. 사실 2권에서 그동안 주인공을 무시하고 멸시했던 사람들의 콧대를 짓밟아주는 카타르시스를 보여줄까 했습니다만, 애초에 주인공은 그런 넘들은 안중에도 없어서 이에 대한 카타르시스가 없는 게 좀 아쉽다고 할까요. 친구를 다치게 하고 소꿉친구를 납치했던 조직에 대한 복수도 좀 밋밋합니다만, 악(惡)군 군대와 싸울 때 주인공이 컬렉션에서 소환한 역신들이 광기에 사로잡혀 웃으며 달려가서 조지는 장면은 어떻게 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맺으며: 사실 본 작품은 무능 멸시와 무능 먼치킨이 본질이긴 합니다만, 그것보다는 엄청 굴러다니며 고생하는 히로인들과 주인공의 가치를 알아보고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닌 이용하려 드는 사람들로 인해 굉장히 흥미롭죠. 그리고 국룰이나 다름없는 변신 중에는 때리지 않는다는 룰을 아무렇지 않게 어기는 주인공이 재미있고요. 무능이라는 키워드에 잠식되어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며 오해를 하고 그래서 주인공을 얕잡아보다가 역신들에 의해 참교육 당하는 악당들도 흥미롭죠. 다만 역신들이 주인공을 너무나 숭상한 나머지 주인공 주변 인물들이 위험에 처하면 알아서 다 대처해버리는 통에 카타르시스는 약간 반감됩니다. 이번 소꿉친구 납치 사건 때도 그렇죠. 그리고 주인공이 무능이라는 기프트를 받았을 때 위로해 주거나 그를 보호해 주지도 않은 주제에 친근하게 접근하는 친구나 소꿉친구는 좀 마이너스로 다가옵니다. 그런 것에 대한 사죄라도 있었으면 좋았겠는데, 이런 게 일절 없는 것도 마이너스 요소라고 할까요. 하지만 파프(시련의 던전 중간 보스)가 귀여우니까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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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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