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어느 날 사신이 찾아와서 "당신의 수명은 앞으로 7일 밖에 없습니다"라고 한다면 뭘 하고 싶으신가요. 주인공 '케이'는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자신을 사신으로 소개하는 '쿄우카'라는 소녀를 만납니다. 곧장 그녀의 입에서 너 님의 수명은 앞으로 7일 밖에 남지 않았고, 묻지 마 살인마에게 칼 맞아 비참하게 죽는다는 선고를 받죠. 당연히 믿을 리 없고, 또 그걸 증명한다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지만 중요하지 않으니 패스. 본 이야기는 7일 남은 생명을 어떻게 쓸까와 7일 동안 자신이 담당하는 생명과 지내며 [행복]을 알아가는 사신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여기까지 보면 문학 소설의 한 장르로 여겨질 테죠. 삶이 7일 밖에 남지 않은 사람이 7일 동안 얼마나 알차게 시간을 보낼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 해보고 싶었던 일, 짝사랑했던 사람에게 고백을 한다든지, 멀리 여행을 떠난다든지, 산꼭대기에 올라 큰소리 지르고 후련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하는 그런 이야기....

일 줄 알았죠.

[미련을 털어내고서 후련하게 성불하자 캠페인]

그동안 딱 죽는 시간에 와서 영혼만 거둬갔던 사신계에서 이번에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미리 죽는 날짜를 알려서 미련 없이, 후련하게 이 세상 하직하게 만들자. 그 첫 번째 타깃으로 주인공 '케이'가 선정되었고, 그래서 사신 소녀가 찾아와 너 님 7일 후 하직을 선고하죠. 그리고 이러면 뭐가 미련 없이 후련하게야 할 거 같아 딱 한 번 소원을 들어준다고도 합니다. 이에 주인공은 너 님(사신 소녀)과 같이 지내고 싶다는 소원을 말해버린, 그래서 둘이 동거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뭔가 좀 필자 입맛에 맞지 않는 보리밥 같은 이야기 삘을 받았지만 이미 책을 펼쳤고, 한번 펼친 책은 끝까지 무슨 수를 쓰던 봐야 되는 게 필자의 신조라서 읽었죠. 그리고 본론부터 말하자면 괜히 구입했다.

본 이야기는 단편입니다. 인간의 희로애락과는 많이 다른, 인간 쪽에서 보면 감정이 거의 없는 사신이, 오로지 주어진 영혼 탈곡기 역할만 하던 사신이 자신이 담당하던 인간과 지내며 인간의 감정을 알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사신은 영체라서 음식을 안 먹음) 하다가도 맛을 음미하고, 주인공과 같이 살게 되면서 게임이나 영화, 만화를 보며 거기에 빠져드는 인간적인 모습을 장착해 나가죠. 주인공은 사신 소녀가 파르페를 먹으며 약간 웃는 모습에 반해 즉흥적으로 나와 함께라는 소원을 말해버립니다. 그리고 남은 7일 동안 사신 소녀가 다시 웃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이 작품에서 사신은 로봇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주어진 일만 수행할 뿐 인간의 희로애락은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게 주인공 '케이'와 지내며 점차 인간의 감정을 알아가고, 이 사람과 같이 있어서 행복하다는걸, 그리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7일 동안 경험해 나갑니다. 여기까지 보면 분명 문학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을 없을 것입니다. 사실 바랐던 건 비 오는 거리를 우산 하나로, 눈 내리를 거리를 신난 아이들처럼 뛰어다니고, 단풍이 지는 산을, 노을이 지는 바다를, 정처 없이 열차 타고 여행을, 그리고 어느 간이역에 내려 사랑이라는 걸 알아버린 사신 소녀의 손에 목숨이 거둬지는 엔딩을. 이러면 식상해도 단편으로 마무리 짓기엔 손색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신변을 정리하기 위해 들린 대학에서 느닷없이 고백을 받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해온 '요시타니'라는 소녀에게서, 그리고 작가는 단숨에 작품을 호러물로 변질 시켜버립니다.

사람이 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죽을 거 같다의 감정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 거 같은가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7일 후에 죽는다는 사형 선고를 받은 시점에서 고백을 받아봐야 상대에게 상처만 줄 뿐인 걸 알기에 당연히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너무너무 좋아하는 이 감정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뭐 스토커 밖에 더 되겠어요.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사신 소녀와 7일간 애틋한 마음을 만들어 갔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그걸 반증하듯 사신 소녀는 주인공과 지내며 무표정했던 표정을 벗어던지고 희로애락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한번 마음속에 들어온 사람을 잊지 못해 찾는 모습은 순애물로는 손색이 없었습니다. 근데 왜 스토커를 끼얹는 걸까? 사랑은 고난을 넘어서야 비로소 딴딴해지니까?

이야기는 스토커를 끼얹으면서 호러 + 치정 싸움이 됩니다.

맺으며: 단권으로 끝나다 보니 이야기가 중구난방이고, 급전개를 많이 보여줍니다. 사신이 찾아온 건 그렇다 치더라도 '요시타니'의 고백과 그녀의 행보는 너무 뜬금이 없고 뒷일이 예상되는 전개로 인해 작품의 질을 저하 시키 버립니다. 딴에는 사신을 등장시키고, 요시타니의 고백을 통해서 주인공의 가치 부각 시키고, 죽을 때 되니까 세계가 넓어지고 연애관을 키우는 등 그에 수반하는 애틋한 사랑을 그리려나 했나 봅니다만. 돌이켜보면 일본 사회에서 심각한 초식남을 비꼬는 사회 고발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군요. 연애와는 연이 없는 초식남에게도 어딘가 인연이 있을 테니 찾아보라는? 그러니까 죽음을 앞두고 보니까 사람의 감정을 알게 되었고, 그러니까 죽을 각오로 찾아라 뭐 그런? 하지만 본 작품은 그런 거창한 건 없습니다.

주인공 성격도 그리 좋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데이트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여자를 생각하고, 다가와 줬으면 좋겠다 했으면서 정작 다가오니 발로 차버리고, 죽을 날을 앞두고도 기껏 한다는 건 만화, 영화를 보는 것이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뭔가 건설적인 행동 따윈 없죠. 곧 죽을 텐데 무슨 건설적인? 하겠습니다만 차라리 2세라도 만들던가. 아무튼 그러다 고향을 찾고, 사신 소녀와 놀이 시설에 가는 등 소시민이 할 법한, 평범한 이야기를 보여주죠.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스토커, 엔딩은 전형적인 일본식 "어서 와!" 리뷰는 많이 순화해서 썼습니다만, 솔직히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작품이었군요. 물론 무감정이었던 사신 소녀가 인간의 감정을 가져가는 장면들은 흥미로웠습니다만. 로봇을 만들 때 굳이 인간형으로 만들 필요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었군요. 인간형이 아니면 불필요하게 감장이입을 안 할 테니까요.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우루미 루나'를 신봉하는 사이비 집단에 의해 자행되었던 소라오와 코자쿠라의 납치 사건은 DS 연구소의 진압 작전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목소리로 사람들을 세뇌하여 자신을 신봉하게 했던 루나는 '우루마 사츠키'에 의해 죽을뻔하였으나 간신히 목숨을 건져 구속된 상태고요(이 부분을 언급하는 이유는 5권 이후에서 루나가 재등장하기 때문). 이렇게 사건이 일단락되면서 이제 좀 한숨 쉬나 했지만 이야기는 지금부터라는 듯, 소라오를 중심으로 괴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번 4권은 소라오의 과거를 비추면서 그녀가 살아온 길, 가정사, 그리고 토리코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집으로 돌아온 소라오를 반기는 것은 인간의 형태와는 조금 다른 무엇, 벽 넘어에서 명확하게 소라오를 지명하는 목소리는 공포를 불러오고 그것을 시작으로 소라오는 무언가에 쫓기는 형국이 되죠.

사이비 종교에 빠진 아버지와 할머니, 엄마는 가출, 거기에 사이비 종교 관련 사람들이 걸핏하면 집에 몰려오는 통에 아이는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밖을 전전해야 했고 급기야 고등학생 시절에도 외곽 폐업한 모텔에 숨어들어야 지내야 할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면. 아이는 꿈꿉니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그것이 무의식인지 의식인지. 이세계의 존재는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어 미치게 만든다고 합니다.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의식을 찾아내 공포로 발현 시킨다면, 그렇다면 아이의 내면에 잠재했던 의식이 공포로 승화되는 건 필연일 수밖에 없게 되죠. '소라오'는 루나의 사교 집단에 납치되어 죽다가 살아 돌아온 후 본격적으로 이세계가 자신을 콕 집어 간섭하려 한다는 걸 알아갑니다. 안전해야 될 집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고, 피신했던 곳까지 마수를 뻗어 오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될지 아직은 모르는 상황이죠.

옛 동료 '우루마 사츠키'를 집착에 가깝게 찾아다녔던 '토리코'는 더 이상 사츠키에 대한 미련을 벗어던집니다. 그야 이세계에 먹혀 그 세계의 주민이 되어버린 그녀(사츠키)는 이제 내가 알고 있는 그녀가 아니었으니까요. 언제나 밝고 쾌활하고 남들을 잘 이끌 거 같았던 여장부(토리코)는 사실은 누군가를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였죠. 그래서 우연히 만나 동행했다곤 해도 이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동료가 된 '소라오'에 기대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본 작품은 장르 중에 백합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관계를 진척 시켜가는 모습이 조금은 적나라합니다. 같이 목욕하려 들고, 온천에 가서도... 물론 자발적 아싸인 '소라오'는 그런 토리코에 기겁하지만 자신을 구해줬고, 불우했던 과거를 지나 아무도 없는 자신을 바라봐 줬고, 이세계에 여행을 자주 하면서 늘 곁에 있는, 더 이상 그녀의 온기를 외면할 수는 없는 처지에 놓입니다.

소라오가 품고 있는 과거의 의식이 공포로 변해 조금씩 뒤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공포를 통해 조금씩 밝혀지죠. 여행을 갔어도, 다시 재정비하고 이세계에 발을 들인 소라오와 토리코를 노리고서. 그리고 소라오는 과거 무슨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 알게 되죠. 이세계는 꽤 오랫동안 소라오의 곁에 있었습니다.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어 미치게 만들고 내면의 의식을 현실화해서 사람들을 헤칩니다. 소라오와 토리코는 이세계에서 얻은 능력을 이용해 이런 괴이쩍은 일들을 해결하기도 하고, 이세계 물품을 주워와 DS 연구소에 팔아 연명하고 있죠. 이번에는 소라오가 괴이쩍은 일에 휘말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어두웠던 그녀의 과거를 들춰냅니다. 학대받고 버림받다시피 했던 아이는 지푸라기도 잡고 싶었을 것이고, 누군가가 자신을 안아주며 온기가 무엇인지 알려준다면 아이는 거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것으로 인해 파국이 찾아와도...

맺으며: 소라오가 왜 자발적 아싸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풀어 놓습니다. 타인을 거절하고, 공감을 잘 하지 못하는, 분명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인데도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 그러다 토리코를 만나 여행을 하고 온갖 위험을 뛰어넘으며 가지게 된 감정, 드디어 혼자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을 얻어 가는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적이죠. 어느 날부터 '사츠키'를 찾는 토리코를 보면서 사츠키에 대한 질투심을 보이고, 이제 더 이상 그녀(사츠키)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에서 안도를 하면서도 이세계 주민(괴물)이 된 사츠키가 찾아오지 않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전형적인 학대받은 아이가 있을 곳을 찾으려는 모습 등은 이세계라는 공포와 더블어 흥미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 외에는 겁 많고 취급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항상 위험에 노출된 건 소라오와 토리코인데 고생은 어찌 된 건지 혼자 다하는 연상이지만 동생 취급받는 '코자쿠라'의 츤데레 같은 모습도 상당히 귀엽게 다가옵니다. <- 사실 코자쿠라만으로도 본 작품을 구매하기엔 충분한데 분량이 많지 않군요.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모니카 에버렛'은 약관 15세의 나이에 나라에서 7명 밖에 없다는 마술사의 정점 칠현인(현자가 7명)에 뽑힐 정도로 마술에 능통하나 그녀에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심각한 낯가림'. 인간은 무영창으로 마술을 쓸 수 없다는 법칙을 깬 장본인이기도 하고, 기사단이 떼로 덤벼도 어쩌지 못하는 흑룡을 단독으로 격파하는 등 당대 최강의 마술사로서 만인의 사랑과 아이돌 같은 우상을 한몸에 받고 있으나 극히 일부를 빼곤 그녀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사회와 벽을 쌓고 살아가고 있죠. 그녀는 사람들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사람들 앞에서 영창하길 꺼렸고 그럼 무영창으로 하면 되겠네? 하는 얼토당토않는 생각으로 해내버립니다. 그렇게 만인의 부러움을 사는 칠현인이라는 자리에 올랐고, 2년이 흐른 지금, 시골에서 숨어 살던 그녀에게 지상 최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본 작품은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일본식 학원물입니다. 그래서 군기 잡는 장면도 제법 있고, 왕따와 괴롭힘 등 학원 내에서 못 배운 것들에 의해 일어나는 추악한 이면들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고 있는데요. 알콩달콩 청춘 로맨스 학원물보다는 남을 깎아내리는데 도가 튼, 그런 귀족 세계를 바탕으로 해서 엄격한 위계질서와 자신 밑의 계급(평민은 말할 것도 없고)은 인간 취급을 안 해주는 사바나 같은 냉혹함을 보여주고 있죠. 물론 이게 메인이 아닌 바탕으로 깔려 있는데요. 여주 모니카는 지인에 의해 이런 사바나 같은 학원에 강제로 입학해서 어떤 인물을 호위해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심각한 낯가림으로 인해 대인 관계는 궤멸적, 동성과도 눈 똑바로 보고 대화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대인 기피증, 용기 내서 대화를 해도 몇 분 못 가서 거품 물고 졸도. 과연 그녀는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 기간은 1년, 호위 대상은 이 나라의 제2 왕자. 왕자는 학원의 정점, 모든 여성이 우러러보는 미남(일러스트도 잘 나왔음), 모니카와 접점이라고는 개미 눈물만큼도 없을 관계지만 이런 작품이 다 그렇듯, 우연찮은 이벤트로 만나 왕자와 엮여가는 클리셰를 보여주죠. 흥미로운 건 품질 저하식의 장면이 아닌 개그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군요. 그러다 왕자의 목숨을 노리는 사건이 터지고 모니카는 그걸 추적해서 범인을 찾아내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보다는 모니카가 학원 생활을 하며 그녀의 병적인 낯가림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더 흥미롭습니다. 상위 귀족과의 트러블에서 내가 참으면 일이 커지지 않는다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본식 피해자 대처법이라든지, 그걸 또 못 본 척하지 않고 정의 구현해 주는 미남 캐릭터라는 클리셰도 보여주죠.

여기서 더 흥미로운 점은 꾸미는데 소질이 없고 관심도 없고 못 먹어서 뼈밖에 없는 그녀가 칠현인이라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가 칠현인이라고 밝혀진다면 학생들은 어떤 경악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가 있고, 맛보기로 왕자를 노렸던 범인이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고 뜨악?! 하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명장면에 속하죠. 그런데 학원물이라는 한정된 공간이라서 그런지 대규모 싸움보다는 왕자를 노리는 범인을 찾는 추리를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대인 기피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호위 때문인데도 이걸 알 길이 없는 학생들의 (학원의 정점인 왕자의 곁에 얼쩡 거린다는 이유로) 악의와 질투를 받아도 '내가 참으면'으로 저자세로 일관해서 약간은 발암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마음은 도망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불쌍할 정도로 처절한 모습들을 보이죠.

본 작품은 여성향입니다. 여주와 여러 미남 캐릭터 그것도 왕자라는 구도를 가지고 있죠. 처음은 그저 몰래 왕자를 호위하려 했으나 대인 관계가 궤멸적인 그녀로서는 방법이 서툴렀고 결국 왕자와 접점이 생겨버립니다. 거기에 왕자 주변에는 당연히 추종자로서 미남 캐릭터가 포진하고 있죠. 이벤트가 벌어져 왕자와 접점을 만들고 차차 미남 캐릭터들과도 접점을 만들어 가는데 미남 캐릭터들은 당연히 평민보다 못한 그녀에게 멸시의 시선을 보내나 주어진 임무와 맡겨진 일을 해내는 모습에서 차츰 그녀를 인정해가고 매몰차게 대했던 인물이 조금씩 그녀를 챙겨주는 모습들이 꽤나 인상적입니다. 물론 많은 작품을 봐온 필자 입장에서는 식상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건 왕자를 주축으로 해서 여러 미남 캐릭터들이 여주 모니카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오르죠. 여주 모니카는 왜 중증 대인 기피증을 앓게 되었는가입니다. 과거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학대를 당했고,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사람들을 기피하고 대화할 수 없을 정도로 낯가림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봤는데 그런 복선이 조금 나오면서 그녀의 과거가 궁금해지기도 했는데요. 그런 과거를 트리거로 삼아 그녀는 무영창을 실현했고, 그것으로 인해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올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을 있게 한 원천인 과거를 넘어서지 못해 자기의 위치를 살리지 못하는, 그런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원에 강제로 입학은 했지만 또래의 친구를 만나고 과거에서 아버지가 말했던 것을 가슴에 새기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 갈려는 모습에서 응원하게 되더군요.

맺으며: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와 말도 제대로 못해서 처음엔 발암으로 다가옵니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바탕으로 깔기 시작하면서(저 위에서 언급한 학대 당한 거 아닐까 하는 것) 조금은 응원하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마음은 시골 오두막에 처박히고 싶지만 주어진 임무를 내팽겨 칠만큼 썩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해서 중반을 넘어서면 발암적인 요소는 많이 희석됩니다. 그리고 마녀의 곁에는 검은 고양이는 필수라는 것처럼 '네로'라는 인간의 말을 하는 고양이를 투입해 소소한 개그를 이끌어 내는 재주가 있는데, 그 외에도 먹을 것은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는다거나 지인의 상위 정령의 말장난 등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재주가 좋더군요. 마지막으로 그녀의 지인은 그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괴물". 누가 그녀를 괴물로 만들었는가가 더 궁금해지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야기도 슬슬 클라이맥스로 치닫습니다. 방탕하고 제멋대로인 4신(神) 들에 의해 고대부터 마구잡이로 소환된 용사들이 죽어서 환생도 못한 채 구천을 떠돌고 그게 원인이 되어 이세계를 유지하는 시스템에 오류를 일으키고 나아가 차원 붕괴로 이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본의였는지는 이제 와 생각은 안 나지만, 아저씨(주인공)가 주워와 배양한 사신(神)이 제시간에 간신히 부활하여 시스템 오류를 바로잡아가면서 차원 붕괴는 가까스로 막아가고는 있습니다만. 시스템 오류 여파는 강력한 마물의 등장으로 연결되고, 아저씨는 이에 대응하느라 죽을 고생을 하게 되죠. 결국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집에서 게임하던 폐인이 4신에 의해 폭사 당하고 이세계로 끌려와 4신과 사신(神)이 벌인 전쟁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개고생 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뭐 폭사 당하고 끌려왔지만 이세계에서의 생활도 나름 괜찮고 정들면 고향이라고 도시에 정착해 잘 살아가고 있었죠. 능력을 발휘해 이거저거 만들며 이세계 먼치킨 계보를 잘 따라가는 등 클리셰 덩어리 같은 면모도 보였습니다만, 일본식 개그 만담 같은 개그로 승화 시켜서 저렴함은 있어도 식상함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본식 개그 만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거부감이 좀 드는 호불호가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것도 10권까지의 이야기고 11권부터는 본격적으로 차원 붕괴를 다루고, 4신 타도를 위해 사신이 본격 부활하는 등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진척 시키면서 이야기는 진지하게 흘러갑니다. 첫 번째로 원수지간이었던 친누나와 최종 결판을 내고, 두 번째로는 그동안 신세 졌던 히로인들에게 프러포즈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저씨에게 있어서 친누나와의 관계는 지구에서부터 악연 그 자체였고, 이세계에 다 같이 끌려와서도 제멋대로 살아가고 자신을 위해 친동생은 물론이고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희생 시키는 누나는 마왕 그 자체였죠. 그러나 겉모습과 행동은 성녀와도 같아서 사람들이 마구 속아 넘어가는, 최종 보스여도 이상하지 않을 누나를 처단하기 위해 아저씨는 함정을 파고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시작합니다. 약간의 질질 끄는 장면을 지나 마침내 마주한 자리. 이후 사실 누나 때문에 여성 혐오증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건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라는 듯, 그동안 신세 졌던 히로인들에게 프러포즈 하는 장면은 좀 감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작가가 연애를 못 해본 모양인지 밋밋하기만 하군요.

맺으며: 나이 40을 넘어 홀아비로 늙어죽나 싶었던 아저씨는 용기를 내서 히로인들에게 대시를 하고, 대시를 받은 히로인들의 순수한 모습에서 이 부분만큼은 저렴함이 없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이세계가 붕괴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지만 남녀 관계를 질질 끌지 않고 깔끔하게 맺어줘서 큰 점수를 줄만 했습니다. 사실 일러스트는 빈말로도 좋다 할 수 없고, 한국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 일본식 개그로 인해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등 도처에 지뢰를 살포하고 있지만 그래도 질질 끌지 않는 낄끔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나를 이용해 인간의 이기심을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하죠. 사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을 수밖에 없는 치열한 세계를 살고 있다는 사회 고발성을 엿보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사신을 역시 소녀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리는군요. 누가 라이트 노벨 아니랄까 봐...

 

 

 

특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1권부터 시작되어 장장 18권까지 이어져 온 프레이야의 벨에 대한 집착의 종착점입니다. 소녀의 가면의 벗어던지고 내 사랑을 힘으로 빼앗기로 정한 프레이야는 오라리오 전체에 매료를 걸어 사람들의 인식과 기억을 개찬해서까지 벨을 고립 시켰으나 헤스티아의 활약으로 미수에 그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프레이야는 헤스티아에게 선전포고를 하죠. "워게임" 이긴 쪽이 벨을 차지하는 것으로. 프레이야는 자신의 아이들[프레이야 파밀리아]을, 헤스티아에겐 제약이 없는 무제한적인 인원을 동원하는 것을 용인. 프레이야의 기억 개찬에 열받아버린 오라리오 주민과 주신(神)들은 프레이야 타도를 외치며 헤스티아를 중심으로 해서 [파벌 연합]을 꾸리게 됩니다. 하지만 최대의 전력이라 여겼던 [로키 파밀리아]는 불참, 아이즈 또한 참가 불가령이 떨어지고 프레이야 편에 선 주신(神)들도 있는 상황에서 오합지졸이 모인들 오라리오 최강의 [프레이야 파밀리아]를 넘어설 수 있을까?

본 18권을 읽기 전에 외전 '파밀리아 크로니클 프레이야 에피소드와 류의 과거 이야기인 아스트레아 레코드'를 먼저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유는 개연성 때문이군요. 외전들은 보다 18권에 집중할 수 있는 장치로서 일본에서 뭐가 먼저 발매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18권 발매 전에 외전을 먼저 내보인 건 신의 한 수 아니었나 싶습니다. 18권에서는 프레이야가 바라는 사랑이 무엇인지, 이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랑을 찾아 헤매는 절절한 마음이 그녀를 한 명의 소녀로 만들고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게 무엇인지 고뇌하는 것을 보여주죠. 류는 절체절명에 빠진 지금의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뭘 해야 되는지, 그에게서 과거를 마주하고 뛰어넘기 위한 [희망]을 봤고, [희망]을 관철하기 위해. 더 이상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금색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당당히 전장에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보다 집중하려면 '아스트레아 레코드'를 먼저 읽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라와 제우스가 없는 오라리오에서 사상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핀'도 전신 전력으로 나오면 이길 자신이 없다는 그 [프레이야 파밀리아]를 상대로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헤슽티아 중심의 파벌 연합]과의 대결은, 내기에서 100:0 승률이 나올 정도로 [파벌 연합]의 승리의 가능성은 개미 눈물만큼도 없습니다. 그래도 헤스티아는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릴리는 사령관의 자리를 맡아 승리 가능성이 없는 워게임을 두고 절망에 빠집니다. 이렇듯 이야기는 성립 자체가 안 된다는 듯이 시작되죠. 하지만 벨은 그 끝을 절망이 아니라 다른 것을 봅니다. 벨의 마음에는 "시르"가 자리하고 있죠. 프레이야는 "시르'를 버렸습니다. "시르"를 그만두고 [반려]로 인정한 소년을 독점하기 위한 프레이야의 처절한 몸부림과 "시르"를 구하고 싶은 소년의 몸부림, 그리고 시작되는 워게임은 단 한 번의 충돌로 [파벌 연합]은 궤멸에 직면합니다. 가공할 [프레이야 파밀리아]의 맹공을 과연 벨은 뚫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울고 있는 "시르"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18권은 약자들이 강자를 상대로 싸워 이겨 나가는 클리셰를 기용하고는 있으나, 본질은 '울고 있는 아이는 구해주는 게 맞다'로 귀결된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진부하기도 하고, 크로니클 프레이야 에피소드를 읽지 않았다면 개연성이 부족해서 좀 낮은 평가를 주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만. 프레이야는 이 사랑이, 이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 채, 방황하고, 집착으로 변질되고 그렇기에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끝에 실력행사라는 어린애 같은 장면들을 보여주죠. 그런데 그런 클리셰 속에서도 작가의 진면모를 볼 수 있는데요. 그녀의 종자이자 거울인 "회른"을 통해 지금의 프레이야가 품고 있는 마음을 조금씩 밝혀가고, 세상에서 제일 강한 여신은 사실 xx(스포일러라서)에 빠져 있다는, 하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울고만 있다는, 그녀의 마음은 평범한 소녀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하죠. 클리셰의 범주에 들어가면서도 애틋하게 하는 작가의 실력이 대단히 좋습니다.

사실 완결 편이라고 해도 될 18권입니다. 벨은 프레이야가 품고 있는 마음(특대 스포일러라서)을 깨닫게 해주었고, 프레이야는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미련을 벗어던지죠. 그렇다는 건 과감히 벨의 품에 안기나?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보는 것이라 하죠. "벨이 바라보는 곳은..." 사실 그동안 꾸준하게 벨이 바라본 곳은 딱 하나 있었죠. 그의 스킬이 발현한 조건이기도 한. 그렇기에 우는 아이를 구해주기 위해 처절하리만치 몸을 사리지 않고 프레이야가 있는 곳으로 갔던 벨은 프레이야의 바람을 들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벨이 구해주고 싶었던 소녀는 프레이야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엔딩은 프레이야가 아닌 다른 소녀로 귀결되죠. 이것도 클리셰일 수는 있으나 그래도 높은 점수를 줄만한 게, 여느 라노벨이라면 주인공 품에 히로인이 뛰어드는 엔딩을 택하겠지만 이 작품은 그런 게 없다는 것이죠. 미련이 없다는 것,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엔딩은 상당히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못 쓰는 게 가슴 아픕니다만, 천 갈래의 길이 있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그 천 갈래의 길 중에 하나, 앞으로도 그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걸어 갈려는 프레이야의 뒷모습은 더 이상 악녀의 이미지는 없었습니다. 그저 한 명의 소녀일 뿐이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 그 길을 홀로 걸어갈 뿐. 어디로 가야 할지는 지금부터 정할 뿐. 미련을 버렸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품에 뛰어드는 것이 아닌, 홀로 다시 걸어간다는 의미. 정말 오랜만에 센티해지는 느낌의 엔딩이었는데요. 이렇게 끝내야 했습니다. 그래야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되었을 테니까요. 근데 작가는 프레이야에게 미련을 버리게 했으면서 자기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군요. 하기야 벨이 구하고자 했던 건 프레이야가 아닌 "시르"였으니까요. 이 정도면 스포일러로서 세이프일까요? 갈려나간 [파벌 연합]은 대체 뭣 때문에 출연한 건지...

맺으며: 액션신은 예전부터 좋았으니 이번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벨에게 있어서 뛰어넘어야 하는 사람은 딱 두 명이 있죠. 한 명은 출전 불가가 내려졌고, 나머지 한 명은 뭐... 지면도 많이 할애하고 전투 표현도 좋지만 넘어가고요. 이번 18권은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것을 한꺼번에 터트립니다. 프레이야 이야기를 끝내고 이어, 류는 벨을 도와주기 위해 5년 전에 피신 시켰던 주신 '아스트레아'를 찾아가고, 그동안 스테이터스 갱신을 하지 못해 류의 레벨 업이 이루지 지지 않은 것을 해소 시키고, 외전을 먼저 소개하고 이번 18권에서 여신 아스트레아를 등장 시킴으로서 훙분도를 배가 시키는 재주가 상당히 좋습니다. 특히 피신해 있으면서 새로운 단원들을 맞아들였던 여신 아스트레아가 그 단원들을 이끌고 류를 도와주기 위해 등장하는 장면은, 마치 친엄마가 이복동생들을 대리고 나타난 듯한 느낌을 받게 해서 상당히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있지만 넘어가고, 7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이 지루할 틈 없이 흥미로웠습니다. 필력도 최고조에 다다랐는지 표현력도 상당히 좋고요. 1만 5천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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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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