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몇 권인지는 까먹었는데, 한정판에 소책자 형식의 외전이 부록으로 제공된 적이 있습니다. 소책자에는 이 작품의 여주인공이자 히로인인 '프란'의 부모에 대해 언급하고 있죠. 부모가 속한 종족의 조상들의 나쁜 짓 때문에 신(神)의 분노를 사 저주가 내려져 진화의 길이 거의 막혀 버리고, 종족 전체가 노예로 비참하게 살아가야만 했는데요. 프란의 부모는 자신들의 종족을 구하는 길은 진화의 단서를 찾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전 세계를 방랑하였으나 끝끝내 이루지 못하고 타지에서 생을 마감해야만 했죠. 그들에게 유일하게 남겨진 것이라곤 '프란'이라는 딸이고, 그 딸도 종족의 운명처럼 노예로 전락해 생을 마감하는 미래밖에 없었으나 주인공(검)을 만나 갖은 고생 끝에 진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이유는 프란의 부모가 어릴 적부터 살았던 곳, 프란이 주인공을 만나 처음으로 모험가 등록을 한 도시를 다시 찾아오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기 때문이군요.

그동안 어째서 검으로 환생하게 되었는지 지금 깃들고 있는 검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던 주인공(검)은 자신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의 안내로 처음 환생하고 깨어났던 마랑 평원에 오게 됩니다. 여기서 주인공(검)은 왜 검에 깃들게 되었는지 하는 그 근원을 찾아가죠. 그리고 자신이 깃들었던 검의 정체에 대해서도요. 사실 네가 특별해서 선택된 용사라는 클리셰적인 부분도 있지만, 여느 작품과는 다르게 디테일 있는 설정을 보이면서 클리셰이지만 탄탄한 스토리를 보여주는 게 특징입니다. 근데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주인공의 태생이니 근원이니 하는 건 크게 상관없어요. 그냥 개연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이 강했군요. 또 앞으로도 주인공과 같은 신검과 만나는 일이 많을 테니 그에 따른 복선을 미리 깔아두는 경향이 강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온 김에 그동안의 격전으로 망가진 부분을 수복하기도 하고, 수복하는 동안 프란은 열심히 수련에 매진하기도 하죠.

그래서 프란의 부모가 살았고, 주인공과 프란이 처음 모험가로 등록한 도시로 돌아왔는데도 그에 따른 에피소드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무덤은 없지만, 부모가 자랐던 고아원에 들려 자신(프란)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걸 알리는 뭐 그런 애틋한 게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군요. 왜 이런 느낌을 강요하냐면, 프란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끌어안고 부비부비 하는 '아만다'가 등장하는 장면들에서 소책자를 못 본 분들이라면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전 한정판으로 제공된 소책자에 의하면 프란의 부모가 살았던 고아원은 '아만다'가 운영하는 고아원이었죠. 이들이 성장하여 진화를 위해 떠나고 얼마 후 갓 태어난 프란을 안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잘 살아가고 있나 했는데 객사해버리고, 시간이 지나 성장한 프란이 다시 찾아왔을 때 '아만다'는 무슨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까 같은 걸 풀어놓는 애틋함이 없는. 프란은 아직 아만다가 자신의 부모와 연관이 있다는 걸 모르는 상태고요.

아직은 성장 가도를 달리고, 종족의 비원인 진화의 단서는 찾았지만 신이 내린 저주는 풀리지 않았기에 프란이 하고자 하는 소원(저주 풀기)에 방해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13권에서는 주인공의 근원 찾기와 더불어 마랑 평원에서 그동안 여행했던 기간보다 더 긴 시간을 들여 고위 마물들과 싸우며 더욱 힘을 기르는 모습들을 보이는데요. 그래서 사실 크게 와닿거나 의미 있는 장면은 별로 없습니다. 의미를 찾으라면, 프란이 더욱 성장하고 주인공이 수복되면서 연계가 더욱 강화되어 아만다에게 주먹이 닿게 되었다는 것 정도? 참고로 아만다는 랭크 A의 모험가로 꽤 강하게 묘사됩니다. 이전에는 프란과 주인공이 무슨 수를 써도 아만다에게 닿지 않았죠. 아만다는 프란이 마랑 평원에 있다는 걸 알자마자 일직선으로 쫓아왔고(이게 좀 웃김), 신급 대장장이도 찾아오는 등 소소하게나마 인연을 엮어가는 게 조금은 흥미롭습니다.

맺으며: 관심 없으면 머리에서 바로 지워버리는 프란의 마이웨이가 더욱 노골적이 되어 재미있습니다. 마랑 평원에서 고블린의 뒤를 추적하며 은밀성을 높이는 훈련을 하는데 그만 아만다가 가루로 만들어 버리자 좌절하는 모습은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프란이 감정을 보이는 몇 안 되는 귀한 장면이기도 하죠. 주인공이 망가진 부분을 수복하기 위해 장시간 셧 오프하고 돌아올 때 보이는 감정이라든지, 주인공 없을 때를 대비한 훈련을 하며 노력과 고생을 정말 많이 하는 장면 등 이번에는 감정을 주제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수련하는 장면이라든지, 주인공의 근원 찾기나 주인공이 깃든 검의 정체를 밝히는 부분은 좀 지루했군요. 결국은 일본 작가들이 좋아하는 신(神)에 관한 것들만 주야장천... 어쨌거나 이번 13권은 1부 완결이라는 느낌입니다. 여행한 것보다 더 시간을 마랑 평원에서 지내며 성장하는 장면들을 연출하고 마치 손오공이 초사이언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는 듯한 장면들을 보여주죠. 이후 더욱 강한 적들과 마주해야 된다는 준비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프란은 13세가 되었습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성녀 '소아리나'와 '펜네' 그리고 흡입의 마녀 '에라키노'의 내습으로 주인공은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주인공의 제1의 심복이자 영웅 '아투'는 흡입의 마녀에 의해 세뇌 강탈 당해버렸고, 그로 인해 마이노그라(주인공이 세운 나라)는 와해 직전에 몰리게 되었죠. 그러나 게임 유닛으로서 주인공의 포지션은 파멸의 왕, 이것은 성녀와 흡입의 마녀에게 있어서 주인공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 이제부터 자신들의 어리숙함에 한탄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참회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후회를, 자신들이 이룩한 모든 것이 썩어 문드러지는 참혹함을 경험해야 합니다. 주인공은 업화의 불길에서 살아남아 자신이 당했던 모든 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당한 만큼 대갚음해 주는 정도가 아닌, 이 세상에 지옥을 현현 시켜버리죠.

성녀 '소아리나'는 변두리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 여느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녀의 인생에 갈림길이 생긴 건 하늘의 계시로 '성녀'로 선택된 순간. 그리고 그건 축복받을 일이 아닌 헬게이트 오픈이라는 비극. 마을은 그녀의 입지를 이용해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이 세계 룰에 입각해 성녀는 성녀가 되기 위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죠. 그 대가는 자신의 힘으로 마을을 불살라 버리는 것.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을 지킨다는 것에 집착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소아리나'는 동료 펜네와 친구 에라키노와 손을 잡고 '레네아 신광국'이라는 나라를 건국하기에 이르죠. 하지만 명분이 필요했고, 그 명분을 만들어줄 인물로 주인공이 선택된 것입니다. 반대로 그녀에게 있어서 미래를 결정짓는 일이 되어버렸지만요.

목을 죄어 온다는 공포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보통 대갚음해 주는 이야기에서 전략은 세우지만 결국은 정면 승부 같은 치고받고 그런 이야기를 보여주는 반면에 이 작품은 마녀' 에라키노'의 GM(게임 마스터) 능력 때문에 정공법은 통하지 않게 되었죠.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행동에 대한 제재와 운영에 관한 권한을 가진 GM 앞에서 아무리 주인공이 필살기를 선보인 들 GM은 현상 자체를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주인공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GM이 속한 게임 룰이 무엇인지, 약점이 무엇인지, 맹점이 무엇인지 찾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본 작품은 이세계를 표방하지만 현실 게임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게임이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게임 시스템이 적용되는 세상이고, 접촉만으로 각자의 게임 시스템이 강제로 개입을 해버립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마녀 '에라키노'와의 접촉으로 그녀의 게임에 강제로 참여하게 되었고, 참여한 이상 GM의 권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담 주인공이 속한 게임은? 얼핏 보면 심시티 같은 건설 시뮬레이션 같은 것,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가 건설이고, 장르를 들여다보면 나라가 나라를 집어삼키고 파멸과 혼돈이 공존하는 다크 시티 같은 것, 주인공은 거기서 파멸의 왕이 되어 있었죠. 성녀 '소아리나'에게 있어서 불운은 주인공이 그런 게임에서 탑 랭커였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 이제 주인공의 게임이 적용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맞닥트려 왔던 적이 가진 게임도 구사할 수 있다는 것. 그래도 마녀 에라키노의 GM 능력은 절대적이기에 맹점을 파고들기 위한 주인공의 물밑 작전이 시작됩니다.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는 공포가 무엇인지, 그동안 절대적이라 믿었던 GM의 능력에는 맹점이 존재하고 죽었을 거라 여겼던 주인공이 그 맹점을 파고들어 자신들의 목을 죄어 온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는 포인트들이 이번 5권의 최대 흥미로운 요소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받은 만큼이 아닌, 그 이상의 보복이 무엇인지 그들(성녀와 마녀)은 목숨을 대가로 알아가야만 하죠. 본 작품은 정의의 사도가 악을 멸하는 권선징악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본 작품의 주인공은 정의의 편이 아닌, 악(惡) 그 자체거든요. 사람들을 구하는 게 아닌, 저주로 피와 살을 발라 버리는 고통을 주고 불로 사람들을 태워 죽이는, 마왕보다 더 지독한 모습을 보이는 게 특징이죠. 그렇다고 무차별적으로 그러진 않고, 일단 주인공의 스탠스는 날 건드리면 그 댓가라고 나름 기준은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나의 턴(turn).

맺으며: 이번 5권에서의 흥미 포인트를 꼽으라면 주인공의 대갚음해 주기도 있지만 필자는 영웅 아투(메인 히로인)를 꼽겠습니다. 주인공 산하에 있을 때는 그를 사모하는 마음을 표출하는 데 브레이크가 걸려 자중하던 것이 마녀 에라키노에 의해 진영이 완전히 바뀌면서 제어라는 브레이크가 해제되어 버리죠. 주인공은 적대하면서도 사모하는 마음을 거침없이 내뱉는 통에 성녀와 마녀가 이뇬 괜히 데려왔네 후회하는 장면들이 최대 웃음 포인트입니다. 적대하면서 사모한다? 뭔가 모순이라 하시겠지만 리뷰에서도 밝혔듯이 이 세계는 게임을 기반으로 하여서 시스템적으로 이적해도 진영만 바뀔 뿐 마음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공과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도 사모하는 마음을 펼치는 부분들이 웃겨주죠.

아무튼 위에서도 밝혔지만 인간들에게 있어서 주인공을 적대한다는 것은 꿈과 희망을 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동안 성녀 '소아리나'와 마녀 에라키노에 대한 복선이 이번 5권으로 회수되고 종료됩니다. 가장 안타까운 캐릭터를 꼽으라면 역시 성녀 '소아리나'가 될 테죠. 성녀가 되면서 대가로 자신의 손으로 마을을 불태워 버렸고, 그 트라우마로 사람들을 구하는데 필사적이 되어 끝끝내 나라를 건국하는 단계까지 왔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불운은 주인공을 적대한 것이고, 만약 평화를 바랐다면 주인공의 옆 나라와 마찬가지로 동맹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가차없는 심판 앞에 유일한 친구였던 마녀 '에라키노'의 최후를 보며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후회는 무슨 색일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구전으로 내려오는 고양이 사무라이 냥극(사극)이 현실로. 그 옛날 인간과 고양이는 공존의 길을 걷고 있었으나 도쿄 녹 사태라는 미증유의 사건이 터지고 인간은 지상에, 고양이는 지하로 들어가 독자 생태계를 꾸려 왔다나 어쨌다나... 이번 이야기는 악당에 의해 지배중인 이미하마 현(都)을 구하기 위해 주인공이 썼던 필살기가 지하 고양이 세계로 떨어지면서 일어나는 모험 활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 필살기로 인해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통로가 뻥~ 뚫리면서 고양이 입자가 지상으로 퍼졌고, 인간들을 고양이로 변하게 하는 고양이병을 고치기 위해 주인공 일행은 지하 세계로 가죠. 당도해 보니 사무라이 고양이의 세상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썼던 필살기를 회수하려 하지만 그것은 악당의 손에...라는 90년대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죠.

딱히 이렇다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주인공의 사라지지 않는 필살기는 클리셰의 정석처럼 악당의 손에 들어가 있고, 그것을 이용해 세계를 개변 시키겠다는 악당. 우유부단하고, 마음 여리고, 용기가 부족했던 냥극(지하 세계)에서의 주인공으로 인해 그를 좋아했던 사람이 악당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덤으로 따라오죠. 그로 인해 엔딩은 권선징악이 아니라 '미안해', '아니야', '나랑 가자', '좋아해'등등 뭐 하는 짓거리냐는 감상을 남깁니다. 이런 작품의 특징으로 냥극(지하 세계)의 주인공은 좋아했던 사람이 악당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에 안타까워하고 칼을 휘두르지만 끝끝내 죽이지 못하고, 한 칼 남았는데 주저하는 바람에 역습 당해 일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하죠. 악당도 순수한 악이 아니라 어딘가 슬픔을 안고 있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구해줘'의 표본.

불쌍한 건 냥극(지하 세계)의 주인공과 지상에 온 주인공(본 작품의) vs 악당의 대결에서 갈려 나가는 일반 시민들. 집과 동네는 다 부서지는데 난동을 피우는 주인공 시키들은 미안한 마음도 없어. 거기에 강제로 악당의 수하로 만들어지고, 주인공과 싸워야 돼. 근데 이게 또 개그로서 훌륭하단 말이죠. 화장 떡칠이라느니, 월급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어 등등. 결국 지하 세계는 궤멸로. 주인공은 자신이 만든 필살기 때문에 고생을 엄청 하는 건 덤. 그러다가 악당의 구구절절한 과거를 몸소 체험하고 구해줘야지는 이런 작품의 클리셰입니다. 주인공의 필살기는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강한 염원의 들어주는 소원 같은 거, 이 무슨 인과관계인지 그 필살기는 악당이 바랐던 강한 염원에 이끌려 지하 세계로 떨어진 것. 그리고 밝혀지는 악당의 과거는 처절함 그 자체였죠.

사실 지하 세계에서의 활극은 주인공(본 작품의)으로 하여금 다시 세상으로 뛰쳐 나가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미마하 현(縣)을 구하고 나서 수배령도 해제되고, 이제 와이프와 오손도손 살 길만 남았지만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는 천둥벌거숭이에게 있어서 평화로움은 새장의 새처럼 지내는 거와 같았죠. 다시 세상으로 여행을 떠기 위한 발판이 필요했고, 지하 세계를 뛰어 다니며 자신의 본질은 한가하게 지내는 것이 아닌 세상을 어지럽히는 버섯 지기라는 걸 더욱 알게 됩니다. 목숨을 걸고 싸우고, 누군가에게 쫓기면서도 그걸 즐기는 변태 같은 넘. 지하 세계 냥극(사극)의 주인공을 만나 그를 보면서, 누군가를 보살피고, 가정을 꾸려 가족을 만드는 삶도 괜찮지만, 지하 세계 냥극(사극)의 주인공으로부터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게 무엇인지 알아버린 주인공은 다시 세상으로 뛰쳐나가는 걸 선택합니다.

맺으며: 지하 세계에서의 활극은 명분이고, 이번 이야기는 한자리에 머무는 것보다 내가 있을 곳은 황야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뛰쳐 나가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지하 세계에서의 활극은 클리셰 덩어리고 어딘가 좀 유치하지만, 머뭇거리는 주인공이 길을 떠나는데 등을 떠미는 이야기로서는 괜찮은 흐름을 보입니다. 돈에 환장한 해파리 소녀 '티롤'은 여전히 굴러다니고, 열혈은 다소 죽었지만 개그가 적절히 들어가 있는 등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사무라이나 명칭 등 일본색이 좀 짙어서 거부감이 좀 생기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해산한 파티를 재결합하기 위한 주인공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인공에겐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고, 던전에서 파티 전방에 서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진"의 죽음은 파티를 순식간에 와해 시켜버리고 말았죠. 6명이 있어야 [어라이버즈]이고, 6명이 있어서 던전 공략을 할 수 있다는 그동안의 공식은 "진"의 사망으로 인해 그 끝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파티는 뿔뿔이 흩어지고 주인공은 히로인 '로즈리아'와 함께 왕도(수도)에서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모험가를 떠나 일반인으로 살아가고는 있었습니다만. "진"에 의해 구원받고 [어라이버즈]에 속해 던전을 탐색하면서 그들과 함께 하였기에, 모험가라는 일에 행복함을 알아버린 주인공은 파티를 부활 시키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결국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된다는 진리에 따라 히로인과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길을 버리고 죽음을 목도하고 상실을 얻었음에도 다시 그 길을 가고자 하죠.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히로인 '로즈리아'가 그의 의지에 반대하지 않고 같이 따라나선다는 것입니다. 4차원 성격에 파티 브레이커(주로 치정 싸움)라는 이명을 가졌고, 남을 약 올리는데 도가 터서 적을 양산하고는 있지만 주인공이 자신과의 생황을 버리고 다시 던전에 들어가겠다는 의지에 반대보다는 적극 동참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재회한 소꿉친구 '미야'도 같이 따라 나서나 예전에 주인공과 헤어질 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그녀만의 길을 떠나게 되는데요. 뭐랄까 보통 여느 작품에서 일이 이렇게 흘러가면 소꿉친구도 주인공을 따라 합류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해 본 작품에서는 그러기보다는 나중을 기약하며 질질 끌지 않고 헤어지는 장면은 어딘가 모르게 애틋함이 묻어났습니다. 4권에서 파티가 와해되고 뿔뿔이 흩어지는 장면에서도 그렇고, 본 작품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에서 인연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다고 할까요.

뿔뿔이 흩어진 파티원들을 수소문해서 찾았긴 하나, 벌써 그 사고 이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마다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었기에 쉽게 재결합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죠. 딜러였던 '포스'는 검술 도장 사범이 되어 있었고, 힐러 '네메'는 새로운 파티를 꾸려 던전 공략 중이었습니다. "진"의 사망 이후 주인공 다음으로 충격을 받았던 메인 히로인 '에린'은 자신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마법 학원에서 절치부심 중이었죠. 이야기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꾸려 살아가고 있는 이전 파티원들을 어떻게 다시 규합 할 수 있을까 하는 리더십을 시험하기 시작합니다. 내 욕심을 관철하기 위해 그들이 새롭게 일궈놓은 삶을 파괴할 권리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그들이 상처받지 않고 끌어들일 수 있을까. 옛 추억을 발판 삼아 억지를 부리면 될까. 난제는 수없이 쌓여가죠. 하지만 [어라이버즈]로 다시 던전 공략에 나서고 싶다는 마음은 주인공만이 아니었으니...

이번 5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캐릭터를 꼽으라면 힐러 '네메'가 될 것입니다. 그녀는 파티가 뿔뿔이 흩어져도 홀로 거점을 지켰고, [어라이버즈]의 염원이었던 던전 공략을 위해 새로운 파티를 꾸려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라이버즈] 시절 적당 적당하게 살아가던 그녀가 새로운 파티를 꾸린 것도 놀랍지만 누가 봐도 던전 공략으로는 부족함 그 자체인 파티를 어떻게 해서든 성장시켜 가려는 노력들은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죠. 여기서 흥미로운 건 [어라이버즈]가 해체되고 내로라하는 파티에서 그녀를 스카우트하려 했으나 엄청난 낯가림으로 인해, 그리고 완성된 커뮤니티에 끼어든다는 두려움은 그녀의 다리를 옭아맸고, 그럼에도 던전을 공략하고 싶다는 마음은 변치 않기에 새로운 파티를 꾸려 어떻게든 해나가려고 하는, 어쩌면 주인공보다 몇 배는 더 고생하고 노력한 캐릭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의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점으로 돌아온 주인공을 맞아들이는 장면에서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집에서 쫓겨난 엄마가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가족들과 지내는, 하지만 그 가정도 어딘가 화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조금 비참한 그런 분위기의, 새로운 가족들은 엄마를 잘 따르고 엄마는 그런 자식들을 어떻게든 보살피려는 그런 비참함. '네메'는 주인공이 찾아오면서 지금의 파티로는 힘들다는 현실을 보게 되고, 다시 한번 [어라이버즈]로 지내고 싶다는 마음, 작가가 말하지 않아도 느낌을 전달 시키는 재주가 좋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들은 주인공이 찾아오면서 엄마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닌 걸 알아가고 그래서 보내 줄 수밖에 없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메인 히로인 '에린'이겠군요. 처음 주인공이 [어라이버즈]에 가입했을 때는 마치 부모님 원수 대하듯 했던 그녀가 던전 심층에 떨어져 그에게 의지하고 도움받으며 생환한 이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좋아한다고 말을 못 하며 속으로 끙끙 삭히기만 했던 그녀가 파티가 해산할 때 주인공의 고백조차 차버리며 마음 독하게 먹었던 그녀는 마법 학원에서 일약 스타가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라에서 7명 밖에 없다는 칠현자 후보 자리까지 올랐다는 것에 적잖이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사실 5권에서 가장 극적인 캐릭터를 꼽으라면 당연히 '에린'이 될 것입니다. 그녀가 주인공을 사모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여기(학원)에 있을 수밖에 없는 마음이 참으로 구구절절하죠. 칠현자를 정하는 시합을 거치면서 자신의 미숙함을 알아가고, 궁지에 몰릴수록 어떻게 해야 될지를 알아가고 끝끝내 목표를 쟁취해도, 그것을 뛰어넘는 만남을 찾아왔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좋아하는 사람 품에 안기는 장면은 한 편의 드라마를 현상케 했습니다.

맺으며: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파티가 흩어지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다 다시 만난다는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으나 중요한 건 그들의 새로운 삶과 다시 만나는 장면들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달라진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메'와 '에린'과의 재회는 클리셰 같으면서도 애틋한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죠. 근데 본 작품의 주인공은 타인의 마음을 가볍게 생각하기도 하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해서 좋게만은 보이지 않는데 역시나 이번 5권에서도 아슬하게 그런 모습을 좀 보여 감점의 원인이 되고 있군요. 그 외에서는 만남과 이별이라는 인연을 담백하게 그려내고 노력을 애틋함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이건 높은 점수를 줄만 했습니다.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고블린 슬레이어를 주축으로 해서 출연진 모두 모여 왕도에서 열리는 마상창 대회 구경 왔습니다. 촌놈들이 도시로 와서 들떠 우와! 우와! 거리며 여기저기 기웃기웃 쇼핑을 즐기고 있는데 도시 분위기는 밝지만, 어딘가 모르게 상당히 숨이 막힙니다. 여신관과 엘프 궁수는 모자 파는 곳에서 꺄악! 거리며 모자를 고르고, 써보는 등 쇼핑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불숙 어느 귀부인의 호통소리가 들려옵니다. "엘프라서 부끄럽다고 귀를 숨기지 마세요". 이번 이야기는 자기들의 잣대로 차별 타파를 외치는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거의 가상 공간의 캐릭터에만 국한되고 있지만, 사전적 의미는 모든 것에서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것이 올바르다는 걸 의미하죠. 사실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건 맞지만, 그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고, 없어지는 걸 경계해야만 하죠. 왜냐면, 뭐만 했다면 가령 아이가 밥투정을 하는데 나무라거나 다독이는 것조차 너, 아이 차별하냐?라는 말을 듣게 될 테니까요.

본 작품에서는 엘프라서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귀를 숨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냥 개성으로 써보고 싶은 것뿐인데?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과언이 아닌 켄타로우스에게는 불쌍하다고 달리지 말라고 합니다. 수인 전용 의자를 만드는 건 인간보다는 수인을 차별(어째서) 하는 거라고 합니다. 무녀가 신을 봉양하며 춤을 추는 건 그녀들이 바라지 않는 일일 것이라며 금지해야 된다고 합니다. 웨이트리스는 서빙을 해선 안 된다고 합니다. 여자를 구경거리로 만드니까? 그러해서 이것도 저것도 다 차별이니까 해선 안 된다. 신청서를 대신 써주는 것도, 체급별 시합도, 도둑놈에게 도둑이라 말하는 것도 다 차별, 중세 판타지가 무서운 점은 정의를 자처하는 쪽에서 내가 하는 말이 정의이고 반대하는 쪽은 악(惡)으로 단정해버린다는 점입니다. 이번 16권에서 정의는 지고신을 모시는 성기사라는 것에서 질이 매우 안 좋게 흘러가게 되죠.

참, 미리 변명을 써놓는다는 게 깜빡했군요. 말씀드리지만 작가의 성향이 그렇다거나 그렇다는 게 절대 아닙니다. 현실에서 차별을 없앤다면서 되레 개성과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PC주의의 폐해를 담고 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사실 PC주의가 옳다 그르다를 개인이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PC주의는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는 건 사실이죠. 물론 작가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집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후기에도 언급하지 않고 있어서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고요. 아무튼 이야기는 차별이랍시고 개성을 죽이고, 불편을 초래하고, 다른 이를 배려한답시고 이쪽을 차별하는 역차별이 생기지만 현실에서도 그러하듯 역차별에 대한 폐해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을 보이며 내가 차별을 없앴어!! 하며 뿌듯해하는 장면들이 대단히 압권입니다. 어쩜 이리도 현실 반영을 잘 해놨는지 혀를 내두룰 정도였군요. 참고로 비꼬는 게 아니라 감탄사입니다.

아무튼 시작은 마상창 대회 구경이지만 역시나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 왕매(왕의 여동생)가 저주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왕매는 이전에 고블린에게 납치되었다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구출된 적이 있었죠. 그래서 그 사건으로 인해 이들은 매우 친해졌고, 그러해서 못 본척할 수도 없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가는데 약간은 코믹적인 요소가 가미됩니다. 그중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점은 여신관인데, 왕매와 여신관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 닮았다는 것이고, 왕매가 저주에 걸렸다는 걸 알려선 안 되기에 여신관이 왕매 대타역을 맡아 돌아다니며 꼬물꼬물 거리는 게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고블린 슬레이어와 같이 다니며 산전수전 다 겪은 여신관으로서는 이쯤이야. 사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 좀 보상받는다고 할까요. 더욱이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는 만인을 호령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눈부신 성장을 엿보이기도 하고요.

맺으며: 이번 이야기는 사건보다는 현실 PC주의를 큰 비중으로 다룬다고 하겠습니다. 비판이라기보다는 그 폐해를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그 폐해는 좋게 끝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도 던집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어째서 내가 차별받는다는 걸까 하는 것도 있고요. 달리는 게 좋아서 달리는 달리기 선수에게 불쌍하니까 달리지 말라고 하는 건 올바른 배려일까. 바니 걸 의상 입고 서빙하는 것을 좋아서 하는 일인데 이걸 두고 성 상품화라며 금지해야 된다면, 100보 양보해서 성 상품화이고 그래서 그만두게 되었다면 그 여성은 무얼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해서 벌어 먹고 살아야 할까. 금지해야 된다는 사람 왈: 자유롭게 골라서 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장면들을 보고 정말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어쩜 이리도 현실 반영을 잘했는지. 문득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왜냐면, 상상 이상으로 현실에서 PC주의가 점점 더 극단적이 되어 가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1권에서 여신관과 파티 맺고 1권 만에 리타이어 한 여 마술사의 남동생과 그를 주워준 레어 소녀의 비중이 꽤 높습니다. 이들을 통해 극단적인 PC주의는 경계해야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죠. 차별 타파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배려는 때론 사람의 자존심을 박살 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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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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