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사신 소녀와 최후의 첫사랑 리뷰 -웃으며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어느 날 사신이 찾아와서 "당신의 수명은 앞으로 7일 밖에 없습니다"라고 한다면 뭘 하고 싶으신가요. 주인공 '케이'는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자신을 사신으로 소개하는 '쿄우카'라는 소녀를 만납니다. 곧장 그녀의 입에서 너 님의 수명은 앞으로 7일 밖에 남지 않았고, 묻지 마 살인마에게 칼 맞아 비참하게 죽는다는 선고를 받죠. 당연히 믿을 리 없고, 또 그걸 증명한다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지만 중요하지 않으니 패스. 본 이야기는 7일 남은 생명을 어떻게 쓸까와 7일 동안 자신이 담당하는 생명과 지내며 [행복]을 알아가는 사신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여기까지 보면 문학 소설의 한 장르로 여겨질 테죠. 삶이 7일 밖에 남지 않은 사람이 7일 동안 얼마나 알차게 시간을 보낼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 해보고 싶었던 일, 짝사랑했던 사람에게 고백을 한다든지, 멀리 여행을 떠난다든지, 산꼭대기에 올라 큰소리 지르고 후련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하는 그런 이야기....
일 줄 알았죠.
[미련을 털어내고서 후련하게 성불하자 캠페인]
그동안 딱 죽는 시간에 와서 영혼만 거둬갔던 사신계에서 이번에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미리 죽는 날짜를 알려서 미련 없이, 후련하게 이 세상 하직하게 만들자. 그 첫 번째 타깃으로 주인공 '케이'가 선정되었고, 그래서 사신 소녀가 찾아와 너 님 7일 후 하직을 선고하죠. 그리고 이러면 뭐가 미련 없이 후련하게야 할 거 같아 딱 한 번 소원을 들어준다고도 합니다. 이에 주인공은 너 님(사신 소녀)과 같이 지내고 싶다는 소원을 말해버린, 그래서 둘이 동거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뭔가 좀 필자 입맛에 맞지 않는 보리밥 같은 이야기 삘을 받았지만 이미 책을 펼쳤고, 한번 펼친 책은 끝까지 무슨 수를 쓰던 봐야 되는 게 필자의 신조라서 읽었죠. 그리고 본론부터 말하자면 괜히 구입했다.
본 이야기는 단편입니다. 인간의 희로애락과는 많이 다른, 인간 쪽에서 보면 감정이 거의 없는 사신이, 오로지 주어진 영혼 탈곡기 역할만 하던 사신이 자신이 담당하던 인간과 지내며 인간의 감정을 알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사신은 영체라서 음식을 안 먹음) 하다가도 맛을 음미하고, 주인공과 같이 살게 되면서 게임이나 영화, 만화를 보며 거기에 빠져드는 인간적인 모습을 장착해 나가죠. 주인공은 사신 소녀가 파르페를 먹으며 약간 웃는 모습에 반해 즉흥적으로 나와 함께라는 소원을 말해버립니다. 그리고 남은 7일 동안 사신 소녀가 다시 웃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이 작품에서 사신은 로봇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주어진 일만 수행할 뿐 인간의 희로애락은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게 주인공 '케이'와 지내며 점차 인간의 감정을 알아가고, 이 사람과 같이 있어서 행복하다는걸, 그리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7일 동안 경험해 나갑니다. 여기까지 보면 분명 문학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을 없을 것입니다. 사실 바랐던 건 비 오는 거리를 우산 하나로, 눈 내리를 거리를 신난 아이들처럼 뛰어다니고, 단풍이 지는 산을, 노을이 지는 바다를, 정처 없이 열차 타고 여행을, 그리고 어느 간이역에 내려 사랑이라는 걸 알아버린 사신 소녀의 손에 목숨이 거둬지는 엔딩을. 이러면 식상해도 단편으로 마무리 짓기엔 손색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신변을 정리하기 위해 들린 대학에서 느닷없이 고백을 받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해온 '요시타니'라는 소녀에게서, 그리고 작가는 단숨에 작품을 호러물로 변질 시켜버립니다.
사람이 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죽을 거 같다의 감정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 거 같은가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7일 후에 죽는다는 사형 선고를 받은 시점에서 고백을 받아봐야 상대에게 상처만 줄 뿐인 걸 알기에 당연히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너무너무 좋아하는 이 감정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뭐 스토커 밖에 더 되겠어요.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사신 소녀와 7일간 애틋한 마음을 만들어 갔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그걸 반증하듯 사신 소녀는 주인공과 지내며 무표정했던 표정을 벗어던지고 희로애락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한번 마음속에 들어온 사람을 잊지 못해 찾는 모습은 순애물로는 손색이 없었습니다. 근데 왜 스토커를 끼얹는 걸까? 사랑은 고난을 넘어서야 비로소 딴딴해지니까?
이야기는 스토커를 끼얹으면서 호러 + 치정 싸움이 됩니다.
맺으며: 단권으로 끝나다 보니 이야기가 중구난방이고, 급전개를 많이 보여줍니다. 사신이 찾아온 건 그렇다 치더라도 '요시타니'의 고백과 그녀의 행보는 너무 뜬금이 없고 뒷일이 예상되는 전개로 인해 작품의 질을 저하 시키 버립니다. 딴에는 사신을 등장시키고, 요시타니의 고백을 통해서 주인공의 가치 부각 시키고, 죽을 때 되니까 세계가 넓어지고 연애관을 키우는 등 그에 수반하는 애틋한 사랑을 그리려나 했나 봅니다만. 돌이켜보면 일본 사회에서 심각한 초식남을 비꼬는 사회 고발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군요. 연애와는 연이 없는 초식남에게도 어딘가 인연이 있을 테니 찾아보라는? 그러니까 죽음을 앞두고 보니까 사람의 감정을 알게 되었고, 그러니까 죽을 각오로 찾아라 뭐 그런? 하지만 본 작품은 그런 거창한 건 없습니다.
주인공 성격도 그리 좋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데이트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여자를 생각하고, 다가와 줬으면 좋겠다 했으면서 정작 다가오니 발로 차버리고, 죽을 날을 앞두고도 기껏 한다는 건 만화, 영화를 보는 것이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뭔가 건설적인 행동 따윈 없죠. 곧 죽을 텐데 무슨 건설적인? 하겠습니다만 차라리 2세라도 만들던가. 아무튼 그러다 고향을 찾고, 사신 소녀와 놀이 시설에 가는 등 소시민이 할 법한, 평범한 이야기를 보여주죠.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스토커, 엔딩은 전형적인 일본식 "어서 와!" 리뷰는 많이 순화해서 썼습니다만, 솔직히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작품이었군요. 물론 무감정이었던 사신 소녀가 인간의 감정을 가져가는 장면들은 흥미로웠습니다만. 로봇을 만들 때 굳이 인간형으로 만들 필요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었군요. 인간형이 아니면 불필요하게 감장이입을 안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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