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근 한 달 만에 신(神)에 의해 이세계로 보내진 1천 명 중 300여 명이 리타이어 했습니다. 여기서 리타이어란 물리적으로 사망한다는 뜻입니다. 신(神)은 자신이 이세계에 보낸 이들의 삶을 지구로 송출해 하루 내내 일거수일투족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이세계로 보내진 사람들은 자신의 채널에 시청자가 늘어날수록 각종 혜택을 받습니다. 주인공 '히카루'는 원래 1천 명에 포함되지 않았었습니다. 주변에서 선택된 건 소꿉친구 '나나미'였죠. 어릴 적부터 같이 지내온 이들은 이제 가족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나나미'가 이세계에 가서도 무사하게끔 정보를 모아주는 등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세계에 가고 싶었던 괴한에 의해 '나나미'는 목숨을 잃었죠. 마침 그 현장을 목격한 주인공도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주인공은 이세계에 소환되어 있었죠. 그리고 그런 그에게 도착한 메시지 '소꿉친구를 죽이고 이세계로 전이한 살인자'. 이것은 그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작용합니다.

이번 2권을 한 줄로 표현 하라면, '어느 날 갑자기 내 마음속에 들어온 너'. 1권에서 나나미가 살해당한 것에 대한 충격과 그 죄를 뒤집어쓴 충격, 살인자 주제에라는 매도의 말을 퍼붓는 지구인들(지구에서는 생중계를 보며 해당 전이자에게 메시지 보낼 수 있음)에 의한 대인기피증,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받을 가족들. 주인공은 마음이 망가져 버리죠. 그리고 그의 삶에서 안주할 곳이 되어 주고 싶었던 '리프레이아(히로인, 이하 리프)'. 리프는 자신을 구해준 주인공에게 한눈에 반해버리죠. 그리고 그날 저녁에 고백으로 이어지는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가는 기행을 펼칩니다. 주인공은 거절하려던 찰나 고약하게도 신(神)은 이때라는 듯이 시청률 경쟁 이벤트를 개최합니다. 1등 상품은 "소생의 비약". 사망한 사람 중에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 중 딱 한 사람 살릴 수 있는 비약이죠. 주인공은 무슨 짓을 해서든 1등이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눈앞에 여신이라고 해도 믿을 미모의 '리프'를 이용하려 하죠.

시종일관 시청률 1위를 하기 위해 주인공은 리프와 '푸르'라는 고양이 수인을 고용해 던전에 들어갑니다. 사실 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1권 후반부터 그랬지만 2권은 리프가 얼마나 주인공을 사모하는지, 그리고 그런 마음을 이용한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절절한 마음들을 굉장히 흥미롭게 풀어 냅니다. 리프는 항상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따라가려 하고, 던전에서 그의 지시라면(탐험자 계급은 리프가 더 높음)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려 합니다. 주인공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시청률 1위를 만들어 가죠. 그래서 초반에는 여자의 마음을 이용해 파렴치를 일삼는, 지구인들이 매도했던 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어서 꽤 나쁜 인상을 받게 합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며 리프의 마음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부분들은 꽤나 가슴 아프게도 하죠. 이 시청률 이벤트가 끝나면, 리프는 빛의 세계로 자신은 어떻게 되든 좋다고 진심으로 바랄 정도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 우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소꿉친구 '나나미'를 소생 시키려 하죠. 그런데 지금 그의 곁에서 마음을 표현했고, 그 마음을 알게 된 주인공이 '리프'가 사망한다면 어쩔? 설마 이젠 개도 안 물어갈 소재를 쓰진 않겠지? 결과는 직접 확인들 하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본 작품을 다크 판타지 작품 순위에서 최상위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설정만 놓고 본다면요. 하지만 인간관계와 진행을 놓고 본다면 최하위에 놓겠습니다. 결과를 본 필자의 소감은 '엄청 상냥하면서 역겹다'. 경우에 따라 본 작품은 출판사의 메인 작품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설정들이 우수합니다. 유x브를 모티브로 해서 각종 특전을 받기 위해서는 시청률을 올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되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죠. 주인공은 마음이 망가져 홀로 어둠에 묻혀 살아가길 희망합니다. 그런 어둠 속에서 끌어내는 역할이 '리프'였고요. 리프는 빛 속성으로서 주인공에게 늘 빛을 선사하려 합니다. 주인공은 어느새 그녀가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는 걸 깨닫죠.

그래서 마음이 망가진 주인공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리프'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 예로 리프는 주인공을 도시 밖으로 이끌며 하늘이 이렇게 푸르다는 것을, 들판이 이렇게 녹색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 행동이 결실을 맺어 처음으로 주인공은 웃을 수 있게 됩니다(비유하자면).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주인공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좋아한다며 겉몸이 달아가기만 합니다. 그런 그녀를 떼어 놓기 위해 주인공을 자신의 정체와 그녀를 이용했다는 것까지 밝히지만 리프는 '그래서요?' 얼핏 용서한다는 의미로 비칠 수 있으나 리프는 주인공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른 집에 불이 나도 내 집이 아니면 관심이 없듯이, 그런 행동을 보이죠. 나아가 또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던전에서 마왕(던전 보스 같은 거)과 일전을 벌이며 주인공의 지시를 깡그리 무시하고 닥돌해서 주인공의 염원을 박살 내버리는 장면은 대체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게 만듭니다.

이래서 설정은 좋은데, 인간관계와 진행은 꽝이라는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뭐 사실 막판에 리프의 발암적인 행동으로 인해 주인공이 짊어지고 있던 짐의 무게가 낮춰지기도 했고, 진짜 소중한 건 눈앞에 있다는 걸 깨닫는 계기도 마련했으니 리프의 명령 불복종은 나쁜 행동은 아니었긴 합니다만, 문제는 그걸 보고 있는 독자들이 이해를 하느냐는 별개죠. 그동안 소꿉친구를 살리기 위한 고생은 그냥 이벤트를 위한 퍼포먼스였나?라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엔딩 스포일러 안 하려니 리뷰가 두루뭉술해지는군요.

어쨌거나 필자의 주관입니다만, 히로인 선택을 잘못해서 다 말아먹는 2권입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아서 홀로 살아가려는 주인공의 애잔한 마음은 자칫 고구마가 될 수 있었으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절절히 표현하고 있어서 답답함은 없었군요. 소꿉친구가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장면을 봐야 했고, 자신도 죽임을 당해 이세계로 넘어온 것도 모자라 사람들이 살인자라고 매도한다면 보통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겠죠. 그래서 '리프'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면, 주인공이 왜 이리 필사적으로 사냥에 나서는지에 대한 이해를 하고, 주인공이 정체를 밝혔을 때 그를 포근히 감싸주며 이제 괜찮다는 말이라도 건넸다면 주인공은 구원받았을 테죠.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는다는 이 작품에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정체를 밝혔는데 그녀는 관심 없다는 듯이 와닿지 않는다는 듯이, 남의 나라 얘기하듯 관심 없다는 듯이, 그보다 '너 좋아해'. 그 자리에서 이 말이 왜 나오지?

맺으며: 다크 판타지로서의 설정은 꽤 높은 점수를 줄만합니다. 이제 앞으로의 관건은 지구에서 보내온 메시지를 주인공이 읽느냐 계속 읽지 않느냐군요. 메시지 창 앞부분에는 살인자라는 매도의 말로 도배되어 있어서 트라우마 작렬 중인 주인공은 절대 읽으려 하지 않고 있죠. 이후부터는 주인공이 누명을 벗었고, 응원의 메시지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주인공은 양지로 나올 수 있을까. 3권에서 새로운 만남이 있을 예정입니다. 아마 이 만남이 주인공에게 있어서 리프는 해내지 못했던 주인공의 인생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주인공에게 지구에서의 반응과 메시지를 보여준다면, 주인공의 인생은 지금부터 달라질 것인가. 그리고 그 인물에 의해 주인공이 바랐던 염원도 이루어질 수 있을 듯한 예감이 들었군요. 그런데 고양이 수인 '푸르'는 왜 나오다 마는 건가요. 푸르도 1권에서 주인공이 구해준 고양이 수인으로 던전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죠. 일러스트도 잘 뽑아놓고, 성격도 매사 긍정적인 집고양이 같아 호감이 엄청 가는데 중반부터는 아예 언급조차 안 하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언제부터였을까. 저 아이가 내 마음속에 들어온 것은". 이번 5권을 한마디로 표현 하라면 이것입니다. 호러물에서 순애물로 간다 이거죠?라는 느낌이 장난 아닙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고, 내성적이었던 '소라오'가 무심결에 들어간 곳은 이세계였죠. 친구도 없고, 가정사도 불우했던 거 같았던 그녀는 나만의 세계를 찾은 것에 기뻐했으나, 하필 그 이세계는 사람을 현혹해서 잡아먹는 마굴 같은 곳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다 이세계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의해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해준 게 토리코. 처음엔 지산만의 세계가 침범 당했다고 분개했으나, 이세계의 위험과 그녀(토리코)가 여기서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라오는 차츰 그녀와 어울리게 되죠. 이후 이세계에서 가져오는 물건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소라오는 이세계에서 누군가를 찾으려는 토리코와 동행하여 탐험을 개시하였습니다만, 우리가 아는 판타지 이세계처럼 룰루랄라 하며 놀러 갈 세계가 아니란 말이죠.

매사 부정적이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소라오, 밝은 성격에 누구하고도 잘 어울릴 거 같지만 엄청난 낯가림쟁이 토리코, 둘 다 이런 성격이다 보니 친구를 사귀는 건 애초에 불가능. 둘 다 대학생인데도 친구 하나 없는 아싸의 생활을 해나가다 우연히 같은 곳을 발견하고 다른 이유(돈벌이와 지인 찾기)로 어떻게든 의기투합해 탐험을 시작은 했습니다만. 이세계 탐험하면서도 둘의 관계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이었죠. 하지만 괴이 현상을 겪으며 목숨이 왔다가 갔다 하면서 의지할 곳이라고는 서로의 등 밖에 없다는 걸 알아 갔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서로 의식할 수밖에요. 그런데 둘 다 여자란 말이죠. 뭐 이런 말 한다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건 아니니 오해 없길 바라고요. 그저 보다 많은 만남을 가지지 못했던 그녀들의 사회성 부족이 안타까울 따름이죠. 그렇게 의식하던 게 쌓이고 쌓여 이번엔 러브호텔에서 여성 모임을 주최하는 등 잘 가다 삼천포로 빠질까 같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세계에서 폐허의 러브호텔에서 하룻밤 보낸 그녀들은 현실로 돌아가 진짜 러브호텔에 들려 요즘 유행한다는 여성 모임을 가지려 하죠. 여기서 오해 없길 바라는 게 백합적인 그런 부분은 전혀 없으니 기대는 하지 마세요. 이세계에서 진정으로 위험한 건 야간으로서 그녀들은 목숨을 걸고 하룻밤을 보낸 것이고, 이걸 바탕으로 더욱 심층으로 나아가려 하죠. 현실에서 러브호텔 모임은 그 반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소라오가 마음속 깊이 들어와 있던 토리코는 둘이 있고 싶다고 응석을 부려대죠. 낯가림이 심하지만 한번 마음을 열은 상대에겐 가차 없이 직진하는 성격의 토리코는 소극적인 소라오를 보며 애가 타들어가는데 정작 소라오는 그 마음을 몰라주니 환장합니다. 둘이서 가는 줄 알았는데 3명을 더 부른다 하니 삐져버리는 토리코. 소라오 또한 토리코를 이성적으로 좋아하지만 성격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상대가 쫓아오면 도망가고, 상대가 멀어지면 다가가는 본의 아니게 밀당을 해대는 중이죠.

이런 관계를 이번 5권에서 정립 시킵니다. 미성년 애들도 아니고 술을 좋아하고, 총으로 무장한 어른들이 언제까지고 질척질척하게 질질 끌 수는 없으니까요. 이세계와 현실을 연결하는 중간 영역에 갇히게 된 소라오는 토리코의 시각으로 과거를 봅니다. 언제부턴가 지인을 찾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소라오)만을 바라보는 토리코의 애틋한 마음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래서 둘이 같이 있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을 접한 소라오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필자는 여기서 그녀들이 이세계에서 얻은 능력에 대한 고찰을 해봤습니다. 소라오는 사물의 본질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죠. 토리코는 그 사물의 본질을 비트는 손을 얻었고요. 여기서 소라오에게는 상대를 보라는 뜻으로 눈을, 토리코는 상대를 붙잡고 싶다는 마음에서 손을. 소라오는 늘 타인을 배척했죠. 토리코는 늘 누군가(소라오와 지인)를 붙잡고 싶어 했고요. 그런 마음들이 능력으로 발현한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세계를 신봉하는 단체가 운영하던 농장을 급습해 빼앗아 이세계로 갈 수 있는 게이트로 쓰고, 이세계를 연구하는 연구소와 협상해 돈을 뜯어내는 등 그녀들의 이세계 탐험은 제법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소라오의 눈과 토리코의 손만 있으면 웬만한 위협은 이제 헤쳐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정신 공격에는 취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럴 때마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서로 좋아하는 마음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게 인상적이죠. 이번 5권에서도 작가가 필력이 올랐는지 그녀들의 탐험하는 장면 장면들의 디테일이 제법 살아 있습니다. 아무튼 현실에서 이세계와 연결된 괴이를 일으키며 소라오와 토리코를 공격했다가 혼수상태에 빠졌던 우루미 루나가 눈을 뜨면서 또다시 이세계를 신봉하는 집단과 싸우게 되지 않을지하는 복선이 떴습니다. 루나를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건 다름 아닌 토리코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지인 '사츠키'였죠. 이세계는 사람을 현혹해 잡아먹습니다. '사츠키'는 이세계 사람이 되어 있었죠.

맺으며: 이번 5권은 소라오와 토리코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이야기입니다. 비로소 본 작품의 제목에 왜 피크닉이 들어가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죠. 둘이서만 가고 싶다는 의미에서의 피크닉. 이거와 별개로 백합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좋아할 이야기로 꾸며져 있긴 한데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다거나 홀딱 벗고 집단으로 춤을 춘다거나. 이세계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인간관계도 파탄 내버리려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이야기가 제법 있습니다. 보통 연애물에서 이들의 관계를 방해하는 건 같은 사람이라면 본 작품에서는 이세계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죠. 그만큼 이들의 인간관계가 빈약하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 외의 이야기라면, 이세계에서 어떤 꼬마 소녀를 구해오게 되는데,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꼬마 소녀의 정체가 나름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아직은 섣부른 판단이지만 이세계의 존재와 인간의 아이가 아닐까 하는... 다행인 것은 출판사가 계속해서 후속권을 내주고 있다는 것이군요.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주인공의 입버릇, 은퇴해서 도망가고 싶다. 처음엔 주변 동료들이 나만 놔두고 성장하는 것에 대한 좌절에서 비롯된 도망인가 했죠. 그야 제도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굴지의 헌터로 성장한 동료들을 보고 있으면 지나가는 개에게 물려도 죽을 거 같은 주인공으로서는 좌절할 만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파티 연합체인 클랜을 설립해서 나 대신 새로운 동료를 찾고, 동료들의 사회성을 길러 주인공에게 의존하지 않는 인격체로 성장시키려 한 것이죠. 그 목적은 얼추 달성하는가 싶었는데 말입니다. 파티도, 클랜도 나라에서 주목받을 정도로 성장도 했고요. 그런데 주인공이 하나 간과한 것이 있다면 동료들이 주인공을 무척이나 아낀다는 것입니다. 같은 마을에서 자라 뜻을 함께해서 도시로 나와 헌터가 되었고, 영웅이 되자는 다짐에 따라 이들은 무럭무럭 자랐죠. 그런데 주인공만 소질이 없어요. 죽었다 깨어나도 지나가는 개에게도 지는 형편이죠. 보통 여기서 두 가지 길이 생기잖아요.

동료들은 주인공을 추방할 것이냐, 품을 것이냐. 주인공이 실수를 한 것이 있다면 클랜을 만든 것이겠죠. 그리고 동료들이 자신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클랜을 만들면서 주인공이 나서지 않아도 아랫것들에게 다 시키면 되고, 동료들은 주인공이 빠진다고 붕괴할 파티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버린 것에서 주인공은 도망갈 길을 잃고 말은 것입니다. 여기까지라면 놀고먹을 수 있는 인생 만만세일 수 있겠습니다. 거대 클랜 수장 자리에 앉아 하는 건 하나도 없고, 주변에서 보내오는 영광의 눈빛은 다 차지하면서 클랜 운영은 부 마스터에게 다 떠넘기고 있으니 이보다 인생 꿀은 또 있을까 싶죠. 그런데도 주인공은 도망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내뱉는 것에서 이놈 복에 겨워 미쳤구나 싶은데, 그 이유가 이번 2권에서 드러납니다. 동료들은 주인공을 추방하는 것이 아닌 품었죠. 이보다 눈물겨운 동료애가 또 있을까 싶지만요. 그것도 동료들이 제정신일 때나 축복받은 것이죠.

강한 놈이 있으면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쫓아가서 시비 털고, 온 도시를 쏘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마다 시비 털고, 나보다 약한 놈은 살 가치 없다며 두들겨 패고, 몬스터가 보이면 두들겨 패야 직성이 풀리고, 어른 공경은 어른 공격으로 읽고, 공권력에 대항하고, 연계 플레이에서 협조성은 개나 줘버렸고, 말은 뒤지게 안 듣고, 위아래 없이 욕설을 섞은 독설에, 7살에 시작되는 인생 반항기를 20살 언저리가 되어도 그칠 줄 모르니, 그런 주제에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실력자라는 것에서 피곤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일단 2권까지 주인공이 속한 [비탄의 망령] 파티에 소속된 동료가 두 명(두 명 다 히로인) 등장합니다. 그중 하나는 1권 후반에 등장하였죠. 등장하자마자 그녀의 성격은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리즈.' 뭘 먹고 자랐으면 성격이 이리도 호전적에다 남을 깔보는 성격으로 자랐을까, 부모가 누구인지 상당히 궁금해지는 히로인이죠.

이번 2권에서는 리즈의 여동생 '시트리'가 등장합니다. 언니가 물리적으로 개차반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다르게 동생의 첫 이미지는 그나마 인격체의 느낌을 받게 하였습니다만. 이미 1권에서 주인공에게 풀어 놓으면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슬라임을 맡겼다는 것에서 그녀의 성격은 언니를 초월할 거라는 복선을 낳았었습니다. 이번 2권에서 메인 히로인으로 등장하여 근처 던전에서 일어난 이상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선두에 서서 활약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파티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듯했으나, 실상은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 따위 파리 목숨에 지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미치광이 과학자라는 게 밝혀지죠. 연구를 위해서라면 어린아이도 재료로 쓰길 마다하지 않는 흉악성에서 걸리지 않으면 장땡이라는 준법정신이 더해져 이 세상에 악(惡)이 있다면 바로 그녀가 아닐까 하는 장면들은 소름을 돋게 하죠.

2권을 읽고 주인공이 은퇴해서 도망가고 싶다는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약해서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은퇴하고 싶은 것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악마(동료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은퇴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곳곳에 숨에 있습니다. 고삐를 잡고 있지 않으면 피아 구분을 하지 않는 리즈와,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시트리를 보고 있으면 아무 힘도 없는 주인공으로서는 공포 그 자체겠죠. 그나마 그녀들이 맹목적으로 주인공을 보호하고 따르려 해서 지금은 괜찮지만, 문제는 그녀들이 아직도 성장 중이라는 것이죠.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는 건 아닐까. 이미 도적(리즈의 직업)이 전위가 되어 모든 걸 다 때려 부수고 있으며, 연금술사(시트리의 직업)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직업이긴 하지만 네크로맨서(사령사)가 할 짓을 해대고 있으니 이보다 공포가 또 있을까요. 그녀는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를 슬라임을 만들어 주인공에게 맡겼고, 주인공은 1권에서 그걸 잃어버렸습니다.

주인공도 알고 있는 것이죠. 시트리는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고 어딘가 인격적으로 결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요. 다름 아닌 그녀가 만든 슬라임이라서 결사적으로 찾으려 합니다. 이점에서도 시트리가 인간들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에 대한 단서이기도 하죠. 부록으로 껴있는 외전을 보면 주인공은 몇 년 전부터 이미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결국 주인공도 너무나 비현설적인 그녀들(언니와 동생)의 모습에서 현실을 외면했던 게 지금의 현실도피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그녀들이 무슨 말을 하든 건성으로 넘기는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번 던전 이상을 해결하면서도 주인공은 꼬치꼬치 캐묻지 않습니다. 제도에서 내로라하는 헌터들 100여 명을 동원한 대규모 작전에서 자칫 몰살 당할뻔하였는데도 주인공은 눈 감아 버리죠. 결국 주인공은 무능해서 은퇴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은퇴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을 받게 합니다.

맺으며: 만악의 근원은 바로 근처에 있다는 진실을 보여준 2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본 작품은 주인공 일행이 반드시 선(善)의 진영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금기를 깨트리길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죠. 그런데 주인공 동료들이 왜 이렇게 금기를 어겨가면서까지 일을 저지르는 이유가 뭘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그것은 주인공이 무능해서 그렇다는 게 필자 나름대로의 분석입니다. 요컨대 추방물의 반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무능한 주인공을 대신해 우리들이 힘내자 했던 게 일그러짐으로 이어졌고, 그 일그러짐은 집착으로 변해버린 게 아닐까 하는, 리즈가 주인공에게 엉겨 붙어 온갖 아양을 떨고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 되었든 지키려 하고, 주인공 이외에는 인간 취급 안 해주는 광기는 정말로 호러 그 자체였습니다. 시트리에게 인간은 그저 연구 재료에 지나지 않다는 섬뜩함, 그러니 주인공으로서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어쩔 수 없겠죠. 그런 느낌입니다.

아무튼 호러(?)로서는 손색이 없으나 내용은 사실 지리멸렬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하나의 장면을 놓고 설명을 너무 많이 하고, 여러 사람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건 좋은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같은 장면을 리플레이 해서 감정이입을 방해합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면 짜증 나잖아요? 그런 장면들이 제법 있습니다.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를 넣어 페이지를 낭비하고, 시트리를 이용해 독자들을 농락하는 후반부는 좀 어이가 없었군요. 던전 이상 사태를 일으킨 범인의 정체에 대한 나름대로 추리할 수 있는 재료를 넣었으나, 그것을 소용없게 만드는 진범의 정체, 그 진범을 도왔던 흑막들은 450여 페이지나 할애할 정도 임팩트가 있었나? 그 흑막들은 시트리의 정체와 성격을 밝히기 위한 장치적 요소로 이용되긴 했지만 거의 잡범 수준으로서 형편이 없었습니다. 이런 형편없는 인물들로 450여 페이지나 잡아먹다니 너무한 거 아닌지. 살짝 이 도서를 구매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군요.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신뢰하고 믿었던 동료가 사실은 적국 스파이였고, 정보를 본국에 넘겨주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럴 경우 여러분은 그 동료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게 될 것인가. 이번 3권에서는 그것을 묻습니다. 동료이자 스파이는 유유히 도망에 성공했고요. 남겨진 사람들은 그 동료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처단할 것인가,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두둔할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배신자 때문에 도시 사람들이 만(萬) 단위로 죽었고, 수천 명이 행방불명이 되었죠. 도시를 복구하면서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지 못했으니 잡혀갔거나 같이 쳐들어온 마물들에게 먹였을 거라 예상이 됩니다. 거기에 도시가 파괴되면서 유무형으로 피해를 본 사람도 있을 테니 피해자는 수만에 이른다고 봐야죠. 적군과 싸우며 산화한 병사들도 많고요. 이런 눈에 보이는 피해를 입었는데 그 배신자를 동료였다고 감쌀 것인가, 감싼다면 피해자들 앞에서 피치 못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주인공은 이전 생에서 검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크리스토'의 잠행에 동행하여 이웃나라로 향하였으나 나라가 침공 당했다는 소식에 급히 돌아옵니다. 돌아온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아비규환이었죠. 왕궁은 함락 직전이었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적을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보통 이런 장면에서 주인공이 돌아오면 일이 해결되곤 하지만, 본 작품에서 그런 장면은 없습니다. 주인공이 무능해서는 아니고, 아니 무능한 건 맞다고 해야겠군요. 왕궁이 함락 직전인데 입구를 막기보다는 배신자의 공격에 기절한 소꿉친구 '티나'를 우선시해서 전선에서 이탈해버리거든요. 물론 소꿉친구도 중요하죠.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될 일, 주인공은 기사단에서 제법 신뢰를 얻고 있는 인물로서 전선의 사기 차원에서 이 장소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주인공이 이탈하자 이 입구를 사수하던 전선은 붕괴되어 버리죠. 당연히 거기서 지키던 병사는 몰살되었을 테고요.

이탈한 자리에서 주인공은 동료이자 배신자와 조우합니다. 같이 지낸지는 이제 한 달, 이 한 달은 동료가 배신자였다는 충격을 받을만한 충분한 시간이었나?를 묻습니다. 주인공은 이미 몇 년이나 같이 지낸 사이로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배신자를 보자 충격에 손이 떨리고 발이 떨리고 그러해서 제대로 대응도 못해서 독에 당해 기절해버리는 주인공. 그리고 시작되는 "추억 팔이" 그러니까 너는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 무슨 일이 있어서 이러는 거야? 우리와의 생활은 거짓이었어? 사실은 너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지? 천진난만하게 도시로 나가 옷집에서 쇼핑을 하고, 얼굴을 붉히고, 친구라서 좋아 기타 등등의 기억이 홍수처럼 범람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배신자를 찾으려 합니다. 찾아서 단죄에 처하기 위해? 아뇨, 이 추억이 거짓인지 알고 싶어서. 주인공은 수만의 피해자보다 동료가 배신했다는 것에 더 아파합니다. 복구에 참여하면서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마음을 비치지 않습니다. 배신자를 찾아서 단죄 시키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추억만 부풀려 가는 장면들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소름이 돋습니다. 결국 배신자는 사실 착한 사람이고, 어쩔 수 없이 죄를 저질렀으니 잘못이 없다, 궁극적으로 "어서 와, 다녀왔어"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위해 배신자도 나름 마음고생 중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장치를 넣어놓고 있는데, 그렇다면 주인공은 그를 만나서 혼내줘야지, 죗값은 치르게 해야지 같은 마음을 갖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이런 게 전혀 없습니다. 이전 생에서 지키지 못했던 것과 다르게 이번 생에서는 내 팔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구하겠다고 선언했었습니다. 배신자도 그중 한 사람이고요. 그렇다면 배신자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은? 기사단에 입단해서 한 달 넘게 타인들과 인연을 맺어 왔는데, 기억 속에 그 옷집도 그렇고, 이들은 왜 안 지켜주었을까. 결국 주인공은 최 측근 지인들만 보호할 뿐이지 타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왕궁 입구를 벗어나면서 병사들이 전멸하도록 놔둔 것도 그렇고요. 그래서 이번 3권을 읽고 제목을 잘못 지어도 한참 잘못 지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국 주인공과 그 일행은 배신자를 찾아 나섭니다. 만나서 왜 그랬어를 물어보려나 본데...

작가는 사회에서 이러면 매장 당한다는 걸 알기나 아는지...

맺으며: 분명 출판사도 검수를 통해 읽고 발매를 하였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피해자에 대한 사죄나 애도의 마음이 없는 주인공과 그 동료 배신자에게서 우리의 과거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무튼 고작 한 달의 인연으로 배신자와의 추억 팔이를 도서 분량 2/3나 차지하고, 갈수록 미화하고 부풀려 가는 장면들은 어이가 가출하다 못해 우주로 날아갈 기세입니다. 누차 언급하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나 애도는 분량에 비해 거의 없어요. 고작 한다는 말이 시체를 수습하면서 이게 그 사람(배신자)의 죄구나라는 게 다죠. 이것도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과 같이 배신자와의 추억을 쌓은 여기사가 했던 말이죠. 이 여기사는 눈앞에서 엄마가 무너진 집에 깔려 죽는 걸 본 꼬마 소녀를 구해 놓고서도, 그 소녀에게 미안해하는 마음보다는 배신자와의 추억에 눈물 흘리는 장면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군요. 이건 번역의 문제일 수 있겠습니다만, 왕도의 인구가 50만이고, 그중에서 수만의 피해를 "그 정도밖에" 피해가 나오지 않아 "행운"이라고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정도의 피해라서 다행이라는 의미겠죠. 하지만 피해가 누구 때문에 생긴 것인가. 이걸 알고 있으면 이런 생각조차 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주인공은 전생에서 나라가 멸망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생에서 전혀 대응하지 않았죠. 배신자가 아니어도 주변국과는 언젠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 해도, 미리 대비하는 것과 배신자로 인해 기습 받는 건 크나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젠가 전쟁이 일어날 일이었다로 치부하는 주인공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러니까 배신자는 잘못이 없다고 우회적으로 감싸고 있다는 것인데, 이게 이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소꿉친구가 보내오는 호감은 전혀 인지 못하면서 옆 나라 왕녀 이레네(이전 생에서 연인 관계)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혀를 내두르게 하고, 기습 받은 것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밀을 밝히면 안 되는데도 밝혀버리는 주인공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내용이 11,000원이나 합니다. 살다 살다 이런 황당한 작품은 처음이군요.

요점: 나쁜 짓을 한 친구가 있으면 죗값을 치르게 해야지, 그럴 리 없다며 현실도피는 좋지 않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번 3권을 다 읽고 느낀 점은, 여주 '모니카(이하 여주 혹은 그녀)'를 제2왕자 호위로 붙인 결계의 마술사 '루이스 밀러'는 아마 곱게 죽지 못 하겠다였군요. 여주가 어릴 적, 그녀의 아버지가 금기를 범했다며 화형 시킨 자들, 시키라고 광분한 사람들, 그녀에게 학대를 일삼았던 삼촌, 학원에서 그녀가 평민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괴롭힘을 자행했던 귀족 학생들, 그녀가 칠현인이 되던 날 자신을 배신했다며 매도의 말을 쏟아냈던 친구. 이 모든 게 어우러져 그녀를 후천적 대인 기피증으로 만들었습니다. 친구의 매도의 말에 섞여 있었던 대로 그녀는 산속 오두막에 숨어살기로 했죠. 그런 그녀를 끄집어 내어 억지로 제2왕자의 호위로 붙인 '루이스'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번 3권 후반을 보면 그는 그녀의 가정사를 비롯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는 듯했습니다. 이런 그라도 그녀에 대한 평가는 신랄하면서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죠. 그녀는 "인간을 무서워하기에 무자비해질 수 있다, 생각 이상으로 뒤틀렸고 무감정한 마녀다".

이번 3권에서 if 하나가 던져집니다. 만약 그녀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고, 사회생활에 대한 내공을 키우고, 자신의 전문분야(수학과 마법)의 경험을 축적한다면? 당대 내로라하는 학원 3곳이 체스 대회를 엽니다. 그녀는 선수로 선발되죠. 당연히 극도의 낯가림으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지만 발버둥 처봐야 자중하지 않고 실력을 뽐낸 죄를 치러야만 하죠. 그녀는 상대 선수와 시합을 하며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쥡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학생회 동료의 독백이 그녀의 성격을 대변하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면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는 그녀는 낭비 없는 수를 두고 승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자비하다". 만약 그녀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게 될 때, 그녀는 어떤 모습이 될까. 학생회 동료 왈: 무시무시한 괴물이 될 것이다. 루이스는 이런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봤기에 제2왕자 호위로 붙인 것일까. 이놈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에 대한 것도 이 작품의 포인트입니다.

2권 리뷰에 어느 분이 댓글로 제2왕자의 복선에 대해 알려 주셨는데, 사실 제2왕자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필자였지만 말씀을 듣고 복선을 찾아봤습니다. 3권을 읽기 전이었던지라 꽤나 충격을 받았군요. 덕분에 3권에서 제2왕자에 대한 복선이 더욱 두드러지게 알게 되어서 중화되었긴 합니다만. 본편에서는 그의 정체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 섣불리 언급은 안 하겠습니다. 이걸 빼고 작중 상황을 보자면, 정치적으로 왕국을 좌지우지하는 '크록포드 공작'이 있다는 것이고, 제2왕자는 공작의 외손자라는 것이죠. 공작은 손자를 차기 왕으로 만들어 꼭두각시로 삼으려는 중이고, 이걸 막으려는 불순분자들이 암살을 시도 중입니다. 여주는 왕자를 호위 중이고요. 그러다 2권에서 제2왕자의 암살을 저지했을 때 공작의 꿍꿍이도 일부 밝혀집니다.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여주 모니카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고 제2왕자의 편에 서게 되었을 때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인기피증은 조금씩 치료가 되는 중이죠. 친구는 나날이 늘어가고, 윽박지르던 학생회 동료들은 어느새 그녀를 새침하게 챙겨주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드레스를 챙겨주고, 호흡법을 가르쳐 주고, 괴롭힘 당하면 상대가 누가 되었든 여주를 감싸주는 일이 늘었습니다. 자기주장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유도된 것이지만 제2왕자와 축제에 가기 위한 잠행은 그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줍니다. 어느새 형태를 가지지 못했던 말이 형태를 가지게 되었고, 친구들 한정이지만 이제 낯가림도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반동인지 제2왕자에 대한 암살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그에 대처할수록 그녀의 정체는 발각될 위기에 빠져가죠. 이번 3권에서는 이전 학원에서 여주에게 강한 집착을 보였던 옛 친구가 등장하여 그녀의 정체를 알아채는 바람에 그녀는 더욱 위기에 빠집니다. 그녀의 정체가 칠현인이라는 게 발각되면 더 이상 왕자 호위는 할 수 없게 되니까요.

친구를, 우정을 소중히. 이제는 친구라고 불러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나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다는 괴로움, 친구가 암살에 연루되어 잡혀갔을 때의 안타까움과 내막을 알리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 남을 속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여주는 끝끝내 오열하고 말았죠. 남들에게 괴롭힘 당해도 내가 못나서 그렇다는 소심함, 상대가 날 속여도 내가 똑 부러지지 않았기에 나에게 잘못이 있다는 비굴함, 이 작품은 속이는 사람이 나쁜가, 속는 사람이 잘못인가 같은 철학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그렇기에 집착을 보인 끝에 매도의 말을 퍼부어 여주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옛 친구를 이번 체스 대회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여주는 때때로 답답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매도의 말을 퍼붓는데 왜 되받아치지 못하는가. 그녀는 마지막으로 사람을 믿어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믿음은 보상받지 못하고, 체스 대회에서 옛 친구를 철저하게 발라 버리죠.

별을 읽는 마녀는 3권을 기점으로 그녀의 운명이 크게 바뀐다는 점을 내놨습니다. 그리고 주변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제2왕자에 대한 암살의 수위는 더욱 높아집니다. 축제 때 주지육림(이게 압권이란 말이죠.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을 즐기며 이제 낯가림하지 않게 된 왕자와 접점을 크게 만들어버린 그녀가 왕자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행동에 나서게 될까. 공작은 손자의 목숨 따위 게이치 않으려 합니다. 왕자는 정해진 자신의 미래를 부수기 위해 무언갈 준비 중에 있죠. 어떻게 보면 학대받던 여주가 개천에서 용이 나듯 신데렐라 계열을 표방하고 있으나 세계가 요동치는 혼돈 속에서, 만약 왕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여주가 대인 기피증을 고쳤을 때의 폭발력은, 그런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재주가 좋습니다.

맺으며: 뭔가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여주의 사역마 네로(고양이)와 루이스의 계약 정령 린의 개그 코미디가 자칫 짓눌릴 거 같은 내용을 밝게 해줍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상처받고 그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도 사람들이라는 역설적인 면도 보여줍니다. 학대받았던 아이가 비굴해지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몰입감이 꽤 높습니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자기 잘못인 양.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은 학대의 반동이겠지요. 이런 모습들을 매우 안타깝게 비춥니다. 그렇다고 학대의 주범들이 처벌을 받느냐? 그것도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더욱 현실미를 띕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상당히 궁금해지는 작품이죠.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녀가 대인 기피증을 고치고 사회 경험을 더욱 쌓게 되어 자신을 괴롭히고 나아가 친구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하게 될지. 그 편린이 이번 체스 대회라 할 수 있습니다. 옛 친구를 철저하게 밟아 버리죠.

 
블로그 이미지

현석장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57)
라노벨 리뷰 (899)
일반 소설 (5)
만화(코믹) 리뷰&감상 (129)
기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